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의 과잉충성이 낳은 굴욕이라기보다는 MB정부 때부터 이어져 온 청와대의 과잉충성 유도형 인사스타일이 낳은 굴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MB정부 때 눈에 띄게 승승장구한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집회와 시위를 강경진압한 경찰 수뇌부 출신이 유난히 많았는데요. 박근혜 정부도 MB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의 당선 후 첫 번째 인사가 과잉충성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윤창중(전 청와대 대변인)이었다는 것은 시사적인데요. 22일의 경찰의 굴욕은 명분 약한 박근혜 정부의 경찰 과잉충성 유도전략이 낳은 굴욕이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2. 명분 약한 박근혜 정부라 했는데요. 그렇게 규정할 만한 근거가 있나요?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내세운 공약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경제민주화, 다른 하나는 복지지출 확대. 그러나 지금의 박근혜 정부 동향을 보면 더 이상 경제민주화 공약을 실천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반기에 참새 눈꼽만큼 추진한 경제민주화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부 대통령 측근들 사이에는 그것마저 후퇴시켜야 한다는 퇴행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복지지출 확대 공약도 원래 공약의 5분의 1 수준 혹은 4분의 1 수준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판단하기로는 연간 27조 원의 복지확대를 약속한 박 대통령의 공약 중 자력으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것은 최대 5조 원입니다. 현 정부가 부자감세 철회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그 이상을 자력으로 조달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거대한 거짓말에 속았다는 것을 점차 깨닫고 있습니다. 최근 '안녕들 하십니까' 신드롬이 발생한 것도 고려대 한 학생의 글이 국민들의 이와 같은 공통된 깨달음이라는 화약고에 불을 당겼기 때문입니다.
3. 재원 조달이 어려워 공약이 크게 후퇴한다는 비판이 거세면, 국가부채를 늘려 공약을 좀 더 실천하는 꼼수를 동원하지 않을까요?
⇨ 그럴 가능성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국가부채를 늘려 복지지출을 확대하는 것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불장난이므로 대선 공약으로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참고로 국가부채는 김대중 정부 때 연평균 14.7조 원 증가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22.5조 원, 이명박 정부 때 30.2조 원, 박근혜 정부 때 36조 원 증가했습니다.
▲ 최연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이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코레일 서울사옥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독일식 주장한 최연혜 사장, 독일식이 곧 민영화다
4.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정부와 코레일 노조가 격렬하게 충돌한 가장 큰 원인이 무엇입니까?
⇨ 정부의 뜻에 따라 코레일이 설립하려고 하는 자회사 '수서발KTX 법인'을 놓고 양측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는데요. 노조는 이 자회사가 민영화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고, 정부와 코레일은 민영화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5. 양측이 이와 같이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 정부와 코레일 측은 자회사를 세우더라도 민간자본 참여를 봉쇄했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노조 측은, 정부가 자회사를 주식회사 형태로 만드는 것 자체가 민영화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에게 민영화 의지가 없다면 수서발KTX 법인을 코레일 모회사처럼 100% 정부 출자 기업으로 만들면 되는데,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향후에 주식을 민간에 매각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겁니다.
6. 정부와 코레일 측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철도개편이 독일식 경쟁체제를 지향하는 것으로 민영화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 정부와 코레일 측이 추진하는 철도개편은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발표한 몇 편의 논문 내용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들 논문을 보면 그가 독일식 철도 개편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 사장이 자신의 논문에서 독일식 철도 개편에 대해 '민영화'라고 명확하게 못을 박고 있다는 겁니다. 그는 2001년 4월 교통연구원이 발간하는 <월간 교통>에 '독일연방철도청의 철도구조개혁'이라는 논문을 기고했는데요. 이 논문을 보면 '독일철도청 민영화의 주요 특징'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황당한 것은 최 사장이 독일의 철도개편을 흉내내겠다고 하면서 또 이와 같은 철도개편이 민영화라면 철길에서 드러눕겠다고 공언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논문에서도 독일의 철도개편이 '민영화'라고 명확히 규정했습니다. 최 사장에게 지식인으로서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할 겁니다. 즉 철길에 누워 정부의 독일식 민영화 철도개편에 반대하는 의사를 반드시 표현해야 할 겁니다.
7. 최 사장 논문 내용이 무척 궁금한데요. 그가 말하는 '독일철도청 민영화의 주요 특징'은 어떤 것입니까?
⇨ 그는 논문에서 독일철도청 민영화의 주요 특징으로 여덟 가지를 거론했습니다. 그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관청 형태에서 주식회사 형태로, 주식은 100% 정부가 보유한 공사형태로 전환되었다. 둘째, 부채탕감이 이루어졌다. 셋째, 근거리여객수송 부문의 공공서비스 의무를 면제해주었다. 넷째, 상하분리원칙이 적용되었다. 다섯째, 동독철도의 복구 및 개량비용은 연방정부가 부담한다. 여섯째, 기업회계제도를 채택하였다. 일곱째, 신설노선의 건설 및 기존설비 개량을 위해 연방정부가 재정을 지원한다. 여덟째, 철도공무원을 연방철도자산단에 귀속시킴으로써 철도주식회사에 대해 공무원의 인건비 부담을 경감시키고, 인사정책상의 경직성을 완화시켰다."
8. 최 사장은 정부가 주식의 100%를 보유했다 하더라도 그 회사가 주식회사 형태이면 그것을 민영화로 보았군요?
⇨ 그렇습니다. 최 사장은 논문에서 정부의 보유 지분 비율이 아니라 그 회사의 성격을 기준으로 민영화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즉 그 회사가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민영화라는 겁니다. 최근 이철 전 코레일 사장도 모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비슷한 논리를 편 적이 있습니다.
9. 앞에서 소개한 최 사장의 논문에 '상하분리'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건가요?
⇨ 철도사업에서 '상하분리'란 운송부문과 선로 등 인프라 부문을 별개의 기관으로 분리하는 것을 말하고, '상하통합'이란 두 부문을 한 개의 기관 하에 두는 것을 말하는데요. 우리나라는 운송부문은 코레일이, 선로 등 인프라 부문은 철도시설공단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상하분리형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10년 전 시행한 상하분리로 철도의 국제경쟁력을 후진국 수준으로 퇴행시켰다는 것인데요. 전세계 고속철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상하분리는 고속철도 수주경쟁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10. 상하분리가 고속철도 수주경쟁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는 이유가 뭔가요?
⇨ 최근 중국을 비롯한 인구대국들이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이들 국가들의 고속철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철도시장 컨설팅업체들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철도시장 규모는 220조원~230조원에 달합니다. 그런데 중국 등 신흥개발도상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처럼 운송부문과 선로 등 인프라 부문이 각기 다른 기관에 의해 관장되고 있고 심지어 두 기관이 발주경쟁을 하고 있다면, 이런 나라들에게 고속철도 공사 발주를 하는 것을 기피하게 됩니다. 10년 전 일부 학자들의 선무당 사람잡기식 상하분리 논리가 철도의 수주경쟁력을 후진국 수준으로 퇴행시킨 겁니다.
11. 일부 학자들은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별 문제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 황당한 궤변입니다.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이 경쟁하도록 하기 위해서 두 기관 분리를 주장한 사람들이 이제 와서는 국제수주경쟁에서만큼은 컨소시엄을 구성하라고 요구한다면 일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지난 8년 동안 두 기관이 협력해서 수주한 철도사업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방글라데시 철도시스템 현대화 사업과 캄보디아 철도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사업에서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은 수주를 놓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12. 전세계적으로 상하분리형과 상하통합형을 채택한 나라들 비율은 각각 어느 정도입니까?
⇨ <파이낸셜뉴스>가 지난 2월 21일 국제철도연맹(UIC) 자료를 인용하여 보도한 바에 따르면, 회원국 80개국 중 60개국이 상하통합형을 채택하고 있고, 20개국이 상하분리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비중을 보면 75%대 25%입니다. 세계 철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캐나다, 독일, 중국 등은 우리나라와 달리 모두 상하통합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13. 코레일의 최연혜 사장은 자신의 논문에서 독일이 상하분리원칙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나요?
⇨ 최 사장 주장은 OECD 산하의 ITF(국제교통포럼)이 2009년에 내놓은 보고서 ("Long-Distance Passenger Rail Services in Europe, 유럽의 장거리 승객 열차 서비스, 2009) 내용과 전혀 다릅니다. OECD ITF는 이 보고서에서 유럽 국가들의 상하통합, 상하분리 정도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요. 이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는 지주회사 통합으로 운영되고 있고,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은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의 경우에는 형식적으로 부분분리가 이루어져 있는데요. 최근 프랑스는 상하통합으로의 전환을 기정사실화하고 하고 있습니다.
14. 최 사장과 OECD ITF 주장 중 어느 쪽 주장이 더 정확한가요?
⇨ 무턱대고 OECD ITF의 권위에 의존해서 이들의 주장이 최 사장 주장보다 더 정확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종원 카톨릭대 교수 등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논문, '유럽철도 사례의 경험과 교훈'을 보면 최 사장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10년 6월 유럽연합이 13개 회원국을 유럽재판소에 제소했는데요. 그 이유는 독일, 프랑스 등 일부 국가들이 EU의 상하분리 지침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럽재판소는 그해 9월 유럽 각국이 상하분리를 강요하는 EU의 지침을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했는데요. 어쨌든 독일이 EU의 상하분리 지침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소된 점에 비춰 볼 때, 이 나라가 상하분리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는 최 사장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유럽재판소의 판결이 나오자, 독일 DB(Deutsche Bahn)의 그루브 회장은 그 결과에 환영 의사를 표시하고, "독일은 철도운영·시설의 통합형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라 밝히기도 했습니다.
15.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민영화 반대론자였던 최연혜 사장이 변절을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요. 최 사장의 행보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 최연혜 사장이 변절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최 사장은 원래 '골수 민영화론자'였습니다. 그가 1997년에 쓴 보고서 '유럽 주요국 철도 민영화와 시사점'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EU의 제도가 유럽의 민영화 개혁을 이끌어내기는 역부족이다." "EU가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경쟁을 촉진해야 진정한 민영화를 이룰 수 있다." 그 이후에도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쟁 확대를 외쳤고, 민영화의 성과를 부각시키기에 바빴습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 최연혜 사장을 민영화 반대론자로 오해했던 것은 그가 2002년 참여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에 참여했고, 2004년 철도청 차장이 되면서 민영화 반대론자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자신을 민영화 반대론자로 포장했기 때문입니다.
16. 최 사장은 지난해 4월 총선 때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지요?
⇨ 그가 진정한 민영화 반대론자였다면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부동산 거품 붕괴, 자본이 공공부문으로 몰린다
17. 최근 박근혜 정부가 철도, 의료 등 각 분야에서 민영화를 강도 높게 추진할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데요. 현 정부가 왜 이렇게 민영화에 목을 매는 겁니까?
⇨ 중남미에서 민영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1990년대 전반기의 시대적 상황을 되돌아 보면 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민영화에 목을 매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전반기는 전세계 선진국들의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던 시기였습니다.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른바 큰 손들이 붕괴 초기에 별다른 손해 없이 손 털고 도망갑니다. 그리고 거품 상승기에 벌어 들인 돈을 굴릴 곳을 찾게 됩니다. 1990년대 그 출구가 바로 아시아와 중남미였습니다. 이들 부동자금 소유자들은 아시아에서 또 다른 거품을 키워 돈을 벌어 들였고, 중남미에서는 민영화를 유도하여 돈을 벌어 들였습니다. 물론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각국은 외환위기로 무너졌고, 중남미 각국은 서민경제가 무너져서 대다수 국가의 정권이 좌파로 넘어갔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민영화 세력들이 준동하는 것도 1990년대 전반기와 유사한 시장 상황(부동산 거품 붕괴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18. 최근 민영화 세력들이 준동한다는 근거가 있나요?
⇨ 저는 최근 2~3년 사이에 상당히 우려스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민간단체나 지방자치단체 주변에서 민자사업 브로커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접한 겁니다. 이들의 주장 요지는 자신들이 투자자들을 모을테니 공공부문과 자신들이 합작하면 국민 세금을 들이지 않고도 공공복지를 대폭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투자자들에게는 약간의 수익률만 보장해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왜 이들이 공공부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일까? 그것은 1990년대 전세계 부동자금들이 중남미 공공부문을 민영화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처럼, 국내의 부동자금 브로커들도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상황에서 공공부문을 쏠쏠한 투자처로 지목했기 때문입니다.
19.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상황에서 공공부문이 쏠쏠한 투자처라는 근거가 있나요?
⇨ 지난 10여 년간 부동자금 소유자들은 부동산 투기로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당분간 부동산 투기로 재미를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 주식시장에서도 당분간 수익을 많이 내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의 경기 회복은 더디기만 하고, 유럽과 일본의 재정위기는 쉽사리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중국은 저성장 시대로의 진입을 코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공부문은 어떨까요?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 수익률이 1~2%인데, 공공부문 수익률이 4~5%라면 부동자금 소유자들과 브로커들은 공공부문에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로 하여금 민영화에 목을 매게 하는 세력들은 물론 부동자금 브로커들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세력들입니다. 이들은 현 정부 집권 초 1년 사이에는 경제민주화 공약 논란 속에 숨 죽이고 있었지만, 이제 1년이 지나고 맹목적인 경제활성화론이 고개를 들자 슬슬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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