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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인간'비의 계절… 삼시 세끼 한식만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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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인간'비의 계절… 삼시 세끼 한식만 먹고 싶다

[TV PLAY] 올리브 채널의 한식 서바이벌 프로그램 <한식대첩>

수업 시간에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한 게 자랑이라고 배우는 것도 이제 곧 사라질지 모르겠다. 해마다 봄과 가을은 짧아져만 가고 혹서와 혹한을 견디며 지내야 하는 날이 늘어가니 말이다. 하지만 이 짧은 가을에도 하늘은 높고 말이 아니라 내가 살찌는 사실만은 여전하다. 쌀쌀한 바람과 함께 찾아온 식욕 폭발을 더욱 부추기는 프로그램까지 있어 올해도 가을이 몸을 살찌운다.

최근 가장 즐겁게 보고 있는 방송은 올리브의 <한식대첩>이다. '국내 최초 한식 서바이벌, 8도의 맛을 겨루다'라는 캐치프레이즈대로,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전라, 경상, 제주 전국 8도의 지역을 대표하는 한식 고수들이 손맛을 겨루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요리 명인 심영순 대가, 절대미각의 미식 평론가 고형욱, 한식과 양식을 접목한 파인다이닝 셰프 오세득, 한식 세계화 전문가 조희경, 이렇게 4인으로 심사위원단이 구성되었다.

솔직히 늘 먹어 왔던 혹은 직접 먹어보진 못했어도 귀동냥으로 들어 온 한식이기에 얼마나 특별할까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한식대첩>을 보면서 반성 중이다.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한반도, 그것도 절반의 땅에서 이렇게 다양하고 특색 있는 음식들이 발달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 <한식대첩> 서울 팀의 쇠골찜 & 타락죽. ⓒ올리브

우선 듣도 보도 못한 재료들의 향연부터 눈길을 끌었다. 첫 회부터 조선시대 왕실 제사나 잔치 등 특수한 경우에만 맛보았다는 쇠골(소의 뇌)부터 예부터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의 진미가 애(간)라면 민어엔 부레가 있다"고 했을 정도인 민어 부레를 이용한 요리를 선보였다. '돼지고기'가 주제인 7회에서는 심지어 돼지 생식기인 돈낭까지 등장했다.

물론 귀하고 특이한 재료가 전부는 아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먹어보았을 평범하고 익숙한 재료들도 8도 명인들의 손을 거치면 지역의 색깔이 듬뿍 담긴 맛깔 나는 요리로 완성된다. 특히 '떡'을 주제로 겨룬 지난 5회는 각 지역 고유의 개성이 잘 드러난 회였다. 쓴맛이 날 것 같은 도토리 가루로 시루떡을 만든 강원도나 과일로만 생각했던 감을 이용해 감단자를 만든 전남은 물론, 공동 우승을 차지한 충북과 경북의 도전자들 역시 미각은 물론 시각을 자극하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떡을 선보였다. 흔하고 평범한 콩을 사용해 가장 단순하지만 정직하고 정겨운 맛을 만들어낸 경북의 버버리찰떡은 늦은 밤의 위험한 식욕을 부추겼다.

하지만 <한식대첩>을 재밌게 보는 이유는 비단 요리 자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출연진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릇 일반인 대상 오디션 서바이벌의 묘미란 출연진의 개성과 스토리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특히 개인의 영광만이 아니라 전국 8도 10개 지역의 명예를 어깨에 지고 나선 출연진이 보여주는 자부심과 경쟁심은 각기 다른 사투리와 섞여 불꽃 튀는 동시에 피식 웃음이 나는 장면을 연출한다.

굳이 '서울깍쟁이'라는 편견 섞인 표현을 가져오고 싶진 않지만 칭찬을 받아도 쉽사리 들뜨지 않고 냉정을 가장하는 서울 팀, 조리기능장의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 충북 팀,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경남 팀, 투박해 보이지만 여린 마음이 언뜻 드러나는 강원 팀 등 미션 수행의 압박과 서바이벌이라는 긴장감 속에서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가감 없는 모습에서 익숙한 엄마의 얼굴이 보이곤 한다. 제대로 익지 않은 음식을 내어 놓고 심사위원이 그 부분만 피해가길 바라는 모습이나 상대팀이 우리보다 좀 더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지만, 그 신경전이 불편하기보다 귀엽다.

▲ <한식대첩> 충북 팀의 쌈떡과 감떡, 복분자 오이동치미. ⓒ올리브

<한식대첩>이 서바이벌의 외피를 두르고 전국 8도 10개 팀의 경쟁을 내세우는 것은 방송의 당연한 생리다. 하지만 첫 시즌인 <한식대첩>은 서바이벌이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아쉽다. 심사위원단이 각 요리에 내리는 평가가 전문적이거나 일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노래나 춤처럼 시청자가 무대를 직접 보고 평가할 수 있는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달리 시청자에게는 요리의 외관만 전해지는 <한식대첩>은 직접 맛을 보는 심사위원들이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이고 생생한 평가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

하지만 <한식대첩>에는 각기 조금씩 다른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재료와 이를 고향의 어른들이 전해 준 방식으로 만들어 낸 요리와 이야기가 있다. 언제부턴가 한식의 세계화가 여러 사람들의 화두이자 바람이 되었다. 물론 우리네 먹을거리가 세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져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한식'이 아니라 '세계화'가 앞서느라 그 속에 우리 고유의 가치나 문화 혹은 철학이 담기지 못한 채 경제와 외교의 논리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에는 지역의 특색과 만드는 사람의 솜씨, 먹는 사람의 추억이 깃들 수밖에 없다. 이야기가 깃든 음식. 앞으로 <한식대첩>에는 물론 한식의 세계화를 주창하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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