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민영화와 다를 바 없는 게 아니라 민영화 그 자체입니다.
2.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를 보면 정면 중앙에 큼지막하게 "의료 민영화, 정부도 반대합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정부가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 보건복지부는 그 근거로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의 글("의료 민영화, 정부도 반대합니다")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는데요. 권 정책관은 이 글에서 "특정 민간보험에 가입한 환자나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환자가 본인이 돈을 모두 내고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이 의료 민영화라 규정하고, 정부는 이와 같은 의료 민영화에 "절대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자의적으로 민영화의 범위를 대폭 축소한 것으로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3. 홍 소장이 생각하는 민영화는 어떤 것입니까?
⇨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자본이 공공 부문에 투입되면 그것이 바로 민영화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민자 사업인데요. 예를 들어 서울지하철 9호선의 경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자본이 공공 부문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소유권 여부와 무관하게 이 철도를 '민영 철도'라 부르는 것입니다.
4. 병원의 경우 소유권이 민간에게 있기 때문에 '민영화'란 용어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 민영화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겁니다. 사립학교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사립학교의 소유권은 민간에게 있습니다. 그럼 사립학교의 교육은 공교육입니까? 사교육입니까? 공교육입니다. 정부도 사립학교의 교육을 공교육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기업체들의 사원임대주택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적 임대주택일까요? 사적 임대주택일까요? 국토부는 이것을 공적 임대주택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원임대주택이 LH공사의 공공임대주택과 마찬가지로 임대 의무 기간을 준수하고 정부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공공 부문이라는 것은 시설의 소유권이 아니라 그것의 공적인 기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물론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5. 권 정책관 글에는 어떤 오류가 있나요?
⇨ 권 정책관은 '~화(化)'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민영화라는 것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자본이 공공 부문에서 그 영역을 넓혀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사립학교의 경우, 민간 자본이 이곳에 빨대를 꽂고 사립학교 수익 중 일부를 사립학교 법인 밖으로 빼돌리기 시작했다면 바로 그때 민영화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6. 정부가 지난달 13일 '4차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는데요. 민영화 반대론자들은 이 대책을 본격적인 '의료 민영화'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 '4차 투자 활성화 대책' 문건을 보면, 이 대책이 본격적인 '의료 민영화'의 시발점이라는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대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자본이 의료법인 자회사에 빨대를 꽂고, 의료법인 모회사의 수익을 빼돌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대책 문건에 친절하게 그림까지 그려 넣어 어떻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자본이 의료법인의 수익을 외부로 빼돌릴 수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7. 정부가 대책 문건에 그려넣은 도표를 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회간접자본(SOC) 민자 사업 모형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SOC 민자 사업 브로커들이 애용하는 모형이 바로 정부가 대책 문건에 소개한 모형과 매우 흡사합니다.
8.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자본은 어떤 방식으로 의료법인의 수익을 외부로 빼돌리게 되나요?
⇨ SOC 민자 사업에서 민간 자본들이 했던 수익 빼돌리기 방식을 그대로 따를 겁니다. SOC 민자 사업자들처럼 자법인을 상대로 고금리 사업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즉 자법인이 대주주의 돈을 높은 금리로 빌려가게 해서 수익을 빼돌리는 겁니다. 다만, 맥쿼리인프라처럼 투박하게 엄청난 고금리로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하지는 않을 겁니다. 매우 영악하게 시중 금리보다 1~2%포인트, 혹은 2~3%포인트 더 많은 고금리를 받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9. 민간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자법인으로부터 수익을 빼돌리면 전체 의료 체계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나요?
⇨ 민간 투자자들이 자법인으로부터 수익을 빼돌리면 의료법인(모회사)은 출자한 만큼 배당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의료법인은 과거보다 더 궁핍해집니다. 의료법인이 과거보다 더 궁핍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국민들을 상대로 의료수가를 올려달라고 생떼를 쓸 겁니다. 이때 대형 병원 대주주들과 의사들은 어떤 행보를 보일까요? 민간 투자자의 자산운용사에 투자해서 고수익을 나눠가질 겁니다. SOC 민자 사업자들처럼 자법인으로부터 수익을 빼돌려 자법인과 모법인을 궁핍하게 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의료보험료를 더 많이 내게 해서 의료수가를 높이는 것이 이들의 목적입니다.
10. 정부가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도록 부추기는 세력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 정부가 대책 문건에 친절하게 그 세력의 실체를 표시해 놓았습니다. '자산운용사'와 '벤처캐피탈 등'이 그들입니다. 즉 SOC 민자 사업자들과 마찬가지로 의료 민영화의 배후에도 '검은 금융자본'이 있습니다. '자산운용사'는 수많은 검은돈들을 운용해 주는 대리인입니다. 이 검은 금융자본이 정부의 의료 민영화를 부추기며 준동하는 이유는 과거와 달리 전 세계 자산 시장이 유난히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공공 부문이 여타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이들이 정부의 의료 민영화를 부추기는 겁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이 안정되어 있고, 보수 세력과 수구 세력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매우 좋은 먹잇감입니다.
11. 강용석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JTBC의 프로그램 '썰전'에 출연해 "정부가 의료법인 자회사를 300병상 이하의 중소 의료법인에 대해서만 허용했다"고 주장했는데요. 이 주장은 사실인가요?
⇨ 사실이 아닙니다. 76쪽에 이르는 정부의 '4차 투자 활성화 대책' 문건 어디에도 그와 같은 내용은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대형 뉴스 포털에 들어가 검색해 보았으나, 그와 같은 언론 보도는 지난 한 달간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다만 지난달 21일 JTBC만 경희대 정 모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자회사 설립도 대형 병원이 아니라 300병상 남짓한 의료법인에 대해서 경영 지원을 해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는 보도를 했는데요. 명백한 오보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여 사실 확인이 매우 용이한 시대에 JTBC가 이와 같은 오보를 했다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또 JTBC의 오보를 그대로 받아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방송에서 발언한 강 전 의원의 태도도 문제가 많습니다.
12. 최근 정부는 민영화 반대론자들이 '맹장 수술비 1500만 원' 운운하며 괴담을 유포하고 있다면서 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맹장 수술비 1500만 원이라는 주장을 맨 처음 한 사람은 누굽니까?
⇨ 제가 알기로 맹장 수술비 1500만 원이라는 언급을 맨 처음 한 사람은 <조선일보>의 한 논설위원입니다. <조선일보> 인터넷판 2009년 7월 16일자를 보면 이 신문 논설위원인 김 모 씨가 '한국의 건강보험'이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은 사(私)보험에 의존하고 있어 보험 혜택을 못 받는 이들이 4700만 명에 이른다. 맹장 수술비가 1만5000달러나 되고, 안경 맞추려면 안과 시력검사비로만 60달러를 내야 한다." 1만5000달러는 우리 돈으로 1575만 원(2014년 1월 1일 환율, 이하 동일)에 해당합니다.
13. 실제로 미국의 맹장 수술비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 병원마다 수술비가 너무 많이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미주 한국일보>(2012년 6월 8일자 기사)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맹장 수술비는 1500달러(157만 원)에서 18만 달러(1억8900만 원)로 가격 차이가 매우 심합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평균가격은 3만3000달러(3465만 원)였습니다. 이 신문의 보도 내용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의 리니 시아 박사팀의 조사 결과에 따른 것입니다.
14. <한겨레신문>도 비슷한 내용의 보도를 한 적이 있지요?
⇨ <한겨레신문>은 2011년 11월 18일, '미 한인 여성들, "맹장 수술 4천만 원 괴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주 한국일보>와 유사한 보도를 했습니다. 이날 이 신문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여성 1135명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 반대' 선언문 일부 내용을 전했는데요. 그 보도 내용은 이렇습니다.
"위 수면 내시경 검사 400만 원, 팔 골절 수술 2000만 원, 맹장 수술 4000만 원, 제왕절개 수술 5000만 원, 뇌종양 수술에 2억 원의 병원비 청구서를 받았다는 얘기는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는 전혀 낯선 일이 아닙니다."
15. 의료 민영화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우리나라가 미국식 의료 민영화를 그대로 실천할 경우 의료비 부담이 지금보다 10배 정도 더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 정부는 그와 같은 주장을 괴담이라 하는데요. 1인당 GDP 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경상의료비를 비교하게 되면 '10배 차이'라는 주장도 틀린 주장은 아닙니다. 우선 먼저 의료보험료 부담에 있어서 미국과 한국 사이에 7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2011년 미국 직장보험 가입자의 한 달 의료보험료는 1057달러로 우리 돈으로 116만 원(2011년 환율)이었습니다. 같은 해 우리나라의 가구당 의료보험료가 평균 16만 원이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미국의 의료보험료가 우리의 7.2배입니다. 또 GDP 대비 공공 부담 의료비 비율도 미국이 우리보다 훨씬 높습니다. OECD에 따르면 2011년 미국의 GDP 대비 공공 부담 의료비 비율은 8.5%로 4.1%인 우리나라의 2.1배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비춰볼 때 경상의료비 기준으로 미국과 한국의 의료비 차이가 '10배'라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16.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괴담 운운하는 이유가 뭡니까?
⇨ 자신들의 의료 민영화 정책이 미국과 같은 의료비 폭증을 가져올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미국의 의료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괴담에 해당한다는 것이 정부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달 13일 발표한 '4차 투자 활성화 대책'을 보면 그들이 미국식 의료 체계를 향하여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치명적인 일탈을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 이런 일탈이 가속화될 경우 의료비가 미국처럼 폭증할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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