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적자의 원인을 노인 무임승차로 호도하는 '전환 전략'
2012년 말 대통령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청원에 서명하는 사람이 1만 명을 넘어 뉴스거리가 됐다. 당시에 무임승차 폐지에 찬성하였던 2030세대는 노인들이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는 박근혜 후보를 선택했으니 보편적 복지 제도인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비판한 유명 여성 연예인에 대해 SNS에서 공개적으로 비난과 옹호가 쏟아지는 등 세대 간 대결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그때도 지하철 적자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지적되었던 '방만한 경영'이나 '낙하산 인사'에 대한 개선 소식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강력한 공기업 구조조정과 공기업 운영의 책임성 강화 정책에 대한 대비책으로 또다시 지하철 경영 적자의 원인을 노인 무임승차로 호도하는 '전환 전략'이라는 평가도 있다.
최근에도 일부 지하철 공사가 고액의 퇴직금을 임원들에게 지급한 것이 드러났지만, 여전히 지하철 적자의 원인을 노인들의 무임승차 때문으로 몰아가려고 하고 있다.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를 다룬 언론보도나 각종 토론회에서도 우리나라보다 잘사는 선진 외국에도 완전 무임승차는 없다면서, 소득계층별로 할인율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거나, 어린이 요금처럼 수익자가 요금을 일정액 부담해야 한다는 방안 등이 지하철 적자의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특히 노인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이기에 여야를 떠나 정치권이 협력해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그러면 과연 지하철 무임승차의 유래는 무엇이고, 노인들에 대한 무임승차를 없애면 지하철 적자가 해결되는지를 살펴보자.
▲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 ⓒ연합뉴스 |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정책의 역사적 배경과 논리적 근거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당시 서울에 지하철 1호선을 개통하면서 1980년에는 70세 이상 노인에게 50% 할인을 했고, 1984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100% 할인한 것이 시작이었다. 즉, 서울 지하철 1,2호선을 제외한 전국의 지하철은 대부분 1984년 이후에 개통되었으며, 따라서 지하철 대부분이 노인 무임승차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지하철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들 지하철은 중앙 정부의 국비와 지방 정부의 매칭 펀드로 투자한 지방공기업인 지하철 공사들이 운영했다. 국가가 세금으로 투자한 기반시설이므로 노인 무임승차를 정책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자 도로를 제외한 전국의 고속도로와 국도에서는 통행료를 받지 않는 곳이 더 많다. 설립 초기에 통행료를 받던 곳도 초기 투자비용이 회수되면 무료 도로로 전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지하철 이용 요금에서 운영 요금 외에 설립 비용을 국민이 계속 내도록 하는 것이 문제이지, 이용객 중 일부인 노인들에게만 받지 않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하철은 이들 노인들이 낸 세금으로 건설되었기에 일정한 기준을 정하여 무료로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며 논리적으로도 타당하다. 정부가 경로연금을 기초노령연금으로 통합하면서 당시 도시별로 상이한 기준으로 매달 지급하던 '노인 교통비'를 없애버렸고, 이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노인 지하철 무료 이용을 활용하였던 정치적인 역사도 지하철 무료 이용의 연혁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로마는 공화정 초기에 모든 시민에게 도서관과 목욕탕을 무료로 이용하게 했다. 세금을 내는 시민에게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서비스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립된 기간이 짧아 아직 건설 부채를 상환하지 못한 지하철 5호선부터 8호선까지를 운행하는 도시철도공사의 경우, 2012년 전체 순손실 1988억 원 중 1030억 원을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로 파악하고 있다. 이미 설립 당시의 건설 부채를 모두 상환한 지하철 1~4호선의 서울 메트로는 지난해 1720억의 순손실 중 1600억 원 이상을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로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건설 부채 외의 모든 적자를 무임승차로 인한 부채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지하철 수요 예측을 뻥튀기해서 무리하게 건설 사업을 추진해서 적자가 누적된 부분은 책임이 없다는 것인지, 그리고 방만한 경영으로 적자가 누적된 부분은 얼마나 되는지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보고서도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은 도쿄나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 뉴욕과 비교해도 이동거리 및 탑승시간 대비 이용요금이 싼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전력 대란의 원인이 지나치게 싼 전기요금 때문이라고 하면서 전기요금을 적정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논리는 같은 경우인 지하철에는 아무도 적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상대적으로 땅 주인들에게 나간 토지 보상비용이나 대기업 중심의 건설 회사들 간의 담합으로 과도하게 지급된 건설비용 등이 이들 다른 나라의 도시들과 비교해서 절대 싸지 않음에도, 지하철 구간별 이용요금이 싼 것에 대해서 아직 제대로 문제 제기가 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국비와 지방비로 지하철을 건설하여 지하철 공사에 운영을 위탁하면서 따로 문서에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조건으로 달아 지하철 공사에 사업 허가를 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예전 투자를 돌려주지는 않으면서 그에 따른 조건을 철회하라고 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노인들의 무임승차를 중지하면 지하철 적자가 해소될까?
역사적 근거나 논리적 당위성의 여부를 떠나 "노인들의 무임승차를 없애면, 전국 지하철의 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이다. 노인 무임승차로 인해 발생했다는 적자는 단순한 계산상의 적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하철 공사 측은 3억 4895만 명이 무임승차로 지하철을 이용하므로 연간 3651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즉 지하철 공사 측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의 숫자에 지하철 이용 요금을 곱해서 나온 금액을 무임승차로 인해 발생하는 적자라고 계산하는데, 사실은 무임승차를 없앴을 때 많은 노인들이 지하철 요금을 내면서 지금처럼 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료인 지하철이 유료로 전환되면 노인 지하철 이용률도 줄어들 것이므로 이러한 조치가 지하철의 경영을 흑자로 전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이용하든 이용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지하철 공사는 시민과 약속한 운행 간격을 지키기 위해서 빈칸으로라도 지하철을 운행하여야 한다. 노인들이 타지 않더라도 지하철 운행에 필요한 역무원과 기관사의 월급은 나가야 하고, 지하철 운행에 필요한 전기 요금을 지출해야 한다. 타는 사람이 일정 규모에 이를 때까지는 운행 직원의 숫자나 급여가 더 늘어나거나 타는 사람의 숫자와 비례하여 사용하는 전기 요금이 더 늘어나지는 않는다.
덴마크, 영국, 프랑스 등은 교통체증 시간을 피해야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강제로 이용시간을 규제하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하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다수의 노인들은 출퇴근 시간이 아닌 한가한 시간에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노인들로 인해 오히려 지하철 활용도가 높아지고 공익성과 공공성이 보장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돈 없는 노인들에게 능력이 없으면 지하철을 타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나마 노인들이 타 주니 과도하게 이용 인원을 추계한 담당 공무원과 엄청난 건설비를 받아갔던 건설업체의 과도한 수익이 합리화되고 있음을 오히려 알아야 한다.
ⓒ연합뉴스 |
독일·네덜란드, 노인 지하철 할인제 있지만 기초연금 최대 168만 원
특히 우리나라에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는 너무나 부족한 노인 복지를 보완하는 정책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GDP 대비 노인 복지 지출액 비율은 2.1%로, OECD 평균 7.3%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최근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약 49%(2011)이다. 이는 전 연령대 평균 14.3%의 3.4배로 다른 연령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며, OECD 국가들의 평균 노인 빈곤율보다 4배가량 높은 실정이다. 네덜란드와 독일의 경우 노인 교통비의 40~60%만 할인해주고 나머지는 본인들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들 나라는 월 최대 168만 원 정도의 기초연금을 국가가 지급하고 있기에 그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우리나라는 기초연금이 얼마가 되어야 지하철 이용 요금을 부담시킬 것인지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는 직접적인 현금 급여는 아니지만 월 10만 원 이상의 현물급여로서 노인 복지에 기여하는 제도다. 노인들이 국가의 혜택을 보는 보편적 복지 제도다. 어르신들이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친구들과 만나고, 각종 편의시설이나 관광 및 문화시설도 이용하는 등의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기준 연령은 지금처럼 놔두는 대신에 소득에 따라서 무임승차를 차등 적용하자는 방안도 현실성이 매우 낮다. 노인들의 소득 파악 정도가 낮아 실제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기초연금의 사례에서도 각종 도덕적 해이의 문제나 소득 파악에 따르는 형평성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자녀들에게 재산을 다 물려주고 자신은 재산이 전혀 없다고 하면서 120평짜리 고급 아파트에 자녀와 같이 사는 노인은 무임승차의 대상자인가 제외 대상자인가? 그리고 자녀는 있지만 10년째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지내면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의 무임승차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우리나라 전체 630만 명 노인의 75%가 자기 소득이 없고, 49%가 상대 빈곤층이라서 소득에 따른 차등 지원 정책을 도입해도 지하철 적자의 해소에는 별로 실효성이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무임승차 기준 연령을 높이자는 주장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노인복지법이나 각종 노인 관련 법령에는 노인의 정의를 대부분 65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70세나 그 이상의 연령으로 올릴 법적 근거나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할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특히 서울 지하철은 노인 무임승차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이명박 시장이나 오세훈 시장 시절에 서울시는 송파구의 가든 파이브 조성에 1조3000억 원, 한강르네상스와 새빛둥둥섬 건설에 5964억 원, SH공사의 무리한 토지 조성과 과도한 건설사업 등에서 수십 조 원의 적자를 냈다. 이들 사항에 대해서는 정치적 책임도 묻지 않으면서 지하철 운영 적자의 원인을 노인들이 많이 타서라고 한다면, 어느 국민이 수긍할 수 있을 것인가?
지하철은 공공재다. 국민은 지하철의 싼 이용 요금을 보편적 복지 혜택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인들에게 지하철 무임승차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가의 노인들에 대한 예우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지하철의 경영 합리화와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에 대한 규제와 단속은 필요하며, 앞으로 더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도 인정한 "착한 적자"의 하나인 노인 지하철 무료 이용 정책을 희생하는 것이 지하철 적자 해결의 대책이나 공기업 경영 정상화의 합리적인 방안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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