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정치권이 연초부터 분주합니다. 도지사 예비후보등록(2월 4일, 선거일 120일 전)을 비롯한 지방선거 일정 개시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여야 모든 정치세력이 지방선거 준비에 이런저런 ‘곤란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새누리당은 ‘인물난’을 겪고 있습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늠하는 광역단체장 후보감이 마땅치 않습니다. 이 때문에 중진 차출론, 후보 교체론, 외부 영입론 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서울시장 선거에는 정몽준 의원 출마설이, 경기지사 선거에는 김문수 현 지사의 재출마설이 흘러나온 바 있습니다.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분류되었던 나경원 전 의원은 충북지사에, 충남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은 대전 시장에, 당권 도전 의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이인제 의원은 충남지사에 출마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천, 부산도 현재 후보로 꼽힌 선수들(인천-이학재 의원, 부산-서병수 의원)이 부진한 탓에 대안 카드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은 물론, 안철수 신당에게도 크게 앞서 있는 제1당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광역단체장 후보 자리를 두고 당내 ‘거물’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양상도 보입니다. 경남지사 후보 자리를 두고 홍준표 현 지사와 안상수 전 의원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의 대표를 지낸 ‘노장’들입니다. 당 대표 자리를 두고서는 작년 10월 재보선을 통해 정계에 복귀한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경쟁을 시작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당 유력 인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선거를 준비해가는 선당후사(先黨後私)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정당정치(사) 연구에서 ‘새누리당 계열 정당’의 경쟁력 우위를 유지시켜 준 주요 요인으로 (근사해 보이는) ‘커리어리스트(careerist)들을 중심으로 한 공직 후보의 충원 능력’과 그것을 가능케 한 ‘강한 리더십’을 꼽았습니다. 그러니, 최근 새누리당의 상황은 꽤 ‘이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왜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됐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박근혜 몰방(沒放)’의 결과입니다. 당권과 대권 모두 박근혜 대통령 라인으로 일원화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만 해도 친이-친박 간 경쟁이 이루어지면서, ‘박근혜(파)’라는 대안 형성과 세력 유지 및 확장을 위한 인적 자원 확보 노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대통령 및 당 주류와 다른 정치적 입장, 혹은 더 나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유능하고 참신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은 그런 방향으로 인적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권자의 선호, 경쟁 상대 및 지역 특성을 고려한 후보 역량을 육성하고 발굴하거나 배치하지 못하고, 단지 친박이라는 이유로 당내 입지만을 구축한, 그러나 국민 다수는 알지 못하는 반쪽짜리 정치인들을 양산했을 따름입니다. 대통령과 당 지지도는 타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데, 후보 지지는 타당 후보에 비해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대 후보에 대해 지지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정권과 정당 이외에도 인물(후보)이 긍정적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아직까지(도) 가능한 상태가 아닙니다. 민주당의 지지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하자가 없는) 민주당 소속 현직 광역단체장들의 지지도가 -근소하게라도-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지금의 새누리당으로서는 ‘박심(朴心)’이 작동해야만 제대로 된 교통정리가 가능할 것입니다. 결국 지방선거 국면에서 새누리당 관전 포인트는 또다시, ‘박심이 언제,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입니다. 참으로 ‘볼품없고 재미없는’ 집권 여당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 대통령 혹은 당내의 친박 주류와 부딪히면서도 집권 여당으로서 민생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활기차게 제시하고 논하면서,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정치를 언제쯤 볼 수 있을지, 과연 그것을 기대나 할 수 있을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요즘 ‘샅바 싸움’이 한창입니다. 야권 내부의 ‘혈전(血戰)’을 불사하겠다는 입장 표명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안철수 신당, 정의당 모두 서울시장을 비롯해 주요 광역단체장 선거에 독자 후보를 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안철수 신당 측 새정치추진위원장을 맡은 윤여준 전 장관이 특히 그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미 출사표를 던진 경우도 있습니다. 정의당의 김성진 인천시당위원장은 인천 시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야권의 각 정당들이 끝까지 독자 노선을 고수할지 아닐지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중앙’의 공식적 입장과 달리, 지역의 선수들은 후보단일화 여지를 남겨 놓고 있습니다. 특히 도전자 입장에 서 있는 선수들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아무래도 야권의 패배 책임과 선거비용 문제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이 때문에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안철수 신당의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독자 출마론은 향후 후보 단일화 논의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지렛대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의당에 대해서도 독자 노선을 끌고 갈 힘이 있느냐며, 제스처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안철수 신당과 정의당 등이 끝까지 독자 노선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일단 이들의 독자 노선은 일시적인 전술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독자 노선은 대안적 정당체제에 대한 매우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있습니다. 그것이 한국 정치의 발전에 실제 부합하는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 안철수 신당 측과 정의당은 그간 줄곧 다당제-그것에 기반을 둔 ‘합의제 민주주의’-를 주장해 왔습니다. 야권의 선거연합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의 궁극적 목표가 무조건적인 야권의 승리에 맞추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당제를 위한 자신들의 입지 구축이 목표입니다. 후보 단일화는 이 목표에 부합되는 한에서 의미를 가질 뿐입니다.
안철수 신당과 정의당의 독자노선은 단지 정략적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국가로 다양한 가치와 선호가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 계급과 세대 내에도 다양한 사회경제적 약자와 정치적 소외계층이 존재합니다. 가령 노동자 계급만 해도 고용 형태와 사업장 규모, 노조 가입 여부 등을 둘러싸고 내부적으로 분화(분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구조를 반영하는 정치적 분화와 정립은 이뤄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잘 조정하고 통합할 수 있는 정당도 부재합니다. 쉽게 만들어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들의 독자 노선은 이와 같은 대한민국의 정치적·사회경제적 환경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들은 민주당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야권 통합 역량도 부재하고 그럴 의지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념-정책도 모호한 데다 이를 극복할 역량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입니다. 실제로 민주당은 매우 허약한 정당입니다. ‘127석을 가진 정당이 왜 저 모양이지’라는 물음보다, ‘저런 정당이 어떻게 127석을 얻었지’라는 물음이 더 어울리는 정당입니다. 이 물음에 대해 안철수 신당과 정의당은 기존 양당 중심 정당체제와 그것을 가능케 한 소선거구제, 득표율과 의석수 간의 높은 불비례성, 거대 정당에 편파적인 국회 운영과 국고보조금 제도 등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신진 세력과 소수 정당이 뛰어넘기는 매우 견고한 제도(장벽)입니다.
하지만 안철수 신당과 정의당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민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크고,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지금 상황에서는 독자 노선의 견지가 보다 바람직하고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안철수 신당의 경우, 호남지역에서 민주당을 대체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습니다. 민주당에게 먼저 후보 단일화를 하자고 요청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대안적 정당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야권 재편을 위한 야권 내부의 혈전이 불가피하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총선·대선보다는 지방선거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습니다. 또 지방선거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총선과 대선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지방선거의 가장 큰 의미로 여야 승패보다도 야권 내부의 경쟁과 재편의 본격 시작을 꼽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안철수 신당과 정의당이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인물과 정책과 의제를 제시할 수 있느냐는 것일 텐데, 아직까지는 긍정적 평가를 내릴 만한 뚜렷한 실천이 없습니다.
독자 노선을 지키려면, 혹은 그것을 지렛대로 유의미한 정치적 성과를 거두려면, 보다 분발해야 할 것입니다. 단,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결과적으로는 민주당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 과정에서는 오로지 국민만 상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민주당과의 정치적 시비에 힘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민주당이 당직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이번 당직 개편의 특징은 김한길 대표의 친정체제 구축과 호남 색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당내 일각에서 안철수 의원과 신당 세력을 -정의당은 말할 것도 없고- 저평가하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데도 불구하고, 호남을 지키기 위한 별도의 조치가 필요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것으로 안철수 신당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호남으로 호남을’ 지켜낼 수 있을지, 과연 지금의 정치적·사회적 상황과 국민 요구에 부합하는 것인지 회의적입니다. 호남 유권자가 민주당에 요구하는 것은 호남 출신 당직자가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호남을 살릴 수 있는 힘의 확보, 즉 국민적 지지를 높이라는 주문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 신당과의 호남 구애 경쟁은 사실 국민 구애 경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통합형 대북정책(햇볕정책 2.0)도 당 지지기반의 외연 확장을 이루려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민주당 지지율이 낮은 것은 중도적-합리적으로 보이는 새로운 정책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정책이든 그것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서 구체적인 성과를 가져올 -혹은 그럴 것이라는 기대를 가능케 하는- 리더십과 응집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한길 친정체제의 구축과 새로운 버전의 햇볕정책 제시는 타이밍과 순서와 방식에 있어서 국민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친정체제 구축은 좀 더 일찍 했어야 하며, 새로운 버전의 햇볕정책 제시는 당내 숙의 과정을 먼저 거친 다음, 전(全)당적 차원에서 공표해야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친정체제의 성과를 신속하게 내야 합니다. 또 햇볕정책 2.0을 둘러싼 당내의 소모적 논란을 제어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햇볕정책 2.0이 단지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질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새로운 세력이 아닙니다. 새로운 정책을 내놓아도 민주당은 민주당입니다. 특히 민주당에 비판적인 유권자들에게 더욱 그러합니다. 햇볕정책 2.0은 바로 그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내 논란이 아니라 국민적 토론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실제 어떻게 해나갈지 지켜볼 일입니다만, 유의미한 성과를 빠른 시일 안에 내놓고 이를 통한 지지율 상승 조짐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권 내부 경쟁의 불가피성은 점차 커질 것입니다. 그리되면 포스트(post, 후(後)) 민주당 (야권) 체제로의 재편 가능성도 점차 커질 것이고요.
종종 사람들은 ‘좋았던 옛것보다 나쁘지만 새로운 것’에서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전환에 대한 열망이 클 때 그러합니다.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경쟁자인 안철수 신당 세력의 한계를 지적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민주당이 역사 속 공룡으로 소멸하지 않으려면,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