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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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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2010년

[연말 기획] 사진으로 돌아보는 2010년

2010년은 유난히 상처가 많은 해였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이 있었고, 재개발 광풍에 휩쓸린 서민들의 위태로움이 여전했다. 꽃다운 나이에 백혈병에 걸린 반도체 공장 근로자들과 4대강 사업으로 살던 땅을 떠나야 하던 사람들의 사연도 안타까웠다. 결격사유가 많은 인사를 당당히 청문회에 내보내던 권력자는 방송 장악과 예산안 날치기로 또 한번 국민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다.

상처들은 서로 닮아 있었다. 인간의 무자비한 벌목으로 새끼와 보금자리를 잃고 황량한 벌판 위에 서 있던 백로들은 살던 집에서 쫓겨난 재개발 지역 세입자와 다르지 않았고, 4대강 사업으로 내쫓기게 된 영주 금광리 사람들의 처지와도 똑같이 닮아 있었다. 4대강 사업이 빼앗아가는 땅을 놓지 못하던 사람들이나 반강제로 빼앗긴 마을에 군부대가 들어서는 광경을 바라봐야 하는 대추리 주민들의 뒷모습은 도시 개발로 허물어지는 집을 바라보는 세입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지만 깊을수록 짙은 흉터를 남기는 법이다. 2009년 터진 용산참사가 1년 만에 장례를 치렀고,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으로 쫓겨났던 대추리 주민들은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기륭전자 사태도 노사 협상 타결로 6년만에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 흉터들은 선명하게 남았다.

어떤 면에서 2010년은 권부와 자본이 양심과 염치를 도둑맞은 해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철저한 힘의 논리가 지배한 한 해였다. 하지만 도둑맞은 것이 이뿐일까? 눈 앞의 부조리를 무심히 지나친 모든 사람이 가슴 속에서 뭔가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각기 다르지만 다르지 않았던 상처의 단면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 옥인아파트에 살던 13가구는 이 도시에서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주었다. 급하게 추진된 개발 일정은 주민들이 떠날 시간 여유를 주지 않았다. 보상은 집주인에게 집중됐고 세입자들은 임대아파트와 주거이전비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를 받기 일쑤였다. 이주에 필요한 충분한 보상이 없는 상태로 집을 비우라는 용역의 횡포만 난무했다. 소송이 꼬리를 물었다. 소송에 걸리거나 아파트 입주 전에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폐허가 된 아파트에 남았다. 한 주민은 말했다. "내가 선택하는 공간이 언제 사망 선고를 받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우울했다"고......

#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1월 9일 엄수됐다. 재개발 이주민에게 현실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단순한 요구에 대한 '권력자의 응답'이 안타까운 희생자를 낸지 1년만이었다. 이 사건은 권부와 금권의 견고한 카르텔을 확인시켜 주었다. 희생자들은 1년 동안 냉동고에 갇혀 있었고 유가족들은 철저히 감시당했다. 아무도 이주민들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야만 했던 사정을 알려고 들지 않았다. '용산'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상처로 남았다.

# 올해 최대의 이슈였던 4대강 사업은 정부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영주댐은 그 필요성을 두고 10년 동안 쟁점이 되다 가라앉은 사안이었지만 정부가 4대강 사업의 핵심사업으로 편입하면서 서둘러 강행됐다. 금광리 주민들은 반대 한 번 못해보고 평생 살던 땅에서 당장 떠나야 할 처지다. 삼락둔치 농민들은 평생영농을 약속받은 땅에서 더이상 농사를 짓지 못한다. 4대강 사업의 시작과 함께 그 약속은 무시됐다. 두물머리 역시 이곳을 유기농 단지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4대강 사업 때문에 취소된 대표적인 곳이다. 두물머리를 세계적인 유기농단지로 만들겠다던 한 도지사는 지금 이들이 부당하게 특혜를 누려왔다는 궁색한 논리 뒤에 숨어 있다. 올 한 해 동안 4대강 사업에 대한 많은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깃발 주위에는 발자국만 어지러웠을 뿐 붉은 깃발은 꼿꼿이 서 있었고 포클레인의 굉음은 여전히 시끄럽다.

#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일하다 희귀병을 얻은 사람이 104명이나 되고 이 중 35명이 이미 사망했다면 병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할까? 이른바 '삼성백혈병'으로 이슈화되고 있는 이 문제는 반도체 공장 근로자들이 백혈병과, 뇌종양, 난소암, 루게릭병 등 희귀질병에 걸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회사는 직업병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관련기관은 산업재해조차 인정하지 않는 상태다. 걸린 사람의 잘못이라는 무책임한 논리가 꽃다운 청춘들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다.

# 46명의 군장병이 돌아오지 못한 충격적인 천안함 침몰은 이를 둘러싼 갈등과 반목으로 상처가 더 컸다. 누구의 소행인지를 밝히는 과정에서 단번에 북한을 지목한 사람들은 신중론자들을 북한옹호세력으로 몰아세웠고,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던 사람들은 상대가 곧바로 북한을 지목한 것을 두고 다른 이유가 있다고 공격했다. 부족한 단서 사이에서 사실은 없고, 갈등과 오해만 부풀었다.

# 언론도 자유롭지 못했다. 권력을 타고 내려온 낙하산은 방송부터 제압했다. KBS와 MBC 노조가 파업했다. 12일 동안 단식하다 쓰러진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언론의 위기는 비판적 언론을 가지 못하는 국민의 위기"라고.

# 11월 23일. 북의 연평도 포격은 집을 부쉈지만 우왕좌왕하던 국가의 무능은 국민들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섬 주민들은 불안에 떨다 늦은 밤 어선을 타고 위험한 피난길에 오르기도 했다. 섬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오랫동안 찜질방에서 지냈다. 정부는 난민보호 매뉴얼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피난민의 임시 거처를 마련하는 문제를 두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책임 떠넘기기는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포격에 대한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는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사격훈련을 감행했지만, 위기에 처한 국민을 보살피지 못해 훼손된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 1895일만에 기륭전자 사태가 타결됐다. 단식과 고공농성 등으로 점철된 노조원들의 처절한 싸움은 11월 1일 노사가 최후까지 남은 조합원 10명의 직접고용에 합의하며 끝났다. 이 사건은 부당한 현실에 저항해 그것을 되돌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기륭사태를 불가능 너머에 있는 희망의 상징으로 인용하기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6년 동안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았다.

# 절정은 예산안 날치기였다. 결식아동급식 예산과 영유아 예방접종비 등 서민예산은 배정하지 않은 채 이른바 '형님예산'과 '마누라 예산'을 통과시켜 공분을 샀다. 국민들의 혈세를 어떻게 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당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아닌 권력자의 눈치만 살폈고, 권력자는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았다.

# 7월 13일에 일어난 일산 백로서식지 벌목사건은 인간의 탐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백로 1000여 마리가 집단 서식하던 이곳을 지주는 땅을 팔기 위해 무자비하게 벌목했다. 알과 새끼 백로가 떨어져 죽거나 다리가 부러졌다. 어미새들도 나무에 깔려 죽거나 다쳤다. 어미한테 생존방법을 배우지 못한 새끼들은 뒤늦게 보호를 받았지만 많은 수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남쪽으로 날아갈 때까지 한달만 미뤘어도 막을 수 있던 참사였다. 찬바람이 불면서 새들은 날아갔다. 상처받은 새들은 다시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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