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개편 작업을 준비하며 예년보다 1주 일찍 송년호를 꾸렸습니다. 이번 송년호(170호)에서는 '프레시안 books'의 기자, 기획위원, 연재 필자 열두 명이 각자가 꼽은 '올해의 책'을 이야기합니다. 판매 순위나 화제성보다는 책과의 만남의 밀도, 이 사회에 던지는 화두를 중심으로 꼽은 '올해의 책'과 함께 2013년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프레시안 books' 다음 호는 사이트의 전면적인 디자인 개편 작업이 끝난 뒤 2014년 1월 3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됩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나는 편견이 있다. 무릇 빼어난 시인은 뛰어난 시론이 있는 법이라는. 아마도 김수영 때문인 듯하다. 가끔 시보다 산문이 낫다고 비아냥거릴 정도였으니까. 학창시절, 헌책방에서 정현종이나 황동규 시론집을 구해 읽은 것도 이런 편견을 강화한 듯싶다. 문학과 예술을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이 있는 이들이 역시 시를 잘 쓰게 마련이라는.
문인들이 쓴 산문집은 많다. 그 가운데 인구에 회자하는 책도 있다. 물론, 그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자신의 본령에서 평가받는 게 원칙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렇다고 시비 걸 일은 아니다. 단지 선배 문인들처럼 문학과 예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담은 글을 보기 어렵다는 것은 아쉽다. 재주꾼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감동하며 그의 문학세계의 이면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 <그을린 예술>(심보선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
내가 먼저 인상 깊게 읽은 글은 '1987년 이후 스노비즘의 계보학'이다. 투덜대며 읽었다. 속물이라 하면 되지 굳이 스노비즘이라 할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 싶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문제의식에 동의했다. 예술을 놓고 볼 적에 우리는 짐승의 상황으로 몰리거나 속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신자유주의적 상황은 인간을 한낱 일벌레로 전락시키고 있다. 생존이 목적이 되는 삶을 겨우 지탱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셈이다.
이 횡포에 맞서 싸워야 한다. 예술을 감상하고 창작할 수 있는 삶의 여지를 되찾아야 한다. 그러니, 지금 문학과 예술을 말한다는 것은, 비록 당랑거철의 어리석음일지라도 체제에 대한 저항일 수밖에 없다. 만약 문학과 예술을 창작하고 수용하는 수준 높은 삶을 살고 있다면 한낱 속물적 근성으로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보아야 한다. 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더 나은 세계를 꿈꾸게 하는 예술이 아니라, 단지 교양과 경제적 수준을 과시하는 예술이라면 이는 한낱 속물일 수밖에 없다.
''천사'에서 '무식한 시인'으로' 역시 인상 깊은 글이었다. 이 글에서 심보선은 김현이 말한 문학관을 '천사-되기'로 명명하며 비판한다. 그러면서 진은영이 말한 '지게꾼-되기'에 동의하며 자신의 문학관을 피력한다. 이름 하여 '딴 사람-되기'. 나는 이 말이야말로 심보선 예술론이 보이는 독자적 위상이라 여긴다. 이미 제도권에서 인정한 문인이라도 자본 질서에 순응하는 작품을 쓴다면 그것은 딴사람-되기에 실패한 것이다. 거꾸로 촌부라도 자신을 지배하는 그 무엇에 저항하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를 언어화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된다. 심보선 예술론이 지극히 민주적인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 심보선 시인.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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