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F-1 브로커, 전남의 미래를 거덜 내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F-1 브로커, 전남의 미래를 거덜 내다

[정희준의 '어퍼컷'] 박준영 도지사의 '귀태 이벤트'

지난 5일 박준영 전라남도지사는 전라남도가 지난 4년간 개최한 자동차 경주 대회 포뮬라 원(F-1) 그랑프리의 2015년 대회의 개최 포기를 공식화하며 도민들에게 사과했다. F-1 때문에 쌓인 빚만 1900억 원이 넘는 상태인 데다 F-1 측에 매년 지불해야 할 개최권료 4400만 달러(460억 원)를 올해 2700만 달러로 깎은 데 이어 내년엔 2000만 달러로 또 깎으려다 결국 협상이 결렬되자 대회 개최를 포기한 것이다.

전남은 F-1을 유치하면서 '꿈의 질주'라고 포장해 전남은 물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엄청난 부를 창출할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결국 1조 원 넘는 천문학적 재정을 투입하고도 빚더미만 남긴 채 4년 만에 주저앉은 것이다. 전남도민에게 F-1은 꿈의 질주가 아니라 '악몽'이자 '적자 질주'였던 셈이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이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전라남도가 F-1, 그리고 F-1 측 브로커에게 농락당한 것이다.

브로커에 놀아난 전라남도

전남의 F-1 사업은 기획 단계부터 문제가 많았다. 지방 정부와 투기 자본이 손을 잡아 자동차 경주를 매개로 관광지를 개발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무모함에 대해 지역 방송사가 <위험한 질주 F-1>이라는 특집 방송을 편성하기도 했다. 하도 할 얘기가 많아 2부까지 만들만큼 문제투성이였지만 전남도는 무시하고 밀어붙였다.

당시 전남과 손잡았던 F-1 프로모터로부터 마침 지인이 투자를 제안 받았는데 사업 계획서를 검토하고 현지에 내려가 보기도 했지만 결국 투자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리스크가 너무 커서 포기했어?"라는 질문에 그 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리스크가 크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거 아예 말이 안 되는 사업이야."

그는 우리나라에서 F-1에 적합한 위치는 영종도 쪽 외엔 없다고 하면서 전남이 강행할 경우 수익 창출은 고사하고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만 메워야 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업성이 있으면 우리나라 대기업이 투자를 왜 안 하겠어"라고 덧붙인다. 그럼 돈은 누가 벌까? F-1과 F-1의 대리인, 즉 브로커만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연합뉴스

도지사는 책임 져야

F-1 사업은 박준영 도지사가 전라남도를 담보로 도박을 벌인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 어마어마한 사업을 벌이려면 다양한 전문가로부터 의견을 구하고 이중삼중의 검증을 해야 하는데 전남은 브로커 이야기만 들은 듯하다. 원래 사기꾼 말이 그럴 듯한 법 아닌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출이라는 게 인건비나 이미 계획된 사회기반시설 투자 비용을 제외하면 새로운 프로젝트에 쓸 예산은 몇 천억 원 될까 말까 한다. 예를 들어 연 예산이 20조 원에 이르는 서울시도 새로운 사업에 쓸 수 있는 돈은 5000억 남짓이라 하지 않는가. 그런데 1년 총예산이 5조 원 조금 넘는 전남이 F-1 사업에 1조 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하고 경기장 공사비는 아직 다 갚지도 못했는데 누적 적자가 2000억 원에 달한다면 전남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고도 무모한 사업을 저지른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전남은 사업 아이템을 잘못 잡았다. F-1이 한국에서 흑자를 보려면 그 전제 조건은 한국인들의 취향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아직 자동차 경주에 대한 취향을 가지지 못했다. 취향이 없으면 한국의 자동차 회사가 팀을 만들어 출전시키든지 아니면 한국인 드라이버라도 등장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특히 전남 영암 허허벌판에 교통도 불편하고 인근에 제대로 된 숙박 시설도 없는 곳에서 하루 티켓 값이 70~80만 원까지 하는 비싼 이벤트에 누가 가겠는가. 게다가 4회째 대회를 치른 올해 대회에서도 관중 동원에 애를 먹어 전라남도 공무원에게 티켓을 강매하는 바람에 경기장 인근 구멍가게엔 헐값 티켓이 땡처리 식으로 팔리기까지 했다.

지역 언론은 그동안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던 박준영 지사가 3선 임기 막바지에 다다른 이제야 포기하는 것을 보고 발을 빼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다음 지방 선거에 나오지 않는 박 지사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적자투성이 이벤트와 함께 자신의 임기를 마무리 하지 않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렇다면 전남은 F-1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사업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업이다. F-1은 차기 도지사가 혹 3선을 해서 12년 동안 매달리더라도 흑자를 보고 임기를 마치기 힘든 사업이다. 아울러 전라남도가 이 대회 때문에 매년 엄청난 행정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행정 손실까지 막심한, 한 마디로 '귀태 이벤트'였던 것이다.

'귀태 이벤트,' F-1

전남도민에게 재정적 치명상을 안긴 F-1 내년 대회는 포기하면서도 2015년 대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3500억 원짜리 경기장 공사비도 아직 지불하지 못했지만 이들은 특히 자동차 산업 발전이나 국제적 신인도와 이미지 추락을 이유로 내세운다. 그러나 지금도 대회 개최를 뻔뻔스럽게 주장하는 자들은 F-1이 계속되어야만 자기가 생존할 수 있는 이익집단 당사자들이 대부분이다. 비유하자면 가해자의 논리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되겠다.

우선 국제적 신인도. 혹자는 F-1을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비유하며 대회 개최에 따른 유무형 효과가 엄청나고 개최 포기는 국제적 망신이라고 강변하는데 이런 걸 두고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한다. F-1은 세계 각지에서 올해에만 19차례 열렸는데 이걸 어떻게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 월드컵에 비하겠는가. 그리고 올림픽 개최지도 얼마 지나면 까먹는다. F-1 개최지 기억하는 외국사람 별로 없다.

설사 대회 반납이나 포기를 해도 아무 일 없다. 미국의 덴버는 천신만고 끝에 따낸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했지만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고 한국도 박정희 시절 아시안게임 유치했다가 벌금까지 내고 반납했지만 별 일 있었다는 이야기 못 들어봤다. 기업이 구조 조정하면 주가가 오르듯 전남도 이런 티켓 강매, 적자투성이 행사를 정리하면 신인도가 오히려 올라갈 것이다.

자동차 산업 발전도 번지수 잘못 짚은 거다. F-1이 국내 자동차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게 없지야 않겠지만 이는 매우 제한적이다. 바퀴가 완전히 드러나고 운전석도 1인승인 F-1은 페라리, 맥라렌, 메르세데스 등 이른바 '수퍼카' 생산 업체들이 참여한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목표로 하는 상용차 생산과는 지향점이 다르다. 그래서 얼마 전 일본의 혼다도 F-1에서 철수한 것이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최대 생산국은 미국인데 미국에서는 상용차를 개조해서 경주하는 NASCAR 대회가 대세를 이룬다.

우리는 반성할 게 없나?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다. 외모는 번지르르 한데 실속은 없다는 뜻이다. F-1은 실속이 없는 정도가 아니고 날강도, 사기꾼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대회를 유치하자 환영했다. 정작 주민들에게는 좋을 것도 없고 빚더미만 안길 행사였는데도 말이다.

다가올 평창 올림픽, 인천 아시안게임, 광주 유니버시아드 다 마찬가지다. 특히 강원도의 경우 올림픽으로 인한 재정 적자 때문에 앞으로 어떤 도지사가 등장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미친 듯 이벤트를 유치하다가 광주에서는 유치위원회가 국무총리의 서명을 위조해서 부시장까지 지낸 조직위 사무총장이 구속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미쳐 돌아갈까. 우리가 그런 빛 좋은 개살구들에 열광하고 그런 '귀태 이벤트'를 유치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을 (그것도 능력이라고) 선거에서 뽑아줬기 때문이다. 우리의 실생활과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큰 빌딩 지어올리고, 빚내서 웅장한 청사나 공연장 짓고, 국제 행사 벌여서 외국인들이 다녀야 시장님, 도지사님이 뭔가 하시는구나~ 하지 않았던가.

반대로 주민들의 행복이나 삶의 질과는 상관없는 빚덩이 프로젝트를 축소하거나 중단하면 무능한 지도자로 여기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바꿔야 한다. F-1이든 다른 스포츠이벤트든 백지화하는 지도자일수록 오히려 현명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지도자가 진정으로 주민을 먼저 생각하고 또 용기 있는 지도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원래 행정에 대박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이제 지방 행정에서 대박을 꿈꾸다 보니 도지사와 브로커가 만나게 되고 그 결과 지자체는 쪽박 차게 생겼다. F-1은 도지사가 전라남도를 담보로 도박판을 벌인 것이다. 그것도 자기 돈이었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을 남의 돈(세금) 가지고 질러버린 것이다. 결국 전라남도는 F-1과 브로커에게 농락당한 것이다. 재주는 열심히 넘었는데 고생해 번 돈은 다 뺏긴 것이다.

그런 도지사님을 그렇게 그냥 고이 보내드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