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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시간제요? 언론에 솔직히 말하기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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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기업 "시간제요? 언론에 솔직히 말하기 어려워요"

[시간제 일자리 ④]기업 입장에선 '부담'…朴 관심에 압박만

15세 이상 인구가 1만 명인 나라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중 6000명이 취업자라면 현재 고용률은 60%다. 내년에 이 나라에는 1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길 예정이다. 현재 비취업자 100명이 그 신규 일자리를 하나씩 나눠 갖게 된면 고용률은 61%가 된다.

그런데 이 나라 대통령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놨다. 신규 일자리 가운데 10%를 '시간제선택제일자리(시간제일자리)'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다. 이렇게 하면, 90개의 전일제 일자리와 20개의 시간제일자리가 시장에 생긴다. 비취업자 110명이 이를 나눠 갖게 되면, 고용률은 '손 안 대고 코 푼 격'으로 61.1%가 된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정책의 민낯이다. 일자리를 새로 만들지 않고도, '쪼개기'만으로 고용률 지표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정책이란 것이다. 정부는 이미 공무원과 교원 신규 인원의 3~9%, 공공기관 신규 인원의 3~10%를 2배수로 키워 시간제로 뽑으란 지침을 각 기관에 하달한 상태다.

저성장 시대에 본격 진입한 한국의 고용률 지표가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고용률을 억지 부양해선 곤란하다. 일자리는 개개인의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시간제일자리 정책은 '정부 스스로 괜찮은 일자리 만들기 포기를 천명한 꼴'이라는 비판마저 나오는 상황. '시간제일자리' 논란을 4회로 나누어 짚어본다. <편집자>

시간제 일자리 논란
'투잡' 뛰어 한 달 150만 원, 이래도 양질의 시간제?
② 정부의, 정부에 의한, 정부를 위한 정책, 시간선택제
③ "시간제 교사 늘어난 학교에 내 아이 안 보내고 싶다"
④ 대기업 "시간제요? 언론에 솔직히 말하기 어려워요"


"글쎄, 시간제일자리, 그거 뽑아서 어디에 쓰죠? 애매하네. 한정된 업무에서는 가능하겠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숙련도가 중요한데, 주요 업무에서는 시간제일자리가 별로 필요하지 않죠…."

업계 수위를 차지하는 한 대기업의 간부가 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용율 70% 달성 공약에 재계 인사 담당자들이 분주해졌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이라는 것이 말은 쉽지만 시간제 고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업무와, 시간제로 해결할 수 없는 업무가 있기 때문에 이를 새로 파악하느라 바쁘다.

정권 초반이다. 주요 대기업은 총 1만여 명 규모의 시간제 노동자 채용에 나섰다. 코엑스에서 박람회까지 성대하게 열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다. '압박'인지, '독려'인지, '칭찬'인지, 박 대통령의 참석 의도나 의미를 알수는 없다. 순수하게 '정치적'으로만 접근하는 이들은 "기업들이 알아서 '팔 비틀기'하는 것"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표면적인 '기대감'은 어느 정도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기업은 숙련된 인력을 고용할 수 있어 좋고 근로자는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이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장점이다. 올해 채용 효과를 보고 앞으로 확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고 2000여 명을 채용할 예정인 롯데마트 노병용 사장은 "장시간 고객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유통업에 시간선택제 근로가 적합하다"며 "국가적으로도 고용 유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의 말처럼 시간제일자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끝나지 않고, 기업의 새로운 고용형태로서 '윈윈'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 각 기업들이 내놓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및 채용 관련 브로셔 ⓒ프레시안

대기업 관계자 "정부가 저렇게 나서는데, 언론에 솔직히 말하기 어려워요"

<프레시안>은 기업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상당수 대기업 관계자들이 "시간제일자리에 대해 워낙 부정적인 기사가 많아서 언론에 솔직히 말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10대 그룹의 한 간부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시행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향후 시간제 고용이 정착되면 고용 안정성이 보장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 인사는 "솔직히 말해봅시다. 기업 입장에서 '고용 보장'을 확언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일자리의 '질'은 썩 좋다고 평하기 어렵다. 기업의 핵심 업무는 소수에 그치고 있으며 주로 단순 노동이나 그간 협력업체나 비정규직 등으로 채워졌던 일자리를 '시간제 고용' 형태로 내놓았다. 삼성이 6000여 명, 롯데가 2000여 명, 신세계가 1000여 명 순으로 가장 많고, 나머지 대기업은 수백명 대의 채용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일자리 성격은 주로 개발, 사무, 판매 지원(삼성), CS강사, 식품 안전 관리, 점포 관리(롯데) 진열, 판매, 바리스타(신세계), 간호사, 약사, 매장 운영(CJ), 뷰티컨설턴트, 콜센터상담원(LG), 승무원, 공항 운송(한진), 텔러(신한금융), 삭자재검수, 고객상담(한화) 유통, 판매(GS), 고객상담(SK) 등이다.

시간제일자리 채용에 뛰어든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유통업'계 기업의 경우 시간별로 손님이 많고 적은 상황이 있어서 예전부터 적절히 시간제일자리를 도입해왔다. 이번에 그런 인원을 조금 더 뽑는 것이어서 큰 부담은 아니지만 더 늘릴 여지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던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유통업계 쪽 사람들은 주력이 제조업인 회사에서는 어떻게 시간제일자리를 마련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시간제일자리를 급조해 만든 기업과, 예전부터 시간제 근로자를 쓰던 기업의 경우 부스나 프로그램 준비 등의 분야에서 차이가 나더라"고 말했다.

인사 담당자들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민간 기업에 제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 상황은 지나치게 급하게 시스템을 마련하다보니 인사 담당자들이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관련해 재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대개 한정돼 있는 직군들에서 시간제일자리로 채용하거나, 기존에 존재하던 일자리를 시간제일자리로 포장해 내놓은 것들"이라며 "정부에서 하는 시간제일자리 정책이라 동참은 하지만, 기존에 시간제일자리를 채용해왔던 기업은 그들대로, 시간제일자리 채용을 처음 해보는 기업은 또 그들대로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기업 입장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시간제일자리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의 '일자리 시스템'에서 협력업체와 계약하고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 더 이익일 것"이라며 "노무 관리도 잘 되지 않고 복잡한 시간제일자리 시스템을 새로 만드는 것이 오히려 부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자연스럽게 '반듯한 시간제일자리' 확산을 유도하는 식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 분위기에 쫒긴 '급조된 채용'이 이뤄지면서 시간 선택제 일자리의 장점도 제대로 살릴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홍 소장은 한국의 '기업 문화'도 지적했다. 그는 "복지 제도 등 사회 시스템이 부실한데다, 독특한 기업 문화가 있는 한국에서 이 시스템이 자리를 잡을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승진은 어떻게 될 것이고, 회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관계가 기업 문화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면 시간제를 택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기업 문화 등에서 소외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인사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시간제일자리'를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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