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개편 작업을 준비하며 예년보다 1주 일찍 송년호를 꾸렸습니다. 이번 송년호(170호)에서는 '프레시안 books'의 기자, 기획위원, 연재 필자 열두 명이 각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이야기합니다. 판매 순위나 화제성보다는 책과의 만남의 밀도, 이 사회에 던지는 화두를 중심으로 꼽은 '올해의 책'과 함께 2013년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프레시안 books' 다음 호는 사이트의 전면적인 디자인 개편 작업이 끝난 뒤 2014년 1월 3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됩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대부분의 시상식은 연말에 몰려 있다. 그렇기에 연초에 나온 작품들은 부득불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상대적으로 최근에 받은 감상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2013년 올해의 책을 꼽기 전에 먼저 평균 이하인 내 기억력에 감사를 드려야겠다. 만약 내가 엊그제 읽은 책의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면 올해의 책을 꼽기 위해 지난 독서 목록을 뒤지는 일은 없었을 거고, 그랬다면 올해 첫 책으로 읽은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 -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시대의창 펴냄)을 떠올리지 못했을 거다. 휴, 다행이지 정말.
▲ <인간의 조건>(한승태 지음, 시대의창 펴냄). ⓒ시대의창 |
판권 면을 펼쳐 출간일을 확인한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2013년 1월 3일.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물론 그런 경우는 별로 많지 않지만, 책은 2012년 연말에 나온 게 맞다. 신문 기사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다. 일간지 기사가 12월 마지막 주, 주간지에는 1월 첫째 주에 실렸다. 출간 이전에 미리 기사가 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하는 유명 작가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따라서 나는 출간일을 늦추어 기재한 출판사의 선경지명에 감사드리는 바다). 물론 한승태는 그런 작가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한승태가 그런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무척 속상하다.
<인간의 조건>은 저자가 꽃게잡이 배에서부터 서울의 주유소와 편의점, 아산의 돼지농장, 춘천의 비닐하우스, 당진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 이르기까지 몸소 체험한 다양한 직업의 현장을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고 '체험, 삶의 현장' 같은 프로그램을 떠올려서는 곤란하다. 그는 단순히 경험을 위해, 혹은 문학 수업의 일환으로 그 일자리들을 전전한 게 아니다. 단지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이 필요했을 뿐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그리고 틈틈이 글을 썼다. 몇몇 훌륭한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어쩔 수 없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을 굴러먹던 조지 오웰(<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신창용 옮김, 삼우반 펴냄))과 미국 전역을 떠돌며 온갖 잡일을 섭렵했던 찰스 부코스키(<팩토텀>(석기용 옮김, 문학동네 펴냄))의 삶을 떠올렸다.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한승태 역시 그들을 좋아한다. 책날개만 봐도 알 수 있다.
"전국을 떠돌며 닥치는 대로 일했고 일하는 틈틈이 영원히 출판되지 못할 게 분명한 시와 소설 들을 썼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고시원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동안 겪어본 직업이 꽤 여러 가지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1차·2차·3차 산업, 더 세밀하게는 농업, 어업, 축산업, 제조업, 서비스업계에서 모두 일해 본다면 그때는 책을 한 권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했다." (작가 소개 중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훌륭하다. 우체국을 그만둔 후 <우체국>(박현주 옮김, 열린책들 펴냄)이라는 제목의 장편 데뷔작을 쓴 부코스키 또한 언젠가 그렇게 했다.
"아침이 되자 아침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마 소설을 쓸 것 같군,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우체국> 241쪽)
▲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삼우반 펴냄). ⓒ삼우반 |
나는 지금 한승태가 조지 오웰이나 찰스 부코스키처럼 위대한 작가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들이 이루어낸 성취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을 뿐이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노동에도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출간 직후 한 신문과 가졌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의 말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부자가 됐으면 합니다. 부자가 돼 하고 싶은 일하며 사는 것인데 제게는 글 쓰는 일이 되겠지요. 생계비 걱정 않고 글 쓰는 것이 제 꿈입니다." 이어 전업 작가로 살려면 한 달에 얼마 정도가 필요하냐고 묻는 질문에는 이런 산수를 내민다.
"한 달에 80만~90만 원 정도. 또 그런 게 죽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쉽지는 않지요. (책에 나오는) 고시원 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임시로 가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는 공간이고요. 싼 데를 찾아보면 한 달에 방세 30만~35만 원, 식비는 30만 원, 이것도 처음엔 아껴서 먹어요. 하루에(한 끼가 아니다!) 7000원 정도씩 먹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확 먹어버려서 대중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아껴도 한 30만 원 들어요. 여기에 공과금 전화세 교통비 등 합쳐 그 정도만 있으면 글만 쓰며 살 수 있지요." (<서울신문> 2012년 12월 29일, '[저자와 차 한 잔] '인간의 조건' 쓴 한승태씨')
내가 만약 부자라면 그에게 매달 돈 백만 원쯤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나 역시 생계가 가능한 최소한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납품하는 글쟁이일 뿐이다. 그러니 당신은 이 글 또한 올해의 책을 핑계로 "가난한 작가들의 생계를 보장하라"고 징징대는 투정(물론 당신의 생각도 옳다. 가난한 건 작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의 일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라.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건, 나는 다만 <인간의 조건>이 지금보다는 더 많은 관심을 받을만한 책이라는 사실을 몇몇 이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 책이 올해 나온 어떤 책들보다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가치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그렇다는 사실에 내 한 달치 원고료를 걸 수도 있다. 물론 당신은 그 정도 금액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세상이 이따위인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우리를 쓸모없는 놈들이라며 손가락질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의지의 결핍이 아니라 희망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 삶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말이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체스 게임에서 감지할 수 있다. 체스의 졸은 한 번에 한 칸씩 전진하는 것밖에 못하는 절름발이 말이지만, 그런 졸이라 해도 상대편 진영 끝에 도달하게 되면 여왕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남의 돈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선 졸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평생 졸에 머무르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 나는 조금 두려워진다." (447쪽)
나 역시 그의 두려움에 공감한다. 동시에 그가 8~90만 원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느라 다음 책을 쓰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다. 독자는 이렇게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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