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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새정치의 답이 있다

[시민정치시평] 정당공천제 폐지, 투표시간 연장 논란에서 읽어야 할 것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 이후 바야흐로 정치권도 전환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새해 들어 정치권은 너도나도 6·4 지방선거를 향한 잰걸음을 걷고 있다. 단연 정국을 주도하는 뜨거운 감자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이다. 새누리당이 정당공천 폐지 철회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원론적으로 정당공천 폐지를 지지하는 야당과 대립형국을 보이고 있다. 야당은 또 정치제도 개혁안을 발의한 상태이다. 현행 만 19세인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문제와 투표시간 연장 안을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제출했다. 민주당은 오후 8시, 정의당은 오후 10시까지 연장하는 투표시간 안을 제안한 상태이다. 젊은 세대의 투표가 여당에 불리하다는 판단으로 여권 지도부는 반대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각 당의 첨예한 이해타산 때문인지 날선 공방만 오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의 사활이 걸린 만큼 벼랑 끝 싸움이 앞길에 놓여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지난 국정원 정국과 다른 판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같은 상황은 대체로 ‘세’(勢)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정석이다. 한비자의 지적대로 ‘술’(術: 정치술)과 ‘세’(勢: 정치세력) 없는 정치는 속없는 만두처럼 보잘것없다. 정당의 목표는 선거승리이다. 선거패배는 정치생활의 사망선고를 뜻하기 때문에 이기고 보자 식 통합논리가 우선한다. 하지만 이 같은 세 중심의 정치논리에는 빠진 것이 있다. 그것은 정치 구성의 논리, ‘형’(型)의 논리다. ‘세’의 논리가 지어진 집의 큰 방을 놓고 독차지하겠다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라면, ‘형’의 논리는 지어질 집 설계 도면을 놓고 경연을 벌이는 것이다. 여기에는 관점의 차이가 크다. ‘세’ 논리가 권력자 중심 시각의 반영이라면, ‘형’ 논리는 시민 중심의 시각, 시민의 눈높이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의 대립을 위험스럽게 보는 것도 여기에 있다. 야권연대와 대립이 자칫 세 불리기로 끝난다면 야권은 분열될 것이고, 결국 선거 필패로 귀결될 것이다. 윈윈 전략이 작동하려면 유권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읽는 것이 먼저이다.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무엇을 이슈로 삼느냐의 문제, 시민의 선택을 고려한 형의 시각이 필요하다. 이 구도에 보면 현 정국은 아직 무색무취다. 이렇다 할 쟁점도 없고, 기본적인 적대적 관계조차 성립되지 않고 있다. 너도나도 나서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할지 제시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6·4 정국의 방향은 말 그대로 안갯속이다. 활발한 정치권의 움직임에도 정치적 비전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정치에는 새로움이 필요하다. 일반시민이 정치에 바라는 것도 새로운 바람이다. 세대교체, 새로운 쟁점의 요구 자체가 정치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다. 따지고 보면 보수 논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의 실종이 아니던가. 정치적 냉소주의를 정치 자체의 포기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현 정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것일 뿐이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혁신이다. 혁신은 항상 ‘뒤틀리고 비틀어진’ 현실을 드러내는 대립과 갈등에서 나온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정신이 필요하다. 이 시대 응어리를 정치적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선거의 합리성은 이런 혁신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지금 혁신이 가능한가. 모두가 지쳐 무기력한 것은 아닌가. 아니다. 지쳐있어도 변화에 대한 요구와 갈망은 있다.

이미 변화는 모색되고 있다. 물론 뚜렷한 연대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은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다.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보수의 시대에도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고대 대자보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먹고사는 문제에 몰두한 나머지 옆 사람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는 진솔한 고백이 왜 그토록 여운을 남기는가. 말 많던 ‘교학사’ 교과서 채택 불발은 또 어떻게 봐야 하는가. 외압논리를 들이대기에는 너무도 궁색하지 않은가. 외압논리를 앞세우기 전에 반대하는 이유를 들어보는 편이 온당하지 않을까. 영화 <변호인>의 성공은 이례적이다. 예술영화도, 오락영화도 아닌 이 영화에 천만이 넘는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에 그토록 사람의 마음이 끌리는 것일까. 그 순간들에는 묘한 공통분모가 있다. 사회에 대한 강한 기대와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다.

진보는 ‘일상’과 ‘정치’의 괴리 속에서 그 생명력을 얻는다. 일상과 정치의 괴리에 미래의 불확실성이 자리 잡는다. 불확실성은 불안과 무기력의 근원일 수 있다. 정치에 대한 불만과 냉소가 커질수록 불안과 무기력도 커진다. 하지만 그 틈새에 정치가 살아 숨 쉰다. 괴리를 메울 수 있는 비전을 요구받는다. 정치적 비전은 일상 문제에서 출발해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정치가 단순히 생존만을 위한 문제가 아닌 삶의 문제인 이유이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현명함은 치열한 갈등과 대립 안에서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행동에 비친 의미를 찾아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4년의 정치는 색다른 고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2014년의 시민정치는 주권자인 시민의 생각과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진정한 승리는 우리 같은 일상인의 삶을 이해하고 왜곡된 현실을 바로 잡을 때만 가능하다. 정치의 기술은 시간의 기술이다. 현재의 시간을 포착하는 데 있다. 매일 매일 사건 속에서 동시대인이 공유하는 신념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대립과 갈등으로 가시화되지 않았지만, 가슴 한편에서 동의하고 있는 것을 읽어내야 한다. 정당공천, 선거연령, 선거시간 연장의 문제도 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 같은 신념의 공유는 흔히 정국전환용 카드로 활용되는 ‘민생(民生) 챙기기’와 구별되어야 한다. 민생 챙긴다는 말은 아주 그럴싸하게 들린다. 물론 더 나은 삶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준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 말에는 지나치게 왕정정치의 냄새가 풍긴다. 시민은 궁민, 신민으로 둔갑 된다. 항상 돌보고 보살펴야 한다는 권력자의 권위가 은연중에 숨어있다. 언제나 민생 돌보기가 무엇보다 시급한 사안이 된다. 그렇게 민생 우선이라는 수사에 4대강 사업이 진행되었고, 국정원 정국이 조용히 묻히려 한다. 당연히 해야 할 정치인의 책임을 하나의 업적으로 둔갑하는 수사에 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생 챙기기 수사에는 시민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생 챙기기 정국에 빠진 것은 정체에 참여하는 주권자로서 평등한 시민의 관점이다. 우리가 원하는 정치는 온정주의 정치가 아니다. 권력자의 아량이 아닌, 스스로 참여하고 책임질 수 있는 정치다. 진정한 민생은 당사자의 참여 속에서 자신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정치에 지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인간다움에 대한 자각이다. 환상 속 인간다움이 아니라, 세 싸움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인간다움이다. 언제고 극단적인 대립으로 정치를 거부할 인간 주체의 인간다움이다. 우리 정치가 망각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정치적 대의인 것이다.

6·4 지방선거에서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다. 지방선거의 특성상 공통된 의제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지방정치의 특색을 살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움에 대한 기대는 포기할 수 없다. 단순히 승리만을 위한 정치, 세를 위한 정치에 시민들의 기대는 거품이 된다. 진정성 있는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한 시대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 그 경험을 현실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는 정치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상 삶의 침묵의 소리를 상징화할 수 있는 정치적 도전이 필요할 것이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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