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새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남북 간 현안으로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꼽았다. 이산가족 상봉은 이미 합의를 해놓았으니 실행하면 되고, 이에 맞춰서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을 개최해 남북 간 관계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개최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미국과 중국 등 세계 패권 국가들이 부딪히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동북아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남북관계를 잘 풀어야 미국과 중국에 레버리지를 갖고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2013 남북관계 되짚어보기, 전문가들이 꼽은 가장 인상적 장면'(☞바로가기)과 '2013년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평가'(☞바로가기)에 이어 2014년 남북 간 해결해야 할 현안을 살펴보고, 격랑의 동북아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 10인의 의견을 들어봤다. 의견을 내준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다.
김근식 경남대학교 교수,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 박후건 경남대학교 교수,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장용석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학교 총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가나다 순).<편집자>
▲ 지난해 8월 23일, 남북 양측은 9월 25일 금강산에서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상봉을 나흘 앞둔 21일 돌연 상봉 연기를 선언하며 현재까지 남북관계는 경색돼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합의서를 교환하고 있는 남측 이덕행(오른쪽)수석대표와 북측 박용일 수석대표 ⓒ통일부 |
2014년 갑오년 새해에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남북 간 현안은 무엇일까. 다수의 전문가들은 지난해 남북이 합의했지만 중단됐던 이산가족 상봉과 협의 날짜를 잡았지만 실제 회담이 열리지 못한 금강산 관광 재개를 1순위로 꼽았다. 우선 인도적인 차원에서도 이산가족 상봉이 시급하고, 경색돼있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도 이산가족 상봉을 시작점으로 이와 맞물려 있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추진하는 등 남북 간 해결이 가능한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처럼 일시적으로 논의가 중단되어 있는 사안부터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기반으로 더 높은 수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백 수석연구위원은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적 문제 중에서도 인도주의적인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산가족 1세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비춰볼 때 이산가족 상봉은 무조건적으로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세대학교 문정인 교수는 "현재 북한 내부 상황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지만 우리가 주도해서 남북관계를 끌고 나가려면 이산가족 상봉 또는 금강산 관광 재개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연초에 한미 연합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남북 간 대화가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전향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역시 북한이 장성택 처형 이후 대내적으로 긴장을 조성하는 강경모드로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먼저 남북 간 대화를 제의할 가능성은 없다고 관측했다. 따라서 현재 상황으로서는 이산가족 상봉 재개로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진단했다. 다만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려는 노림수가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떼어 놓고 추진하기는 힘들다는 분석도 나왔다. 경남대학교 김근식 교수는 "김정은의 국가전략에는 마식령 스키장, 원산, 금강산을 엮어 대규모 관광특구를 만들려는 사안이 포함돼 있다"며 "금강산 관광이 돼야 마식령 스키장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남한이 금강산 관광에 선결 조건을 걸고 있는데 이는 회담을 하면서 풀어가야 할 사항"이라며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우선 회담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더 큰 틀에서의 남북 간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대표는 "인도적 차원이 가장 기본적인 이유지만, 얽히고설킨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이산가족 상봉이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비롯해 6자회담 등 큰 틀에서의 대화를 복원한다는 신호가 된다면 북한도 이에 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DMZ 국제평화공원을 연결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은 "DMZ 공원을 설악산과 금강산 사이에 만들어 이를 마식령 스키장과 연결시키면 이곳이 동북아의 관광명소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남북을 관통하는 관광지라는 측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핵,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한편 지난해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증강된 북한의 핵 능력 해결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선임연구원은 "핵 문제가 남북관계에서 가장 엄중하다"고 강조했다. 장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핵물질을 대량 생산하는 시기가 오면 비핵화 논의가 무의미해진다"며 핵 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주문했다.
김창수 정책실장 역시 "당위적으로는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병행해서 진행시켜야 한다"면서 6자회담 재개와 9.19공동성명 이행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6자회담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현재로서는 전망이 잘 서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지난해 2월 12일 북한은 조선중앙TV를 통해 제3차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
김준형 교수 역시 6자회담을 비롯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당장은 힘들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 교수는 현 상황에서 6자회담의 개최는 미국에 달려 있는데, 오바마 정부가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정책을 지난 1기 정부 때보다 훨씬 강경하게 쓰고 있고, 북한의 도발이 미국의 협상파 입지를 약화시켰기 때문에 6자회담 재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현 상태가 유지될 것인데 여기서 누가 6자회담의 추동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라면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가지 않을 것 같다. 정부 입장에서 북한이 어려운 국내 정치에 방패막이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일본도 중국을 포위하는 데 있어서 북한의 핵개발과 이에 따른 안보 위협이 일종의 유용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북핵 문제를 쉽게 풀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밖에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과도한 심리전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제대학교 김연철 교수는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내부 정세가 민감한 상황"이라며 "김정은 체제 확립과 이 과정에서 시작된 충성 경쟁이 북한 내에서 당분간 유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수단체의 삐라 살포 등 정부가 지원하는 북한의 심리전 행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동북아 열강 속 위기의 한국, 진영외교에서 벗어나야
지난해 동북아는 팽창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그리고 미국을 이용해 정상국가로 나아가려는 일본 등이 곳곳에서 부딪히며 긴장이 고조됐다. 새해에도 이러한 기본적인 구도는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혹자는 열강들의 다툼 속에 나라를 뺏겼던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상황과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며, 한국이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한국이 누구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한국이 중국과 미국, 양측 모두에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한미일 대 북중러로 굳어진 진영외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준형 교수는 "한미일 군사 협력에서 한국이 가장 약한 고리"라며 "중국이 최근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을 때 이어도를 넣은 것도 한국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물어보고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 대목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이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확대했다. 원래 중국이 제기했던 방공식별구역은 중국과 일본, 중국과 미국 사이의 문제인데 한국이 나서면서 한중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는 것이다. 또 60년 동안 이어도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으로 포함시킨 미국, 일본에는 가만히 있다가 중국이 이어도를 포함한 방공식별구역을 발표한 이후 불과 보름 만에 이에 대응한 것은 다소 성급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 확대할 수 있다', '한미일 군사 공조 할 수 있다', '중국과 이어도 문제를 협상할 수 있다' 등의 말을 통해 여러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천천히 접근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한국이 진영외교로 가는 대목에서 회담을 이끌어 내고 긴장 조성을 바라지 않는다는 움직임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영을 넘어서는 외교를 하는 것과 동시에 진영 내에서도 국익에 맞게 실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경남대학교 박후건 교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야기했던 '균형자론'과 유사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교수는 "우리는 중립이라는 제스처만 보여도 중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며 "중립으로 나가야 미국도 우리한테 와서 도와달라고 하고 중국도 그럴 것이다. 이런 상황이 돼야 우리가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용석 선임연구원 역시 진영에서 벗어나 전방위적인 관계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선임연구원은 "한미 동맹을 기초로 하되 북한, 중국, 일본과도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며 적을 상정해서 진영에 서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진영외교에 포함되면 "반도가 아니라 섬으로 고립돼 외교적으로도, 안보적으로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지난해 10월 3일 일본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 2+2 회담. 이 회담에서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면서 동북아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AP=연합뉴스 |
보다 구체적으로는 한미일의 이른바 '신(新)삼각동맹'에 편입되는 것이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근식 교수는 "우리가 삼각동맹에 완전히 발을 들여서 중국을 포위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일본 핑계를 대서라도 삼각동맹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다고 해서 중국 편을 드는 것도 위험하다. 중국이 상당히 공격적인 외교를 하면서 패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평화촉진자'라는 입장을 원칙적으로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국이 미·중 간 평화, 중·일 간 평화 등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 공동 번영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며 "평화 지향성을 우리의 외교에서 가장 원칙적인 것으로 가져가면서 안보적 사안에서는 한쪽 편을 들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균형외교 하려면 남북관계 개선부터
전문가들은 한국이 동북아의 균형자, 중립자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관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정인 교수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켜야 한미 동맹에 너무 기댈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면 대중견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없게 되고 한중관계도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역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한국이 먼저 치고 나가는 방식으로 현재의 구도를 깨야 한다"면서 "미국의 중국포위 전략에 동조하지 말고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고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전 장관은 "남북이 협력해서 6자회담 재개 모멘텀을 만들어 나가고 한중 간 협력을 촉진하면 비록 미·중 간 갈등이 계속되더라도 우리가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창수 실장은 2차 대전 이후 동북아에 형성된 '대분단체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며, 이러한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한반도 분단이 해결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현재 구도 속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강요받고 있다"며 "남북관계를 풀어나감으로써 우리가 동아시아의 대분단 체제를 바꾸는 역할을 하는 적극적인 행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욱식 대표는 "현 국면에서는 한국이 동북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진단했다. 정 대표는 "남북관계를 잘 풀 때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을 상대로 발언권이 강해질 수 있다"며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 등을 통해 동북아 정세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내에서 국익을 달성할 수 있는 높은 수준에서의 전략적 디자인과 이행 계획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무엇보다도 미·중 간의 '힘의 균형의 변화'를 면밀히 추적하고 그것이 미래에 갖는 정책적 함의를 중시해야 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가입 여부 등 현안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통령이 현재의 상황과 외교 안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연철 교수는 "대통령이 전략이 있어야, 외교·안보부처의 조정능력도 유지할 수 있고, 다양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면서 NSC 설치뿐만 아니라 대통령 본인의 의지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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