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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깡패는 살아도 예술인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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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부산, 깡패는 살아도 예술인은 죽는다!

[정희준의 '어퍼컷'] 지방은 이렇게 망한다

지난 주 한 신문을 보니 이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영남민국'이란다. 또 사실은 'PK라인'이 득세하는 'PK 공화국'이란다. 대법원장, 국무총리, 헌법재판소장, 대통령실 비서실장, 감사원장에 이어 검찰총장까지 PK가 싹쓸이 했나 보다. 그 PK 인사에겐 사방팔방에서 엄청난 축하 인사가 물밀듯 들어갔을 것이고 그들 집 안팎에서는 멋진 파티가 연이어 열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서울 사는 '출향 PK'들의 잔치일 뿐이다. 서울에서 PK들이 만세를 외치는 동안 PK의 본산 부산에서 벌어진 사건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부산은 거덜 나고 있다.

부산 사람 멸시하는 부산비엔날레

지난 1일 오전 부산시청에서는 부산 문화 예술인 및 단체들이 모여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상식도 절차도 무시한 부산비엔날레 감독 선임을 규탄한다"며 1인 시위에 들어갔다. 이제까지 기자 회견이나 1인 시위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예술인들이 갑자기 나서게 된 이유는 뭘까.

부산비엔날레(운영위원장 오광수)는 비엔날레의 전시 기획과 운영을 책임지는 전시 감독을 선정하기 위해 지난 10월 4일 선정위원회를 열었다. 후보 5인을 대상으로 9명의 위원들이 투표를 한 끝에 5표를 얻은 김성연 씨가 1위를 차지했다. 부산의 시각 예술가이자 전시 기획자인 그는 전국적 지명도의 대안 전시 공간 반디를 운영한 경력이 있을 뿐 아니라 부산 내외에서 탄탄한 기획력을 인정 받아온 인물이다. 2위는 선정위원으로 참여한 수도권 작가 1인이 뒤늦게 추천해 후보군에 포함된 프랑스 기획자 올리비에 캐플랑으로 투표에서 3표를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토론과 투표를 거쳐 1위자가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광수 운영위원장이 갑자기 1, 2위자에게 공동 감독을 제안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공동 감독 제안을 1위자를 제쳐두고 2위자에게 먼저 허락을 받고 나서, 1위자에게 이를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정위원회의 합의를 무시하고 이를 뒤집어엎은 후 '사실상 탈락'한 후보자에게 사적으로 연락하여 수락을 받은 후, 1위 선정자에게 1일까지 공동 감독 수락 여부를 결정하라고 최후통첩을 한 것이다.

회의에서 선정위원들 다수가 1인 감독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부산비엔날레 측은 "합의를 한 것은 아니다," "선정위는 감독을 몇 명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운영위원장의 권한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막 가는 부산비엔날레다. 그럴 거면 애초에 선정위원회를 왜 구성하고, 왜 투표를 했는가.

▲ 전시 감독 선임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부산비엔날레. ⓒbusanbiennale.org

월급을 절반씩 나눠가지라고?

부산비엔날레가 1인 전시 감독 체제를 염두에 뒀음은 조직위가 느닷없이 공동 감독제를 강행하면서 1, 2위자들에게 '보수를 절반씩 나눠가지'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애초 공동 감독제는 계획에 없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앞으로 1년 동안 월급을 반만 받으라는 제안은 사실상 탈락자인 2위자에겐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인지는 몰라도 1위자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굴욕적인 제안이다. 반만 열심히 일하라는 뜻인가? 부족한 생활비는 밤에 '알바'라도 해서 벌충하라는 뜻인가?

이 논란의 중심에는 선정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어엎은 오광수 위원장이 있다. 지난 7월 '사전 내정설' '코드 인사' 논란 속에 임명된 올해 일흔네 살의 오 위원장은 2009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임시키고 위원장 자리에 앉힌 인물이다. 이후 김 위원장이 해임 무효 소송에서 승소하는 바람에 문화예술위원회는 '한 지붕 두 위원장' 체제로 운영되면서 꽤나 시끄럽기도 했다. 이미 그런 경험으로 오 위원장 본인이 '투 톱 체제'가 11개월 밖에 남지 않은 부산비엔날레 개최 준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사실 부산의 문화예술 기관장 자리는 서울 사람의 밥이다. 그것도 수명이 다한 퇴역 문화인들의 먹잇감이다. 지역에도 분명히 역량 있는 인재들이 있음에도 무시한다. 그래서 매번 부산시 고위 인사의 '코드 인사,' 서울에서 퇴역한 문화인들의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오광수 위원장과 비슷한 시기 임명된 부산문화회관장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은 서울의 밥이요 퇴역 문화인의 파라다이스

부산 지역과 연고가 없던 A씨는 최근 부산시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는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옹호하는 최전방 공격수 노릇을 하다가 결국 부산문화회관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런데 그 역시 서울의 퇴역 문화인일 뿐 아니라 자질 면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한 지역 언론은 예술의전당 사무처장을 지냈던 그가 "예술의전당에서 전문성과 능력 부족 등으로 사실상 밀려난 인물이라는 평이 많다"고 전했는데 실제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종합감사에서 파행적 조직 운영으로 인한 총체적 부실이 지적된 바가 있다고 한다.

또 지난 8월 임명된 국립부산국악원장도 마찬가지였다. 공모제의 모양새를 취했지만 결국 서울 국립국악원의 학예사가 낙하산 논란 끝에 임명되었다. 작년엔 부산시립무용단 예술 감독으로 부산 연고가 없는 인천시립무용단 감독 출신이 선임되면서 지역 무용계가 항의 성명을 내기까지 했다. 부산이 서울과의 차이가 없지는 않겠지만 문화 행정, 전시 기획, 무용 분야는 부산의 역량이 서울에 뒤지지 않음에도 서울에서 퇴역 낙하산들이 연이어 날아든다.

부산은 서울의 은퇴 문화인들의 생계 보존을 위한 도구인가. 그들에게 부산은 한 마디로 '파라다이스'이다.

깡패는 살 수 있어도 예술인은 살 수 없는 땅

갑자기 깡패가 생각이 난다. 뜯어 먹을 게 없어 서울로 향해야 했던 호남 깡패와는 다르게 1960~70년대 부산의 깡패들은 부산이 먹고살만했기에 부산에서 조직을 꾸려 살아갈 수 있었다. (영화 <친구>에서 보듯 멋지게 성공한 깡패들이 꽤 많지 않았던가.) 그런데 부산에서 깡패는 살 수 있어도 문화예술인은 살 수가 없다. 음악, 미술, 영화, 출판, 디자인 하는 젊은 친구들은 결국 부산을 떠서 서울로 간다. 천리타향 객지이긴 하지만 거기엔 그래도 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부산의 젊은 인재들이 일거리를 찾아 서울로 이주하는데 이들을 거스르며 서울의 늙은 퇴역 문화인들은 부산으로 온다. 그리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그 꼴을 보며 부산인은 다시 한 번 낙담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앨런 톰린슨은 이러한 이주 현상을 보고 주변부는 중심부의 '쓰레기 하치장(dumping ground)'이라고 표현했다. 중심부에서 은퇴했거나 수준이 안 되는 자들의 생계 연장을 위해 존재하는 2부 리그라는 말이다.

차라리 부산시 공무원부터 서울 사람으로 바꾸자

문제는 이런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며 구조화 하는 부산시의 행태이다. 지역의 인재를 무시하고 계속 서울 사람을 끌어다 앉히는 것 말이다. 그리고 데리고 오는 사람들도 어쩜 그렇게 하나 같이 자격 시비가 일고 논란도 많은, 문제적 인물들이지 싶다.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이 하나 같이 혀를 차고, 황당해 하며, 열 오르는 인사만 계속 고집 하는 것이다.

부산시 측은 이런 인사 논란이 있을 때마다 "사람이 없더라" "찾아보니 그 사람뿐이다" 심지어는 "능력이 없어서" "자기들끼리 너무 싸워서"라는 이야기까지 한다고 한다. 핑계일 뿐이다. 스스로를 비하한 결과이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이 조선인을, 우리 민족 스스로를 비하한 것과 다를 바 없는 논리이다.

부산시가 부산의 인재를 써주지 않으면 부산의 젊은 인재들이 부산에 있을 이유는 없다. 설사 지금 다소 부족해 보이더라도 경험을 쌓고 역량을 발휘하도록 키워줘야 한다. 기회를 줘야 한다. 안 보이면 찾아 나서야 한다. 부산시가 부산 사람의 능력을 낮게 평가한다면 그들 스스로의 능력 역시 낮게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부산시청의 공무원부터 서울 사람으로 싹 갈아치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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