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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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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52>

허문도

이화여대 신인령 교수와 얘기하는 도중에 허문도 씨가 거론되었다. 신교수 왈,

"아! 그 불패불굴의 사나이 말이죠!"

그랬다.

아마 그것이 5공 청문회 직후일 것이다. 그는 쏟아지는 칼날 질문과 화살 공격에 끄떡도 않고 자기네 패거리의 정당성과 전두환 장군에 대한 충성심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마치 일본 사무라이 집단의 '츄신꾸라(忠臣藏)'와 같은 것이겠다. 안다. 그러나 그것은 '춘추(春秋)'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가 처음 내 앞에 나타났을 때를 기억한다. 그는 되들이 병 두 개에 독한 머루주를 가득 담아가지고 왔다.

<사진>

나는 그에 대한 예비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가 구석에 쌓여 있는 불교관계 책들을 보고 감격해서 마구 감탄하는 걸 보고 그가 단순한 신도가 아니라 불교 마니아임을 알았다.

그 독한 머루주를 그 자리에서 다 비웠으나 마시는 여러 시간 동안 서로 주고받은 얘기는 그가 한 마디, 내가 한 마디, 해서 합이 꼭 두 마디뿐이었다.

그가 팔을 길게 뻗어 허리를 감아온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세 개의 힘이 합쳐졌습니다. 김춘추의 정치력, 김유신의 군사력, 원효의 문화력입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정치군사력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문화력, 사상의 힘인데 그것을 김형이 맡아주십시오. 그래서 회삼귀일(會三歸一)하십시다. 협조해주십시오."

나는 허리에 감긴 그의 팔을 슬며시 풀어내며 왈,

"나는 원효가 아닙니다. 공부한다 해도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또 마신다. 마시다가 또 그가 팔을 길게 뻗어 허리를 감아온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세 개의 힘이 합쳐졌습니다. 김춘추의 정치력, 김유신의 군사력, 원효의 문화력입니다."

"나는 원효가 아닙니다."

또 마신다. 마시다가 또 그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세 개의 힘이 합쳐졌습니다. 김춘추의 정치력, 김유신의 군사력, 원효의 문화력입니다."

"나는 원효가 아닙니다."

그는 참으로 집요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어떻게 똑같은 말을 똑같은 사람에게 길고 긴 시간 내내 똑같은 톤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더욱이 내가 거부하는 게 분명한데도…….

그는 그 뒤 서울에서 몇차례인지 어떤 루트를 통해서든 나를 초대하여 술을 샀다.

그때마다 그는 내게 협조요청을 해왔고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웃는 내앞에 또 그때마다 돈이 든 봉투를 내밀었고 나는 그것을 일단 받아 넣었다가 3, 4일 뒤엔 어떤 루트로든 꼭 되돌려주었다.

똑같았다. 팔을 내밀어 내 허리를 안는 것과 똑같이 돈봉투를 내밀었고 나는 또 슬며시 팔을 풀어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과 똑같이 돈봉투를 되돌려주었다. 단 한번 돈이 중간에서 떠버린 적이 있다. 장선생님은 내가 꼬박꼬박 돈을 돌려주는 것이 허문도 씨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이라고 판단해서 중간 사람에게 쓰라고 줘버린 일이 있었다.

그의 불패불굴의 집요함!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일로도 여실히 나타났다.

나는 어느 날 밤 문화운동 관계의 후배들 200여 명이 모이는 곳에 가기로 되있었는데 허씨가 이것을 알고 반드시 자기를 거기 데려가 달라는 것이었다.

피하면 비겁하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내겐 비겁이나 용기가 중요한게 아니다. 피하면 적이 되는 것이다. 같이 갔다.

술이 이미 거나해진 후배들은 두런두런거리며 허씨와 나에게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허씨가 불쑥 일어나 연설을 시작했다.

비교할 수 없는 똥배짱이요 집요함이었다. 내용은 결국 협조요청이었다.

그가 국풍(國風)의 주인공이었고 또 그 국풍에 김민기 아우를 끌어들이기 위해 김제의 시골에서 농사짓는 민기 아우에게 사람까지 보낸 것은 이미 유명한 얘기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결국 그것을 얻었나?

한번은 그가 오대산 상원사에서 만나자고 기별을 했다. 가야만 되었다. 왜 가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꼭 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상원사에서 기다리는 내 앞에 그는 조선일보 편집국 간부들을 잔뜩 데리고 나타났다. 술취한 조선일보 패거리들의 비꼬는 말끝들이 내 신경을 거슬렸다. 거기다 허씨는 술이 거나한 김에 한도 끝도 없는 파시스트 담론의 장광설을 늘어놓는 거였다.

나도 역시 몹시 취했다. 내 입에서 드디어 총알이 날았다. 조선일보 패거리 10여 명 앞이었다.

"야 임마! 파시스트! 입 닫아! 뭘 잘했다고 큰 소리야!"

허씨는 벌떡 일어나 자기 주먹으로 벽을 갈기고는 원통하고 아파서 주저앉아 울었다. 조선일보쪽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필생의 원수가 되는 판가리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도 그가 나를 찾아왔으니 과연 허씨란 사람은 그 집요함으로 역사에 남을 사람이었다.

이것저것 다 팽개치고 고향 전라도에서 새출발하고자 낙향한 해남집에 그가 사람들을 잔뜩 거느리고 나타난 것이다. 너스레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온 목적이 문제다. 그때는 5공말기였다. 나더러 곧 상경하여 민중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뒤 자기네와 손을 잡고 정국을 요리하자는 사꾸라 흥정이었다.

웃어버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거기에까지 이른 그간의 나의 유화책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나는 그의 차속에서 웃으며 웃으며, 참으로 어처구니 없어서 웃으며 단 한 마디밖엔 할 수 없었다.

"기자 출신은 기자 출신과 말이 통하는 법이오. 지금 민중운동의 헤게모니는 다름 아닌 동아 출신의 이부영 씨가 쥐고 있으니 이씨와 잘 타협해 보시오."

나는 그 차에서 내려 해가 설핏한 해남 우슬치 입구에서 서쪽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별 뜻도 없는 한마디가 그냥 내 입에서 기어나왔다.

"부끄럽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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