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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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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

정신요양시설 애중원에서 본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사회'

가을바람은 '나에게나 너에게나'

그런 소식을 한두 번 들었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인간들은 참 독하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 독기를 부리면 부릴수록 마음 다치는 쪽은 오히려 독기 부리는 자신이 아니던가. 인간이 차암 독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그 소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장애인 시설'을 결사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에 관한 소식이다. 사람을 해치게 할지도 모를 시설이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시설이 아닌, 그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사실 그것을 덜어주려는 사회적 노력을 하지 않는 사회야말로 장애사회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의 시설이 아닌가.

나는 이 나라 '옛날 부모'들의 양식이란, 다름 아닌,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임을 알고 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도와주라는 것이 아니라 괴롭히지 말라는 것, 자기보다 덜 가진 사람을 도와주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빼앗지 말라는 것. 그것이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최후의 도덕률이었다. 마지막 그어놓은 도덕률 아래로 떨어진 사람은 '덕설몰이'를 당할 각오를 이미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일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보다 가난하다 싶으면, 나보다 약하다 싶으면, 하여간 나보다 못났다 싶으면 일단 아래로 보고야 마는 저 철면피를 우리는 어디서 누구에게 배워왔단 말인가. 요체는 언제나 '빨리빨리'요 빨리빨리의 숨은 뜻은 경제발전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돈'뿐이었던 세월이 가난한 사람, 장애인, 힘없는 사람들을 나몰라 하는 '후안무치'를 가르쳤던 것일까. 그래서 시각장애인들이 천지사방을 헤매다가 겨우 산골짜기 전셋집을 구해 들어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밤새워 저지하는 '진풍경'이 벌어져도 공분할 줄 모르게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불편한 사람들을 도와주지는 못해도 '쪽박'을 깨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져도 공분할 줄 모르는 사회란 이미 '마지노선으로서의 도덕률'이 깨져버린 사회가 아닌가, 소름이 돋을 뿐이다. 도덕률이 깨어진 사회란 다름 아닌 '서로가 서로를 돌보지 않는' 사회요, 서로가 서로를 돌보지 않으므로 어쩔 수 없이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격리 수용해야 하는 '시설'들은 날로 늘어날 수밖에 없고 늘어나는 만큼 '시설 결사반대'도 극렬해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이쪽과 저쪽 사이 담은 높아가고 이제 그 사회는 정확히 그 담을 경계로 한쪽은 나를 불편해 하는 저들로 인한 불편함 때문에 내가 불편한 고통을 받는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사회로 전락하기 십상인 것이다.

그곳은 무안이었다. 삽상한 가을 햇살이 부서지는 농구코트에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황토색 추리닝바람으로 열심히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나를 데려간 사진작가 한금선이 내게 물었다.

"느낌이 어떤가요?"

나는 사실 조금 전 등나무 밑에 옹기종기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여성 원생들 속에 끼어들어 같이 해바라기를 했던 참이었다.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여성 관리자가 모기약처럼 생긴 스프레이를 들고 나타나, 무좀약 치게 모두 양말을 벗으라고 한다. 약 치고 햇빛에 발 말리는 그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웠다.

"평화로워요"

그러나, 평화롭다고 말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몰려드는 슬픔이라니. 사진작가의 말대로 평화긴 평화이지만 '막막한 평화'라서 슬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 옆에 마주앉아 해바라기를 했던 '그녀'는 말했다.

"여기 있으면 한허고 많이 묵는디도 배가 고파라우. 집에 가면 안 묵어도 배가 부르겄지요?"

한하고 많이 먹는데도 배가 고픈 그녀.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정신질환자'라 부르지만, 그러나 그녀가 한하고 먹는데도 배가 고픈 이유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영혼, 바로 그녀만의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결론은 한가지다. 당신이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그들도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있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정 나누자는 소리는 하지도 않는다. 단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모두는 '사람'으로 똑같다는 것, 그 한마디뿐이다. 사랑받으면 안먹어도 배부름을 느끼는 '영혼'은 '너나 나나' 한가지인 것이다.

가을바람은 '나에게나 너에게나' 누구에게나 불어온다. 자연은 공평하다. 공평한 세상은 언제쯤 올까 우리 모두가 공평해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은.

글/ 공선옥

사진집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 중에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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