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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몰이 속에 갈 길 잃은 한국외교

[정전 60주년, 평화를 선택하자] 종북 논란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철도파업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20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12월 셋째 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최초로 50% 미만인 48%로 추락했다. 부정평가는 41%로 급증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이는 2013년 4월 이후 최초의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 이유로는 '외교/국제 관계'(15%), '소신 있음'(15%), '열심히 한다/노력한다'(13%), '대북/안보정책'(12%) 등의 순이었다. 반면 부정평가를 내린 이유로는 '소통 미흡'(20%)이 가장 많았고 이어 '공기업 민영화 논란'(14%), '공약실천 미흡/공약에 대한 입장 바뀜'(13%)등의 이유를 들었다.

여론조사결과는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주로 외교관계의 성과나 원칙적인 대북정책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권 초 인사 난항으로 51%에서 42% 수준으로 곤두박질한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은 4월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이유로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하고 개성공단을 사실상 폐쇄하자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5월과 6월 한미·한중 정상회담을 잇달아 성사시키면서 50% 선을 회복하고,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와 재가동이 이루어진 8월에서 9월 초 사이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60~67%의 최고 수준을 기록한다. 8월 말 국정원이 터뜨린 소위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국정원 대선개입 추문을 종북 담론으로 회피하는 좋은 구실을 제공하기도 했다.

▲ 한국갤럽이 지난해 12월 19일 공개한 2013년 월간통합 여론조사 중 지난 2월부터 실시된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 추이 그래프. ⓒ한국갤럽

하지만, 종북 담론의 지지율 지탱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갤럽의 조사결과를 다시 인용하자면, 오히려 9월 중순을 정점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정점으로 완만하게 추락하기 시작한다. 9월 21일 남북 간 예정되었던 이산가족 상봉이 돌연 연기되었고 그 이후 남북관계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해 9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통일의식조사'의 결과는 매우 시사적이다. 통일에 기여할 정책수단에 대한 선호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0.8%가 정기회담 > 61.8%가 경제협력 > 58.7%가 사회문화교류 > 46.3%가 인도적 지원 순으로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우리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하고 있는 대북사업 중 하나인 금강산관광에 대해서도 재개되어야 한다는 견해의 비중(2010년 60.1%, 2011년 61.4%, 2012년 62.5%, 2013년 57.4%)이 재개 반대의 비중보다 더 많게 나타났다. 한편, 2014년 신년특집으로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등을 협조를 받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북통일을 위해 우리 정부가 북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0.1%는 "북한 정권을 자극해 역효과가 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각종 여론조사는 남한 내에 횡행하는 종북몰이에도 불구하고 남한 주민의 과반수가 북한과의 협력을 지지하고 있고, 3분의 2 이상은 남한이 북한을 자극하기보다는 정상회담 등 남북 당국 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각종 조사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지탱해온 소위 '원칙적인 대북관계에 대한 지지'의 실내용이 사실은 군사적인 대북강경책 혹은 대북봉쇄정책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대북관계개선을 실질화 할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에 대한 기대에 기반한 것임을 알려준다.

이러한 남한 내 여론동향은 박근혜 정부의 종북몰이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중의 딜레마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 우선,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종북몰이는 남한 내부에서 긍정적 정치효과를 가져다주기보다는 도리어 불통의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지지율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종북몰이에 내포된 혐북주의는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악화시키거나 혹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국민의 기대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권의 외교정책이나 대북정책 성공 가능성을 축소시킴으로써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 하락 가능성을 높이는 자충수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근시안을 잘 보여주는 사례는 국정원의 NLL 대화록 공개사건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규명을 호도하기 위해 남재준 국정원장은 지난 6월 NLL과 관련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 박근혜 정부의 시도는 초기 야당을 혼란에 빠뜨림으로써 목적을 이루는 듯 보였지만, 궁극적으로는 대선개입 진상규명 요구를 덮지 못했다. 대신, 남북 정상회담 비밀회의록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단공개함으로써 남북 간 신뢰관계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혔고, 자신이 주창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도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추진하려 할 때, 대화록 공개 사례가 대북협상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종북몰이 혹은 종북 담론이 지닌 치명적인 역효과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사회에 획일적 태도를 강요함으로써 사회적 계층적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점, 그리고 맹목적이고 종속적인 군사주의를 고취시킴으로써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긴장과 갈등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에 있다.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여 종북주의자들을 색출하자는 식의 공안정국을 조성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남북대화나 평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입지도 약화된다. 반면, 북한을 혐오하는 정서와 군사주의가 득세하여 모든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화된다. 또한 냉전적 군사주의가 강화되는 것과 더불어 북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미국이 지향하는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에도 참여하자는 한다는 냉전적 주장에 대해 견제장치가 힘을 잃게 된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종북몰이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원치 않는 미·중 갈등의 한복판으로 한반도 주민을 내몰고, 이를 견제할 민주적 통제장치마저 무력화할 수 있다.

다시 조선일보의 여론조사로 되돌아가면, 미·중·일·러 등 주변 4개 국가 중 통일에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는 미국(29.4)이 꼽혔고 이어 중국(7.6%), 러시아(5.3%), 일본(2.0%) 순으로 선택되었다. 하지만 응답자의 절반(50.9%)은 '어느 나라도 통일에 우호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18일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의 '2013년 통일의식 여론조사'에 의하면, 통일을 가장 방해할 나라는 중국 45.2%(2012년 67.6%), 일본 28.6%(2012년 11.6%), 미국 19.2%(2012년 16.4%)순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런데 주의 깊게 보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2012년과 비교하여 급속히 줄어드는 반면, 일본과 미국에 대한 경계심은 급속히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2013년 일본과 미국을 선택한 경우를 합하면 47.8%로 중국을 선택한 비율보다 높다. 미·일 동맹에 편승하여 중국과 대치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고 해석할만한 대목이다.

신년 들어 일부 보수언론 지면조차 한국외교가 중·일 갈등 혹은 미·중 갈등 상황에서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는 논조의 글을 간간히 싣고 있다. 긍정적인 변화로 여겨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미국 핵잠수함 혹은 일본 자위대의 이지스함이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할 것을 우려하는 이들을 '비국민' 혹은 '종북주의자'로 매도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미국 따라 강남 가는 식의 낡은 한국외교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지혜를 찾을 가망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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