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동료들 다 해고돼도 민영화는 추진되겠죠. 그러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동료들 다 해고돼도 민영화는 추진되겠죠. 그러나…"

[현장] '철도 노동자' 김필호 씨 이야기

철도 기관사 김필호(47, 가명) 씨는 10일 오전 7시에 기상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말했다. "아빠, 파업 잘 돼? 날 추운데 몸 잘 챙겨요." 김 씨는 아들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도 못 먹고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이날 김 씨는 '비번'이다. 그러나 그는 발길을 서울역으로 돌려야 했다. 파르라니 머리 깎은 동료들, 밤새 토론하느라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파업에 참여한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다.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아빠 응원할게"라는 아들의 말이 생각났다.

김 씨는 누리호를 운전하는 기관사다. 충남 신창에서 수도권을 잇는 누리호는 '수도권 시민의 발' 역할을 하는 '통근 열차'다. 김 씨는 누리호를 타는, 가방 맨 통근 학생들의 표정을 떠올렸다. 필수유지업무자 인원이 넉넉해 누리호 정도는 운영이 가능하겠거니 생각했지만 웬일인지 코레일은 누리호 운행을 10일 전면 중단시켰다. 김 씨는 분통이 터졌다. 가장 중요한 통근 열차 중 하나인데, "무슨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발을 동동 구를 통근 학생들이 눈에 밟혔다. "불편을 조금만 참아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동료들과 달리, 김 씨는 '필수공익사업장유지업무자'다. 2007년 11월 노동법 시행령 개정으로 철도·항공운수·병원 등 필수공익사업장에서 직권중재가 폐지되는 대신 합법적으로 파업하더라도 필수업무는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의무 조항에 따라 생겨난 '신분'이다.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된 곳에서 파업을 할 경우 반드시 노사간 '필수유지업무협정문'을 만들어야 한다. 파업 전 이미 만들어진 협정문에 따라 김 씨의 근무도 배정됐다.

김 씨는 2009년 9월, 철도노조가 8일간 파업을 벌일때 참여했다가 징계를 당했던 전력이 있다. 본의와 상관없이 당시 징계를 피할수 있었던 필수유지업무자들이 이번에는 머리띠 묶고 파업에 나섰다. 당시 징계를 받았던 파업 참가자들은 기꺼이 필수유지업무를 맡았다. '파업 교대제'가 새로 생긴 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씨는 "법이 이상하게 돼서…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이 대합실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국민 살림 지키는 파업, 철도 민영화는 재앙이다"

인천에서 출발한 그는 아침 출근길을 뚫고 자신과 같은 '필수유지업무자' 동료가 운전하는 수도권광역철도(1호선 중, 코레일이 운영하는 노선)를 타고 파업 현장에 나가 '출근부'를 찍었다. 입김이 나왔다. 오전 9시, 별안간 날씨가 추워졌다는 뉴스를 확인하며 집회에 참석해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다. "국민 살림 지키는 파업, 철도 민영화는 재앙이다." 휴대폰 액정화면에 속보가 떴다. "코레일 이사회, 수서발 KTX 법인 설립 의결"

"생각해 보세요. 수서발 KTX 법인이 만들어지면 코레일 매출이 연 5000억 원 줄어듭니다. 그러면 국민 세금이 또 들어가겠죠. 그와 함께 경영 압박이 들어옵니다. 줄일 것은 줄여야겠죠. 제일 먼저 노동자들의 목이 날아갑니다. 우리가 하는 일 중 하나가 계속 안전 점검을 하고 문제가 발생하기 전 장비 교체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아끼고 있는 안전 시설 교체 비용, 이제는 더 하지 않게 되겠죠. 안전이 위협받게 됩니다.

압박을 받다보니 요금을 올립니다. 노동자 자르고, 시설 투자 안하고, 요금 올라가고. 악순환입니다. 수서발KTX라고 다를 게 있나요. 코레일이 뼈를 깎아 수익을 내면 수서발KTX는 자동으로 수익이 악화됩니다. 수익 안 나오면 구조조정합니다. 그러면 서비스가 나빠집니다. 코레일과 수서발KTX가 서로 제살 깎아먹기를 합니다. 그러다 코레일이 정관을 고쳐 수서발KTX 지분을 민간에 팔아버립니다. 그러면 민영화됩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이 것을 막지 말라고요?"

김 씨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이날 서울 서부역에서 열린 집회는 오전 11시 경 마무리됐다. 서울역 대합실을 지나며 구호를 외친 후 서울역 광장에 나와 기자회견을 했다. 점심은 먹는둥 마는둥. 각 지부별로 투쟁 지침이 내려오고 그에 따라 선전전을 벌인다. 파업 참가자는 아니지만, 일을 하는 날이 아닌 한 '투쟁 지침'을 따른다. 내일은 근무일이다. 파업에 참여한 동료들 4300명이 벌써 직위해제를 받았다. 그런 동료들을 뒤로 하고 시민들의 '발'이 돼야 한다. "철도 파업으로 출근길 대란"이라는 기사가 뜨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확실히 느끼는 것은 2009년 파업때 비해 '악플러'들이 사라졌다는 점이예요.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에서 퇴출돼서 그러나?(웃음) 그래서 그런지 시민들이 예전에 비해서는 철도 파업에 더 힘을 실어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개중에 '배부른 공무원들의 파업'이라며 비난하는 댓글들이 있긴 해요, 2009년 파업 때는 그런 댓글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확실히 분위기가 다릅니다. 그런 댓글 중에는 2009년에 본 댓글하고 똑같은 내용이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똑같아서 '2009년에 댓글 달던 그 공무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니까요.(웃음) 인터넷 댓글들 중에 비난하는 댓글을 보면 '우리 뜻은 그게 아닌데' 하면서, 악플러에 시달리는 연예인들이 이런 심정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시민들이 보내온 '철도 파업 지지 인증샷'들 ⓒ철도노조

"모든 조합원이 해고돼도 철도 민영화는 추진되겠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쳤던 짤막한 기사가 있다. 지난달 27일자 <매일경제> 기사다.

"내년부터 공공기관 기관장이 경영 개선을 위해 노조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파업이나 직장폐쇄에 이르더라도 책임을 면하게 된다. 공공기관장이 노조 눈치를 보지 않고 방만 경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는 셈이다. 27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다음주 중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마련해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안식년, 고용승계, 학자금 무상지원 등 국민이 느끼기에 과도한 복지정책을 폐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정상화 과정에서 파업이나 직장폐쇄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이나 북한 장성택 실각설 등 굵직한 이슈에 묻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코레일 최연혜 사장이 파업 참가자 4356명 전부를 직위해제 하는 강수를 둔 배경으로 의심되는 부분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장에게 공공기관 파업 엄단의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실제로 코레일은 파업 첫날부터 참여자 전원 직위해제, 간부 고발조치 등을 일사천리로 관철시켜 나갔다.

"저는 2009년에 징계를 받았어요. 제가 징계를 받았을 때는 사실 별로 큰 느낌이 없었는데, 지금 필수유지업무자가 돼 파업 참가 동료들이 징계를 받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네요. 사실상 징계를 나눠 받고 있는 셈인데도 그래요. 정부가 '엄단' 방침을 내놓자마자 코레일이 시험대에 오른 것 같아요. 파업 첫날에 전원 직위해제라. 예상은 했지만, 확실히 세네요."

김 씨는 "2009년 파업때 징계를 받았지만 가족들은 내가 하는 일이 옳은 것으로 믿어주고, 힘을 북돋아준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도 민영화를 막아내기 위해 일터를, 천직을 걸고 뛰고 있는 데 대해 가족들이 가장 힘이 된다"고 말했다.

"솔직히 저 쪽에서 강행하면 별 방법이 없습니다. 더 강하게 나가고, 모든 조합원이 해고되도 철도 민영화는 추진되겠죠. 그러나 그냥 두고 보는 것은 더 큰 죄책감이 드는 일입니다. 결과야 어찌됐든 지금 우리는 '정당성'을 갖고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는 없을 겁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