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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개의 눈이 달려도 상상하는 한 개의 눈이 없으면...

[고현주의 꿈꾸는 카메라]<29> 솔이, 혜원

우리는 사진을 배울 때 이론을 먼저 배운다.
카메라라는 기계를 다룰줄 알아야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기계를 다루려면 매뉴얼을 익혀야 되고 잘 빠진 작품은 좋은 매뉴얼을 익힐 때만 가능하다고 하는 아주 큰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은 카메라가 기계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출, 조리개, 셔터속도, ISO값, 등 잘 된 사진의 기본 셋팅을 마치 수학공식처럼 주도면밀하게 계산하여 사진을 찍는다.

심지어는 풍경도 수학공식처럼 정해서 찍는다.
일몰, 일출, 제주도엔 유채꽃 있는 바다, 설악산 단풍, 한라산의 눈..
정말 지겨운 풍경들이다.

풍경이 언제부터 우리에게 지겨워졌는가?
언제부턴가 사진 속의 풍경은 자신의 느끼는 감각의 풍경이 아닌 잘 셋팅된 흐트러짐 없는 이론의 풍경으로 와 닿았다.
몸으로 체득하여 느끼는 것은 습관이 베어 있지 않으면 그 느낌이란 감각이 무뎌지기 마련이다.
감수성은 그냥 어느 날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쓰고, 읽고, 느끼고, 보고,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행위를 게을리 하지 않을 때만 그 예민한 촉수가 반짝거리며 내 눈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들의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은 이론보다 감각의 세계에 가 닿을 때 정말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다.
친구들에게 내가 글을 쓰게 하는 이유이다.

감각작용을 하는 눈은 보는 행위를 통해 앎으로 이어지고 그 앎이 대상을 개념화한다.
개념화하는 순간 모든 이미지들은 족쇄에 걸려 더 이상 상상할 수 없게 된다.
1000개의 눈이 달려도 상상하는 한 개의 눈이 없으면 공작의 꼬리깃털에 달린 장식품만도 못하게 된다.

글을 통해 상상하게 만드는 일.
그 일이 중요하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글로 풀게 하고,
글로 푼 것을 이미지로 채집하는 것.
또는 이미지로 채집한 것을 글로 풀게 하는 것.

분명 사진은 시각을 다루는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이며 음악이고 시이다.
이 친구들의 사진을 펼쳐놓고 보면서 상상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 좁은 공간 안에서 끊임없는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봤다.
이미 그들은 시인이자 음악가이며 자신을 표현해 낼 줄 아는 예술가이다.
예술가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다. 누구나 다 예술가다.

예술은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개인의 슬픔, 기쁨, 상처, 고뇌, 번민, 고통의 경험을 표현하면서 스스로 치유해 가는 과정이 예술이다.
밤새워 푼 수학문제, 반짝반짝하게 닦은 그릇, 책상정리.
일상 속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이 모든 일들이 예술인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뿌듯해지고 기쁨으로 가득 찬 경험,
그 경험으로서의 예술만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친구들은 그 경험으로서의 예술을 사진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사진은 이미 그 친구들에게 스스로 뿌듯해지는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사진은 이미 그 친구들에게 기쁨을 선물해 주었다.

그래서 더 한 발 나갈 수 있고, 세상과 소통하는데 자신감이 생길 수 있는 힘.
그 힘을 사진을 통해 얻을 수 있다면 이미 사진은 맡은 바 소임을 다 한 셈이다.


사진가 고현주씨는 2008년부터 안양소년원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그 아이들이 소년원에서 찍어낸 사진을 소개하고 그 과정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청소년예술지원센터 '(사)꿈꾸는 카메라'를 통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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