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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그 작가 빨갱이에서 반공주의자로 변신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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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그 작가 빨갱이에서 반공주의자로 변신했대!

[내가 기다리는 책] 존 더스패서스의 <U.S.A> 3부작


'프레시안 books'는 2014년 신년호로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나오길 바라는 미래의 책들에 대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일곱 명의 필자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 당신이 읽고 싶은 책, 번역되길 바라는 책과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13일 송년호에서 예고했던 페이지 개편은 기술적인 문제로 1월 17일부터 구현됩니다. 예고한 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 2014년에도 프레시안 books를 사랑해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니, 1973년 일이다. 주말이면 맘에 맞는 친구와 함께 청계천 헌책방가를 순례하곤 했다. 졸업까지 몇 개 국어를 마스터하겠다는, 결국 이뤄지지 않은 야무진 꿈과 함께 세계문학과 사상을 섭렵하겠다는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청계천은 그 시발점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적이나 양우당 등 번듯한 대형서점에서도 정가의 10%정도 깎아주던 호시절이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만큼 가능한 한 많은 책을 사기 위해서였다.(왜 그때는 책을 꼭 사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 <미국의 비극>(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김병철 옮김, 범우사 펴냄). ⓒ범우사
더운 여름날 어느 책방에서 <세계의 명저-문학편>(이휘영·이어령 엮음, 법통사 펴냄, 이하 <세계의 명저>)을 만났다. 상하 두 권으로 이뤄진 이 책은 나라별로 100권 정도 꼽아 작가와 작품을 해설해 놓은 것이었는데, 이게 꽤 신통했다. 기왕의 세계문학전집에서 볼 수 없는 작품들이 적잖게 수록되었기에 이후 '나만의 세계문학 목록'을 만들고 이를 독파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왜 있잖은가. 남들과는 어딘가 다르고 싶은 그런 시절.

덕분에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화상>, 노발리스의 <푸른 꽃> 등 훗날 만나게 된 작품들을 알게 되었다. 미국 식품산업의 치부를 드러내 결국 그 틀을 바꿨다는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이 책에선 '밀림'이라 옮겼던 것으로 기억하며, 몇 년 뒤 번역됐다. 한데 1부만이었다는 기억이 있다)이나 엘리아 카잔 감독이 영화 <젊은이의 양지>로도 만들었던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미국의 비극>의 존재를 안 것도 이 책에서였다.

존 더스패서스의 도 여기서 이름을 보았다. 미국편에 소개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싱클레어나 드라이저와 비슷한 문학세계라고 기억하고 있다.(지금은 <세계의 명저>가 없다) 그러니까 미국이 말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인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

그 뒤 <세계의 명저>에 실렸던 작품은 대부분 만났는데 더스패서스의 작품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니 솔직히 영문학자도 아니고, 영어 실력이 능통하지도 않으니 내게 는 실체는 모르는 채 전적으로 이휘영· 이어령 두 분의 안목에 기대어 '그리워만 하는 책'이었다. 일찍이-'명저'는 1960년대 나온 책이다-명작으로 꼽힌 작품이 왜 안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찌해서 신문사 출판담당 기자를 하면서는 가까운 몇몇 문학출판사 관계자들에게 마치 큰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양 "세계적 명작인데 아직 번역출판이 되지 않은 책"이라 귀띔하며 '개인적 욕심'을 풀려했지만 허사였다.

한데 궁하면 통한다던가. 좀 더 상세한 작품 소개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해 초 나온 <미국을 만든 책 25>(토마스 C. 포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에서였다. 미국 미시건 대학교 영문학 교수가 '엄선'한 미국의 대표적 문학작품 가운데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를 만나 궁금증을 대부분 풀 수 있었다.(이하 설명은 <미국을 만든 책 25>에 많이 의지했다)

▲ <북위 42도(The 42nd Parallel)>(존 더스패서스 지음, Mariner Books). ⓒMariner Books
우선 란 '소설'은 없었다. <북위 42도(The 42nd Parallel)>(1930년), <1919>(1932년), <빅 머니(The Big Money)>(1936) 세 작품을 일컫는 말로 3부작의 프롤로그에 'U.S.A'란 작가의 프롤로그가 실렸을 따름이다. 20세기 초 미국문화와 세태를 파노라마처럼 그려낸 이 작품은 문학기법이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단다.

더스패서스는 신문기사, 뉴스영화, 전기, 자서전을 모자이크처럼 활용하면서 처음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을 광범위하게 사용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그의 첫 작품 <맨해튼 환승역>(번역제는 <맨해튼 트랜스퍼>(박경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을 두고 미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싱클레어 루이스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보다 더 의미 있는 작품"이라 했고 장 폴 사르트르는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라 평했다.

문학적 평가와는 별도로 읽어내기엔 만만치 않은 듯하다. 포스터 교수의 소개에 따르면 조판공, 비서, 무대 디자이너 등 12명의 이야기가 뼈대를 이루는데 특출한 주인공이나 줄거리는 없으며 상당수가 죽음이나 환멸 등 좋지 않은 결과를 맞는다. '독특한 기법으로 그려낸, 동경과 가능성 그리고 실망으로 가득 찬 20세기 초 미국의 초상화'라는 것이 이 작품의 인상이다.

그렇다면 1998년 모던 라이브러리에서 꼽은 '20세기 100대 영어 소설' 중 당당히 23위에 오른 이 작품은 왜 우리 독자들에겐 소개되지 않을까. 당장 떠오르는 것이 1300쪽에 이르는 분량, 문학성에 비해 떨어지는 대중성을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분량은 결정적 요인은 아니지 싶다. 미국 자본주의의 정신적 지주로 일컬어지는 여류 작가 에인 랜드-그는 그린스펀 전 FRB의장의 '스승'으로도 알려졌다-의 작품 <아틀라스>는 5권 분량인데도 두 차례(민음사, 휴머니스트)나 번역되었던 걸로 미뤄보면 문학적 평가나 분량이 번역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신 작가 자신의 '전향'이 결정적으로 번역 출간을 꺼리게 되는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빅 머니>에서 이상주의적 공산주의자를 그려냈을 정도로 사회주의에 기울었던 도스패소스는 스페인 전쟁 참전을 계기로 보수 진영으로 돌아섰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대통령 후보에 지명되자 이를 비난하는 기사를 쓰고, 50년대엔 '반공산주의 광풍'을 일으킨 조셉 매카시에 동조하기도 했다. 미국의 정치 경제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양극화로 간다고 여기며, 자본주의를 지키고 노동자를 억압하기 위한 좌파와 우파의 담합을 비판적으로 그렸던 작가로선 상상하기 힘든 변모다.

▲ <맨해튼 트랜스퍼>(존 더스패서스 지음, 박경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그러니 진보적 출판사로선 미국의 '질병'을 적실하게 보여준 작품이라 해도 이후의 작가 행적을 보면 선뜻 출간을 결심하기 망설여질 것이다. 반면 보수적인 출판사라면 미국을 비판하는 진보적 작품을 굳이 소개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분량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이런 사실을 보면 문학은 그 자체만으로 번역 출간이 결정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디까지나 출판사에서 판단할 일이지만, 문학성으로 봐선 더스패서스의 대표작이 번역되어도 좋지 않을까. 노벨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영문학사에서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펄 벅의 작품이, 특히 에세이를 중심으로 잊을 만하면 출간되거나 에인 랜드의 작품이 거듭 소개되는 걸 보며 드는 생각이다. 더구나 새로운 진용으로 짜여진 '세계문학 시리즈'가 여러 곳에서 출간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1910~30년 미국의 '질병'을 그린 작품이 오늘날 한국 독자들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꿈꾸던 것과 달라 실망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한 번은 보고 싶다. 개인적으론 젊었을 적 꿈이고 문학적으로 그토록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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