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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치인 노무현'의 최후 승부수는?

[2007 대선감상법④]'다걸기'와 '버리기'의 정치

1년 후면 '전직 대통령'이란 레테르를 달 수밖에 없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하다.

'개인 노무현'은 만 40세 이상의 대한민국 남녀 누구에게나 부여된 대통령 피선거권을 법적으로 박탈당했기 때문에 대선이 가까워 올수록 종국적으로는 시야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레임덕이나 여권주자들의 차별화 시도 역시 이같은 단임제 대통령의 숙명에 포함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이런 '숙명'에 순응하리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 대통령 본인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뜻을 숨기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권의 대선주자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선 '중대결단'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도 심심찮게 나온다. 쉽게 말해 법적 임기가 끝나기 전에 '전직 대통령'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이같은 '숙명'과 '저항'의 틈바구니에서 노 대통령은 과연 이번 대선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 비좁은 험로를 헤쳐가는 노 대통령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리는 대선구도
▲ 대통령집무실

여당 의원의 다수는 노 대통령을 향해 "정권 재창출보다는 영남 개혁 세력의 발판 마련에 더 관심이 많다. 이기적이다"고 비판해 왔다. 결국 이런 지적은 대통령을 배제한 통합신당 추진으로 이어졌다.

물론 청와대와 노 대통령 측근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한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왜 우리라고 정권재창출에 관심이 없겠냐? 다만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도 지역구도를 깨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존재하는 대목이다. 이 관계자는 '지역구도 혁파'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노사모, 친노 의원 등을 청와대로 부른 자리에서 '영남 민주세력 확대'를 강조하는가 하면, 낙하산 인사,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영남 낙선자들을 중용하며 '영남 민주세력 육성'의 명분을 내건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청와대 안팎과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노 대통령의 재집권 프로세스는, 한마디로 말해 'Again 2002'다.

영남 후보 혹은 영남 민주화 세력을 대변할 수 있는 후보가 나서서 오픈 프라이머리 등을 통해 기세를 높이면 호남의 전략적 표심을 자극할 수 있고, 본선을 앞두고 反한나라당 기타 후보들과의 단일화를 통해 결국 양자대결 구도를 구축한다는 것.

따라서 노 대통령이 '통합신당은 도로 민주당'이라며 극력 반대의사를 피력한 것은 지역주의 타파에 대한 소신 뿐 아니라 '여당의 호남 회귀 현상은 영남 후보가 나설 수 있는 토양을 망치는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 영남의 교두보 구축 이후에 호남 표심 다잡기에 나서야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지, 그 순서가 바뀌어서는 모든 계획이 만사휴의라는 얘기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지역구도 혁파' 혹은 '영남민주세력 육성'이 바로 재집권의 키워드가 되어 왔던 셈이다.

차별화와 레임덕에 대한 강박

하지만 최근 기류는 좀 달라 보인다. 노 대통령은 전효숙 전 헌법재판소장 내정자의 지명을 철회하면서 '굴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 직후 임기단축 발언도 나왔다.

당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전효숙 문제도 전효숙 문제지만 법안이 국회에 걸려 있는 게 몇 개냐?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중대결심 가능설'이 솔솔 흘러나온 것도 이 때 부터다.

이와 더불어 대통령은 여권 주자들의 차별화 시도에도 지속적으로 격렬한 반감을 나타냈다.

사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김병준 전 부총리 인사파동 당시부터 김근태 당의장을 청와대에 불러놓고 "차별화해서 잘 된 사람 있더냐"고 면박을 줬고, 지난 달에는 고 건 전 총리를 향해서도 "사람은 뒤끝이 좋아야 한다"며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차별화를 해본 적이 없다"고 공박했다.

정권재창출이나 지역구도 문제보다도 동전의 앞뒷면인 레임덕과 여권주자들의 차별화 시도에 대한 대응이 당장 눈 앞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노 대통령은 손 놓고 있지 않을 뜻을 분명히 하고 했다. 고 전 총리의 발목을 잡아 지지율을 끌어내렸고 새해부터는 한명숙 총리를 제치고 매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기로 결정했고 새해 들어선 연일 '할 말은 하는 정치'를 보이고 있다.

'이단적 지도자' 드골에 대한 경도
▲ 지난달 21일 평통자문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노 대통령ⓒ연합뉴스

이같은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별화와 레임덕의 흐름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이 시점이 일반의 예상보다 빨리 닥친다면 차기대선구도 역시 대통령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 불문가지다.

지난 2004년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사태에 직면해 청와대 관저에서 칩거하다 시피하던 노 대통령의 눈길을 끈 책이 하나 있었다. 2003년 6월, 당시 외교부 심의관을 맡고 있던 이주흠 현 외교안보연구원장이 집필한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

이 책에 흠뻑 빠진 노 대통령은 리더십 비서관이라는 직제를 신설해 이주흠 당시 심의관을 청와대로 불러올렸고 지난 해 말에는 외교안보연구원장으로 영전시키기까지 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주흠 외교안보연구원장은 드골에 대해 "샤를 드골 대통령은 항상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단(異端)'에 도전했던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물론 명문가 출신의 제2차 세계대전 영웅으로 11년간 장기집권 하며 '국부(國父)'로 불릴 만큼 카리스마를 발휘했던 드골 대통령과 노 대통령 사이의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드골은, 이 원장이 평가한대로, '이단적 지도자'라는 점에서 노 대통령과 공통점을 지닌다. 드골은 집권 기간 동안 여섯 차례나 국민투표를 실시했을 만큼 정당이나 의회의 기제 대신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중시했다.

결국 드골은 68혁명이 프랑스를 뒤흔들고 자신의 리더십이 훼손되자 1969년 4월 자신의 재신임을 내걸고 지방행정개혁과 상원개편을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의했다. 이 개헌안이 부결되자 드골은 1969년 4월 미련 없이 하야하고 향리로 돌아갔다.

의회 권력에 의해 '합법적'으로 권한을 박탈당했던 노 대통령으로서는, 국민과 직접 소통을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강화했고 소통이 힘들어지자 미련 없이 떠난 드골 대통령에게 경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다 걸기'와 '버리기'

청와대 인사들이나 노 대통령의 측근들은 '하야'라는 단어만 나와도 손사래를 치기 바쁘다. "'임기를 마치지 못하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말 그대로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 본인은 연이은 낙선과 이를 딛고선 대권 쟁취라는 자신의 정치역정에 대해 "나는 다 걸고 또 버리는 정치를 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병준 정책기획위원장도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드라마는 버림으로써 만드는 드라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물론이고 선관위까지 탄핵가결을 앞두고 대통령의 사과 요구를 했지만 노 대통령은 이를 일축했다. 일종의 '다 걸기'였던 셈이다. 결국 이는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국회 과반수 의석이라는 '대박'으로 돌아왔다.

최종적으론 사실관계가 다른 것으로 밝혀졌지만 "캐나다의 멀루니 총리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제개혁을 해서 여당을 2석의 미니정당으로 만들었지만 가장 위대한 총리로 꼽히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역시 '다 걸기'의 사례로 기억될 만 하다.

그런가 하면,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권력을 통째로 넘겨줄 수 있다"고 대연정을 제안하고, '탈당, 임기단축'을 언급한 것은 '버리는 정치'의 연속선상에서 이뤄진 것이었다고 할만 하다.

하지만 문제는, 탄핵을 제외하곤 그의 정치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연정 제안은 여당과 청와대의 지지율을 반토막냈고 '탈당 불사'를 통한 당내 반란 진압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기만 했다.

'바보 노무현'의 버리고 다 거는 정치는 확고한 지지층을 만들었고 결국 대권으로 돌아왔지만 '대통령 노무현'이 시도한 정치의 결과물은 아직까지는, 참혹하다.

노 대통령의 향후 선택은?

그것이 '노무현 정치 4년'의 냉정한 대차대조표다. 그 연장선상에서 노 대통령은 "한 사람의 당원으로서 당의 논의에 책임있게 임하겠다"며 통합신당 반대론을 분명히 했고 노사모도 '봉기'의 조짐을 보였지만 결국 여당은 이를 뿌리치고 통합신당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자제하던 정동영 전 의장도 김근태 의장과 손을 잡았다. 야당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여당 쪽을 바라봐도 대통령의 말이 먹히지 않는 풍경이다.

하지만 고건 전 총리와 공방 결과가 웅변하듯 노 대통령의 파괴력은 아직 만만찮다. 여당의 한 의원은 "노 대통령이 누구를 띄울 순 없지만 발목을 잡을 순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하며 "이대로 가면 공멸이다. 대통령이 우리를 풀어줘야 하는데, 문제는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박판에서 계속 패배하는 승부사가 일거에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길은 딱 한 가지다. 판돈을 자꾸 두 배로 올리는 것. 마지막에 한 번만 이기면 그때까지의 손해를 메꾸는 것은 물론 최종 승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단, 질 경우 패가망신을 모면하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노 대통령의 수중에 남은 카드는 하나밖에 없어 보인다. 굴복할 것인가? 마지막 베팅을 할 것인가? '정치인 노무현'의 행보와 캐릭터 상 후자의 확률이 조금은 더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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