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할부로 지른 '구스다운', 나의 '패딩적 미래'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할부로 지른 '구스다운', 나의 '패딩적 미래'는…

[금정연의 '요설']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광인일기'

황당한 소설들의 계보, '요설' 지난 글들 모아 보기

11월 25일
지난 원고의 마지막을 너무 섣부르게 마무리한 것 같다. 특히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감히) 비틀어, "우리 모두는 고골의 콧구멍에서 나왔다"고 시부렁거린 부분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내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했을까? 찝찝한 게 마치 코를 풀다 코딱지가 입술에 묻은 기분이다. 그것도 모른 채 하루 종일 거리를 싸돌아다니다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기분이다.

11월 27일
아무래도 그 글이 <외투>파를 자극한 모양이다. 누군가 내게 메일을 보내 <외투>의 진가도 알아보지 못하는 너 같은 놈은 코딱지나 다름없다고 했다. 물론 <코>파의 지원은 없었다. 내가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일이 <코>파와 <외투>파의 해묵은 논쟁을 다시 불붙게 하는 것은 내가 가장 원하지 않는 일 중의 하나다. 어차피 똑같은 놈들이다. <죽은 혼>은 너무 길어서 읽지 않고, <검찰관>은 희곡 형식이라 읽지 않는다는 멍청한 놈들일 뿐이다.

11월 28일
코딱지라니. 그거야말로 우리 모두가 콧구멍에서 나왔다는 이야기 아닌가? 적어도 나는. 물론 그게 누구 콧구멍인가는 여전히 논쟁의 소지가 있긴 하겠지만(어쩌면 신은 거대한 콧구멍이 아닐까?) 그나저나 자꾸만 콧물이 나온다. 인중이 쓰리다. 날씨 탓이다. 외투를 장만해야 한다.

12월 1일
겨울 외투를 구경하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다. 형형색색의 패딩들이 늘어선 진열대를 보고 있자니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하나를 골라서 입어보았다. 점원이 조용히 웃으며 내게 옷을 입혀주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너무 가볍고 포근해서 그 자리에서 스르륵 잠들 뻔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 말은, 그런 곳에서 잠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런 가격표를 보고도 태연히 잠들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돈을 주고 옷을 사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때야 나는 점원의 옅은 웃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네가?'라는 웃음이었다.
나는 점원을 향해 크게 콧방귀를 뀌어주고 백화점을 나섰다. 바람이 찼다.

12월 2일
잠이 오지 않는다. 외투 때문이다. 어제 입었던 패딩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눈을 감고 천천히 양을 세어 보았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이 작은 무리를 이루자 어디선가 양치는 소년이 나타나 양털을 깎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외투를 만들었다. 하얀색 패딩이었다. 잠깐만, 어제 내가 입어 본 건 '구스 다운'이었는데? 아무려나, 양털로 만든 패딩 또한 너무나 포근해 보여서 나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그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백화점에 가서 한 번 물어봐야겠다. 양털로 만든 패딩은 없냐고. 사실 '구스 다운'만 있으면 양털 따위 없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냥 호기심이다.

12월 3일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눈을 감으면 자꾸 거위와 오리와 양과 너구리와 여우와 곰과 알파카와 그 밖의 털과 가죽을 가진 동물들이라면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들까지 등장하는 바람에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동물의 똥으로 가득한 것처럼 무거웠다. 그걸 치우려면 여러 명의 사육사가 필요할 거 같았다. 하지만 내게는 사육사를 고용할 돈이 없었고,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지인들의 SNS를 구경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너나없이 패딩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패딩을 지르고 지르고 지르고 질렀다. 왜 나는 지금까지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거지? 누나 가슴에 삼천 원쯤은 있는 것처럼, 누구나 옷장에 '구스 다운' 하나쯤은 있는 모양이었다. 나만 빼놓고?

나는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패딩을 검색해보았다. 백화점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색상도, 디자인도,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콧물이 흘렀지만 닦는 것도 잊었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나를 언제나 겁먹게 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디자인은 대동소이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검색 결과, 많은 업체들이 유명한 브랜드의 디자인을 도용하고 있다고 했다. 마침 그건 내가 백화점에서 입어본 바로 그 옷이었다). 휴, 다행이다. 그렇다면 선택의 폭을 현저히 좁힐 수 있는 것이다. 색상이야 선호하는 색상이 있으니('고독한 남자의 그레이', '남자라면 네이비' 그리고 '진짜 사나이라면 카키') 문제는 가격이었다. 십만 원대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차이가 났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하나하나 꼼꼼히 비교하다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그건 정말이지 넓고도 깊은 세상이었고, 나는 하룻밤 사이 전문가가 된 것 같아 어쩐지 뿌듯했다. 콧물은 멈추지 않았다.

ⓒ뉴발란스

12월 4일
밤을 꼬박 샌 것으로 모자라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더니 눈알이 빠질 것 같다. <외투>파의 일원에게 새로운 메일이 왔다. 정말로 시급한 문학적 문제는 단 하나, 바로 외투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메일이었다. 알베르 카뮈라니, 도대체 이놈들의 독서는 어디에서 멈춘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물어보지 않아도 뻔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법 격식을 갖춘 것처럼 시작한 메일은 이내 유치한 비방이 되었다. "코 풀다 콧구멍이 헐어서 패혈증에 걸려 뒈질 놈"이라는 부분에서는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 잘못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코를 푼 후)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고 사과한 뒤, 이어 작금의 패딩적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과연 오리지널의 가치가 몇 배가 훌쩍 넘는 가격차를 상쇄할 정도로 의미 있느냐고도. 진심으로 궁금한 문제, 차라리 당면문제였기에 최대한 정중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놈에게 답장이 왔다. 사뭇 정중한 어조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사과한 뒤, 녀석은 각 패딩의 충전재와 '필파워'의 차이를 조목조목 비교해갔다. 보기보다 깊은 지식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사람은 글로만 봐서는 알 수 없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어떤 책을 읽느냐가 아닌 어떤 패딩을 입느냐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상세한 비교와 달리 결론은 단순했다. 단순해서 오히려 더욱 믿음이 가는 결론이었다. 역시 패딩이라면 캐나다 거위로 만든 오리지널을 입어야 한다는 것. 녀석은 이렇게 덧붙였다.

"P.S. 고골의 <외투>를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당신의 패딩적 고뇌를 해결해 줄 단 하나의 소설입니다."

12월 5일
▲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니콜라이 고골 지음, 조주관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그래서 그렇게 했다. 다시 읽은 고골의 <외투>는 과연 놀라운 영감으로 가득한 소설이었다. 눈이 아파 아직 절반밖에는 읽지 못하긴 했지만(여전히 한 숨도 자지 못한 탓이다), 그럼에도 당면한 나의 패딩적 현실에 대한 해법을 일러주었다. 잊기 전에 정리해둔다.

주인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불쌍한 양반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9급 관리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고골은 거장다운 필치로 그를 묘사한다.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 없고 키가 작은 그 관리는 약간 얽은 자국이 있는 불그스름한 얼굴에 눈에 띄게 시력이 안 좋았으며, 이마가 조금 벗겨지고, 양볼에 주름이 진 데다 치질 환자 같은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어쩌겠는가! 뻬쩨르부르그 기후 탓인 것을. 관등에 관한 한(우리나라에서는 우선 관등부터 밝혀야 한다) 그는 만년 9급 관리였다. 아시다시피 밟혀도 끽소리 한번 못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훌륭한 습성이 있는 온갖 종류의 작가들이 마음껏 놀려대고 마구 비꼬는 바로 그 9급이다. ('외투', <빼쩨르부르그 이야기>(조주관 옮김, 민음사 펴냄) 56쪽)

그가 언제 어떤 시기에 관청에 들어왔는지, 또 그를 관직에 앉힌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기억할 수 없었다. 부장과 국장이 수없이 갈리는 동안,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와 같은 직위에서 서기로사 겉은 업무를 되풀이하였다. 나중에는 그가 제복을 입고 이마가 벗겨진 모습을 한 채 9급 관리가 되기 위해 이미 완전한 준비를 하고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다들 믿게 되었다. 관청에서는 모두 그를 아무렇게나 대했다. (58쪽)

관청에서 그가 담당하는 업무는 문서를 정서하는 일이었다. 젊은 관리들이 그를 조롱하고, 일흔 살 먹은 주인집 노파하고 언제 결혼 하냐며 놀려대고, 눈이 내린다며 종이 부스러기를 그의 머리 위에 뿌리기도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누군가 그의 팔을 건드리며 일을 방해할 때에야, 그제서야 "날 좀 내버려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건 어쩐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 나는 다시금 콧물을 훔친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소시민이다. 세상은 왜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가? 그가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말단 9급 관리라서? 작고 볼품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이마가 벗겨진 가난뱅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그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뿐이었다면, 그는 반쯤은 체념하고 반쯤은 즐기며 남은 인생을 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서를) 쓸 만큼 다 쓰고 나면 '내일은 또 무엇을 정서해야 하나?'하고 미리 내일을 상상해 보며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400루블의 급료로 자신의 운명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한 인간의 평화로운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고 아마 또 그렇게 순조롭게 말년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9급이든, 3급이든, 7급이든, 또 어떤 공직자이든, 관청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이든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치는 삶의 길에 뿌려진 갖가지 큰 불행이 없었다면 말이다. (62쪽)

문제는 그가 입고 있는 외투였다. 악명 높은 뻬쩨르부르그의 북풍에서 그가 의지하는 낡고 얇은 외투가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하도 덧대고 기워서 모양까지 이상해진 볼품없는 그것을 동료들은 "외투라는 점잖은 이름 대신에 실내복이라고" 불렀다. 바로 그것이 그를 동료들 사이에서 만만한 남자로, 마음껏 놀리고 조롱해도 되는 존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외투적 현실이었다. 설상가상, 그것이 완전히 못 쓰게 되면서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고난이 시작된다. 망가진 외투적 현실. 다시 말해 '망함'. 놀란 그는 재봉사에게 달려가지만 주정뱅이 재봉사는 냉정한 외과의사의 시선으로 사형선고를 내린다.

"안 되겠는데요, 못 고치겠어요. 옷이 완전히 망가졌네요!"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그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왜 안 된다는 거야, 뻬뜨로비치?" 그의 목소리는 거의 떼쓰는 어린아이 같았다. "겨우 어깨가 좀 닳은 것뿐인데, 사실 덧댈 만한 천이 있지 않나……?"
"그래요, 천 같은 거야 뭐, 얼마든지 있지요, 하지만 꿰맬 수가 없어요. 너무 심하게 삭아서 바늘을 갖다 대면 찢어질걸요."
"찢어지면 어때, 또 즉시 기우면 되지."
"덧댈 수가 없어요. 받쳐주는 게 아니라 닳아버린 옷감을 더 잡아당길 테니까요. 말이 양복지지 바람만 불어보세요, 금방 갈가리 찢어질 텐데요."
"그래도, 어떻게 해보게. 정말, 이럴 수가 있나, 내 참……!"
뻬뜨로비치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손댈 수가 없어요. 완전히 엉망이에요. 이제 겨울 추위도 다가오고 할 테니 잘라서 각반이나 만들어 쓰는 게 나아요. 추울 땐 양말만으론 부족할 테니까." (67쪽)


재봉사는 그에게 이 기회에 새 외투를 장만하라고 말한다. 가격은 50루블짜리 석 장, 즉 150루블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잠이 달아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 또한 그런 남자인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콧물도 조금 흘렸을 것이다.

나는 초조했다. 이 가련한 남자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지, 아니,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꼭 나처럼 느껴…… 아니, 그건 아니다. 그냥 나는 그가 걱정되었을 뿐이다. 책을 읽는 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감능력, 그래, 공감능력이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주인공답게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그는 술주정뱅이 이웃에 대한 이해와 가계에 대한 산수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물론 뻬뜨로비치가 80루블을 받고도 일을 할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그 80루블은 대체 어디서 가져온단 말인가? (*중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에게는 평소에 잔돈을 모아두는 저금통이 있었고, 몇 년간 모아온 그 돈이 대략 40루블 정도 될 거라는 계산을 한다.) 절반은 이미 수중에 있으나, 나머지 반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40루블이나 되는 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적어도 1년간만이라도 생활비를 줄이기로 결심했다. 저녁마다 마시던 차도 끊고, 저녁에 촛불도 켜지 않고 꼭 필요할 때는 주인 여자 방에 있는 촛불을 사용하면 된다. 길에서는 되도록 살살 걸어 다니고, 돌과 석판을 밟을 때는 조심조심 발끝으로 걷다시피 하여 밑창이 빨리 닳지 않도록 주의하고, 속옷이 빨리 해지지 않도록 세탁부에게 맡기는 횟수를 줄이고, 집에 돌아와서는 속옷 대신 오래됐지만 아직 쓸 만한 목면 가운만 걸치고 살기로 했다. (72쪽)

아, 이 불행한 사람! 이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콧물은 킁킁 남몰래 삼킬 수 있지만 눈물은 도로 삼킬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도. 고작 새 외투를 사기 위해 1년 동안이나 그런 궁상을 떨어야 하다니,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놀라운 정신력을 발휘한다. 그야말로 정신의 승리다.

솔직히 말해 처음엔 그런 내핍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지더니 어느덧 순조롭게 되었다. 나중엔 저녁을 굶는 것이 완전히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그 대신에 미래의 외투에 대한 끝없는 이상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정신적인 포만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그 자신의 존재는 보다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한 것 같기도 하였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으며, 혼자가 아니라 일생을 함께하기로 한 마음에 맞는 유쾌한 삶의 동반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 동반자란 다름이 아니라 두꺼운 솜과 해지지 않는 튼튼한 안감을 댄 외투였던 것이다. 그는 웬일인지 생기가 돌았고, 이제 스스로 목표를 정한 사람처럼 성격이 보다 강인해졌다. 그의 얼굴과 행동에서 보이던 불안과 우유부단함이, 언제나 망설이기만 하던 불확실한 특징이 이제 사라졌다. 때때로 눈에서 불꽃이 보였고, 머릿속으로는 아주 뻔뻔스럽고 대담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 옷깃에다가 담비가죽을 달아보는 것은 어떨까? (73쪽)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는 그런 궁핍한 생활을 이겨냈고, 생각보다 빨리, 고작 6개월 만에, 생각보다 많이 들어온 보너스의 도움으로, 필요한 80루블을 모두 모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새 외투를 구입한다! 윤이 반지르르하고 몸에도 꼭 맞는 따뜻한 새 외투가 그에게도 생긴 것이다! 만세!

다음 날,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그는 마치 축제를 즐기듯 새 외투를 뽐내며 걸어갔다. 고골에 따르면 사실 새 외투가 좋은 이유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따뜻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관청에 도착하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동료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새 외투를 구경하며 따뜻하게 축하해줬다. 여전히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말단 9급 관리에 작고 볼품없는 외모와 이마까지 벗겨진 가난뱅이인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였지만, 새 외투를 구입함으로써 마침내 그들의 동료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들은 새 외투를 위해 기념 축배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까끼 아까끼예비치가 수줍게 거절하자 계장대리가 대신 나서 축하 파티를 열어주기로 했다. 바야흐로 새 외투와 함께 새 인생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여기까지 읽었다. 그리고 나는 <외투>파의 친절한 사내가 내게 하려던 말을 이해했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패딩을 바꿔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패딩을 사야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나의 결단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게는 돈이 없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처럼 청승을 떨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걱정 없다. 내게는 신용카드가 있다. 12개월 할부로 결제하면 그만이다.

12월 6일
간만에 단잠을 잤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멋진 꿈도 꾸었던 것 같다. 간만에 생기가 돌았고 강인해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집을 나섰다. 바람이 찼지만 그건 나를 오히려 더욱 들뜨게 했다. 웬일인지 콧물도 흐르지 않았다.

백화점에는 예의 점원이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일전에 입었던 그것을 다시 한 번 입혀주었다. 똑같은 미소와 함께. 하지만 이제 내게 그의 미소는 더없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의 친절한 도움으로 패딩을 입으며 왈칵, 눈물이 터질 뻔했다. 며칠 동안 내가 그리던 패딩적 이상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여전히 포근하며 따뜻했으며,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가벼워 마치 정말로 하늘을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비유적 의미에서의 비행이라면 실제로 가능할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외투>의 교훈이었다.

지체할 것 없다. 나는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결제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가 물었다. "12개월로 해주세요." 내가 말했다. "보너스라도 받는다면 6개월로 끊어도 되겠지만, 제가 프리랜서라서." 그러자 그가 예의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손님은 분명 <외투>를 읽으셨겠네요. 그렇죠?"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며 그렇다고 했다. 그는 내게 패딩이 든 쇼핑백을 건네며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손님, 혹시 그 결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는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명색이 서평가인데 끝까지 읽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12월 6일 (2)
참지 못하고 지하철 화장실에 들러 패딩을 입었다.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패딩적 현실을 느끼고 싶었다. 과연, 고골이 옳았다. 새로운 패딩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하나는 더럽게 따뜻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럽게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는 땀이 났지만 벗지 않았다. 앞으로는 사우나를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12월 6일 (3)
집에 돌아오자마자 SNS에 '착샷'을 올렸다. 친구들의 축하 멘션에 일일이 답을 해주다보니 어느덧 밤이 깊었다. 내일은 '요설' 마감이 있는 날이라 일찍 잠을 자야만 했다. 하지만 좀처럼 잠은 오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불을 켜고 <외투>를 마저 읽었다. 그런데 잠깐, 뭔가 이상하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결말이 아니었다. 나는 이런 걸 기대한 게 아니었는데……. 잠깐 생각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12월 7일, 마감 당일
밤새 <외투>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읽고 또 읽고 혹시라도 내가 잘 못 읽었나 싶어 다시 읽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앞에 새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새로운 외투적 현실과 함께, 보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조금 더 사교적이 되어 주말이면 함께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그러다 여자를 소개받아 결혼도 하고, 그런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었다고.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한 그날, 그러니까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축하 파티까지 열게 된 그날,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외투를 강탈당한다. 파티 장에서 늦게까지 머물다 집으로 돌아오던 그를 괴한이 덮쳤다. 그들은 무자비하게도 그에게서 외투를 빼앗아갔고, 그는 잠시 기절한 후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후두염에 걸렸다. 너무 낙담한 나머지 멍하니 입을 열고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죽어 유령이 된다. 밤마다 거리를 떠돌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는 불쌍한 유령이……. 그것이 그의 외투적 미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패딩적 미래는 무엇이란 말인가?

같은 날, 마감 시한을 얼마 남기지 않은 몇 시쯤
메일 알람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콧물이 흘러내려 하마터면 질식사해 죽을 뻔했다. 아니지.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나는 코를 세게 풀었다. 인중이 또 쓰렸다.

두 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하나는 프레시안 담당기자에게서. '^^'라는 이모티콘과 함께 원고를 언제 줄 것인지 묻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아니, 과연 시작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다른 메일은 <외투>파의 일원에게 온 것이었다. 그는 내게 옷은 마음에 드는지, 따뜻한지 묻더니 곧이어 물론 마음에 들고 따뜻하겠지 자답했다. 이놈은 미친놈인가? 그런데 이 녀석이 내가 새 패딩을 산 것을 어떻게 알지?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계속해서 메일을 읽었다. 녀석은 내가 12개월로 패딩을 구입한 것까지 알고 있었다. 녀석이 바로 백화점의 점원이었던 것이다! 녀석은 정중하게, 그러나 어딘가 조롱하는 투로, 메일을 마무리 지었다. 새로운 패딩적 현실에 적응하시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P.S. <외투>는 다시금 끝까지 읽어보셨나요? 부디 그러셨기를 바랍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몇 시인지도. 아직 마감은 넘기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시(時)
아까부터 전화기가 계속 울린다. 처음에는 카톡이, 다음에는 문자가, 그리고 다음에는 전화가 왔다. 보지 않아도 뻔하다. 마감을 묻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을 수 없다. 없고 말고. 새로운 나의 패딩적 현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나의 패딩적 미래는 어떤가? 그러니까 앞으로 12개월 동안, 할부금을 갚기 위해 내가 감내해야 하는 궁핍은 무엇인가? 앞으로 몇 개의 원고를 더 써야 하는가? 겨울은 고작 세 달 남짓일 뿐인데? 원고를 써야 할부금을 갚을 수 있는데, 당장 마감을 넘기지 못하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얼마나 많은 청탁과 원고가, 얼마나 많은 거위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마감과 사과가, 얼마나 많은 헛소리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거위가 필요할까?

알 수 없는 나는 패딩을 입는다. 따뜻하고 포근한 패딩 속에 숨어 이 모든 겨울과 마감과 기나긴 할부가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 끝 -

* 2013년의 마지막 요설을 기념하여 고골의 <광인일기> 형식을 빌려 <외투>를 패러디한 '픽션' 임을 밝힙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