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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에 코웃음? 뇌의 '원뿔'부터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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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에 코웃음? 뇌의 '원뿔'부터 열어라!

[김창규의 '기계 나비의 꿈'] 이언 뱅크스의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SF는 깔때기, 또는 원뿔에서 출발한다. 그 원뿔의 꼭짓점은 입자 하나에 맞닿아있고, 반대편은 평행우주를 훨씬 넘어서는 어딘가를 향해 열려있다. 그런 원뿔이 수십 수백 모여서 SF를 이룬다.

한편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SF의 '하'위장르가 있다. '하'라는 말이 조금 무색하게도 '스페이스 오페라는 시간/공간/물량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SF일 것이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원뿔의 부피가 가장 큰 SF일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플레바스를 생각하라>(이언 뱅크스 지음, 김민혜 옮김, 열린책들 펴냄)는 현대 스페이스 오페라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니만큼 부득이하게도 용어 설명을 잠깐 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영미권에서는 서부극을 '호스 오페라(Horse Opera)', 대중적인 라디오/TV 드라마를 '소프 오페라(Soap Opera)'라고도 부른다. 다소 경멸하는 어조가 깃든 표현이다.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표현도 태생을 보면 같은 맥락에서 출발했다. 무대를 우주로 옮기기는 했지만 결국 서부극이나 마찬가지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활극과 중심 인물의 활약상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SF, 스페이스 오페라는 우선 그런 뜻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쉽게 스페이스 오페라를 떠올려보려면 당장 <스타워즈> 시리즈를 감상하면 된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어디까지나 인물관계와 드라마성을 전달하는 데에 모든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다. 현란한 우주전과 광선검과 제다이와 시스와 거대한 우주선과 낯선 행성들은 시각적인 놀라움은 조금 줄 수 있을지 모르나 거기서 그치고 만다. <스타워즈>에 '오락물'이라는 딱지가 붙는 것도 그 때문이고, 예민한 SF 애호가 중에 <스타워즈>가 제대로 된 SF가 아니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타워즈>는 그토록 넓은 우주로 뻗어나간 인류가 어떤 역사를 거쳤는지, 사상과 문화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제대로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이미 익숙해져 있는 판타지식 설정과 과거 역사 속의 체제/조직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을 마구잡이로 가져다가 채우기에 급급하다. 물론 (<스타워즈> 팬의 입장에서) <스타워즈>가 '잘못'되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SF뿐 아니라 모든 창작물의 스펙트럼은 넓고 그렇게 넓다는 사실이 곧 창작물의 본질이기도 하니까.

▲ 스타워즈의 세계. ⓒnewsmoves.com

하지만 스페이스 오페라는 1차원적인 오락물로만 남기에는 너무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당장 달에 남아있는 인류의 족적만 가지고도 사람들은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는다. 구글에서 소행성을 자원 채취에 쓰는 미래 프로젝트에 투자한다는 뉴스가 나오자 그럴 돈이 있으면 굶고 있는 아이들에게 쓰는 게 백배 유용하다는 의견부터 2, 300년 후 우주 개발의 모습을 그려보는 상상도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니 인류가 수백 광년쯤은 우습게 오갈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그 세계와 그 안에 사는 인류 (또는 인류의 후손들)의 모습은 어떨 것이며 문화와 사고방식은 또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스페이스 오페라는 그처럼 원뿔의 부피를 막대하게 늘려줄 수 있는 SF 하위장르이다.

▲ <플레바스를 생각하라>(이언 M. 뱅크스 지음, 김민혜 옮김, 열린책들 펴냄). ⓒ열린책들
저울을 놓고 한쪽은 오락성, 다른 한쪽은 지적 유희라 눈금을 매긴다면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는 후자 쪽으로 기우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 작가 이언 M. 뱅크스의 <컬처Culture> 시리즈 가운데 도입부에 해당한다. '컬처'는 시리즈 이름인 동시에 작품 내에 등장하는 세력/세계의 명칭이다. 이 작품은 컬처와 이디란이라는, 이미 나름대로 광대한 우주의 일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두 세력이 충돌하는 전쟁을 배경으로 삼는다.

(오락성 스페이스 오페라와는 달리) 컬처와 이디란의 문화적이고 정서적인 특성을 간단하게 요약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조금 소개해보면, 우선 이디란 종족은 전투에 능한 전사에 가깝고 '신'과 유사한 개념을 믿는다. 반면에 컬처는 인류의 후손을 중심으로 출발해 다른 외계종까지 아우르는 집단이며,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은 물론 '마인드'라는 전자적 존재와 기계에게 삶과 사고와 판단의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플레바스를 생각하라>의 중심인물인 호르자는 두 세계의 영향권에서 떨어져있던 '체인저' 종족의 일원이다. 체인저 종족은 아주 오래 전 인위적으로 신체구조가 개조되어 원하는 대로 외모를 바꿀 수도 있고, 혈액과 타액의 성분까지 바꿀 수 있다. 주인공 호르자는 기계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디란을 돕고 있다. 그러다가 혼전 중에 군사적, 기술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빠져나간 어떤 '마인드'를 회수하라는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임무 상 신원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어려운 데다가 문제의 마인드가 숨어있는 곳 또한 쉽게 드나들기 어려운 장소인지라 호르자는 죽을 고생을 다하며 여행을 떠나고, 그 도중에 컬처와 이디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앞서 (굳이 표현하자면) '진지한' 스페이스 오페라가 가지는 가능성에 대해 치하를 했지만, 사실 이 작품은 무게감 있다고 알려진 고전 스페이스 오페라 작품들의 전형을 곳곳에서 따르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 가치 있는 정보가 외딴 곳으로 흘러가고 전쟁 중인 여러 세력이 그 뒤를 좇는다는 기본 구성이 그렇다. 스페이스 오페라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중심 인물이 모험을 떠나는 동기가 필요하며 그 동기가 '우주적인' 문제여야 어울리기 때문에 흔히 택하는 방식이다. 생활상이 천차만별인 여러 행성을 거쳐 여행한다는 설정도 전형적인데, 사실 이런 여행 설정은 전혀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SF적 특징 때문에 피해가기 어렵기도 하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 정도의 설명만 듣고도 판타지 모험담과 구조가 유사하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세계의 존망이나 그에 상응하는 목표, 주인공을 돕다가 희생되는 동료들, 다른 종족 사이에 미묘하게 싹트는 이해나 공감은 장편 판타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요소들이다. 그리고 이 유사점은 결국 신화와 설화의 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호르자의 종족인 '체인저'만 해도 변신 및 모방 설화와 거의 정확히 들어맞는다. 이런 점은 수 천, 수 만 년에 걸친 역사를 단행본 몇 권으로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스페이스 오페라라면 피하기 힘든 제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 작품은 주인공과 동료들의 운명뿐 아니라 작중 세계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당한다는 점에서 <스타워즈> 유의 스페이스 오페라와는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추상적이거나 현학적인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시작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수준이기도 하다. 발표 연도(1987)도 고려하는 게 공정하다. 최근에 발표된 스페이스 오페라의 걸작들은 장르 선배작들을 발판으로 삼아 더 획기적이고 독특하며 치밀한 우주를 그리고 있는데, 이런 작품들 중에는 SF 장르에 푹 젖어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몰입하기 힘든 것들도 적지 않다. 반면에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는 상대적으로 정보량이 적고 구조가 느슨해서, 활극을 넘어 또 다른 세계와 다른 인류를 개연성 있게 그리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입문작으로 적당하다 하겠다.

그리고 두개골 속과 지상에 갇혀있던 뇌가 상상력을 호흡할 수 있도록 바깥으로 열린 원뿔 모양의 환기구를 열어주는 장르가 바로 진짜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점을 깨닫기에도 좋은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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