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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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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70>

홍수

홍수가 났다. 남한강에 큰 홍수가 났다. 숱한 논밭이 침수되고, 숱한 집들이 떠내려가고, 숱한 이재민이 생겨났다. 강원도·경기도·충청북도가 겹치는 넓은 이 지역은 바로 천주교 원주교구다.

독일의 천주교 구호단체 '미세레올'이 거금을 여기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을 갖고 나를 찾아 마산에 급히 온 것은 바로 나의 상사(上司)인 김영주(金榮注) 기획실장이었다. 여관에서 만난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긴급한 현안이 있었다.

이 거금을 미세레올의 요구대로 일종의 자선 행위와 같은 단순한 피해보상금만으로 소진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원주캠프가 주체적으로 운용하여 새롭고 근본적인 민중운동을 장기적으로 일으킬 것인가 였다.

이 광활한 지역의 수많은 농민·노동자·어민과 영세 서민들의 협동적 공동체 건설과 직접민주주의의 체득을 위해, 그리고 광범위한 자활운동을 통해 농민회·노동자회·어민회·영세서민회 등의 조직을 촉발, 결성하는 사회 개발을 위해 쓸 수 있도록 그 정관을 전면 조정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조정 문제에서 우리는 협의했고 조정 문제를 가지고 김영주 실장은 미세레올과의 긴 씨름에서 성공했다.

우리는 그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불씨인 로드짐 같은, 히딩크 같은 미세레올 자금의 충격으로 사랑과 민주주의와 변혁의 기회를 현실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후 10여년에 걸쳐 원주교구가 반유신(反維新) 민주화운동의 실질적인 메카로 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지학순 주교의 피투성이 헌신과 천주교회의 집단적 노력도 노력이거니와, 재해대책(災害對策)의 외피(外皮) 속에서 실질적인 사회개발로 변혁화해 나간 원주의 그 조직적 민중운동의 기초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편 김영주 실장과 위원들의 노고와 헌신에, 다른 한편 지주교님의 혁신적 서학(西學)과 장선생님의 진보적 동학(東學)의 융합 및 그 이중적 지도체제 때문이다. 지도력의 이중성, 이원성이 갖는 오묘한 창조력과 융통성을 나는 여기서 똑똑히 보았다. 이것은 원주라는 지역사(地域史)의 자랑이고, 천주교의 자랑이며, 여러 위원들과 나의 자랑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힘이 기초가 되어 이른바 '생명운동'이라는 새로운 문명창조운동이 비로소 싹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어라 해야 하는가?
홍수가 도리어 조직적이고 변혁적인 민중운동을 부르고, 민중운동의 오랜 노력이 생명운동이라는 힘으로 현란한 새 명제를 불러온 이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옳은가?

변증법인가?
모순어법인가?
음양법인가?
반비례인가?
아니면 은총인가?

<'월간중앙'과 동시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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