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의원 살리기나 1차 의료 활성화는 말부터 좀 어렵다. 특히 '1차 의료'라는 말은 겉으로는 평범해도 일상의 용어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무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 어려움을 더 한다. 보통 사람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른다.
혹시 의료 정책에 관심이 있다면 낫다. 오래되고 익숙한 말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일차 의료를 살린다고 한 역사가 짧지 않기 때문이다. 도로나 다리 놓는 것 비슷하게 이야기하면, 한국 의료의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다.
이 논평에서 새삼 1차 의료를 꺼내 든 이유가 있다. 요즘 며칠 사이에 문제가 된 선택 진료 폐지나 원격 의료 시행 같은 정책 때문이다. 따지자면 1차 의료와 무관하지 않은 일들이다. 1차 의료가 제대로 돌아가면 그런 문제가 없거나 적을 것이 틀림없다.
사실 1차 의료는 모든 나라에서 중요한 보건 정책으로 되어 있다. 한 나라 보건 의료 제도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모든 근대 국가는 국민의 의료 수요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튼튼한 일차 의료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데에 크게 이론이 없다.
효과적이라야 한다는 목표는 이해하기 크게 어렵지 않다. 아프거나 불편할 때 빠르고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효과성이다. 진단은 정확해야 하고 아픔과 장애는 줄어야 한다.
개인으로서는 효율성을 이해하기가 조금 더 어렵다. 문제를 해결하되 가급적 시간과 돈을 적게 들이는 것이 효율의 사전적 해석이다. 모든 사람 바로 코앞에 좋은 의사와 병원이 있으면 좋겠지만, 공짜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돈과 사람이 있어야 하고 개인과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그러니 사람과 시설, 장비를 가능하면 적절하게 그리고 골고루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인구가 2000명밖에 안 되는 곳에 대형 종합병원을 둘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결국 현실과의 '타협'은 피할 수 없다. 사람들의 건강 문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을 쓸 수 있는가 문제 사이에서 해결 방법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전문가도 한두 번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의료 정책이 '의료 전달 체계'라는 것이다.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지만, 오래 전부터 정부의 정책 목표였고 지금도 잊을 만하면 다시 논의에 오른다. 이 제도의 본래 취지가 바로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의료 전달 체계를 간단하게 묘사해 보면 이렇다. 우선 의원이나 한의원, 치과의원과 같은 1차 의료 기관이 널리 있어서 외래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진료 기능을 담당한다. 보통은 시설이 크지 않고 복잡하고 비싼 장비도 없다. 감기나 설사, 치통 같은 흔하고 가벼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본래 역할이다.
좀 더 넓게는 인구 5만에서 20만 정도의 지역에 중간 규모의 병원(2차 병원)이 하나씩 있다. 여기서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과 간단한 입원 치료를 맡는다. 문제가 더 심각하면, 전문적인 치료와 어려운 수술을 할 수 있는 종합병원(3차 병원)이 필요하다. 광역시나 도의 중심지(들)에 있는 큰 병원(주로 대학병원)이 이런 역할을 하게 된다.
원칙으로만 하면, 1차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2차 병원으로, 그래도 안 되는 것은 3차로 옮기는 경로를 밟는다. 의료 전달 체계에서 '전달'이란 말을 쓰는 것은 이 때문이다(사실 전달이란 말은 어감이 좋지 않고 뜻도 정확하지 않다. 그 대신 '의료 이용 체계'란 말이 더 적당하지 않을까 한다).
설명이 조금 복잡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각 수준(1-2-3차)에서 적당한 수만큼 의료 인력과 시설이 있어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보완하면서 제 구실을 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것을 제대로 갖추어져야 의료 전달 체계(의료 이용 체계)가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한국의 의료 전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오래된 현실이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오래된 현실이라 해야 한다. 그 때문에 환자는 환자대로, 그리고 의사나 병원은 또 그들대로 불편과 고통을 겪는다.
우선, 1차 의료는 이미 역사적 쇠퇴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차나 3차 병원과의 전면적 경쟁에서 좀처럼 이기기 어렵다(사실 보완이 아니라 경쟁 상태에 있는 것 자체가 의료 전달 체계의 무력함을 나타낸다).
무엇보다, 대중의 신뢰가 허약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 비중이 작지 않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 속에 뿌리 내린 역사적 기능은 주변으로 밀려 나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조금만 이상해도 큰 병원, 그것도 수도권의 대형 병원을 찾는 것이 큰 흐름이 되었다.
중소 병원, 특히 대도시에 있는 병원은 앞서 말한 2차 병원의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특수하고 전문적인 것에 집중해야 살아남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척추 전문이니 항문 질환을 주로 담당하느니 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
3차 병원의 사정도 딱하다. 한 쪽으로는 1차나 2차 병원이 맡아야 할 치료까지 잠식해 비효율적 경쟁을 더 격렬하게 만든다. 일부 병원은 환자가 집중되어 '빅4'니 '빅5'니 하는 표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형편이다.
ⓒ프레시안 |
사정이 이렇게 된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역사적 경과를 밟아 왔기 때문에 이미 굳어져 있는 측면도 있다. 왜 이렇게 되었나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더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과거가 곧 미래를 제약하기 때문에 과거는 그냥 과거가 아니다.
오늘 1차 의료의 쇠퇴와 주변화를 설명하면서 그것의 '경로 의존성'은 차마 부인하지 못한다. 환자, 의사, 병원, 그 어느 쪽도 각자 사정과 환경이 있고, 나름의 생각과 이해관계, 행동 방식을 가진, 그래서 좀처럼 잘 변하지 않는 주체이다.
정책이 개입해서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좁다는 점이 더 어렵다. 모두가 민간이고 '시장' 속에서 움직이는 한 당사자다. 정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시장의 작은 '룰'을 바꾸는 정도랄까.
경로 의존이라는 말마따나 1차 의료의 미래는 낙관할 수 없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해 (무슨 획기적 계기가 없다면) 비관적이다. 물론, 낙관이니 비관이니 하는 말의 속에 1차 의료 기관이나 의사들의 처지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은 핵심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건강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야 하는 보통의 생활이 더 팍팍해질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1차 의료의 위축과 후퇴는, 시민과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곧 더 낮은 질의 고통과 더 많은 비용 부담을 뜻한다. 극단적인 예상을 해 보면 벌어질 일을 짐작하기 쉽다. 1차 의료는 없고 모두가 언제나 큰 대학병원을 가야 한다고 치자.
비용은 그렇다 하고, 질은 약간의 설명을 보태야 할 것 같다. 일생에 당하는 건강 문제의 대부분은 가볍고, 처음에는 모호한 것들이다. 그 때 마다 대학병원에 쫓아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더구나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대학병원의 '좁은' 전문가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차 의료는 또 다른 전문성, '넓은'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아직은 뭐가 뭔지 잘 알 수 없는 모호한 증상과 문제를 잘 가려내고 처리하는 일. 환자의 생활과 환경을 잘 이해해서 종합적인 처방과 지침을 안내하는 것. 오랜 동안 지켜보면서 사람마다 맞춘 진단과 처방을 하는 일. 이런 것들이 1차 의료의 본령이다.
상황을 좋게 만들 방법이 있는지는, 단언할 수 있다. 경로 의존의 한계 때문이라도 한 번에 1차 의료를 되살리는 묘약은 없다.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어떤 정책과 프로그램도 약간의 미시적 조정 정도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탁상공론 또는 팔자 좋은 소리란 비판을 무릅쓰고 다시 방향부터 말해야겠다. 이런 말로는 당장 어떤 해결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근본을 고치지 않고는 어떤 처방도 미봉책으로 끝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 아니던가.
근본 가운데 첫 번째는 시민과 환자의 관점을 회복하는 일이다. 형식이 된 제도와 체계와 정책을 중심에 놓으면, 본질은 놓치고 관료적 목표만 남기 쉽다. 또 의사와 병원, 의료인과 전문가끼리 뜻을 모아봐야 한계를 넘지 못한다(물론 이조차 아쉽긴 하다). '자기중심'과 '내부'라는 구심적 동력을 이기기 어렵고, '그들'만의 리그가 될 뿐이다.
평범한 시민과 환자의 시각에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무엇보다 시민이 참여하는 가운데에, 1차 의료의 가치와 방법을 새롭게 가다듬는 것이 급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것의 가치는커녕 말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시민의 현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음 주(11월 11일) 논평을 통하여 조금 더 구체적인 제안을 할 예정이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