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는 지난해 대선을 관통한 화두였습니다. 이 화두를 잘 풀어가는 것이 새 정부의 주요 과제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제 민주화에 관한 논의는 무성하지만 이뤄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갈 길은 멀지만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인 경제 민주화를 위해 다시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할 때입니다.
이에 <프레시안>은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자문위원회와 공동으로 경제 민주화의 오늘을 짚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기획 '경제 민주화 워치'를 진행합니다. '경제 민주화 워치' 칼럼은 매주 게재됩니다. <편집자>
경제 민주화란 간단히 말해 민주주의를 정치 영역(대표자 선출, 법 제정과 해석, 국가 정책의 형성과 집행 등)뿐만 아니라 경제 영역 즉 생산, 교환, 분배, 소비 등에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민주주의를 경제에까지 적용해도 되는 것일까? 여전히 누군가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경제 활동이 시장에 의해 조정된다고, 그리고 시장에 의해 조정되어야만 최적의 또는 적어도 더 나은 경제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시장의 작동을 돕기 위해서는 올바른 경제 지식이 없는(그래서 시장을 왜곡하라는 요구를 하는) 대중 대신 경제를 잘 아는 전문가에게 경제를 맡겨야 하며, 민주주의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다면 경제에 민주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 아닐까? 그렇지 않다.
첫째, 경제 활동들은 시장에 의해서만 조정되지도 않고 설사 그럴 경우에도 그 이면에는 사회적 권력이 작동한다. 이른바 자유 시장경제에서 생산, 교환, 분배, 소비는 분명 시장에서 희소성, 개인들의 선호, 그리고 그에 따른 수요·공급과 가격에 의해 조정되는 측면이 크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부나 공공 부문은 사회에 필요한 물질적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교환, 분배, 소비에 있어 반드시 이러한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 개입과 공공 부문이 축소된 이른바 자유 시장경제에서에서조차 희소성, 선호, 수요·공급, 가격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특히 일부 거대 사회 집단들은 이러한 것들을 일정하게(예를 들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정부, 재벌, 초국적 자본 등은 특정한 집단에 이익이 되는 특정한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방법에는 경제 정책 형성, 경제 정책에 대한 로비, 가격 담합, 자본 시장으로부터 철수 등이 포함된다. 정치는 사회적 자원을 권위적으로 배분하며 여기에는 경제적 자원도 예외가 아니다. 사회적 권력이 배제된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모든 권력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한 판타지, 즉 유토피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권력의 성격이다.
둘째, 시장에 의한 경제 활동의 조정이 반드시 최적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적 논리를 따라도 외부효과나 무임승차와 같은 시장 실패는 가끔씩 일어나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차라리 늘 일어나는 일상적인 현상에 가깝다. 이러한 시장 실패는 국가나 사회에 의한 적절한 개입이 없을 경우에 일어난다.
더구나 시장에 의한 경제 활동의 조정이 반드시 다른 형태의 조정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시장에서 조정, 즉 가격에 의한 경제 활동(생산, 교환, 소비, 분배)의 조정은 금전적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실제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성과가 자본의 수익과 경제 성장과 같은 금전적 기준에 의해서 평가받는다.
하지만 경제적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에는 그러한 금전적 기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평등, 여가 시간, 심리적 만족, 환경, 기술적·산업적 효율성 등과 같은 다양한 기준이 있으며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면 금전적 기준에 따른 성공도 실패로 평가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2008년 금융 위기로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의 침체는 금전적 기준에서 경제적 성과란 것조차도 일부 거대 자본에나 해당되는 것이지, 전체적·거시적 수준에서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사회 집단들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임을 드러냈다.
셋째, 경제 전문가도 경제 전체를 파악할 능력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경제를 그들의 손에만 맡겨둘 수 없다. 실로 세계란 우리가 모두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며 우리는 그 복잡한 세계의 일부분만을 포착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가장 정확한 세계의 지도는 세계만큼의 크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아니 사실 그보다 더 커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 지도에 모두 담으려고 한다면. 그러한 지도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복잡성은 불가피하게 축소되어야 한다. 이러한 복잡성의 축소는 관찰자의 능력뿐만 아니라 가치와 이익을 반영한다. 즉 어떤 것들은 반드시 은폐되거나 주변화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 또한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활동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러한 복잡성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지식이나 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 의사 결정에 사용되는 정보, 지식, 담론 또한 특정한 가치, 이익 그리고 능력을 반영한다. 전문가도 경제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일부분만 파악할 수 있을 따름이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공유돼야 할 가치와 이익의 문제를 소수 전문가에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수가 경제적 의사 결정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독점하려는 것은 역시 소수에게만 이익이 될 뿐이다.
넷째, 정치적 민주주의는 경제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실로 전문가와 자본을 포함해 사익을 추구하는 몇몇 권력이 지나치게 커지고 이들에 의한 경제 활동의 조정이 계속되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게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민주주의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정치 참여의 기회를 불평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경제적 불평등 때문에 올바른 정치적 판단에 필요한 정보, 그리고 정치 참여에 필수적인 시간 등이 사람들 사이에 불균등하게 배분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불평등의 결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더욱더 심각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따라서 경제에서 민주주의를 배제하고 경제 활동의 조정을 '시장'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관료, 전문가, 대자본과 같은 소수의 경제 권력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경제적 후생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
이렇게 사회적 권력이 배제된 시장이란 존재하지 않고 시장에 의한 경제 활동의 조정이 경제적 성과를 낳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한 불평등과 위기를 낳으며,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경제 전문가조차 경제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볼 때 시장을 우상화할 필요도, 정치와 민주주의를 경제에서 배제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경제 민주화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핵심 요건
경제 민주화란 근본적으로 경제를 국민주권이 미칠 수 있는 공적인 영역으로 만들고 그것에 대한 민주적 참여를 제도화함으로써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의 장점은 무엇일까? 경제 민주화는 사익보다 공익을, 독단보다 학습을, 그리고 무책임보다 책임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첫째, 경제 민주화를 통해 "큰 물고기의 자유가 작은 물고기들에게 죽음"이 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작게는 여러 다른 경제 권력들 사이에 균형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크게는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를 조정하는 권력을 민주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생산, 교환, 소비, 분배 등 경제적 의사 결정에 대한 관료와 자본의 권력을 제어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시민단체와 같은 다른 집단의 권력을 강화하고, 이러한 경제 권력들을 공익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고 민주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 즉 경제 정책 수립에 대한 국민 참여, 그리고 기업 경영에 대한 노동자와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장에 개입하는 사회적 권력, 즉 경제 권력의 성격이 더 공익적인 성격을 띠거나 적어도 서로 경쟁하는 경제 권력들 사이에 적정한 균형이 존재하여 지나친 사익 추구나 경제 불평등이 제어될 수 있다.
둘째, 경제 민주화는 학습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경제적 의사 결정을 공정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만든다. 앞서 언급한 경제의 복잡성과 그에 따른 경제 지식과 담론의 불완전성은 두 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그러한 경제 지식과 담론이 어떤 집단에는 이익이 되고 다른 집단에 손해가 되는 지극히 정치적인 성격을 띨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 지식과 담론의 불완전성을 극복할 수는 없어도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경제 민주화는 필수적이다. 만약 경제 지식과 담론,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적 의사 결정이 생산, 교환, 분배, 소비에서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면 그것은 독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대신 반드시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경제 지식과 담론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고립된 각 개인이나 소수 전문가를 넘어서는 사회적인 학습 과정이 필요한데, 여기에 민주주의는 주변화되고 억압된 지식의 발굴과 열린 토론이라는 훌륭한 학습의 장을 제공한다. 경제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인데 경제 민주화는 여기에 핵심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셋째, 경제 민주화는 공적 책임성을 강화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사적 자유와 책임을 강화하지만 대신 공적인 영역에 대한 책임을 약화시킨다. 경제 민주화는 공적 참여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사적인 문제의 개선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시민들의 공적 영역에 대한 무책임을 줄이고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이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주인 의식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높여, 설사 재분배할 자원이 부족하거나 당장 이익이 생기지 않더라도 공동체 구성원이 참을 수 있게 만듦으로써 공동체를 유지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대기업 노동조합이 이기적이라고 욕하지 말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의사 결정의 권한을 부여한다면, 그들은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신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할 유인을 갖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따라서 정치적 개입 없이는 유지 불가능하다. 경제의 올바른 운영을 위해서도 경제에 대한 민주 정치의 개입, 즉 경제 민주화는 필수적이다. 경제 민주화는 정치적 민주화를 포함해 민주주의 전반을 발전시키기 위한 핵심적인 요건이라 할 수 있고,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에 따른 공동체 윤리와 질서의 몰락 등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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