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개편 작업을 준비하며 예년보다 1주 일찍 송년호를 꾸렸습니다. 이번 송년호(170호)에서는 '프레시안 books'의 기자, 기획위원, 연재 필자 열두 명이 각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이야기합니다. 판매 순위나 화제성보다는 책과의 만남의 밀도, 이 사회에 던지는 화두를 중심으로 꼽은 '올해의 책'과 함께 2013년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프레시안 books' 다음 호는 사이트의 전면적인 디자인 개편 작업이 끝난 뒤 2014년 1월 3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됩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일 년 넘게 도서관에서 편지를 쓰면서도 정작 그걸 읽어주는 독자 분들에게는 소식을 전하지 못한 채 연재가 끝나 꺼림칙했는데 마침 편집자로부터 올해의 책을 하나 꼽아달라는 청을 받았습니다. 한 달에 대여섯 권이 고작인 독서량으로 올해 나온 그 많은 양서들 중에서 한 권을 고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선뜻 그러마고 했습니다. 이참에 독자들에게 못다 한 인사도 전하고 제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도 하고 싶어서입니다.
▲ <디어 라이프>(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솔직히 노벨상 발표 전까지 저는 앨리스 먼로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녀의 책이 세 권이나 번역되어 있는 줄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나 헤르타 뮐러도 그랬지만 이럴 때마다 노벨상에 새삼 감사하게 됩니다. 아무튼 수상 소식을 듣고 2007년에 나온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서정은 옮김, 뿔 펴냄)을 시작으로, <떠남>(김명주 옮김, 따뜻한손 펴냄, 2006)*과 <행복한 그림자의 춤>(곽명단 옮김, 뿔 펴냄, 2010)을 이어 읽었습니다. 도서관에 반납이 되는 순서대로 읽다보니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나중에 읽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다행이다 싶습니다. 먼로가 20대부터 15년간 쓴 단편들을 모은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먼저 읽었다면, 후기의 성취를 예고하는 몇몇 빼어난 작품들에도 불구하고, 글을 잘 쓴다는 감탄을 넘어 그녀의 책을 빌려 읽고 다시 사서 읽을 만큼 흠뻑 빠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번역자의 특성이 두드러진 문장도 그 한 요소였지요.)
(*2004년에 나온
▲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뿔 펴냄). ⓒ뿔 |
하지만 이 책에 이어 먼로가 일흔셋에 내놓은 <떠남>과 여든이 넘어 출간한 <디어 라이프>를 읽고서 노년에 대한 제 시선이 얼마나 상투적인지 깨달았습니다. 하긴 저만 그런 것도 아닌 것이, 마흔이 넘은 나이에 글을 쓰겠다니까 어떤 유명한 작가가 제게 그러더군요. 나이가 들면 상상력도 무뎌지고 좋은 작품을 쓰기 힘드니 그만두라고. 그 충고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늘 마음 한편에 그 말이 남아 제 자신에 대한 의심이 커질 때마다 되새기곤 했는데 앨리스 먼로를 보면서 알았습니다. 문제는 늙은 나이가 아니라 그런 것에 연연하는 낡은 시선이라는 것을.
먼로의 작품들을 죽 읽으면서 제일 놀란 것은 작가의 깊고 날카로운 시선입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배경도 인물도 사건도 평범하고 일상적입니다. 대부분 작은 타운에 사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다루거니와 다루는 방식도 극적인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가출, 불륜, 배반, 죽음 같은 사건이 일어나긴 하지만 감정의 격동이나 극적인 변화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신 먼로는 아주 작은 움직임, 사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그런 일들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사촌누이 앨프리다와의 추억을 술회한 '어머니의 가구'(<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수록)에는, 고향을 등진 화자가 마지못해 앨프리다를 방문한 뒤 거짓 약속을 핑계 대고 서둘러 떠나는 대목이 나옵니다. 헤어지기 직전 앨프리다는 낡은 벌꿀 병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저 벌꿀 병 좀 봐라. 네 아빠랑 나는 저거랑 똑같은 병에 점심을 담아 들고 다녔어."
"나도 그랬어요." 내가 대답했다.
"너도?" 그녀가 나를 움켜잡았다. "가족들한테 안부 전해줘, 그렇게 해줄 거지?"
늘 그렇듯 먼로는 여기에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습니다.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면서 소설을 다 읽었습니다. 처음엔 모든 게 부옇습니다. 책장을 다시 넘겨보고 곰곰 되새겨보고, 그러다 문득 고개를 끄덕입니다. 화자처럼 자신의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났던 앨프리다의 뒤늦은 회한과 그런 그녀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아직 젊은 '나'의 반감이 이 작은 사건에 담겨 있음을 깨닫습니다. 똑같이 꿀 병을 도시락 삼아 들고 다녔던 추레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앨프리다는 동질감을 느끼지만, 나는 잊고 싶은 기억을 상기시키는 그녀가 불편할 뿐입니다. 그렇게 젊은 나는 떠나기를 바라고 늙어가는 앨프리다는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어긋남을 통해 작가는 삶에 대한 두 개의 갈망을, 익숙한 삶과 다른 삶, 머물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픈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을 보여줍니다.
먼로의 작품을 섭렵하던 이즈음 저 역시 회한과 갈망에 사로잡혀 둘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기에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녀가 소설에서 말해주길 바랐습니다. 먼로 자신이 젊은 시절 집을 떠난 뒤 아픈 어머니를 찾지도 않고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니 더욱 어떤 삶을 살아야 후회가 없는지 말해주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먼로는 어떤 답도 주지 않습니다. 그런 갈망이 부질없다고도 안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키고 달아나고 돌아오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담담히 보여줍니다. 그렇게 누군가는 귀향길 기차에서 뛰어내리고('기차'), 누군가는 아이의 손을 놓아버리며('일본에 가닿기를'), 누군가는 마지막 순간 남편 옆에 머물고('떠남'), 누군가는 부모를 등집니다('머지않아'). 허나 누구도 그 선택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삶이란 그런 것'이라 여기며 살아갈 뿐이지요.
▲ <떠남>(앨리스 먼로 지음, 김명주 옮김, 따뜻한손 펴냄). ⓒ따뜻한손 |
이상한 얘긴지 몰라도,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해피엔딩도 비극도 아닌 먼로의 소설이 제겐 오히려 힘이 되었지요. 투입-산출의 경제학, 인과응보의 도덕관이 진리인 듯 이야기되지만 최선을 다했다 해서 최선의 인생이 되는 것도 아니며 그릇된 선택을 했다 해서 삶이 돌이킬 수 없이 끝장나는 것도 아님을 이제는 압니다. 삶은 그 모든 빛과 그림자를 함께 걸머지고 가는 긴 행로일 뿐, 그러므로 햇살 같은 기쁨은 물론 어둔 죄의식도 오롯이 견뎌야 함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먼로는 '회상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자전적 단편 '디어 라이프'에서 병든 어머니를 외면했던 자신의 선택을 술회한 뒤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용서합니다. 살기 위해서.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을 견디기 위해서. 그리고 용서로도 씻을 수 없는 후회와 죄책감과 함께 살아갑니다.
먼로 덕분에 저는 제 자신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인연들에서 달아난 제 자신에 대해, 그들을 가슴 아프게 한 선택에 대해 오래도록, 아마 세월이 갈수록 더욱 회한에 사무치겠지요.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저라는 사람이고 그런 존재를 견뎌야 하는 것이 저이니 제가 저를 안고 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이 인생에 해피엔딩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먼로처럼 여든이 넘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면, 친애하는 인생이 그때는 나를 용서하리라 기대합니다.
혹시나 이 겨울이 유독 춥고 길어 견디기 힘든 독자가 계시다면 그 분에게 <디어 라이프>를 권합니다. 책장을 덮을 즈음엔 당신도 저처럼 이 겨울을, 겨울 같은 삶을 기꺼이 견딜 용기가 생길 겁니다.
당신의 건투를 빕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