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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카오스 대한민국'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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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의 '카오스 대한민국'이 두렵다!"

[정희준의 '어퍼컷'] 김영춘과의 대화 ①

치열했던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지 1년이 지났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향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국가 기관의 대선 개입, NLL 회의록 파문이 연이어 국정을 강타했고 이제는 공권력과 노동자가 건곤일척의 쟁투를 벌이고 있다.

이 정신 사나운 한 해를 보내는 중에도 국민들은 박정희의 시대로 끊임없이 호출 당해야 하고 또 노무현의 기억을 가지고 저주가 난무하는 몰상식의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단언컨대 지금 가장 불쌍한 족속은 바로 대한민국의 국민일 것이다.

이 격한 감정의 대결 구도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작금의 한국 정치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서울 광진구에서 16, 17대 의원을 지내고 지금은 자신의 고향 부산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김영춘 인본사회연구소장은 매우 이색적인 경력의 정치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시작한 그는 386 정치인의 맏형으로 한나라당에서 촉망받는 정치인이었지만 한나라당에서 보수 혁신을 시도하다 무위에 그치자 탈당을 감행해 전국 정당을 표방하는 열린우리당 창당에 나선다. 자신이 창당 주역이었던 열린우리당이 문을 닫는 모습을 지켜본 후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을 돕기도 했다.

끝없는 정치 실험의 와중에 남다른 좌절도 맛 봤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총선에서 그는 민주당의 무덤이라는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예상대로(?) 낙선한 후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보수와 진보를 오가며 혁신을 추구해왔고 또 지금은 중앙의 극한 대결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김영춘 소장과 지난 1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지금의 한국 정치는 과거로부터의 연장선 위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듯했다. 다만 정치 지도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과감한 결단만이 작금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김 소장과의 인터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 김영춘 인본사회연구소장(전 국회의원). ⓒ인본사회연구소

"박근혜, 희망이 안 보인다"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고 1년이 지났는데 국정이 불안해 보인다. 계속 이런 식이면 남은 4년도 별로 기대할 게 없는 게 아닌가 염려가 있기도 하다. 그래도 박 대통령에게서 희망을 찾는다면?

"1년이 됐지만 잘 한 건 기억이 없고…. 우리가 박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것은 박정희의 딸로서 아버지의 공도 있지만 과도 있으니 그런 과오를 치유하고, 특히 첫 여성 대통령이니까 따뜻한 지도력과 국가 통합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지난 1년은 역방향으로, 통합의 지도력이 아니라 갈등과 대결의 증폭시키는 정치였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남은 4년은 한국 사회 전체를 그야말로 대혼란으로, 이념적 대결, 세대적 대결, 지역적 대결 등의 카오스 상태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공약 이행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참모진 교체 이야기도 나오는데.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는 국가 기관의 대선 불법 개입에 대해 나하고 상관없는 문제라며 시종일관 덮으려 한 점이다. 그리고 진상 규명과 관련한 모든 노력, 즉 야당의 요구와 검찰의 정당한 법 집행까지도 봉쇄하거나 탄압하면서 정국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했다. 문제 제기만 하면 '대선 불복이냐' 이런 프레임으로 몰고 가며, 마치 이걸 시비하는 것은 대통령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정말 이상한 사고방식이다.

검찰총장 자르고 수사 검사도 자른 것은 야당 지지자 뿐 아니라 상식을 가진 보수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특히 문제는 계속 이렇게 가면 대통령이 하려는 경제든 외교든 민생이든 다른 모든 일이 다 묻혀버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각에서 청와대 참모진 교체를 이야기 하는데, 그 이전에 대통령 스스로가 자기 생각의 근본적 흐름을 바꾸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이다. 이건 대선 불복, 승복의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과 국가 기관이 대선 개입했다면 이건 잘못된 거다, 그 잘못된 일의 진상규명하고 책임자 처벌과 대선 불복과는 아무런 상관없다. 이점을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엄정하게 구분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참모 정도의 곁가지 바꾸는 게 무슨 효과가 있겠나.

그렇게 되면 당연히 야당은 대통령의 용단을 환영할 수밖에 없고 대통령이 추구하는 경제나 외교 정책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면서 동반자적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야당이 그 정부에 협조하겠나. 최우선의 과제는 대통령이 스스로 생각 바꾸는 것 외엔 없다."

- 이와 연결되는 게 민주당 문제다. 김한길 체제의 민주당, 왜 이렇게 어정쩡하고 무기력한가. 선명성도 잃었지만 치고 나가야 할 타이밍도 못 잡는 거 같고. 어째야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대통령 취임 첫해에 야당은 힘들게 마련이다. 야당 지도부가 어지간히 잘 해서는 빛이 안 나는 시기다. 게다가 민주당은 꼭 이겼어야 할 총선과 대선을 연거푸 패함으로써 갖게 된 상실감이 크다. 김한길 대표 등 지도부는 어려운 상황에서 애 많이 썼다는 점은 분명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다 효과적으로 대정부 투쟁을 못 한 게 좀 있다. 우선 타이밍의 문제인데, 야당은 싸울 때를 잘 골라 싸우고 또 타협 할 때를 잘 골라서 하는 밀고 당기기, 요즘 말로 '밀당'을 잘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야 영수 회담을 목전에 두고서 청와대 중심으로 여권이 채 총장에게 시비를 걸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런 일을 보고도 그냥 영수 회담 가서 이야기 하겠다? 야당으로서의 결기나 분노의 목소리는 내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에서 영수 회담에 들어갔다가 영수 회담에서 대통령은 반박만 하고 결국 언론과 국민 앞에서 대통령과 여권에게 자기 항변의 무대만 제공한 꼴이 되어버렸다.

특히 이 어려운 상황에서 야당은 화를 낼 때 제대로, 제때 화를 내주는 그런 타이밍이 필요하다. 원래 김한길 대표는 화를 잘 내지 않는 성품의 분이다. 그러나 대표라면 화를 내야 한다. 국민들이 화가 나는데, 야당은 당연히 국민들의 치솟는 분노를 대변해야 하지 않나. 특히 야당 대표로서 대여 싸움에서 화를 내야 할 때 제대로 화를 내야 여야 간 협상이라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하고 좌고우면한다는 느낌이다."

- 민주당의 무기력에 리더십 부재라는 사람도 있고 개혁 의지 상실이라는 이도 있다. 어디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개혁의 에너지가 소진되었다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 아닌가 싶다. 총선, 대선을 연거푸 패배한 좌절감이 가장 큰 게 바로 민주당 당원들이다. 지난 시절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전환기에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지금 지나치게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고 지도부를 공격하면 이 당이 위험에 처할 수 있을 거다. 과거 열린우리당의 경험에서 오는 학습 효과 아닐까. 그래서 애써 자제하면서 상황 지켜보고 호흡을 고르는 상황 같다."

- 당 대표 역할까지 했던 문성근 씨는 민주당이 퇴보한다면서 탈당하기까지 했다.

"저는 사실 지금 당 지도부에 대해서 호의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보했다고 보기에는 근거나 과정에 대한 평가가 좀 부족한 거 아닌가 생각한다. 혹시 모바일 투표 논란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모바일 투표 방식이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당에서도 많은 문제를 낳은 것은 사실이다. 당 밖의 다중이 쉽게 참여해야 한다는 큰 흐름은 당연히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게 꼭 모바일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개혁 후퇴라 하는 것은 좀 무리 아닐까. 문 대표 경우는 본인이 '백만민란' 당시 주장해서 관철시킨 게 모바일 투표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상실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 친노 대 비노 간 갈등이 민주당의 혁신을 방해한다는 의견도 있고 친노가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결국 친노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친노 문제는 한 묶음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지난 총선의 경우 큰 틀에서는 알게 모르게 연합군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 갈등도 있고 또 지금도 다양한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게 명시적인 조직을 갖고 있지도 않고 체계도 없어서 '너희는 친노다' 하고 몰아붙일 수도 없다. 또 현재 친노가 당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지도 않고….

- 이 문제를 놓고는 할 말을 제대로 안 하는 느낌이다. (웃음)

ⓒ인본사회연구소

"문재인, 지금이 대선 출마 선언할 때인가"

지난 대선으로부터 1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관심의 초점은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다. 지난 10월 한 행사에서 김영춘 소장은 이들 두 인물을 평한 적이 있다. 문 의원은 대선 1년이 지나도록 지나치게 발언을 자제하며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며 박 대통령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한 이후의 모습에서 70점을 준 반면 안 의원은 사실상 정치를 안 하고 있는 것이라며 50점을 줬다.

- 최근 문 의원은 대선 재도전을 시사하는 발언도 했고 북 콘서트도 연이어 하고 있다. 안 의원은 새정치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지난주엔 부산에 오기도 했다. 두 달 전 평가에서 달라진 것이 있나?

"안철수 의원은 그때완 다르게 본격적인 정치 행보, 정치 세력화에 나섰다. 기왕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면 빨리 그렇게 하는 게 맞다. 그런 점에서 안 의원의 점수는 상향 조정해야 한다. 반면 문재인 의원 경우는 최근 대권 재도전 시사 같은 발언을 두 번이나 했는데. 지금 상황이 그런 상황인지 모르겠다. 왜 그러는지, 본인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지금이 좋은 타이밍은 아니지 않나. 정치를 타이밍이라 생각한다면."

- 친노 입지 확보 위한 거란 이야기도 있고 안철수 신당 창당 움직임으로 인한 위기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모르겠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물어볼까 한다. 그렇지만 잔잔하게 바라보면 좋은 타이밍은 아니다. 정치인으로서 발언은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는 대선 후보를 지낸 분이고 좌우나 보수 진보를 떠나 지금처럼 국가 전체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조금 더 큰 어른으로서의 그릇이나 비전을 보여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 이제까지 대선 패배한 대선 후보가 그랬듯이 외국에 나가는 등 국내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게 낫다고 보나.

"아니다. 그게 아니라 본인은 발언의 자유 없이 1년을 보내서 답답함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 의원은 1년 전 대권을 놓고 박 대통령과 맞섰던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야당의 어른이고, 나라 전체로 봐도 큰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다시 대선에 재도전하겠다는 이야기보다는 좀 더 큰 차원의 이야기를 하는 게 어땠을까.

예를 들어 국가가 가야할 방향이나 국민 통합을 위한 제안, 또는 국민의 마음을 보듬는 제안이나 대통령에게 주는 충고 같은 것 말이다. 사실 현재 야당 지도부는 당장 대여 투쟁에 나선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문 의원이 그런 빈 구석을 채우면서 야권의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 사실 문 의원의 최근 행보에 대해 논란이 있긴 하다. 잘 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반면 조급해 하다가 내린 패착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문의원의 조급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잘 모르겠다. 사실 본인은 조급하다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1년 동안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왔고 이제는 정치인으로서 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야당이 너무 지리멸렬해서 그런 게 아니겠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당사자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나는 조급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문 의원이 발언 할 때 하더라도 생각의 궤적이나 차원을 좀 다르게 가져갔으면 한다. 나는 문재인 의원이 현재 여야 대립 구도의 당사자의 위치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한다. 본인을 위해서도. 극한 대결 구도에서 한 발 떨어지는 게 더 큰 지도자 문재인을 만드는 길 아닌가."

"안철수, 원래는 보수 정당으로 가야 할 사람"

- 방금 안 의원에 대해서는 두 달 전 보다 점수를 더 줘야 한다고 했지만 안 의원이 신당 창당을 본격화 하면서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정당 지지도에서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을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압도하고 있긴 한데 새정치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인물들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다소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새 정치와도 거리가 있어보이는 기성 정치인들 위주로 신당이 만들어질 경우 결국 세력 확대도 못하고 야권 분열만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다.

"일단 민주당과의 경쟁 관계는 불가피하다. 안철수 신당이 지방선거 전에 형성되고 바로 지방 선거에 뛰어들지 아니면 과거 친박연대 같은 형태로 나갈지는 잘 모르지만 상당 기간 민주당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경쟁이 자신의 독자적 비전을 담은 깃발 없이 민주당 아닌 다른 사람들이 모여 민주당을 대체하는 식이 된다면 그건 찻잔 속 태풍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결국 내년 선거가 민주당에게 힘들 수도 있지만 길게 보면 안철수 신당이 야권 분열만 조장하고 새로운 걸 보여주지도 못한다면 오래 명맥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끼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제3정당의 수준이 아니라, 양당이 담아내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정신, 비전, 그리고 그걸 구체화 시킨 정책을 가지고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진다면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모두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거꾸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자기 혁신의 강한 요구에 직면하게 될 거고 그 압박으로 인해 정치가 한 번 더 탈바꿈 할 가능성도 있다."

- 새누리당이 압박 느끼기 이전에 민주당이 먼저 타격을 받든 무너지든 하지 않겠나. 장기적으로 정치가 발전하더라도 당장 민주당에 타격이 먼저 가지 않겠나.

"그렇다. 순서로 따진다면. 그런데 내 설명의 핵심은 안철수 신당이 그냥 민주당을 대체하는 대체 세력으로 자기 위상을 자리매김한다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할 것이고 한국 정치의 발전에도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 그런데 문제는 대선 전 1년, 대선 후 1년, 이렇게 2년의 시간을 보내고도 아직도 자신의 정체성이나 이데올로기 하나도 구체화 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실력 부족 아닌가. 안철수 신당에게 희망을 갖기는 어렵지 않을까.

"안철수 의원이 본인 혼자의 역량으로 꾸리는 정당은 안 하겠다고 했으니까 추진위에 모인 분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집단적 노력까지는 지켜봐야 한다. 안 의원을 변호할 입장은 아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그야말로 초보 과정을 밟고 있는 건데 조금 더 시간을 보고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 안철수나 그의 측근들을 보면, 보수로 갔어야 했는데 당시 한나라당의 기득권이 워낙 강고하고 민주당은 헤매고 있으니까 진보로 자리를 잡으려다 지지부진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게 바로 한국 정치의 불행한 현주소다. 안철수는 명백히 누가 봐도 양심적 보수, 합리적 중도 보수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새누리당은 그걸 담아낼 수 없다. 지금의 새누리당에서는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보수 기대하기 힘들다. 한국 정치의 불행한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민주당도 문제다. 보수는 아닌데 진보라 할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근본적으로 정체성에서 차이가 크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상용될 수 있는, 정치를 같이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조합이다. 문제는 밖에서 바라보기에 또 안 의원이나 지지자들이 보기에 민주당 안에 들어가서 그 정당을 개혁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당을 만드는 쪽으로 가게 된 것 아닌가."

- 들어가도 결국 먹힐 것이다?

"그렇다. 어쨌든 결국 그렇게 봤을 때 안철수의 정체성이 진보 보다는 보수에 더 맞는 사람 아니냐는 그런 구분은 적절한 구분은 아닌 거 같다."

- 안 의원 측은 이달 초 있었던 장하나 의원의 대선 불복 발언과 양승조 의원의 대통령 시해 언급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동의하나?

"장하나 의원과 양승조 의원 발언은 똑 같은 발언은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장하나 발언엔 반대한다. 야당 지지자 중에는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대통령이 사퇴해야한다는 사람들이 당연히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라면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발언해야 한다.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대통령과 관련된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밝히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국가 기관이 개입했다는 사실만 가지고 현직 대통령에게까지 당장 사퇴하라는 것은, 지금의 사태를 잘 수습하는 것이기보다는 국론 분열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계가 조금 비약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걸 제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정말 우스운 것이다.

양승조 의원 발언은 박 대통령이 아버지처럼 시해를 당할 것처럼 발언했다 해서 반발하는 것인데 사실 양 의원은 굉장히 점잖은 사람이라 나도 궁금해서 전문을 구해 읽어봤다. 그런데 내용은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정치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독재 정치를 했는데 그 결과는 자기 칼에 자기가 맞아서 죽는 그런 불행한 모습이었으니 박근혜 대통령도 그 전철을 밟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이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앞세워서 과거의 중앙정보부 정치를 답습하고 여기에 의존하는 것은 사실 아닌가. 중앙정보부 정치의 결말이 암살이라는 게 아니라 결과가 불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고 지금이라도 상황을 제대로 통찰해서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대통령뿐이니까 대통령이 용단을 내리시라는 고언이다. 양 의원 발언에 저주에 해당할 내용은 없었다."

ⓒ인본사회연구소

"진보는 노무현을 '진보'로 오해했었다"

최근 영화 <변호인>에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면서 다시 한 번 노무현 전 대통령 회고 현상이 찾아온 듯하다. 그는 열정적 지지자가 가장 많은 대통령이었으면서도 결국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논쟁적 정치인이다.

그는 진보를 상징하는 인물이었지만 재임 중 진보와 껄끄러웠다. 좌회전 깜박이 켜고 계속 우회전 했다는 비판도 있었고 특히 시민 사회 쪽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사실 삼성 쪽 사람인 홍석현 중앙일보사 회장을 주미 대사뿐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에 앉히려고도 했고, 미국과의 관계 때문인지 이라크 파병을 결행했으며, 재벌에게도 뭔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진보로부터 심하게 비판 받았는데 급작스레 세상을 뜨고 나니 '아차' 하는 자책이 일기도 했다. 김 소장도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으로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


- 진보 진영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좀 심하지 않았나. 대통령이라면 기득권 집단이라고 해서 그들과 등을 돌릴 수도 없고 또 관료들에게 휘둘렸다고 하지만 누구라도 대통령이 되면 적어도 초반엔 다 겪게 되는 과정 아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서민을 먼저 생각했고 나 역시 그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애당초 아주 진보적인 그런 분은 아니지 않았나. 민주화 운동을 하고 노동자 투쟁에 동참했지만 본인의 스탠스는 시종일관 리버럴이거나 자유민주주의 신봉하는 자유주의자 아닐까. 미국식이라면 민주당 안에서도 중도파 정도?

1970~80년대 학생 운동이나 재야 운동 같이 했던 사람들, 특히 1987년 6월 항쟁 당시 국민운동본부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진보도 있었지만, 리버럴도 있었고, 마르크스주의자나 노동 운동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각기 다른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가치 하나를 가지고 싸웠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은 온건한 민주주의나 리버럴에 속했다. 온건 보수라 해도 될 것이다. 그걸 이해한다면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추진한 정책들도 다 설명이 된다.

사실 그분이 좌회전 깜박이 켠 것도 없다. 다만 정작 내놓는 정책보다 본인이 먼저 말씀을 격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입이나 보수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선정적 표현들 때문에 진보적, 급진적 정책을 내놓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나 싶다.

대통령의 발언과 그것을 실제로 정책으로 옮기는 작업은 별개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결과로 나타난 정책을 보면 급진적인 건 없고 오히려 강남 부자들이 "저 사람 한 번 더했으면 좋겠다…그런데 그걸 공개적으로 말을 할 수는 없어서 답답하다"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 아닌가."

- 김 소장은 정책 노선에서의 차이 때문에 노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도 그 분과 마음으로 화해를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부동산 정책이나 이라크 파병이나 FTA나 거의 대부분 논쟁 됐던 정책들 대부분은 기득권층이 좋아하는 정책이었다. 일부 정책에 있어서 본인이 전문 관료들에게 휘둘렸다고 했지만 그것 역시 근본적으로 그 분의 철학과 배치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시행했던 것들이다.

열린우리당 창당 초기 1, 2년은 대통령 공개 비판을 하지 않았다. 당시엔 대통령이 젊은 의원들과 청와대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 민생 챙기기 주문을 많이 했다. 양극화가 심해진다고도 했고 이 문제가 결국 노무현 정부 성적표와 직결된다고 경고도 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다른 말씀을 하셨다. 장관들로부터는 다른 이야기를 들었던 듯하다. 공무원 보고와 의원들 보고가 달랐다는 말이다. 초기엔 경제 부처 장관들 보고에 더 점수를 줬고 그게 2년쯤 걸렸다.

1년 반이 지나 정부와 당이 추락하는 걸 보고 이후 공개 비판을 했다. 안희정, 이광재 씨는 함께 하는 분위기였는데 당시 다른 청와대 참모들과는 잘 안 맞았다. 문재인 의원? 그분은 정치 쪽엔 별로 관여 안 하고 스스로 선을 그었다. 그런데 민정, 정무, 홍보 쪽에서 간섭이 심했다.

결국 사상 최초의 개혁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실패했다. 국민들이 대통령도 주고, 과반 의석도 줬는데 처참한 실패를 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장관들, 당 대표 지낸 사람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결국 나라도 책임을 지겠다고 차기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책도, 인터뷰도 보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그가 청와대 말년인 2007년부터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걸 알게 됐다. 내가 겪은 것과 똑같은 고통과 아픔 말이다. 사실 조문을 갔을 때도 반신반의 했는데 나중에 그의 기록들을 다 읽고는 마음으로 화해했다."

- 진보 쪽에서도 그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보는 경우가 아직도 꽤 있다.

"사실 본인 스스로도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대통령 됐다고 인정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특별히 더 준비됐겠나. 사실 노무현 정도면 상당히 준비가 된 대통령 축에 속할 것이다. 다만 사람들마다 기대가 다른 것이다. 당시 보수 등 다른 사람들은 별 기대 안 하는데, 급진 쪽에서 '저 사람은 우리 편이야' 하고 기대했다가 기대가 어긋나니까 배신감을 말하고 돌아서면서 격한 적대자가 됐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은 국가 정책을 위해서 내 생각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정치인일 뿐이다. 나는 이라크 파병은 그랬다고 본다. 노 대통령의 생각과는 명백히 다른 선택이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 한미 FTA에 대한 김 소장 생각은?

"FTA도 나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서 추진했겠지만 한미 FTA만 놓고 본다면 나는 그분과 생각이 다르다. 한미 FTA는 국가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망가지는 우리 사회 내부의 아픔과 상처가 더 크다. 그런 형태의 경쟁력 지상주의, 물신주의적 풍조가 만연하게 되면 사회가 더 힘들어진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은 더 확신한다. 다만 이라크 파병 경우는 저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똑같은 선택 했을 것이다.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2005년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제안했던 대연정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상상이다. 그러나 그걸 하려면 그야말로 여야 간에 지속적 물밑 대화를 거쳐 신뢰의 가교를 먼저 만들어 놓았어야 했다. 대통령이 직접 제안을 할 때는 그 바탕 위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니까 여당인 열린우리당 안에서도 공격 받고 야당한테도 꼼수 의심 받게 된 것이다. 걷어 차이고, 죽도 밥도 안 되고, 게도 구럭도 다 놓친 꼴 아니었나."

- 노 대통령은 통 크게 양보했는데 여, 야가 다 놀랐고 결국 양쪽으로부터 그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였다.

"나는 노무현의 진정성을 믿는다. 그만큼 진실되고 솔직한 정치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선의가 반드시 정당화 되는 것 아니다. 그 선의를 결과로 입증시켜야 한다. 그 동기가 선의였다 해서 박수를 받는 건 절대 아니다." (계속)

ⓒ인본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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