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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제' 어떻게 끝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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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제' 어떻게 끝낼 것인가?

[박동천 칼럼] 바람직한 개헌의 방향

새해 벽두부터 개헌이라는 단어가 떠돈다. 언필칭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약간의 울림을 가지는 모양이다. 개헌이라도 해서 한국 정치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개헌에 동조하겠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느냐는 질문으로 접어들면 중구난방 합의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의 경험에 비춰보면, 세론이 중구난방으로 헷갈리는 사이에 몇 사람의 조작에 의해 얼렁뚱땅 개헌이 이뤄지고 말 확률도 꽤 높다. 이런 식의 개헌은 정치에 대한 불신만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소모적 정치를 극복하는 길로서 개헌은 일단 훌륭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모든 개헌이 선일 수는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지금보다 더 나은 헌법을 찾아내기 위해 공동체의 중지가 모여야 한다. 아울러 개헌이라는 주제에 있어서는 '무엇'만큼이나 '어떻게'도 중요하다. 가급적 좋은 헌법안을 찾아낼 필요만큼, 가급적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필요도 크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바람직한 개헌의 방향에 관해 생각해 본다.

첫째, 이번의 개헌은 광범위한 공론의 검토를 거친 다음에 이뤄져야 한다. 공론장의 확장을 위해서는 쌍방향에서 인위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개헌을 주도하는 국회의원들은 개헌안에 대해 가급적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되도록 장려해야 하고, 학자와 정치지망생과 언론인과 일반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개헌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 이렇게 확장된 공론의 검토를 거쳐서 일정한 개헌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려면 2-3년의 기간은 부족하다. 그러므로 2016년이나 2017년의 선거를 겨냥한 개헌 논의는 애당초 불순한 의도를 품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리 빨라도, 새 헌법에 의한 국회 구성은 2020년 또는 그 이후부터 시작하도록 시야를 멀리 잡아야 한다.

둘째, 개헌 논쟁에서 핵심 주제는 권력구조가 될 수밖에 없는데, 한국 정치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조금이나마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의회제뿐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물론이고, 이원집정제도 현재 한국의 정치문화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회귀할 공산이 매우 크다.

한국의 정치문화는 기본적으로 대의제의 이념을 수용하지 못한 채, 정부라고 하면 바로 행정부를 연상하는 틀에 사로잡혀 있다. 정부라고 할 때 의회를 연상하지 않고 행정부를 연상하는 정치의식은 본질적으로 정치권력을 한 사람의 우두머리에 귀속시키는 하향식 정치의식이다. 그러므로 행정부라고 하더라도 다양한 관료들과 전문가들의 의견들을 상향식으로 모아 수렴하는 구도를 연상하기보다, 과장이 부하에게 명령하고, 국장이 과장에게 명령하며, 장관이 국장에게 명령하고, 대통령이 장관에게 명령하는 상명하복의 구도가 당연시된다. 이러한 정치의식에 젖어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대통령과 장관과 국장 등의 지위를 차지하더라도, 아랫사람은 그저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 의무고 만약 조금이라도 명령에 어긋나면 바로 항명 또는 반역의 죄가 된다는 사고방식 안에서 행동하게 된다.

현행 헌법 아래서도 만약 행정관료들과 장관들, 그리고 다수당의 국회의원들이 이와 같은 하향식 정치의식에 젖어있지만 않는다면, 한국 정치체제는 결코 "제왕적 대통령제"로 흘러갈 이유가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토부와 환경부의 관료들 중에 상당수만 제 목소리를 냈더라도 4대강 사업 따위 사기극이 벌어질 리 없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와 검찰 관료들 중 몇 사람만 더 목소리를 냈더라도, 채동욱과 윤석열이 그처럼 간단하게 날아갔을 리는 없다. 물론 이명박 정부에서든 박근혜 정부에서든 집권당 의원들 중 2-30명 정도만 양심의 목소리를 냈더라면, 대통령이 왕 또는 여왕 노릇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치의식이 지배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을 외교/국방에 국한하는 정도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바뀔 수는 없다. 당장 박근혜가 검찰을 맘대로 주무르고 노조를 박살내며 정당을 해산하려 들 때에도 다름 아닌 국방을 명분으로 내걸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미 헌법상으로 대통령의 권한에 많은 제약이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보와 외교를 내세우기만 하면 대통령이 여왕처럼 전횡을 저지를 수가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이원집정제 정도의 변경이 아니라 행정부의 모든 권력이 의회에서 나온다는 점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의식이 행정부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사실은 내가 지금 '의회제'라고 부르는 제도를 흔히 '내각제'로 부르는 관행만 봐도 확인할 수가 있다. 이 제도의 영어 명칭은 'parliamentary system'이므로 의회제로 번역해서 불러야 마땅하다. 의회제 체제에서 내각은 의회 내의 세력균형에 따라 구성되도록 되어 있고, 따라서 과반수 정당이 있을 때는 단일 집권당, 없을 때는 정당간의 연립에 의해 구성된다. 단일 정당이든 연립의 형태든, 만약 집권세력 내부에서 이탈자가 발생하게 되어 과반수가 깨진다면, 내각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새로운 선거를 통해 새로운 집권동맹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체제를 단순히 '내각제'로 부른다는 것은 행정부의 권력에만 시선을 모을 뿐 수백명으로 구성된 의회 내의 다양한 동맹의 가능성을 애당초 간과하는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탈피하려면, '내각제'가 아니라 '의회제'로 권력구조를 바꾸는 동시에, 그럼으로써 의회주권의 의미 다시 말하면 대의정부의 의미를 공론장이 충분히 소화하는 과정을 거쳐 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의회제 정부형태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특히 민주-진보 진영이 커다란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김종필이 제안했고 지금 다시 김종필 주변의 세력이 꿈틀거린다는 점에서도 진보 진영의 의심에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른바 보수대연합을 통한 일본식 1.5당제를 획책하지 않느냐는 의심이다.

외견상으로 볼 때, 현재와 같은 유권자의 분포에서 민주-진보 세력이 국회 다수를 차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 선거에서도 민주-진보 세력이 국회 다수를 차지한 적은 탄핵 역풍이 몰아친 2004년뿐이고,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얻었던 과반수는 불과 몇 달 후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에 비하면 대통령 선거는 한 번의 선거에서 운만 좋으면 이길 수 있고, 실제로 두 번 승리한 역사가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민주-진보 세력이 의회제보다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국회 다수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한 사람의 대통령이 민주-진보 쪽에서 나온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국회 다수를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대통령만 차지하면 된다는 발상은 대통령의 권력을 위임받은 권력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명령권자 즉 제왕의 권력으로 혼동한다는 증거일 뿐이다. 민주-진보 세력이 정권을 차지해서 나름대로 옳다고 믿는 신조에 따라 한국의 정치를 개선해 나가려면, 무엇보다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할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혹시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국회에서 차지하는 의석의 비율만큼은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체제로 정부형태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길이 곧 의회제 개헌이기 때문에, 민주-진보 진영은 보수대연합을 걱정해서 의회제를 거부만 할 일이 아니라, 의회제 정부를 세운 다음 의회 내 다수를 획득할 수 있는 의제와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넷째, 의회제 정부에서는 의회가 국정의 중심이며, 따라서 의원 선거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체제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 사항이 된다. 대의제의 이념에 가장 충실한 선거제도는 비례대표제라는 결론이 학계에서는 이미 나와 있는 상태와 같다. 실제로 영국, 미국, 프랑스 정도를 제외하면, 유럽,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정치적으로 안정된 모든 나라가 비례대표제에 의한 의회제 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영국에서도 지방의회 선거와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비례대표제가 지배적이다.

비례대표제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한국에서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제도는 독일과 뉴질랜드에서 시행되고 있는 보상식이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의회와 웨일즈 의회도 보상식 선거제도에 의해 선출된다. 이를 그 동안 한국 언론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는 모호한 명칭으로 불러왔는데, 이 제도의 취지를 적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보상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한국에 적용한다고 할 때, 최적 모형을 그려보자. 246석의 현행 지역구 수를 유지하고 여기에 246석을 더해서 총 의석을 492석으로 한다. 지역구의 획정은 지금과 대동소이 하다고 보고, 나머지 246석은 정당별 명부에서 선출한다. 각 정당은 광역선거구 단위로 명부를 작성하고, 유권자들은 지금과 같이 지역구 후보에게 한 표 정당에게 한 표를 던진다. 의석의 분배는 먼저 각 정당이 얻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 492석을 정당별로 배분한다. 다음에는 각 정당이 이렇게 얻은 의석수를 정당 안에서 광역선거구 별로 배분하는데, 광역선거구별 정당득표 비율에 비례해서 배분한다. 그 결과 각 정당이 각 광역선거구에서 획득한 의석수가 산출된다. 이 수에서 해당 정당이 각 광역선거구 내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를 빼고 남은 수만큼의 의석이 명부에 이름이 오른 순서에 따라 결정된다.

이 제도는 1구1석 지역구 선거가 같이 행해지기 때문에 정당명부 비례대표와 다르다. 그러면서도 정당별 의석 배분이 득표율 곱하기 전체의석으로 (즉 득표율 곱하기 246이 아니라 492로) 계산되기 때문에,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양념처럼 들어가는 부분적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완전한 비례대표제가 된다. 이 방식을 보상식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는 지역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비례적인 결과를 명부에서 보상함으로써 비례성을 확보하는 데에 취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택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지지율 분포가 유지된다면 새누리당이 제1당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반수를 확보하기는 아주 어려워진다. 따라서 연립정부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며, 그만큼 다수당의 일방적인 전횡보다는 협상과 타협에 의한 정치가 정규적으로 자리를 잡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울러 민주-진보 세력도 선거에서 전략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연립정부를 담당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국회선거제도를 헌법에 정할 필요는 없다. 헌법에는 행정부를 의회제에서 선출한다는 원칙만을 규정하고, 국회의원선거법을 개정하면 될 일이다. 개헌 논의가 단순히 헌법의 글자 몇 개 바꾸는 피상적인 수준을 벗어나려면, 당연히 선거법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관련법규에 대한 개정작업이 수반되어야 맞다.

다섯째, 개헌 논의는 일단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의회제 정부형태가 대의민주주의의 이념에 어울리게 운영되려면 여러 가지 부수적인 제도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헌법 조문을 고쳐야 할 사항으로는 특히 세 가지가 더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대법관은 모두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바꿔야 민주적 사법제도로 진화하는 물꼬가 트일 수 있다. 다음으로는 감사원이 반드시 국회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편제되어야 한다. 감사원은 상시적으로 관료조직의 회계를 감사하고, 문제가 튀어 나오는 곳에 대해 국회가 감사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편으로 관료조직을 이중적으로 들볶으면서도 정작 관료조직의 부패는 잡아내지 못하는 무능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지방자치제도를 명실상부하게 헌법이 보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방정부의 권력구조와 선출방식을 해당 지방이 선택하도록 헌법에 정해야 한다. 가령 강원도의 도지사를 강원도 의회가 선출하도록 할지, 강원도 유권자들이 선출하도록 할지, 아니면 국회더러 선출해 달라고 할지를 강원도 주민들이 선택하고, 김제시의 행정을 위원회형으로 할지, 시장-의회형으로 할지, 의회는 없이 시장만을 선출하도록 할지도 김제 시민들이 선택하도록 정하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단기간에 동시에 이룩한 나라가 틀림없다. 하지만 이 얘기를 현재가 최선이라는 식으로 악용하는 것은 아주 곤란한 일이다. 독재에서 겨우 벗어난 의미의 민주화, 빈곤에서 겨우 벗어난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민주화를 향해서도 아직 갈 길이 멀고,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할 길도 까마득히 많이 남았다. 하지만 정치든 경제든, 몇 사람의 똑똑한 인물이 나머지 인구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방식으로는 어떤 방면에서도 더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의 강화를 통한 정치안정이 사회적 평화와 번영의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라는 점에 사회적 합의가 대체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2012년 두 차례의 선거에서 평화와 복지와 민주가 시대정신으로 등장한 데서 확인되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조차 선거 국면에서는 평화와 복지와 민주라는 시대정신에 거역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개헌을 통해 이와 같은 시대정신, 즉 공동체적 합의를 헌법적 이념으로 승화하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대강을 제시한 방향으로 개헌의 물꼬가 잡힌다면 평화와 복지와 민주라는 시대정신이 우리의 미래를 열어줄 기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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