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발KTX주식회사 민영화 논란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시작됐다. 수서발KTX주식회사를 둘러싼 역사는 국토부(노무현 정부의 건설교통부, 이명박 정부의 국토해양부 등) 관료들과 '코레일-전국철도노조(철도노조)' 연합 전선과의 싸움의 역사였다.
철도에 있어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코레일의 수뇌부는 '철도 민영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공공재'에 대한 신념에서도 그렇고, 경제적 측면에서도 그랬다. 일부 고위 간부들은 <프레시안>에 '공공 철도 수호'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수서발KTX주식회사와 관련돼 줄줄이 보도되고 있는 '코레일 내부 문서'가 유독 많은 것도, 과거 코레일의 '양심적 고위 간부'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없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까지 이어진 철도 민영화 논란을 거치면서 국토부 관료들에 의해 사실상 '물갈이' 수순을 밟았다.
철도 민영화의 시발점, '재벌 철도 탄생'을 염원했던 MB정부
처음 수서발KTX주식회사 운영사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회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낙하산 사장'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서종욱 전 사장이 이끌었던 대우건설과 동부그룹이었다.
2011년 12월 27일 국토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2012년 업무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2015년 초 개통 예정인 수서~목포, 수서~부산 간 고속철도(KTX)의 운영권을 민간기업에게 넘기는 방안을 공식화한다. '철도 민영화 의혹'은 이 지점에서 '철도 민영화 논란'으로 바뀌게 된다. 정부는 입찰 제안서를 내고, 민간 유치를 도모했다.
이어 2012년 3월 일부 경제신문은 동부그룹의 물류 계열사가 수서-평택간 고속철도(KTX) 운영권 획득을 목표로 입찰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언론은 "수서발 KTX는 2015년부터 호남선을 시작으로 경부선까지 운영하는 최초의 민간 철도노선"이라고 보도했다.
당시에도 수서발 KTX는 연간 6000억~7000억 원대 매출이 기대되는 대형 사업으로 인식됐다. 지난 12월 11일 <프레시안>이 보도했던 코레일 이사회 보고를 위한 내부 문서에 언급된 코레일의 용역 결과(관련기사 : 코레일, '수서발KTX' 개통되면 5000억 날린다)와 별다를 게 없는 분석이었다.
수조 원대의 인프라가 깔려 있는 철도 산업에 차량 몇 대, 역사 몇 곳을 갖고 뛰어들 수 있어 민간 자본 입장에서 수서발KTX 운영권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대우건설, 동부그룹 뿐 아니라, 이미 강남-분당을 잇는 분당선을 건설했던 두산건설도 한때 수서발KTX '민영 철도 운영사' 후보군에 들었다.
▲ 이명박 정부 당시 국토부가 낸 '수서발KTX 민영화' 구상. 붉은 색 노선을 '민간 운영 기관'으로 못박고 있다.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
수서발KTX 분리 반대 코레일 고위 임원이 좌천된 이유는?
'철도 민영화' 논란이 일자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은 2012년 1월 11일 '국토부에서 발표한 주요 쟁점사항에 대한 9개의 질의·응답' 자료를 내게 된다. 국토부의 '꼭두각시'라는 비판을 듣는 최연혜 사장 체제의 코레일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코레일은 수서발KTX주식회사 설립의 맹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코레일은 이 자료를 통해 "경쟁력과 효율성이 높은 KTX (수서발) 노선만을 개방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그 즈음인 2012년 2월 <프레시안>은 대우건설이 작성한 내부 보고서를 폭로했다. 2010년 10월 대우건설이 작성한 사업 제안서 'Green 고속철도 민간투자사업'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수서발 KTX주식회사 사업 참여를 염두하고 구체적인 시스템, 비용 문제까지 연구를 해 놓았었다.
대우건설의 사업 제안서가 나오기 한 달여 전인 9월, 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KOTI)는 '철도운영 경쟁체제 도입의 기대효과'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이 보고서의 내용은 대우건설 보고서 내용과 매우 흡사했다. (관련기사 : KTX 민영화, MB정부-대우건설 '짬짜미'?) 민간 기업과 이미 '커넥션'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프레시안> 보도가 나간 후 대우건설은 <프레시안>에 법적 대응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2012년 2월 19일 "수서발 KTX 운영사업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방안을 실무진에서 검토했으나 참여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후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는 수서발KTX주식회사를 민간에 넘기는 계획을 유보한다. 공식적으로는 '곧바로' 민간에 넘기지 않겠다는 방침을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민간 대기업을 들이는데 실패한 이명박 정부는 '수서발KTX 분리'를 목표로 사전 정지 작업을 꾸준히 해나갔다. 2012년 10월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2015년은 철도산업 민영화의 원년"이라는 취지의 기고(관련기사 : MB정권 5년, 철도 민영화 대재앙의 역사)를 <프레시안>에 보냈다. 이후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계획'이 박근혜 정부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나왔다. 2014년 1월 6일 지금, 그 모든 '예언'이 실현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부가 다음에 선택한 '이슈'는 철도 관제권 환수를 위한 시행령 개정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토부장관이었던 권도엽 전 장관은 '철도 민영화'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지목된 코레일의 철도 관제권을 환수하는 방안을 시행령 개정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관제권을 환수하면 코레일의 '노선 배분' 권한이 사라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독점' 구도가 깨진다는 발상에 의한 것이었다. 당연히 이 방안은 철도노조 뿐 아니라 코레일의 반발까지 불러일으키게 된다.
'철도 민영화'의 로드맵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권 전 장관은 새 정부가 들어서며 물러나게 되지만, '철도 민영화 전도사'로 불렸던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교통대학교 총장에 임명되는 등 여전히 철도 관련 요직을 지키고 있다. 이후 박근혜 정부 첫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2013년 3월 11일 서승환 장관이 임명됐다. 서 장관은 임명되자마자 권도엽 전 장관이 임기 말 검토했던 제 2철도공사 설립 방안에 대해 본격적인 검증에 돌입한다. 서 장관은 2013년 3월 25일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제2철도공사 방안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레일은 반대했다. <프레시안>이 입수한 코레일 내부 문서 '제2철도공사 설립 검토 의견'에 따르면(관련기사 : [단독] 코레일, 작년 3월 "단일 철도기관이 바람직" 결론) 당시 코레일은 제2철도공사가 "민영화의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에 "수서발 KTX는 단일 기관(코레일)이 운영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이 문서 작성에 관여한 코레일의 고위 인사는 당시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나도 처자식이 있다. 내부용 문건이기 때문에 보도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레시안> 보도 이후 이 고위 인사는 지방으로 좌천됐다.
이 사례는 그만큼 코레일이 박근혜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방증이기도 하다. 이 인사의 좌천과 관련해 국회 국토위 관련 인사는 "정부의 방침에 어긋나는 논리를 제공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민간 개방'도, '관제권 환수'도, '제2철도공사 설립'도 물 건너간 이후 국토부는 수서발KTX주식회사를 코레일의 자회사로 두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경쟁하는 '희한한 구도'를 큰 그림으로 제시한 것이다. 정부의 '코레일 경쟁력 강화 방안' 마련에 참여했던 일부 철도 전문가들을 이해시키지 못한 이 방안은 결국 '철도 산업 민간 검토 위원회'를 파국으로 이끌게 된다. 2013년 5월 16일 민간 검토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이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철도산업 발전방안' 마련 논의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밀어붙이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라는 폭로와 함께.
당시 민간위원 제안을 받았던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연합 사무처장은 "다양한 대안을 자유롭게 검토하는 자리가 아니라 경쟁체제 도입을 전제로 하는 위원회에는 참여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윤 사무처장은 당시 <프레시안>과 만나 민간위원 사퇴와 관련해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보면 된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윤 사무처장은 관련해 "(국토부의 의사 결정 기구인) 철도산업위원회의 민간 위촉직 13명의 인적 구성은 국토부의 민간검토위원회에 참여한 개인 혹은 단체, 그리고 2012년에 철도 민영화 지지 성명을 발표했던 소비자 및 교통 시민단체, 업계, 국토부 출신 등으로 사실상 친국토부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고 비판했다.
2013년 5월 21일에는 수서발KTX주식회사 설립에 미온적이라는 평을 받은 정창영 당시 코레일 사장이 사표를 제출했다. 수서발KTX주식회사 설립 '반대론자'들이 모두 '숙청'을 당한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결국 한 달여 후인 6월 26일, 국토부는 수서발KTX주식회사를 코레일의 출자회사로 두는 내용의 '철도산업발전방안'을 밀어붙여 최종 확정짓는데 성공한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KTX민영화의 시작을 알린 셈이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정치인 출신인 최연혜 사장이 코레일 사장에 발탁됐다. 그는 수서발KTX자회사 분리는 민영화 수순이라고 주장한 이철 전 국회의원이 코레일 사장을 지내던 당시 부사장을 지냈다. 또 <조선일보>에 수서발KTX 노선은 코레일이 직영하는 것이 맞다는 기고를 발표하기도 했던 최 사장은 현재 수서발KTX주식회사 설립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 사장은 철도노조 파업에서 4000명 이상의 직원을 파업 첫날 직위해제 하는 등 '무관용'의 모습을 보여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 '철도 민영화' 논란은 2014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
정부는 왜 "투자가 안될 경우"를 상정하고 있을까?
철도노조의 파업이 시작된 지난 2013년 12월 10일, <프레시안>에 제보가 들어왔다. 당시 <프레시안>이 입수한 코레일 이사회 보고용 코레일 내부 문서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 설립 및 출자계획안 요약', 그리고 최근 <프레시안>이 입수해 보도한 삼정회계법인의 수서발KTX주식회사에 대한 '타당성 검토 보고서' 등에 따르면, 수서발 KTX는 총 소요 자금 1600억 원이 투입된다. 그중 800억 원은 2014년까지 코레일 출자금과 공공부문 자금으로 채워지고, 2015년부터 나머지 800억 원을 투자받는 것으로 돼 있다. 2016년 1월 1일, 114년 철도 역사상 처음인 '제2철도회사' 소속 KTX가 수서를 출발하게 된다.
투자가 일사천리로 이뤄질 경우, 이같은 구상은 현실이 될수 있다. 그러나 <프레시안>이 최근 민주당 박수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수서고속철도(주) 설립시 코레일 영향분석'이라는 제목의 내부 보고서는 수서발KTX주식회사에 대한 공공 부문 투자 전망을 오히려 어둡게 보고 있다. 이 분석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은 "공공자금 유치 확보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금 참여가 원활하지 못할 경우에는 정부 운영 자금을 투입"한다고 돼 있다.
공공부문 자금 유치에 자신감을 보였던 국토부와 코레일이 "자금 참여" 실패를 미리 상정하고 있는 셈이다.
박수현 의원실 관계자는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정부 운영 자금을 투입한다고 돼 있는데, 정부 운영 자금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국토부는 밝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큰손'들이 손사레를 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수서발KTX 투자 자금을 모을지, 자금 모집에 실패할 경우 어떤 예산으로 어떻게 수서발KTX주식회사에 투자를 할지, 또 정부가 직접 투자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것이 진정한 '경쟁체제'에 걸맞는 것인지, 모두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라면서 "수서발KTX주식회사는 지금도 문제지만, 향후 큰 논란 거리를 안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제보'들은 끊임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민영화가 아니"라며 언급한 '철도민영화' 논란은 지난해에 이어 2014년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