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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겨울 '대통령 찬가', 2013년 겨울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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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겨울 '대통령 찬가', 2013년 겨울 "사랑합니다"

[기자의 눈] 노동계에 '전쟁' 선포하고 군부대 찾은 박근혜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유신을 선포함과 동시에 국민에 '전쟁'을 선포했다. 사람들은 받아들이던지, 받아들이지 않던지, 두 개의 답변 중 하나를 강요받았다. 한달 정도 뒤인 그해 11월, 전광석화처럼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본뜬 '박정희유신' 정권은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임명하도록 했고,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을 가지며, 횟수에 제한 없이 연임할 수 있는 폭압적 '영구 집권'의 문을 열었다. 민심은 들끓고 있었다. 유신 선포 직후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이 배포됐다.

그런 와중에 박정희는 12월 21일 기자들을 대동하고 전방부대로 향했다. 박정희는 동부 및 서부 전선을 방문한 자리에서 "요즘 남북간 긴장이 완화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전후방 장병들은 배전의 경계심을 갖고 평화 수호라는 군의 본연의 임무를 다하라"는 메시지를 내놓는다. "전방 지휘관에게 작전이 없을 때라도 장병들에게 자리한 감이 없도록 복지 및 후생 문제에 유의하라"는 '장병 생각'도 빼놓지 않았다. 요컨데, 안보에 힘쓰는 이미지, 장병 생활에 힘쓰는 이미지를 배포한 셈이다. <매일경제> 등은 박정희의 전방 시찰을 신문 1면에 보도한다.

그해 12월 27일 박정희는 '셀프 취임식'을 통해 제 4공화국 헌법(유신)공포식을 거행했다. 박정희는 "10월 유신은 민족의 자아를 바탕으로 새역사를 창조해 나갈 민족 의지의 창조적 발현"이라며 "조국의 번영과 통일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총화전진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창조'와 '자아', 어디에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다.

박정희는 "국력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과 직결될 수 있도록 모든 국민에게 일터가 보장되는 탄력성 있는 정책"을 펴고 "땀흘려 일하는 근로와 창의, 생산과 능률의 미덕을 사회윤리의 기본으로 삼고 일하는 국민에게는 안정 속에 보람 있는 생활을 누리게 할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와 복지 체제를 갖추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땀흘려 일하는…국민들에게는 안정"을 선사하겠다는 박정희의 말처럼, 그는 땀 흘려 일하지 않고 유신 체제에 반발하는 국민들에게는 안정을 선사하지 않았다. 당시 취임사가 끝난 후 육영수 여사는 초등학교 어린이들로부터 한아름의 꽃다발을 받았고, 여대생 합창단의 '대통령 찬가'를 들었다.

취임식에서 내놓은 메시지 중 하나는 범죄자 사면이었다. <경향신문>은 당시 박정희가 통금을 해제하고 일반 교도소와 군 교도소의 재소자 6200명에 대해 특별 사면과 특별 감형의 "은혜"를 베풀었다고 적었다.

▲ 1972년, 12월 27일 <경향신문> 지면 캡처


1972년 겨울, 전국에 울려퍼진 '대통령 찬가'

철도 파업으로 촉발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이 나서게 된 노동계 '동투'에 박근혜 정부는 '전면전'을 선포했다. 타협은 없고, 오로지 사법처리만 남은 듯 하다. 경찰은 5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경향신문>사에 입주한 민주노총 사무실을 쳤다. 전교조 서버와 전공노를 압수수색한데 이어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민노총 간부들에 대해 '철도노조 지도부 도피' 등을 도운 혐의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숨막힐 정도다.

그런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연말을 맞아 군부대를 격려 방문했다. 중부, 동부전선 최전방 전망대와 일반전초(GOP)를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도발을 막는 최선의 방책은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철저한 안보태세를 구축해서 감히 도발을 할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하지만 만약 도발을 해 온다면 단호하고 가차 없이 대응해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근무 중인 장병들을 격려했고, 초소를 떠나기 전 배웅하러 나온 장병 20여명과 한 명씩 포옹을 했다. 박 대통령이 안아줄 때마다 장병들은 "사랑합니다"를 외쳤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와 함게 설 특별 사면 단행을 지시하며 "사면 대상은 가급적 서민들에 실질적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주민,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등이 사면 대상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과거 박정희도 유신 반대 투쟁으로 구속된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일부를, 1975년 초 유신헌법 찬반 투표를 실시한 후 일부 석방해준 적이 있다. 타협 없는 '국민과의 전쟁터'에서 잡혀들어온 '포로'를 풀어주는 식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는 말은 이럴 때 나온다. 유전학적 성질의 것이 아니라, 정무적인 기질이다. 어릴 적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유신 정권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던 그가 아버지를 통해 배운 '정무 기획'과 지금의 상황, 한치의 어긋남이 없다. 소름이 끼칠 정도다.

1975년 유신반대 투쟁의 불길을 누르기 위해 박정희는 유신헌법 찬반 투표의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고는 정치 토론을 금지시켜버렸다. 투표지를 주고 손발을 잘라버린 형국이었다. 당시 김두영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의 딸이었던, '박근혜 영애'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유신) 헌법에 관한 찬반 토론을 허용하는 게 좋습니다'라는 말을 전달해달라"

박정희의 대답은 "유신의 정당성은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며 "찬반 토론을 허용하면 이 겨울에 내가 고무신, 밀가루 들고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지 않겠나"라는 것이었다. 선거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가 유신 찬반 투표를 금지하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한 셈이다. 이후 어떻게 됐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 체제의 안정 속에 '새마음운동'을 조직, 아버지의 뜻을 따라 국민 총화에 더욱 노력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철도노조 파업이 한창인 24일, 동부전선 최전방부대인 강원도 양구군 12사단 을지대대를 방문, GOP 근무장병은 안아하고 있다. 2013.12.24 ⓒ연합뉴스

2013년 겨울, 전방 부대에 울려퍼진 "대통령, 사랑합니다"

박정희는 철권통치기간 내내 '국민과의 전쟁'을 치르는 틈틈이 전방부대를 시찰하고, 아버지의 모습으로 장병들을 격려하며, 농민들을 찾아 '시바스리갈'이 아닌, 막걸리잔을 기울였다. 1972년 12월 27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한 서민의 집을 방문하는 박정희 사진의 구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쪽방촌을 찾아 고개를 내밀던 그 구도와도 비슷하다. 미학적 관점에서도, 정무적 관점에서도 그렇다.

'부전자전'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는 '유신의 후예'들이 너무 많다. '악질적 국민'에게는 경찰봉을, '선량한 국민'에게는 사랑을 보여주는 박정희식, 혹은 박근혜식 통치 방식이라 부를만 하다. 군부대 시찰, 그리고 특별 사면이라는 이벤트 속에서 '경찰봉'의 이미지가 희석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물고문'보다 박정희의 '막걸리'를 기억하는 노년층이 여전히 많은 것처럼. 이는 변종 '양동작전'이고 '기만전술'이다.

대통령에게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병장이나 이등병처럼, 우리는 내년에도 "정부를 믿으라"는 말과,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강요받을 것 같다.

유신을 선포하고 군부대를 시찰하고 6000명 이상의 재소자를 사면해준 72년 연말 풍경, 그 이후에는 박정희 정권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DJ 납치사건과 '인혁당 사법 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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