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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복 차림의 여성 파일럿이 귀여운 고양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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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복 차림의 여성 파일럿이 귀여운 고양이와 함께…

[취미는 독서] 네번째 밤

2014년부터 새로 시작하는 코너 '취미는 독서'입니다. <프레시안>의 강양구, 김용언, 성현석, 안은별 기자와 함께 천문학자 이명현,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정승일, CBS 정혜윤 PD, 자유기고가 노정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정모 관장, 그리고 특별한 게스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의 최근 독서 목록'을 공개합니다.

☞'취미는 독서' 지난 기사 바로 보기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
(1) "넬로와 파트라슈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외톨이였습니다. 살아온 시간의 길이로 치자면 둘은 동갑내기였어요. 그래도 하나는 아직 어렸고, 다른 하나는 이미 늙었지요." - <플랜더스의 개> (위다 글, 하이럼 반즈 그림, 노은경 옮김, 비룡소 펴냄)

첫 문장만 읽어도 눈물이 난다. 내가 아직 어려서인지 이미 늙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린 시절 해태우유를 배달시켜 먹으면 가끔 만화책을 넣어주었는데 <플랜더스의 개>는 최고의 작품이었다. 이 만화책을 구할래야 구할 방법이 없다.


▲ <과학……좌파>(게리 워스키 지음, 김명진 옮김, 이매진 펴냄). ⓒ이매진
(2) 최근 재야 과학사회학자 김명진 선생의 책이 한꺼번에 세 권이 나왔다. <할리우드 사이언스>(김명진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과학의 민중사>(클리퍼드 코너 지음, 김명진·안성우· 최형섭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과학……좌파>(게리 워스키 지음, 김명진 옮김, 이매진 펴냄)가 그것이다. 참으로 한결 같다. 곁눈질 하지 않고 걸어가는 젊은 학자에게 존경심이 솟구친다. 좌파가 좌파스러우려면 과학적이어야 하듯이, 과학도 과학적이다보면 자연스레 좌파가 되지 않겠는가!


정혜윤(CBS PD)
: 윌리엄 포크너의 <곰>(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과 로베르토 볼라뇨의 <2666>(송병선 옮김, 열린책들 펴냄)을 읽으면서 묘한 공통점을 느꼈다. 우리는 소득과 지출의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려 산다. 그런데 누구도 그렇게만 살 수는 없다. 살기 위해서는 다른 뭔가가 필요하다. <곰>의 주인공은 소득+지출+이상향에 매달려 있었다. <2666>에는 소득+지출+마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가 살기 위해서 필요로 했던 마술이 혹시 악이라면? 기만, 배신, 협잡, 폭력. 책략. 자기변명, 음모…. 우리가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그것이 우리가 살기 위해서 필요로 했던 마술이라면?

▲ <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모리 히로시 지음, 홍성민 옮김, 작은씨앗 펴냄). ⓒ작은씨앗

성현석(<프레시안> 기자) : 요즘도 이런 걸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릴 적에는 학교에서 과학상상글짓기 대회라는 걸 했다. ‘2000년대가 되면 달나라로 수학여행을 가고 어쩌고’하는 내용이다. 나도 그런 글을 썼었다. 글쓰기라는 게 참 묘하다. 내가 쓴 글에 내가 속박당한다. 학교 숙제 때문에 열심히 썼던 글 때문인지, 나는 내가 꼭 과학자가 돼야 하는 줄 알았다. 어느 새 나이 마흔이 넘었고, 나는 과학자의 꿈을 잊은 지 오래다. 대신 ‘글짓기’가 내 밥벌이 수단이 됐다.

<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모리 히로시 지음, 홍성민 옮김, 작은씨앗 펴냄)를 읽었다. 일본의 한 공과대학 교수가 쓴 소설인데, 백지처럼 순진무구한 과학도가 주인공이다. 제목 그대로 조용한 이야기. 책을 읽는 내내, 공과대학에 다니던 내 20대 시절을 생각했다. 그리고 한동안,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이공계열 학문을 전공한 남자친구와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답답해하는 여성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노정태(자유기고가) : 츠루타 겐지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만화가다. 물론 만화가가 무조건 그림을 굉장히 잘 그려야 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건 만화는 그림을 보는 매체이므로 잘 그릴수록 좋긴 하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츠루타 겐지의 작품들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왜냐하면 그 기저에 공통으로 깔려있는, 뭐라고 표현해야 정확할까, '일본식 낭만주의'가 영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모험 에레키테 섬>(츠루타 겐지 지음,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펴냄)의 줄거리를 설명하면 아마 다들 납득하실 것이다. 일본이 배경인데, 주인공은 여성 파일럿이다. 고물 프로펠러 비행기를 몰고 다니며 택배를 배달해준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붉은 돼지>에 나오는 것처럼, 물 위에 착륙하고 물 위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다. 이 아가씨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주인공 미쿠라는 유품을 정리하다가 '신기루처럼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섬'인 에레키테 섬의 존재를 알게 된다. 당연히 그때부터 미쿠라의 지상 과제는 에레키테 섬에 가는 것이다.


그렇다. 일본식 '유메', 생활의 무게가 1g도 느껴지지 않는 설정, 프로펠러 복엽기라는 낭만적이기 그지없는 메카닉, 할아버지의 유품과 그가 못다 이룬 꿈, 등등 우리가 오글거린다는 식으로 흔히 비판하는 요소들이 참 많이도 들어가 있다. 하지만 나는 다음 권을 찾아서 읽을 것 같다. 왜냐하면 여자 주인공이 걸핏하면 수영복 차림으로 비행기를 몰고 다닐 뿐 아니라, 늘 귀여운 고양이와 함께 다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싶으신 분들을 위해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켜 드리자면, 이 코너의 제목은 '취미는 독서'다.


▲ <한국인의 탄생>(최정운 지음, 미지북스 펴냄). ⓒ미지북스
안은별(<프레시안> 기자) : 서평 다루는 일을 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잘 몰라서 흘려버릴 뻔한 책을 훌륭한 리뷰를 통해 재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어떤 리뷰는 아주 잘 읽고 나서 '음, 이것은 서평만으로도 충분해'라고 느끼는 적도 많다고 고백해야겠지만,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해 다른 독서를 제쳐두고 마감 후 바로 구해 보게 되는 것도 있다. 이번에는 곧바로는 아니었으나, 지난해 말 실린 배병삼의 서평을 보고 최정운의 <한국인의 탄생>(미지북스 펴냄)을 집어 들었다. (☞바로 가기 : 친일파 증오 아닌 '동감'…'한국인' 맨얼굴 파악할 열쇠는!)


한국의 근대는 치욕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사상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고 이야기된다. 저자는 반기를 들며 '사상이 없어진 것'이 바로 사상사(史) 자체라 주장하는 바, 직접적 사료 부족의 난관을 우회해 근대 문학 작품으로부터 '한국인'이라는 정치적 정체성의 태동을 읽어낸다. 근대 한국인의 진화를 해명하기 위해 배열되는 작품/인물은 홍길동부터 이형식, 구보 등을 거쳐 임꺽정으로 이어진다.


그 가운데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역사 발전에서 "비정상적인 단계"로 취급되어 왔던 신소설에 대한 부분이다. 고교 시절 들은 국어 수업만 상기해 봐도 <혈의 누> 등 신소설은 문학적 가치보다는 '과도기' 운운으로 어물쩍 넘어갔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야말로 '재발견'된다. 신소설의 내용은 한마디로 "속 빈 인형들이 학대당하고 살해당하는 엽기적인 괴담들"이었는데, 그것이 구한말 '신이 버린 세상' '홉스적 자연 상태'에 대한 반영이자 해석, 나름의 시대를 향한 분투였다는 것. 너무 이상해서 빠져드는 그 혼란상이 어쩌면, 동아시아의 근대에서 루쉰을 말하고 소세키를 말할 때 빠져 있었던 퍼즐 중 하나 아니었을까.


김용언(<프레시안> 기자) : 이번에 새로 나온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10권 중에서 아직 못 읽었던 <다섯 마리 아기 돼지>(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를 꺼냈다. 아리따운 아가씨가 에르퀼 푸아로를 찾아와 16년 전 남편 살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직후 감옥에서 숨을 거둔 어머니의 누명을 벗겨 달라고 호소하는 1장까지 읽고 난 뒤부터 2시간 동안 화장실도 안 가고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소설의 절반까지 왔을 때 ‘어머 나 범인 누군지 알 것 같아’라며 좋아했지만, 마지막에 푸아로가 다섯 명의 용의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기나긴 독백을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배우처럼 과거의 살인을 재구성하며 진범을 밝혀내는 순간 다시 한 번 쓰디쓴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매혹된 지점은 ‘마더 구스’ 동요 때문이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시장에 갔네./작은 돼지 한 마리는 집에 있네./작은 돼지 한 마리는 로스트비프를 먹었네./그리고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작은 돼지 한 마리가 말했네, ‘훌쩍, 훌쩍, 훌쩍! 집에 가는 길을 못 찾겠어.’”


‘열 개의 인디언 인형’에 맞춰 소름끼치는 공포의 진수를 맛보게 하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김남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만큼은 아니지만, ‘마더 구스’ 동요의 무해한 순진함과 살인이 날카롭게 마찰음을 일으키는 순간을 애거서 크리스티만큼 잘 포착하는 작가는 없었다.


괜히 한 마디 덧붙여보자면, 개인적으로 ‘마더 구스’ 동요들에 관심이 무척 많아 그 기원과 변천사에 관한 엄청 두꺼운 책도 아마존에서 구입해서 읽었다. 이런 책도 출간될 수 있다면 좋겠는데…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 너밖에 없다는 호된 꾸지람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훌쩍, 훌쩍, 훌쩍.

▲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세트 중 <다섯 마리 아기 돼지>(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 ⓒ황금가지


강양구(<프레시안> 기자) :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이번 주에 읽은 책은 <왜 사랑하면 좋은 일이 생길까>(스티븐 포스트·질 니마크 지음, 강미경 옮김, 다우 펴냄). 사랑의 놀라운 힘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보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25년간 연구에 매달려온 포스트는 경이로운 사랑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단, <마녀사냥> 따위와 헷갈리지 말 것.


이 책은 이성 혹은 동성 간의 길어야 몇 개월짜리 '로맨스'는 '사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진짜 사랑은 무엇일까? 그 답은 책 읽는 재미로 남겨둔다. 바라건대, 나 역시 "사소한 사랑이 일으키는 삶의 나비 효과"를 경험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슬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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