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스트로베일하우스, 펠릿보일러…그보다 더 좋은 건 '이웃'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스트로베일하우스, 펠릿보일러…그보다 더 좋은 건 '이웃'

[마을주의자]<4>영동 백화전원마을 마을건축가 이종혁

영동 백화전원마을에 사는 이종혁 건축사에게 요즘 고민거리가 생겼다. '돈'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반대다. '돈'이 있어서 그렇다. 그것도 난데없는 큰 돈이다. 1억6000만 원이나 되는 뭉칫돈이다. 게다가 마음껏 쓰고 나중에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다.

그런데 이 돈은 이 건축사 개인에게 쓰라고 준 돈이 아니다. 충북도에서 백화전원마을에, 또는 백화전원마을 주민들에게 쓰라고 준 돈이다. 마을공동체사업을 한번 열심히 해보라며 지원해준 마을사업비다.

두 번째 고민거리는 '협동조합'이다. 돈이 생긴 다음에 바로 따라붙은 부차적인 고민이다. 그 돈을 종잣돈으로 마을사람들과 협동조합을 함께 꾸려볼 궁리를 하고 있다. '기후학교'를 열어보겠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을 만드는 게 고민의 본질은 아니다. 만드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해당 관공서의 사업지침을 따라 하면 된다. 40가구, 100사람이 모여살고 있으니 발기인 자원도 넉넉하다. 더군다나 귀농촌해서 처음 벌이는 사업이라 몸이 근질근질하던 마을사람 모두 잔뜩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을 너도나도 나서서 해보겠다고.

하지만 바로 그게 문제다. 그래서 걱정이 되고 고민이 되는 것이다. 마을사람 모두 열정과 의지가 넘쳐서 오히려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사공이 너무 많은 것 아닌지. 만일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처음 함께 벌이는 일인데 만일 서로 갈등이라도 생기면…."

▲ 이종혁 건축사 ⓒ정기석

서로 다른 귀농촌인들이 한데 섞인 공동체마을을 설계하고 시공한 이 건축사는 요즘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과연 모든 사람이 모두 참여해서, 모두 사이좋게 꾸려가는 공동체사업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1주 1표에, 다수결에 길들여진 주민들이 1인 1표라는 낯선 의사결정구조에 적응할 수 있을지."

동서고금을 다 살펴봐도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기업형태는 제몫과 남의 몫을 냉정히 구분 짓는 주식회사 같은 형태라는 생각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리스마와 경영능력을 갖춘 유능한 CEO가 결국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는 협동조합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일단 젊고 활동적인 일부 주민을 중심으로 운영진을 먼저 꾸리고, 그들에게 마을공동체사업의 경영과 관리를 믿고 맡기는 게 상책일텐데"하는 생각으로 기운다.

하지만 코하우징(Co-Housing)의 실현지 백화전원마을에서는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코하우징 건축을 오래 연구하고 실천해온 이 건축사로서는 개인의 생각이 곧 모두의 결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소신이 있는 것이다.

최근 이 난제를 놓고 이 건축사를 비롯한 백화마을 주민들은 회의를 거듭했다. 했던 말을 또 하는 상황이 다반사로 벌어지곤 해 지루하고 답답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에 이르렀다. 모두 다 협동조합에 참여하기로. 당초 협동조합을 통해 떼돈을 벌 생각도 아니지만, 협동조합이 곧 마을공동체를 학습하는 훈련장이자 학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함께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협동조합이라는 일터에서 소득도 발생하고, 덩달아 마을사람들의 일자리도 그만큼 창출된다면 하는 소박한 욕심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영동 우매리 산골에 깃든 마을건축가

백화전원마을은 귀농촌인 40가구, 100여명이 의기투합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 자락에 새로 만든 '새마을'이다. 농식품부의 전원마을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민들레건축사사무소 대표 이종혁 건축사가 단지와 건축물의 설계, 시공을 도맡았다. 스스로도 마을주민이 됐다. 부모님도 서울과 영동을 오가며 5도2촌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 있는 건축사사무소로 출근하는 날도 적지 않다.

▲ 백화전원마을과 스트로베일하우스 ⓒ정기석

최근 백화전원마을은 충북의 태양광 체험 특화마을인 '해품도 마을'로 지정됐다. 1억6000만 원의 종잣돈이란 바로 그 사업비다. '해품도'는 '해를 품은 충북도'라는 뜻이다. 충북도가 추진하는 태양광 발전 에너지 자립과 태양광 체험 특화마을을 의미한다. 3년간 마을 소득 창출과 관련한 체험프로그램 운영 사업비도 따라 붙는다. 이만한 조건이면 협동조합 사업을 시작해볼만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는데 돈을 주지는 않죠. 도내 33개 마을과 경쟁해서 최종 2개 마을에 들어갔어요. 주민 참여도, 지역특성 반영도, 사업추진 기대효과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주민참여도는 아마 최고점수를 받지 않았을까요?"

이 건축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생태전원마을, 농촌건축, 코하우징 전문가다. 백화전원마을도 그런 기조와 방법론을 바탕으로 설계하고 시공했다. 진안 새울터마을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백화마을에 이어 아산, 상주에도 전원마을을 추진하고 있다.

벡화마을은 40호의 주택을 모두 고단열 스트로베일 하우스로 시공한 게 특징이다. 태양광발전, 펠릿 보일러도 적용했다. 마을 주민들이 호당 2000만 원씩을 출자해 마련한 마을공동자산, 커뮤니티센터(공동문화회관)는 아예 기후생태학교를 염두에 둔 것처럼 학교의 외양이고 구조다.

"코하우징 마을은 한마디로 마을주민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고 뒤풀이까지 하는 마을이라고 할까요. 각자 만들어 오거나 함께 준비한 음식을 나눠먹으며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은 우리 마을에서는 더 이상 낯선 장면이 아니죠."

이 건축사가 오랫동안 붙들고 있는 삶과 일의 핵심주제인 코하우징은, 이렇게 '가족친화형, 이웃친화형' 주거단지를 말한다.

"서로 보살피는 가족이 사는 집, 그들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이 곧 코하우징의 모습이죠. 어쩌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살았던 전통적인 농촌마을의 생활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어요. 덴마크에서 시작된 코하우징은 미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뉴질랜드,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지로 확산돼 현재 전 세계에 수백개의 코하우징 커뮤니티(마을)이 형성돼 있어요."

이 건축사는 코하우징의 특징과 조건을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계획과정에서 주민이 참여한다. 둘째, 교류활성화를 위한 환경디자인을 적용한다. 셋째, 공동식사공간을 중심으로 개별 주거를 보완하는 주민공동시설을 공유한다. 넷째, 주민에 의해 관리하고 의사결정구조는 만장일치로 한다. 다섯째, 비계층적인 구조를 가진다. 여섯째, 공동경제활동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어느 항목 하나 만만해보이지 않는다. 특히 의사결정구조를 만장일치로 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은, 이 건축사도 이번에 협동조합 회의를 거듭하면서 새삼 절감한 바다. 하지만 영동 산골마을로 사회적 이민을 감행한 40가구가 편하게 다수결로 결정한다면, 소수가 겪게 될 후유증과 부작용은 적지 않을 게 뻔하다.

공동경제활동을 목표로 하지 않는 건 지극히 현실적이다. 마을이, 공동체가 개인과 가족을 온전히 먹여 살릴 수는 없다. 나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상적인 목표이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요즘 특정한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나누어 준다는 전원마을, 전원주택단지, 귀농촌인 공동체를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일단 마을에 들어오면 먹여살려주겠다"는 광고는 거짓말이거나 사기일 것이다. 굳이 마을공동체에서 개인의 민생고를 해결해줄 수 있는 노력의 정도는, 기후학교 협동조합처럼 관리자, 교사의 일자리 몇 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최선이 아닌가 싶다.

주거대안을 꿈꾸는 코하우징 전도사

"국내 코하우징 사례로는 경남 산청 간디숲속마을을, 충남 금산 간디숲속마을, 전북 진안 새울터, 충남 서천 산너울 마을 등이 선도적이예요. 일부 코하우징을 자처하는 동호인 주택, 타운하우스는 코하우징이라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죠. 건축물의 겉모습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으로 판단하는 게 맞아요. 코하우징 같은 주거대안으로서 특징은 형식적인 껍데기가 아니라 생활철학이나 방식 같은 인간적인 속살에서 찾아야죠."

"대한민국 소시민들이 선호하는 주거지역이 강남 '대치동'이라죠. 8학군에다 입시학원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라는 이유 때문이죠. 우울하고 슬픈 도시민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어요. 코하우징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코하우징 커뮤니티센터를 방과 후 교육 공간이나 청소년 문화의 집 같은 시설로 활용할 수 있어요. 마을 밖으로, 지역에 개방하면 지역교육공동체의 구심점 역할도 할 수 있을 테고요. 코하우징을 하면 입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서 이웃과 함께하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어요. 결국 만족도 높은 주거환경, 동료나 동지 같은 이웃을 얻을 수 있는 거죠. 바로 '코하우징'의 장점이자 매력이 아닐 수 없어요."

이렇게 코하우징은 귀농촌인들에게 적합한 주거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보급이 더디다. 커뮤니티센터 같은 공공시설 건축에 소요되는 비용을 온전히 입주자들이 분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가치도 없는 주택에 돈을 더 얹어 내면서까지 입주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절한 입주비용으로 공급하려는 '착한 공급자'가 먼저 나타나야 해요. 이때 '착한 공급자'는 더불어 사는 이웃이 주는 가치에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착한 소비자'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겠죠. 민들레건축도 사업초기에 불안감이 적지 않았고, 시행착오도 피할 수 없었어요. 주민공동시설을 계획하자니 분양가가 높아졌거든요. 그래서 입주자 모집이 어렵겠다는 그 사업자는 '착한 공급자'가 되기를 포기했어요. 결국 코하우징 개념을 실현할 수 없었어요."

▲ 농어촌지역 아름다운 건축물상. ⓒ정기석
이 건축사는 "내 집 마당보다는 마을 광장, 어린이 마당, 생태연못을 선택하고 넉넉한 주택보다는 주민공동시설을 만드는 비용을 지불하려는 '착한 소비자'들의 존재가 코하우징의 성공의 관건"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백화전원마을은 더불어 사는 이웃,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있는 마을이다. 이른바 자생(自生), 공생(共生), 상생(相生)하는 행복한 마을을 그린다. 큰집 보다는 적절한 규모를 갖춘 주택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함께 먹을 것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지혜를 모으는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보람 있는 일은 함께 나누는 순간에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을 서로 나누고 있다. 이런 코하우징 마을을 설계하고 스스로 주민이 된 이 건축사는 요즘 명지대민주동우회 회장을 맡고 있다. 코하우징 같은 민주적인 대동세상은 청년시절부터 숙원이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