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2014년 신년호로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나오길 바라는 미래의 책들에 대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일곱 명의 필자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 당신이 읽고 싶은 책, 번역되길 바라는 책과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13일 송년호에서 예고했던 페이지 개편은 기술적인 문제로 1월 17일부터 구현됩니다. 예고한 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 2014년에도 프레시안 books를 사랑해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래 글은 2014년부터 새로 시작하는 연재 '정여울의 마음이 머무는 곳'입니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이 여러 공간들로부터 차분하고 깊이 있는 사유를 이끌어내는 특별한 에세이를 선사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이 공간들에 감정의 공명을 느끼실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
프롤로그: 내게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준 공간들
나는 소문난 길치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길을 잘 잃어버리는지 안다. 그래서 '오시는 길'을 설명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10년 넘게 줄곧 다닌 학교 안에서 강의실을 못 찾아 헤맨 적도 있다. 심지어 이사한 지 며칠 안 된 새 집을 못 찾아, 비오는 밤길을 두 시간 넘게 헤매며 눈물을 글썽인 적도 있다. 당연히 공간감각도 없다. 오래전 잘 알았던 길도 간판 몇 개만 바뀌어 있으면 터무니없이 낯설어진다.
그런 내가 10년이 넘게 여행에 미쳐서 일 년에 한두 번씩은 꼭 낯선 타국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내게 길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만들어주었다. 길을 잃어도 좋으니 어디 한번 제대로 헤매보라고 충동질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여행은 길을 잃었을 때 낯선 이에게 길을 묻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남에게 질문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내가, 이제는 길이든 지식이든 사람이든 장소든 모르면 어린아이에게라도 묻는, 바람직한(?) 철면피를 지니게 되었다.
2006년 뉴욕에서 낯선 거리를 헤매다가 잊을 수 없는 경고문을 본 적이 있다. 'Don't loiter!' 라는 메모지가 어느 상점 유리문에 버젓이 붙어 있었다. 어슬렁거리지 말라. 두리번거리지 말라. 물건을 살 것도 아니면서 괜히 주변을 배회하지 말라는 뜻 같았다. 나는 뉴욕의 각박한 인심에 실망했다. 아시아나 유럽에서는 이런 야박한 경고문을 본 적이 없다. 내 여행의 가장 멋진 목적이야말로 두리번거림, 어슬렁거림이었다. 오랫동안 헤매고, 두리번거리고, 어슬렁거려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공간들은 그 자체로 여행자의 축복이었다.
10년 넘게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여행을 위한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내 마음속에 숨은 뜨거운 물음표가 나를 등 떠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우리 마음을 진실로 편안하게 해주는 공간은 어떤 공간인가'라는 화두였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삶이 고통스러울 때 여행을 갈망하는 걸까. 왜 지금 이곳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곳과 다른 곳, 타인의 삶의 풍경이 있는 곳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모르는 장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때로는 잘 아는 장소에 대한 익숙한 그리움보다 절실하다. 뜻밖의 장소가 지닌 아름다움은 누구나 다 아는 장소의 매력보다도 더욱 강렬하다. 나는 유명한 장소들의 화려한 스펙터클보다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랜 삶의 흔적이 담긴 작지만 따스한 공간들에 매료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여행은 공간에 대한 취향이 없었던 나에게, 공간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없었던 나에게, 공간을 사랑하고 가꾸고 창조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 삶의 익숙한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해준 것도 여행이었다. 삶의 피로도가 극에 달했을 때마다 여행을 떠났고, 다시 삶으로 돌아와 일상이라는 가장 소중한 여행을 다시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도 바로 여행의 힘이었다.
이제 나에게 영감을 준 장소, 나에게 삶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장소들을 향한 또 한 번의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나의 글이 삶과 사람과 사건에 매일매일 상처받는 당신을 향해 '우리 함께 떠나요'라고 속삭이는 달콤한 유혹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더라도, 글쓰기를 통한 이 작고 아늑한 여행이 언젠가 당신과 함께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행을 향한 신명나는 예행연습이 되기를.
상처의 그림자, 또 다른 상처를 어루만지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위령비 Holocaust Memorial
우리는 스스로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지, 어떤 공간에 가야 마음이 편해지는지를 잘 알고 있을까. 나는 공간에 대한 감식안이 없었다. 다양한 장소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도 했고, '내 공간을 이렇게 가꾸자'는 특별한 의식도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눈으로 봤을 때 아름다운 공간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공간은 그런 미적 편견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위령비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솔직히 어안이 벙벙했다. 어쩌자고 이 도시 한복판에 이 거대한 조형물을 조성해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독일인들은 씻을 수 없는 역사적 죄책감조차 이토록 스펙터클하게 전시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이 공간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 차가운 석판 위에 앉아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 위령비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나는 뭔지 모를 매혹에 이끌려 이 장소에 세 번이나 가보았는데, 처음에는 이곳이 '기이하다'고 생각했다가, 두 번째는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세 번째는 '하루 종일 머물러 있어도 지겹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베를린 홀로코스트 위령비 전경. 나치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공원에는 무려 19,000제곱미터나 되는 부지에 2711개의 석판이 나란히 도열해 있다. 건축가 페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디자인한 이 작품의 애초 의도는 뭔가 불편한 느낌, 혼란스러운 분위기, 인간의 이성을 잃어버린 듯하면서도 엄격하게 통제된 체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승원 |
아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장난을 치기도 하고, 연인들은 편안하게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이곳의 의미를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부모들도 있지만 그저 내버려두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 자유로움이 좋았다.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디자인한 유태인 박물관의 그 숨 막힐 듯한 긴장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유태인 박물관은 무척 훌륭한 건축물이긴 했지만, 가슴을 죄어오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죄책감을 지휘하는 듯한 오싹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일종의 거대한 트라우마 산업이 되어가고 있는 유태인 관련 문화 콘텐츠들은 일부 힘 있는 유태인들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과거의 상처를 끊임없이 되새기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상처가 권력이 되는 일을 두려워한다. 희생자의 이름으로, 혹은 희생된 이들의 아픔을 대의명분으로 하는 모든 일들은, 상처가 또 다른 권력으로 군림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유태인 박물관보다는 오히려 이곳이 훨씬 좋았다. 이곳은 외적으로 아름답거나 정해진 목적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달려가지 않는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위령비는 관람자를 죄책감의 감옥 안에 가두지 않는다. 사방이 뻥 뚫린 거대한 도시 한복판에서, 특별히 밀폐된 공간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역사를 되새기고 상처를 어루만져야 함을 조용히 일깨우는 공간이다.
▲ 단체관람객으로 참여하여 홀로코스트에 대해 토론하는 사람들. 우리의 제주 4·3도, 한국전쟁 당시 일어난 수많은 양민학살도, 광주민중항쟁도, 또 이름도 묘비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도, 이렇게 토론하고, 기억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어엿한 기억의 공간을 찾을 수 있기를. ⓒ이승원 |
나는 홀로코스트 위령비를 보면서 제주 4·3을 생각했다. 일부러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상처는 닮은 상처를 부르나 보다. 나는 이렇게 멋들어진 기념비로 추모되지 못한, 여전히 진정한 위령제를 치르지 못한 수많은 죽음들을 추모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베를린의 관광객도 이곳을 보면서 자신들의 아픔, 그들과 닮은 상처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이것이 '추상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홀로코스트 위령비에는 특정한 얼굴이나 구체적인 형상이 없다. 무한한 추상의 힘으로, 이 세상 모든 구체적 아픔들과 연대한다. 추상은 꼭 실제 사물과 유사하거나 똑같아야 한다는 부담에서 해방시켜 우리를 더 다양한 슬픔들과 연대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이곳을 세 번이나 방문한 후, 그 기이한 매력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항상 '피해자의 입장'에서 역사적 상처를 드러낸 공간에 익숙해져 있다. 게다가 죄 지은 자들은 어떻게든 죄를 모른 척하거나, 마치 처음부터 그런 죄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딴청을 부린다. 보통 위정자들이 어떤 기념비를 세울 때는 자신들의 치적을 기리는 자기찬양의 성격을 지닐 때가 많다. 그런데 이곳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시내 한복판의 거대한 부지 위에서, '우리가 피해자다'가 아닌 '우리가 가해자다'라고 절규하고 있었다. 나는 위정자이자 가해자들이 '내가 진실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 만든 공간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뛰논다. 기억도, 슬픔도, 상처도 아직 모르는 표정으로. 그 모습이 참 예쁘다. 언젠가는 그들도 이 공간에 놓인 이 비석 같은, 아니 관 같은 석판의 비극적인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승원 |
위령비들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모든 감상을 철저히 제거하고 거울처럼 맑은 이성을 작동시키라고. 과거의 잘못을 속속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언제 다시 참혹한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고. 건축가는 실제로 이 작품을 만들면서 어떤 특별한 상징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관람객들은 대부분 관이나 무덤의 엄숙한 행렬을 연상한다. 차가운 추상이 주는 힘은 이런 것인가 보다. 아무것도 상징하지 않되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마음의 빈 공간을 자극하는 것. 우리는 어떤 얼굴도 어떤 표정도 어떤 이름도 그려지지 않은 그 거대한 조형물 속에서 상처 입고 고통 받고 모멸감을 곱씹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라도 위로받지 못한 수많은 다른 죽음들을 떠올렸다. 단지 내가 살아온 공간을 지키고 싶다는 소박한 염원을 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화염에 휩싸여 죽어가야 했던 용산참사의 열사들, 영문도 모른 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빨갱이로 몰려 떼죽음을 당해야 했던 제주 4·3의 수십만 영령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사측의 온갖 치졸한 협박에 시달리며 홀로 죽음을 택하는 수많은 노동자들…….
▲ 연인들에게 이곳은 더할 나위 없는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다. 기둥 뒤에 숨으면 은밀한 아지트가 되기도 하고, 소파 삼아 앉으면 저절로 노천카페가 되는 이 공간의 입장료는 0원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모든 삶의 다채로운 의미를 가만히 받아주는 이 공원의 그 '말없는 받아들임'이 아름답다. ⓒ이승원 |
이 공간은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은 아니다. 많은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결코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치유의 공간은 아니지만, 나는 이곳을 첫 번째 치유의 공간으로 꼽게 된다. 이곳은 내 몸 하나 편안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치유의 공간이 아니라 집단의 치유, 역사의 치유, 기억의 치유를 꿈꾸게 하는 공간이다. 나는 얼굴을 모르는 죽음들, 내가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옛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을 만남으로써 마음의 키가 한 뼘 자라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시공간 속에서도 한목소리로 외치는 것만 같다. 아무리 불편해도, 아무리 힘들어도, 때로는 차라리 잊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힐지라도, 우리 인간이 저지른 끔찍한 악행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곳에 가면 이런 의문이 든다. 무덤 속에 있어야 할 관이 땅 위에 돌출되어 있는 느낌. 죽은 자의 눈물이 마르지 않아, 아직 입관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관들의 행렬. 그리하여 나는 아직 땅속에 파묻어 영원히 잠재울 수 없는 죽음의 의미를 곱씹는다. 나는 그 '묻을 수 없는 죽음'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누군가가 못다 흘린 눈물로, 누군가가 못다 지은 미소로, 내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시간. 그 순간 내 안에서 뜻밖의 치유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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