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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카리브 쌉쌀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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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카리브 쌉쌀한 혁명

아바나에서 시에라마에스트라까지

달콤한 아바나 쌉쌀한 시에라마에스뜨라

쿠바, 작은 차를 빌렸다. 낭만적인 아바나에 머물다, 체 게바라의 혁명 유적이 있는 산따 끌라라를 거쳐, 게릴라 본부가 있는 시에라마에스뜨라 산중의 삭막함을 뒤졌다. 이를테면 쿠바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셈인데, 아바나는 현재, 산따끌라라는 혁명 이후, 그리고 시에라마에스뜨라는 혁명 이전이 된다. 쿠바를 횡으로 지르는 공간은 곧 시간의 은유였다.

그 곳, 시에라마에스뜨라에서 지직거리는 잡음을 비집고 혁명을 바라는 최초의 목소리가 방송됐다. 겨우 몇몇 주민들의 귀를 채울 한 줌의 주파수를 갖고선 "시에라마에스뜨라에서 세계로 울려퍼지는 '라디오 라벨데'"라고 감히, 시그널 멘트를 던졌던 그 '혁명 방송'. 체 게바라의 꿈, 그리고 쿠바인의 꿈은 여기에서 아련히 시작됐다. 체는 시에라마에스뜨라에서 게릴라로 고군분투하다가, 산따끌라라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머쥐었고 시가를 문 채로 아바나 시내에 입성했다. 독재자를 축출했다. '평등'의 가치를 지상으로 끌어왔다. 적어도 끌어오려고 노력했다.

그 '라디오 레벨데'에서 이제는 미국 록 음악이 흘러나온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쿠바. 신띠오 비띠에르(Cintio Vitier)라는 쿠바 시인은 쿠바의 현재를 '참호'라 표현했다. 과거에는 분명 '혁명의 발상지'였을 것이지만, 지금은 거칠고 수세적인 어감의 '참호'가 됐다. 무엇이 카리브해의 작은 섬을 세계의 섬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참호로 만들었을까. 짧은 여행만으로는 알 도리가 없는 일이다. 확실히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쿠바가 꿈과 좌절이 뒤범벅된 초현실적 공간처럼 느껴졌던 경험이다. 그랬다. 쿠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 이방인의 눈엔 차라리 비현실이었다. 도처에 널린 것이 은유였다. 아마 우리는 죽을때 까지 쿠바를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2010년을 살아가는 쿠바인들의 일상 속에서 새겨진 혁명의 흔적을 본다. 남루한 옷차림에 나이키 운동화. 트랙터 옆에서 쟁기질 하는 흰 소. 고속도로를 달리는 마차, 낡은 혁명과 새로운 물결이 공존하는 쿠바의 풍경이다. 모든 것이 은유다. 혁명은 흔적으로 남았다. 체 게바라에 대한 자부심과 낡은 옷, 자본주의에 대한 경멸과 나이키 운동화. 낡은 야구화를 신고 찌그러진 알루미늄 배트를 휘두르는 미래의 '메이저리거'가 마딴사스 야구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나른한 은유 사이에는 과격한 정치 구호가 자리한다. 미국 대통령을 욕하는 입간판과, 아직도 권력의 정점에서 살아 있는 낡은 혁명 영웅이 그려진 벽화. 그러나 비정한 정치 구호 속에서도 쿠바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키스하고, 맥주를 즐기고, 낚시를 하며, 내일의 생계를 걱정한다. 유력한 쿠바의 정치인을 인터뷰하면 이 모든 개별적 현상을 하나의 줄기로 정리해 설명할 수 있게 될까? 저명한 역사가와 대화하면, 뛰어난 인류학자나 명석한 사회학자에게 강의를 들으면?

바르똘로메 마소라는 도시의 큰 설탕 공장을 지나쳤다. 달콤한 설탕 공장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날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달디 단 칵테일과 씁쓸한 시가 한 모금. 끈적한 설탕을 한 스푼 집어 쓴 커피에 넣는 그런 느낌. 바로 쿠바라는 참호가 가진 모순된 이미지다. 이 '참호' 속에서 쿠바 사람들은 행복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지켜볼 일이다. 다만 이놈의 참호는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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