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전 대표는 이날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국민 대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박근혜 정부 1년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독일에 머물다 귀국한 손 전 대표가 언론 인터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손 전 대표는 "지금 박근혜 대통령 리더십이 사회 통합보다는 분열 쪽으로 훨씬 더 가고 있다"며 "모든 국민의 머리에 '종북' 아니면 '꼴통'이라는 인두 자국이 새겨져 (국민이) 완전히 둘로 나뉘었다"고 말했다. 또 "이는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사회적 분열(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손 전 대표는 "대통령이 되면 내 지지기반을 어느 정도 버리고 국민 전체를 끌어안을 생각을 해야 한다"며 "내 지지기반에만 집착하고 내가 속해왔던 사회와 역사에만 매몰되면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없다"고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했다.
▲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손 전 대표는 특히 민영화에 반대해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를 언급하며 "(정부가) 설사 KTX 자회사에 민간이 참여할 수 없도록 장치를 강구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을) 설득하고 설득이 안 되면 (대통령이 정책을) 유예할 수도 있다"며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책이나 지금 (철도 민영화) 정책이나 똑같이 과거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못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손 전 대표는 또 "(박근혜 대통령의) 기본적인 방향은 민영화 맹신주의"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도자에게는 시대정신이 필요한데, 이미 세계는 민영화나 기업의 자유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적인 이익과 상생으로 가고 있다"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에서조차 시장 경제의 성과를 사회와 공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대통령이) 뒷북을 치고 있다"고 부연했다.
손 전 대표는 앞서 16일 동아시아미래재단 송년 모임에서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지방 선거를 단일화, 연대에 의지해 치른다는 안이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다가오는 지방 선거에서 단일화를 한다면 "당장 몇 석은 건질 수 있을지 모르나, (지난 선거에서 단일화의 폐해를 본) 국민들은 '또 똑같은 놈'이라고 (야당을) 버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손 전 대표는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정치가 잘 되는 것"이라며 "민주당과 기존 정당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안철수 신당이 출범한다면, 안철수 신당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자기 정체성부터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이 모두 지금 가야 할 길은 어렵더라도 정정당당한 길"이라며 "그 정정당당한 길을 같이 제대로 가면 둘 다 이기는 것이고, 그냥 편하게 가면 둘 다 망하면서 우리 정치 전반이 불행해진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다당제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 대표제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그것이 지난 대선과 총선 때 경험한 인위적인 단일화, 연대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며 "이견과 갈등은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하고, 정치적인 다양성이 제도 위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1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동아시아미래재단에서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진행한 정치 관련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대통합'을 내걸고 당선된 지 1년이 지났다. 국민 대통합이라는 관점에서 그동안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를 들려 달라. 손학규 :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잘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취임했다. 일단 지지기반이 안정됐다. 나라가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주변 사정도 어수선한데,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일반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많은 분의 기대가 상당히 컸었다. 진보 인사 쪽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꽤 잘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기대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제 민주화'와 '복지 정책'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얘기했기 때문이다. 사회 통합도 적극적으로 얘기했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방문했는데, 오히려 그렇지 못한 야당 후보를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대통령의 지지기반에 대한 집착은 분열 부추겨"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박근혜 대통령 리더십이 상당히 어려움에 부닥쳤다고 보인다. 사회 통합보다는 분열 쪽으로 훨씬 더 가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사회적 분열, 단순히 경제적 양극화를 넘어선 사회적 분열(과 비슷하다). 모든 국민의 머리에 '종북' 아니면 '꼴통'이라는 인두 자국이 새겨졌다. 국민이 완전히 둘로 나뉘었다. 대통령이 되면 내 지지기반을 어느 정도 버릴 생각을 해야 한다. 국민 전체를 끌어안을 생각을 해야지, 내 지지기반에만 집착하면 통합은 이뤄지지 않고 분열을 부추기게 된다. 그리고 내가 속해왔던 사회나 역사에만 매몰돼 벗어나지 못하면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없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경제 발전의 방향이나 수단, 혹은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 구조와 사회에 대해 1960~1970년대 사고방식이나 패러다임을 그대로 기본적으로 유지하면 안 된다. 물론 일반 국민이나 반대자들이 사회경제적인 인식이 (대통령의 생각보다) 못 미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설득해서 함께 가야 한다.
철도노조 파업을 예로 들자면, (박근혜 대통령은) 우선 기본적인 방향이 아직도 민영화 맹신주의다. 신자유주의, 시장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설사 KTX 자회사에 민간이 참여할 수 없도록 장치를 강구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도 설득이 안 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통령이) '나는 선진적인 생각을 하는데 (국민과) 같이 가야겠다'고 판단하고 유예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책이나 지금 (박근혜 정부의 철도 민영화 정책)이나 똑같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민영화 맹신주의는 뒷북"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기반과 자신이 속한 이념적 패러다임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지도자에게는 역사 인식과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이 세계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세계가 흘러가는 방향을 '민영화', '기업의 자유'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이미 세계는 그것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적인 이익과 상생으로 가고 있다. 이 흐름을 제대로 짚지 못한 결과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돈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낚시질한 것이다. 이제는 그러한 방식이 잘못됐다는 게 밝혀졌다. 대기업이 잘못하면 그 피해는 전부 일반 국민에게 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에서조차 "자본주의는 끝났다"거나 심지어 "자본주의는 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시장 경제 전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시장 경제가 효율을 높이는 만큼 그 성과를 사회와 공유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망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래서 우리는 유럽 모델을 얘기한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뒷북을 치고 있다. "국민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정치가 잘 되기를 원해"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실망도 있지만, 야당의 무력함에 대한 실망도 그에 못지않게 크다. 손학규 : 야당이 겪는 어려움도 똑같다. 야당도 자기 지지기반만 공고히 하는 데 여념이 없다. 야당이 버려야 할 전통적인 정치 용어가 '집토끼'다. '집토끼를 지키고 산토끼를 잡으라'는 말이 마치 성경에 나오는 말처럼 됐다. 그러한 방식이 정치인 개인은 살릴지 모르지만, 야당 정치와 민주 정치는 죽인다. 세계적인 통합 정치에 역행한다. 프레시안 : 손 전 대표는 16일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지방 선거를 단일화, 연대에 의지해 치른다는 안이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내년 지방 선거 때는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각자 '누가 더 전체를 위한 정치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경쟁을 하라는 것인가? 손학규 : 그렇다. 당장 이기기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 안철수 신당이 출현하면 민주당에는 조급증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 정당이) 나눠 갖는다면? 민주당도 안철수 신당도 (장기적으로 지지를 얻기 어렵다.) 국민은 단일화 연대의 폐해를 이미 봤다.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정치가 잘 되는 것이다. 국민을 위해서 정치하는 정치 세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민주당과 기존 정당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안철수 신당이 출범한다면, 안철수 신당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자기 정체성부터 확립해야 한다. 내가 "새 정치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문제"라고 얘기한 것은 그래서다. 그렇게 안철수 신당이 의연히 나가면 설사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다고 하더라도, 그 지지기반 20~30%는 튼튼하게 지켜질 것이다. 후보 내기 급급하기만 하면, 당장 몇 석은 건질 수 있을지 모르나, 국민들은 '또 똑같은 놈'이라고 버리게 된다. 안철수 신당이나 민주당 모두가 지금 가야 할 길은 어렵더라도 정정당당한 길이다. 그 정정당당한 길을 같이 제대로 가면 둘 다 이기는 것이고, 그냥 편하게 가면 둘 다 망하면서 우리 정치 전반이 불행하게 된다. 독일 연정 사례가 '사회 통합' 프레시안 : 손 전 대표는 '통합의 정치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손학규 : 결국 우리도 극한 대결의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사실 나는 애초에 양당제 지지자였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양당이 서로 견제하면서 정부를 견제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경제 발전과 남북대결 체제를 고려하면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런데 이웃인 일본에서는 내각제가 지속적인 정치 불안을 가져왔다. 정치 불안은 결국 일본 경제가 훨씬 더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훼손시켰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결의 정치 구조가 하나의 체제로, 정치 문화로 뿌리박히고 있다. 세상이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졌다. 독일에 다녀온 뒤 생각이 바뀌었다.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요구와 이해관계가 다양화된다. 억지로 양자택일의 틀에 집어넣으려다 보니, 아무리 건전한 사람이라도 야당 정치에 들어오면 피켓 드는 도구밖에 안 되더라. 실제로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도 그렇다. 겉으로는 양당이지만 사실상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과 강제로 통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국민의 선택권을 빼앗아 간 거다. (안철수 후보 지지자 가운데) 일부는 어쩔 수 없이 새누리당 후보를 찍고 더 많은 사람이 민주당 후보를 찍었겠지만, 또 많은 사람이 기권했다. 국민에게 정치적인 기회를 줘야 한다. 그것이 이미 지난 대선과 총선 때 경험한 인위적인 단일화, 연대의 폐해를 극복하는 길이다. 그렇게 해서 정치적인 다양성이 제도 위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기서 생기는 이견과 갈등은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이 2023년까지 원전을 전부 폐기하기로 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원전 폐기는 녹색당 정책이었다. 기독교민주당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이었다. 독일 같은 제조업 중심 공업 국가에서 원전 폐기 정책을 받기 쉽겠나? 그런데 독일 사회민주당은 정권을 잡기 위해 녹색당과 연정하는 과정에서 녹색당의 핵심 요구를 받아들였다. 2005년 총선에서 일등을 차지한 기민당은 사민당과 대연정을 했다. 사민당 정책이 기민당 정부의 공식 정책이 된 것이다. 이후 사민당이 떨어지고 기민당이 자유민주당과 연정했을 때, 메르켈 총리는 일시적으로 원전 수명 연장 정책을 펼치려고 했는데, 마침 그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져서 포기했다. 어쨌든 녹색당의 정책이 보수적인 기민당의 국가 정책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것이 연정을 통해서 소수당의 의견이 국가 정책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통합'이다. (☞관련 기사 : 메르켈 '원전 제로' 택한 건 후쿠시마 때문이 아니다)
프레시안 : 앞으로 정치적인 계획을 밝혀 달라. 손학규 : 정치적 일정표보다 우리 사회의 통합을 위해서, 통합 정치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자 한다. 사회적인 과제를 토론할 것이며, 그 안에는 협동조합, 정치 체제, 남북관계도 포함된다. 특히 지금 북한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고 주변 정세도 어지러운데, 앞으로 어떻게 남북 간의 평화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모색할 계획이다. |
* <프레시안>은 연말을 맞이해 기획기사 '협동조합, 1년'을 준비했습니다. 이에 협동조합기본법을 대표 발의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인터뷰했으며, 협동조합과 관련된 인터뷰 기사는 오는 20일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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