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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회의 ‘삼국지(三國志) 바로 읽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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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운회의 ‘삼국지(三國志) 바로 읽기' <1>

‘삼국지’ 어떤 책인가?

프레시안은 수많은 '삼국지' 마니아들을 위한 공개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삼국지 바로 읽기'를 주 1회(화요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그동안 정사처럼 읽혔던 나관중 '삼국지'의 문제점을 짚어 보고 허위·과장·왜곡된 부분을 사정없이 파헤칠 것입니다. 또 나관중 '삼국지'의 철학적 배경이 된 중화사상과 춘추필법 등에 대해서도 논의를 펼칠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삼국지'를 통해 배웠던 중국 역사에 대한 독자들의 오해를 말끔히 씻어 내기를 기대합니다. 강호제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편집자

<사진>

[오늘의 주제]

'삼국지'바로 읽기를 위하여 '삼국지'가 어떤 책인지를 간략히 알아보도록 합니다.

[오늘의 내용]

(1)'삼국지'는 조선시대의 이야기입니까?
(2) 나관중(羅貫中) 원저는 뭐고 모종강(毛宗岡)본은 또 무엇입니까?
(3)'삼국지'가 중국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니오?

[들어가는 글]

먼저'삼국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고 제 강의를 시작할까 합니다. '삼국지'는 대하 전쟁역사소설(戰爭歷史小說)입니다. 중국인들은 '삼국지'를 통상'삼국연의(三國演義[싼꿔이엔이])'라고 부릅니다. 연의(演義)란 '널리 전해 내려오는 많은 이야기들과 사적들을 찾아내어 그 의미를 확대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다'(演傳名義 義表萬世)는 의미입니다.

***(1)'삼국지'는 조선시대의 이야기입니까?**

가까운 친구가 제게 물었습니다. 유비(劉備)·관우(關羽)·장비(張飛)가 나오는'삼국지'시대가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냐고요? 조금은 황당하여 사실을 설명해주고 난 뒤 저는 그 친구가 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삼국지'를 보면 워낙 표현이 생생하고 그 복잡한 관직 명칭과 화려하게 수놓은 황제의 휘장, 마차, 화려한 궁궐의 단층과 아름다운 정원, 여러 가지 금은보화, 잘 갖추어진 군장, 다양한 무기, 현대전과 유사한 전략과 전술 등등이 나타나니 아마 그렇게 물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삼국지'는 지금부터 무려 1800여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삼국지'는 후한(後漢)이 약화되면서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민중봉기가 일어난 서기 184년부터 여러 영웅들이 천하의 패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툰 이야기로 진나라의 사마염(司馬炎)에 의해 통일되던 280년에서 막을 내리므로 대략 1백년간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죠. 우리나라로 치면 고구려의 고국천왕(179∼197)·산상왕(197∼227)·동천왕(227∼248)·중천왕(248∼270)·서천왕(270∼292) 기간에 해당합니다.

'삼국지'의 무대가 된 한(漢)나라는 사실상 중국인들에 의한 최초의 통일왕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최초의 왕조는 진시황의 진(秦)나라가 아닌가 반문하시겠죠 ? 물론 통일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그렇지요. 그러나 진나라는 20년도 채 버티지 못했고 사라져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나라는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없는 왕조였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중국의 분위기는 자유로웠는데 진나라는 문화도 뒤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심할 정도로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여 당시 중국인들은 진나라를 잔인무도하고 반쯤은 오랑캐로 여긴 듯합니다.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진(秦)나라의 수도를 점령한 후, "여러분들은 가혹한 진나라의 법률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하였습니다. 이제 진나라의 법은 없습니다. 법은 단 3조 정도면 족합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남의 물건을 도적질하는 것만 벌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법삼장(法三章)입니다.

사실 진나라는 중국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북방의 유목민들과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한나라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통일왕조로서 무려 4백여 년 동안 통일과 안정을 이룩하고 찬란한 중국문화를 꽃피웠습니다. 한나라는 그 이전까지 지역별로 다양하게 발전해온 문화가 융합하여 중국 고전문화(古典文化)를 완성한 왕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인들은 한나라가 중화(中華)의 뿌리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가 중국인들을 한족(漢族)이라고 하거나, 중국어를 한어(漢語), 중국문자를 한문(漢文)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한나라가 이후 전체 중국사에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한나라도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전한 - 후한이 서로 다른 창업자에 의해 건국되었기 때문에 다른 왕조로 볼 수도 있지만 후한이 전한을 계승했다는 강한 국시(國是)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후한과 전한을 합쳐서 그저 한나라라고 보면 됩니다.

***(2) 나관중 원저는 뭐고 모종강본은 또 무엇입니까?**

맞습니다. 여러분이 읽고 계시는 '삼국지'는 명나라(明, 조선 초기) 때 나관중이 편찬한 것을 청나라 때 모종강이 다시 읽기 쉽게 재편집한 것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복잡하냐구요? 실제는 더 복잡합니다. 그 많은 이야기를 여기서 다 할 필요는 없겠지만 간단하게만은 알아둡시다.

'삼국지'의 모태가 된 것은 진수(陳壽)의 '삼국지'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국사편찬위원회가 '대한민국 제5공화국 역사'를 편찬하는 식이나 다를 바 없지요. 그래서 이 책을 진수의'삼국지'라고 하는데 제 강의에서는 정사'삼국지'로 통일하여 부르겠습니다. 그래서 "정사에 따르면"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저 진수의 '삼국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책은 여러분 들이 읽는 '삼국지'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책입니다. 왜냐하면 진수의 '삼국지'는 동시대의 사람이 기록한 공식적인 역사서인데다 그 시대를 기록한 책들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 우리 민족에 관한 기록이 그나마도 조금 보입니다. 그러면 정사 '삼국지'에서 바로 나관중 '삼국지'가 나왔습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삼국지'시대가 끝난 후 중국은 다시 대혼란기에 접어듭니다. 이를 남북조 시대라고 하는데 남북조 시대 가운데 송(宋 : 420~478 :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송나라는 주희나 소동파, 사마광, 구양수, 왕안석, 정호, 정이 등이 활약한 송나라(960~1279 : 우리나라의 고려시대)가 아닙니다. 남북조시대의 송나라 문제 때 배송지라는 사람이 황명을 받들어 진수의 '삼국지'의 요소요소에 방대한 해설들을 달았습니다. 이 해설이 오히려 원문보다도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남북조 시대에는 '세설신어'(世說新語)등과 같은 야담집이 있어서 '삼국지'의 주인공들 이야기들 가운데 재미있거나 엽기적인 내용들을 모아 두었습니다. 배송지의 주석과 '세설신어'는 후일 나관중 '삼국지'가 형성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隋)나라ㆍ당(唐)나라ㆍ송나라 등에도 '삼국지'에 관한 많은 구전(口傳)들이 있었지만 오래 전이라 거의 전하지 않고 1300년대 초반 원(元)나라 때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상ㆍ중ㆍ하) 등이 있었는데 이 내용도 매우 시시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나라 때에는 희곡 및 잡극이 크게 발달하여 '삼국지'가 희곡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삼국지'서술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즉 연극이라는 것은 관객(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전투를 일인의 무용(武勇)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고 전체적인 전투 내용도 개별적인 몇몇 배우들로 묘사할 수밖에 없지요. 이 같은 연극들의 공연이 이뤄지면서 '삼국지'에서는 대부분의 전투가 장군들의 일대일(1:1) 전투로 묘사되는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에 나관중이 그 동안 나온 '삼국지'를 집대성하여 '연의삼국지(演義三國志)'를 편찬하였습니다. 따라서 나관중 '삼국지'는 개인적인 순수한 창작물이라기보다는 그동안 나타난 수많은 이야기들을 정사 '삼국지'를 기준으로 하여 재정리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 후 1400년대 후반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가 간행되었고 이외에도 '삼국지'는 다양하게 출판되어 명나라 때는 수십 종의 '삼국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명나라부터 크게 유행한 '삼국지'는 다소 복잡하여 읽기가 불편한 요소들이 있어서 청(淸)나라 때 모종강이 나관중 '삼국지'를 일반인들이 더욱 읽기 쉽도록 새로운 형태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형태로 마치 재미있는 TV 드라마를 보듯이 엮어 놓은 것이 현재 독자들이 읽고 있는 바로 나관중 '삼국지'입니다.

그러니 현재 여러분들이 읽고 있는 '삼국지'는 나관중 편찬에 대한 모종강의 새로운 편집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삼국지'를 말할 때는 모종강의 '삼국지'라고 하지 않고 나관중 '삼국지'로 모두 통일하여 나관중 '삼국지'라고 말합니다. 제 강의에서도 그저 나관중 '삼국지'라고 하겠습니다.

사족으로 한 가지만 달고 넘어갑니다. '삼국지'의 저자로 알려진 나관중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과연 '삼국지'의 저자가 나관중인가 하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나관중의 고향만 해도 산시[山西(산서)], 산뚱[山東(산동)], 쩌장[浙江(절강)], 짱시[江西(강서)] 등으로 나타나 나관중이 과연 실존인물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고 있습니다. 또 설령 나관중이 실존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삼국지'의 저자가 과연 맞는가라는 것이죠.

***(3)'삼국지'가 중국판 용비어천가라니오?**

한 학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어떤 책에 보니 '삼국지'가 중국판 용비어천가라 되어있더라는 것이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일 수도 있는 듯 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삼국지'가 유행하는 것은 그 왕조의 정치적인 목표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만 보면 그 말은 틀렸다고만 할 수 없겠습니다.

우선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국가 기관에서 편찬한 것이므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사마(司馬)씨가 황위를 찬탈하거나 촉(蜀)이나 오(吳)나라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한 역사적 왜곡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남북조시대 송나라의 문제는 왜 국가적으로 '삼국지'에 주석을 달게 하였을까요? 바로 이 부분이 세종대왕이 '용비어천가'를 편찬하게 한 것과 비슷합니다. '용비어천가'는 이성계(李成桂)의 가문이 얼마나 위대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것은 명백하게 하늘의 뜻이라는 내용이 재미있고 아슬아슬한 이야기 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있죠. 즉 조선 초기만 해도 이성계는 전주 이씨로 당시까지는 대단한 가문이 아니어서 왕조의 권위가 제대로 서지 않았습니다. 고심 끝에 세종대왕은 왕조의 정통성을 알리기 위해 대국민 홍보용으로 편찬하게 한 것이 '용비어천가'였습니다.

송의 문제를 세종대왕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송의 문제도 성군으로 이름을 날린 황제로 당시를 '원가(元嘉)의 치(治 : 태평성대)'라고 합니다. 남북조 시대에 송을 건국한 유유는 우리나라로 치면 이성계와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합친 인물로 보시면 됩니다. 유유는 북방의 유목민으로부터 침략을 저지한 구국의 영웅인데 후에 군권을 장악하면서 진나라 황제를 독살하고 왕조를 새로 세워서 그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유유(劉裕)가 죽은 후 송나라도 극심한 정변이 있었고 이를 타개한 사람이 유유의 영특한 아들인 문제(文帝)였지요.

문제는 땅에 떨어진 왕조의 권위를 세우고자 많은 개혁정치와 문물을 정비하여 국민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서 안간힘을 쏟았고, 그 수단으로써 '삼국지'를 활용하였습니다. 문제는 이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활용하여 유비가 정통 한 황실을 계승한 사람이며, 유유는 바로 그와 같은 후손이며 유비가 위대한 만큼 그것을 사실상 유일하게 계승하고 있는 송 왕조야말로 정통성을 가진 유일 정부라는 것이지요.

남북조시대 후 6~7백년이 지난 후 중국에는 유명한 TV 드라마인 '포청천'에 자주 등장하는 조광윤(趙匡胤, 송태조)의 송나라가 건국되었는데, 이 송나라는 군사력을 경시하고 철저히 문화를 통한 정치를 한 나라입니다. 송나라 때는 북방의 유목민들이 강성해져서 중국을 지배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중국인들을 매우 힘들게 하였습니다. 중국인들은 현실적인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주자(朱子)를 중심으로 '삼국지'에 대한 철저한 재평가 작업을 하면서 유비가 건국한 촉이 중국 정통 왕조라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어 원나라는 끝까지 저항하는 중국인들을 탄압하였는데 이것이 결국은 대규모의 농민 반란을 유발하였고 그 우두머리인 주원장(朱元璋[쭈위엔짱 : 1328~1398])이 명나라를 건국하였습니다. 주원장은 '오랑캐의 무리를 몰아내고 중화를 회복하자(驅逐胡虜 恢復中華)'라는 민족주의(漢族主義, 中華主義)의 기치를 내걸었지요. 그런데 그 동안 중국이 하도 유목민들의 지배를 많이 받아서인지 이상적인 모델로 삼을 나라가 없어 1천년도 더 지난 한나라를 선택한 것이죠. 즉 민족부흥을 해야 하는 민족적 과제를 지닌 명나라는 이미 1300여 년 전에 사라진 한나라와 명나라를 연결하는 고리로 '삼국지'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 형식으로 된 '삼국지'는 여러 면에서 유용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도 재미가 없으면 민간에 전달이 잘 되지 않지요. 당시에는 많은 직업적인 이야기꾼들이 있어서 이들을 통하여 '삼국지'는 중국 전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나아가'삼국지'는 동아시아 전체에 퍼지면서 이미 수백 년간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요즘 서점에 가보면 '삼국지'와 관련된 만화는 물론, 소설·평론·해설 등이 범람하여 이미 '삼국지'산업이라고 할 정도로 시장이 커져있습니다. 문제는 어른, 아이 모두'삼국지'를 비판 없이 읽는다는 데 있습니다. '삼국지'마니아들 가운데는 같은 시대 우리나라의 영웅인 위궁(位宮)·명림답부(明臨答夫)·밀우(密友)·유유(紐由) 등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면서'삼국지'의 여러 엑스트라에 대해서 줄줄이 꿰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더욱 위험한 일은'삼국지'에 매료되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더욱 초라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고, '삼국지'주인공들의 나라에 대해 끝없는 애정을 가지면서 오히려 우리의 영웅들을 천하게 보게 되고, 중국을 신비하게 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유명 드라마 '가을동화'를 좋아하면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그래도 '가을동화'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 불과하니 그 파급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지요.

생각해보세요. 바다에서 황제로 자처하는 고래는 각종 물고기들에게 어쩌면 이런 교육을 하지 않을까요? 고래의 입술은 얼마나 달콤하고 고래의 이는 아름답기 그지 없고 고래의 뱃속은 얼마나 포근한지에 대해 말이죠. 그 말을 진실로 알고 고래의 뱃속에 들어간 물고기는 바로 고래밥이 되는 것입니다.

훌륭한 외국의 소설에 매료되는 것이 무엇이 나쁩니까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그 작품이 중국의 주변에 있는 나라를 비하하고 오직 중국인만이 천하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전파하는 첨병이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제가 보기에'삼국지'는 바로 이 같은 생각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제갈량은 중국인들의 지배를 왕화(王化)라고 하면서 왕화가 안 되는 민족을 가장 저질이고 야만적이라고 보고 있지요. 어쩌면 우리는 중국인들 눈에 그저 과거의 오랑캐에 예의바른 조공국(朝貢國) 정도로 비치는 것은 아닐까요?

최근에 중국 정부는 동북프로젝트(동북공정)를 진행하여 고구려사나 발해사를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은 자기들 이데올로기만으로 세상을 재단하더라도 설마 한국 정도가 어찌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이것도 결국은'삼국지'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닐까요? 왜냐하면 한국은 그 동안 왕화에 가장 충실한'동방예의지국'이니까요. 저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삼국지'바로 읽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유비·관우·조조는 어디로 가고 다소 지루한 이야기들만 늘어놓은 듯합니다. 그 동안'삼국지'의 성립과 발달에 관한 연구들은 한ㆍ중ㆍ일의 인문학자들에 의하여 깊이 있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일반적으로 말하는'삼국지'연구는 주로 중국 소설을 연구하는 분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① 작가 나관중에 대한 연구, ②'삼국지'의 여러 판본에 대한 연구, ③ '삼국지'가 언제 성립되었는가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분야에 대한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기로 하고 다음 강의부터는 보다 실질적으로 '삼국지'바로 읽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정치연구회, 기독교문화연구회 등에서 사회과학 지도 간사를 하면서 한국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다. 한국 사회의 나아갈 길을 밝히기 위해 『역사변동에 대한 일반이론(1987)』을 저술하였고 대학교육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의 붕괴 현상과 사회주의의 몰락 가능성을 포괄적으로 보여준 책이다. 이후 7년간 명상을 하면서 종교학(불경, 성경), 역사학 (동서양), 자연과학(물리학과 생물학), 정치학, 전쟁학, 마르크스, 철학(동서양) 심리학 등을 공부했다. 이 시기에『삼국지』의 연구 및 우리 민족의 원류와 몽골, 흉노, 선비 등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였고 『삼국지』가 중화주의의 확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깨달아 이에 대한 사회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 후 한국외국어 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석사(국제통상)을 마치고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디지털 재화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경제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자신의 홈페이지 www.ebiz01.net(www.ebiz114.net)에 『삼국지』 관련 자료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올려놓는 등 '삼국지'의 새로운 해석과 연구뿐만 아니라 민족의 원류찾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삼국지』에 감춰진 고구려 역사를 찾아내어 전달하는 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동양대학교(경북 풍기소재) 경영관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취미는 바둑(1급)과 그림 그리기.

저서 : 『역사변동에 대한 일반이론』(1991)
『인터넷 비즈니스 원론』(선학사, 2002, 공저, 정진기 언론출판문화상 후보작)
『삼국지 해제』(2003, 대표집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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