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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푸세? '성장'보다 '안녕'을 추구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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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푸세? '성장'보다 '안녕'을 추구하는 시대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15>대한민국의 미래와 지식협동조합의 사명

2013년은 각별한 희망을 안고 출발했다. 참신한 선거공약을 앞세우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박근혜 후보는 진보진영의 주장이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우고, "100%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국민통합을 외쳤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독일식 경제와 스웨덴식 복지"를 지향한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드디어 과거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정책을 지배했던 재벌중심 성장지상주의와 결별하는 듯했다. 그러나 박정희의 유산을 박정희의 딸이 청산하기를 기대한 것은 애초부터 연목구어였는지 모르겠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도 하기 전부터 인사문제로 실망을 안겨주더니, 출범 후에는 공약후퇴와 불통정부 논란에 빠져들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은 형해화되었고, 일방통행식 권위주의 통치로 사회적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러한 사태는 분명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 크고 여야 정치권에도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나, 이들에 대한 비난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실 어느 누구도 경제민주화 복지국가가 쉽사리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에 저항하는 강고한 기득권 세력에 비해 이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토대는 미약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정권 차원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최근 불거진 철도 민영화 논란만 보더라도 김대중 정권에서 처음 제기되었고, 노무현 정권에서도 이에 저항하는 철도노조의 파업에 강경한 탄압으로 대응한 경험이 있다. 의료민영화 문제도 마찬가지로 정권을 넘어서서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는 다 재벌과 국제금융자본의 힘을 반영한 것이다.

목전의 정치적 변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법제도와 정책의 변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공고한 변화를 위해서는 변화의 사회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따라서 좀 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에서 사회변화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는 우리 사회에 협동의 원리와 실천을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국가에 의한 강제(Coercion)와 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쟁(Competition)만으로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시민사회 혹은 공동체 안에서 자발적인 협동(Cooperation)이 풍부하게 이루어질 때 국가와 시장의 기능도 향상되며 사회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촉진하는 것이야말로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사명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최근 한 대학생이 붙인 대자보에서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중요한 현상이다. 이는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소득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경쟁의 격화, 불안의 가중,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삶의 질이 오히려 악화하는 역설적인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다. 아니, 바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자각에 입각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지향하자는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고 그 토대 위에서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였으나, 가시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는 반면에 철도나 의료와 같은 공공서비스를 민영화 하려고하는 움직임 등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국가주도 하에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한국경제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고도성장의 그늘도 짙었다. 심각한 불균형이 구조화되어 만성적인 경제위기와 과도한 소득불평등을 낳았다. 재정이 온통 경제성장에만 집중하다보니 교육, 의료, 주거 등 기본재화의 공급을 과도하게 시장에 맡겼고, 그 결과 사학비리와 사교육 열풍, 과잉진료, 부동산 투기 등이 국민생활을 위협했다. 특히 IMF위기 이후 진행된 노동시장 유연화를 포함한 시장개혁 정책의 결과 고용불안과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경제성장과 삶의 질 향상 사이에는 간극이 점점 더 커지는 모순이 발생했다. 이러한 모순이 결국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에 대한 강한 지지와 요구를 낳게 된 것이다.

개발독재 시대의 국가주도 경제체제가 민주화 이후에는 시장주도로 바뀌었으나 양 체제를 관통하여 일관되게 유지된 재벌중심 성장지상주의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국가통제의 약화를 기화로 재벌의 힘은 더욱 강력해졌고, 노동권과 공정분배, 복지와 상생을 요구하는 다양한 경제민주화의 목소리는 노동유연성과 규제완화, 민영화와 자유경쟁을 요구하는 재벌의 영향력에 밀렸다. 관치금융과 같은 개발독재의 유산이 잔존하는 가운데 미국식 경제사조 혹은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면서 시장지배력을 보유한 거대재벌들로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었고, 이들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구축했다. 세계표준(global standard)과 선진화, 세계화와 무한경쟁을 외치면서 사실상 재벌독식 경제를 만들어나갔다.

이러한 흐름은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이어졌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매우 노골화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노골적인 친재벌 고도성장 정책이 실질임금과 가계소득의 정체, 골목상권의 파괴 등을 초래하는 것을 지켜본 국민들은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마침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월가에서 벌어진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도 신자유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하여 2012년의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는 모든 주요 정치세력들의 최우선 공약으로 등장했고, 가히 국민적 합의요 시대적 과제로 자리매김 했다. 정파들 사이에 정책의 구체적 내용은 조금씩 달랐으나 차이보다는 공통분모가 컸다.

필자는 이상의 역사적 흐름을 요약해서 개발독재 하의 산업화 4반세기, 그리고 직선제 민주주의 하의 시장화 4반세기를 거쳐 바야흐로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1) 더 이상 맹목적인 성장이 아닌 '안녕'을 추구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공약 후퇴의 원인

그러나 과연 새 시대는 시작되었는가? 박근혜 정부의 출범 이래 각종 공약의 후퇴 혹은 파기가 이어지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의 어젠다는 거의 실종되다시피 하고 말았다. 경제민주화는 경제활성화에 밀려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고, 복지정책은 재원부족을 핑계로 축소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고해보였던 국민적 합의도 흔들리고 있다. 특히 투자를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분으로 재벌과 의료산업 등에 대한 규제완화가 추진되고 있으며, 철도 민영화의 준비작업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강행하였다. 의료나 철도 등의 민영화 추진 배후는 사업영역 확대를 노리는 재벌의 욕심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재벌중심 성장주의의 대전환이 시작되었어야 마땅하건만 왜 이렇게 되고 말았는가? 이런 복잡한 일의 원인은 다층적일 수밖에 없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과 의지가 문제인 것 같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등 국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애초부터 우선순위나 추진의지가 매우 미흡했다는 추정이다. 그렇다면 만약 대선 결과가 달랐으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추진이 잘 되었을까? 필자는 대선 이전에 이미 누가 당선되더라도 사회경제적 전환의 측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강고한 기득권 세력의 힘에 비해서 후보들의 신념과 의지와 지혜가 모두 턱없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2)

두 번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보수언론은 일제히 공약은 공약일 뿐이라며 과도한 복지공약을 실제로 추진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3) 경제관료들은 인수위원회에서 재원부족을 빌미로 복지공약 이행을 위한 로드맵 작성을 거부했다. 경제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협조요청에 재벌은 투자계획을 밝히며 경제민주화의 철회를 촉구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재벌의 '구조적 힘'이다. 지난 8월 청와대에서 30대 재벌 총수들이 약속한 투자액수는 무려 155조원, 우리나라 GDP의 13%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경제력 집중 때문에 이들이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느냐 소극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성장률 1~2% 정도는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누가 청와대에 있더라도 이들의 협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는, 조금 더 멀고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서 다양한 사회경제적 계층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취약성을 들 수 있다. 위에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직선제 민주주의'라고 불렀는데, 87년 민주화의 핵심이 대통령 직선제였으며 이후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유지되어왔기 때문이다. 이는 군소정당의 발전을 가로막았을 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정쟁을 중심으로 돌아가 정책정당의 발전을 억제했다. 국민여론과 약자들의 목소리를 일정하게 반영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 전체가 매우 취약하고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력이 우위를 점하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기득권은 비교적 용이하게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해나갈 수 있었다. 따라서 진정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실현은 정당과 정치제도의 근본적 변화, 즉 '합의제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한다.4)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지도자를 만들어낼 것이며, 어떻게 기득권의 저항을 돌파할 것이며, 어떻게 정치제도를 바꿔낼 것인가? 이것은 시민사회의 역량이 성장해야 가능한 일이다. "깨어있는 시민"이 투표 잘하고, 촛불시위에 참여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다양한 사회문제의 해결과 공동선의 실현을 위한 수많은 조직과 실천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이것이 정당 활동을 포함한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로 이어져야 한다. 민주적 공론의 장이 활성화되고, 정책논의의 수준이 제고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민사회 역량의 성숙은 시간이 자동적으로 해결해주지 않는다. 학교에서, 취업전선에서,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많은 사람들은 공동선과 정의를 위한 공론형성과 정치적 행동에 참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열한 실천에 의해서 연대와 참여의 사회적 진지를 구축하고 확산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협동과 연대의 공간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그 밑거름이 될 것이다.

사회관계의 규제원리: 경쟁, 협동, 강제

한 사회 안에서 개인들 사이의 관계와 행동을 규제하는 세 가지 원리가 있다. 경쟁(Competition), 협동(Cooperation), 그리고 강제(Coercion)다. 필자는 이러한 3C의 균형이 건강한 사회, 좋은 나라의 토대라고 생각한다.

경쟁은 희소한 자원을 나누어 써야 하는 개인들 사이에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관계이며, 사실 재미와 발전의 원동력이다. 러셀이 지적한 것처럼 무조건 경쟁은 나쁘고 협동은 좋은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예를 들어 축구시합을 하면서 서로 한 골씩 주고받기로 정해놓고 사이좋게 시합을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고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그러나 과도한 경쟁은 독이 된다. 경쟁이 재미와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이 준수되어야 하고, 경쟁의 결과에 따른 보상의 차이가 지나치게 크지 않아야 한다. 소위 무한경쟁이나 승자독식의 상황에서는 경쟁은 스트레스와 반칙과 발목잡기를 야기한다.

경쟁적 관계만으로 사회를 유지할 수는 없다. 극한적인 경쟁관계만 있다면 아무도 믿지 못하고 서로를 경계하며 외로운 생활을 하게 될 것이며, 문명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많은 일들은 여럿이 함께 해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협동을 보다 큰 규모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조직화한 것이 문명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개인 사이의 협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요인들로는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공감능력과 다양한 감정, 이성적 판단 및 사회규범과 평판에 의해 유지되는 호혜적 관계 등이 있다.5) 인간은 협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협동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쟁이라고 하는 인간관계의 다른 원리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협동은 깨질 수 있다. 경쟁과 협동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제도와 장치들이 필요하다.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관계가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적 협동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장치들이 발달했다.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협동 능력은 한 개인이 속한 집단 내부에 국한된다. 인간은 자기 집단 외의 집단에 대해서는 강한 경쟁과 적대의 성향을 유전자 속에 지니고 있다. 작은 집단일수록 협동이 잘 되고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협동은 어려워진다. '공유지의 비극'이 나타나고, '무임승차'의 문제가 등장한다. 따라서 공동체의 규모가 매우 커지면 강제력이 필요해진다. 고대시대에 국가가 처음 발달할 때의 상황이다. 현대국가에서 군대를 가고 세금을 내는 것은 국가의 강제 때문이지 애국심 때문이 아니다. 공공재의 생산과 국가안보를 위하여 강제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의 권력이 제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또한 국가의 강제력에도 한계가 있어서 매우 제한된 사안들 이외에 사회적 협동을 강제할 수는 없다. 모든 일을 재판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경쟁, 협동, 강제는 모두 필요한 것이고 적절한 균형과 상호 긴장관계를 유지할 때 건강하고 발전하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시장의 경쟁은 비대화 되어있고, 사회적 협동은 위축되어 있다. 개발독재 시대에는 물론 국가의 강제력이 사회를 옭죄었고, 시장도 시민사회도 위축되어 있었다. 민주화 이후 국가의 강제력은 일정하게 축소되었고, 그 자리를 시장경쟁이 차지하게 되었다. 개발독재 하에서 억눌려 있던 사회적 협동은 시장경쟁의 물결 속에서 꽃피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은 넘치고 협동과 연대는 부족한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 협동의 진지를 구축하고 확산하는 것이야말로 거시적으로 본 우리 시대의 과제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고 하는 구체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산업화, 시장화의 단계를 거쳐 경제민주화의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데, 사회관계 규제원리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강제과잉, 경쟁과잉의 단계를 거쳐 강제와 경쟁과 협동이 균형을 회복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물론 아직 경제민주화도 가시적 진전이 없고, 협동의 확산도 미약하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전환은 장시간에 걸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진행될 것이다. 이미 2013년에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는 '을'들의 반란이라는 주목할 만한 현상이 등장했고, 사회적 협동과 관련해서는 협동조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사회적 경제가 확산되는 것을 목격했다. 정권의 부침과 상관없이 거대한 전환은 시작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지식협동조합의 사명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심을 억제하고 이타심과 협동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설계와 신뢰의 구축이 중요하다. 제도는 유인을 결정하고 유인은 개인의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최후통첩 게임'에서 게임의 조건을 달리하면 보다 협동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보다 경쟁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6) 협동을 고취하는 제도를 만들어내는 일도 중요하고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것만 가지고 사회적 협동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관련된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협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적 요인이 된다. 축적된 사회적 신뢰를 '사회적 자본'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사회적 자본이 극히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를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는 없다. 신뢰의 구축은 실천적 경험의 축적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협동과 연대를 실천하는 운동이 성공적 경험을 쌓아나가면서 사회적 신뢰도 축적되고, 이것이 다시 사회적 협동을 보다 용이하게 확산키는 선순환을 창출할 것이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가 창립된 지 반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는 창립선언문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환경보호와 문화발전, 평화와 협력의 증진을 위한 다방면의 정책연구에 매진하여, ... 시민이 참여하는 정책개발과 정책논의를 통한 공공정책의 형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나아가 지식과 문화의 공유와 확산을 통한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할 것"임을 밝혔고, "또한 국가주도 개발독재와 시장만능주의 자본독재의 폐해가 누적되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에 건강한 협동조합의 성장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주목한다. ... 민주적 운영과 상부상조를 원칙으로 하는 협동조합은 사회의 균형과 통합을 회복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최초의 협동조합형 정책연구원으로서 지식협동조합을 건설하고자 한다"고 천명했다.

사회적 협동을 확산시키기 위한 제도의 설계와 실천적 운동이 바로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사명인 것이다. 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균형 잡힌 사회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의 정수라 할 것이다. 더디어 보일지라도 사실은 이 길이 지름길임을 믿고 뚜벅뚜벅 전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1) 졸고, "경제민주화: 개념, 역사, 정책"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지음, 『세계경제의 변화와 한국경제의 대응』, 한울, 2013.)
2) 졸저, 『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 알마, 2013.
3) 졸고, "보수언론은 왜 이틀을 못 참았나",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2.12.27.
4) 지난 12월 11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가 개최한 제2회 정책심포지엄의 주제는 "한국 민주주의 새판짜기: 합의제 민주주의를 향하여"였다. 관련 자료는 조합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5) Joshua Greene, 『Moral Tribes: Emotion, Reason, and the Gap between Us and Them』, New York: The Penguin Press, 2013.
6) 최후통첩 게임이란 두 사람 사이에 일정한 자원(예를 들어 천원짜리 열 장)을 나누어 갖는데, 한 사람이 자원을 받아서 이를 파트너와 어떻게 나눌지 결정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를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게임을 말한다. 만약 거부하면 두 사람 다 자원을 전혀 가지지 못한다. 이기심과 경쟁의 논리에 의하면 9:1의 배분이 합리적이지만 실제 실험에서 그런 결과는 거의 나오지 않고 5:5나 6:4로 나누어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파트너에게 거부권을 주지 않고 실험을 하면 매우 불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이외에도 다양하게 게임의 구조를 변형시켜 경쟁과 협동의 제도적 조건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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