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들어 오사카의 거리에 갑자기 한파가 몰아쳤다. 사계절이 뚜렷했던 일본의 풍토는 최근 들어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늦더위가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싶으면 가을은 있는 둥 없는 둥 지나가고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이 찾아왔다. 바쁘고 어수선한 연말에 일본에서는 특정 비밀 보호법의 강행 체결,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설을 위한 헤노코(邊野古) 바닷가의 매립 승인 등 그야말로 '겨울의 시대'가 도래한 듯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한편, 일본 전국의 조선 학교 관계자와 지원자들에게 2013년은 본격적인 재판 투쟁에 돌입한 1년이었다. 이는 민족 교육의 전환점으로 재일 조선인 역사에 깊이 각인되는 사건이 될 것이다.
소위 '고교 무상화' 제도의 적용 대상에서 조선 학교 학생을 배제한 일본 정부의 조치에 항의해, 오사카와 아이치(愛知)의 조선학교 관계자가 일본 국가를 제소한 것이 올 1월 24일이었다. 연이어 8월 1일에는 히로시마에서, 12월 19일에는 후쿠오카에서도 소송이 이어졌다. 내년 1월에는 도쿄에서도 재판 투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각각의 소송은 조선 학교 학생에 대한 '고교 무상화' 제도 적용을 요구한다는 점은 공통되지만, 각 지역의 사정과 변호인단 방침에 따라 청구 내용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아이치의 재판은 학생·졸업생을 원고로 하는 국가 배상 청구 소송이다.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의 학생·졸업생이 '고교 무상화'제도의 적용에서 제외되어, 이로 말미암아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해 일본 국가를 제소한 것이다. 아이치에서는 1월 24일에 5명이 소송을 일으킨 뒤, 12월 19일에 5명이 제2차 제소에 합류해 원고단은 현재 10명의 학생·졸업생이다.
히로시마에서는 조선학교의 경영 모체인 학교법인 히로시마 조선학원과 히로시마 조선초중고급학교 고급부 학생·졸업생 110명이 원고단에 참여하고 있다. 히로시마 조선학원은 '고교무상화' 불지정 처분의 취소와 지정 의무 부여를, 또 학생·졸업생들은 '무상화' 실시 시에 받았을 취학 지원금의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후쿠오카의 소송 내용도 아이치와 마찬가지로 학생·졸업생이 원고가 된 국가 배상 청구이다. 이 재판에서는 규슈 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의 학생·졸업생 67명이 원고단에 참여해 '무상화' 불지정으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오사카에서는 학교 법인 오사카 조선학원이 원고가 되어 '고교 무상화' 불지정 처분의 취소와 지정 의무 부여를 청구한다는 내용이다. '무상화'재판에 앞서 지난 2012년 9월 20일 오사카부·오사카시에 대해 2011년도분 보조금의 불교부 결정 취소와 교부 의무 부여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관련기사 보기).
한편, 오사카시는 시유지인 나카오사카(中大阪) 조선초급학교의 부지 명도를 요구해 같은 해 12월 26일에 오사카 조선학원을 제소했다. 따라서 오사카에서는 현재 조선학교의 존립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개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 7월 5일에 히가시오사카시립 시민 회관에서 개최된 '몽당연필 소풍공연 in Osaka -좋아요! 우리학교-'. 환희의 공연 마지막에 권해효 몽당연필 대표와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학생들. ⓒ몽당연필 caffe |
중요한 국면에 접어든 오사카의 재판 투쟁
올해 말까지 오사카에서는 '무상화'재판에서 4회, 오사카부·시 보조금 재판에서 6회의 구두 변론이 열렸다. 또 나카오사카 초급 학교 부지 재판에서는 6회의 구두 변론과 진행협의 등이 열렸다.
이 가운데 '무상화' 재판과 오사카부·시 보조금 재판의 올해 최후의 구두 변론에서 앞으로의 재판 행방에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움직임이 있었다.
10월 25일의 오사카 '무상화'재판 제4회 구두 변론에서 피고(일본국가)의 주장에 대해 원고(오사카 조선학원)가 반론 진술하는 과정에서 문부과학대신이 설치한 '고등학교 취학 지원금 지급에 관한 심사회'(이하 '심사회')의 조선학교에 대한 심의 내용이 밝혀졌다.
이 심사회는 민족계 외국인학교와 인터내셔널스쿨 이외의 외국인학교 학생에 대해, '고교 무상화'제도에 근거해 취학 지원금의 교부 대상 지정 여부를 심사하는 "교육 제도에 관한 전문가와 기타 학식 경험자로 구성되는 회의"로서, 문부과학대신은 무상화 제도 적용 학교를 지정할 때 그 "의견을 듣는 것으로 한다"고 정해져 있다.
그런데 2011년 11월부터 2012년 9월에 걸쳐 개최된 제4~7회 심사회는 오사카 조선고급학교를 비롯한 일본 전국의 조선고급학교 10교에 대한 심사가 의제였다. 아이치의 원고 측 변호인단이 정보 공개 제도에 근거해서 회의록을 입수해 심사회의 심의 과정이 밝혀진 것이다. 오사카의 원고 측 변호인단은 이 회의록을 바탕으로 심사회에서는, 조선 고급학교가 취학 지원금의 지급 대상 교로서 문부과학대신의 지정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음에도 문부과학성 측이 일부 신문 보도에 휘둘려 조선학교에 대한 악의전인 질문만 되풀이한 사실을 지적했다.
결국 문부과학성은 심사회의 결론을 기다리지 않고 심사회의 개최 자체를 중단한 채 올 2월 20일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제도에서 배제하기 위해 문부과학성령(省令)을 개악했다. 또 각 조선고급학교에 '무상화' 불지정의 통지를 송부해버린 것이다. 제8회 심사회는 최근 12월 16일에 개최되었는데 거기서는 더이상 조선고급학교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자신들이 정한 규칙을 깨고 조선총련과 북한과의 관계를 들어,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로 조선고급학교를 불지정한 것이다.
문부과학성이 조선학교와 관련이 없는 제1~3회 심사회의 '의사 요지'는 2011년 12월의 시점에 공개하면서, 조선학교를 심사한 제4-7회 심사회에 대해서는 1년 이상 비공개로 했다는 사실도 문제다. 제4~8회의 '의사 요지'가 공개된 것은 바로 이 원고를 쓰던 12월 28일이었다.
재판에서 회의록의 내용이 이미 밝혀져 그 내용을 비밀로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공개된 '의사 요지'만으로는 오사카의 원고 측 변호인단이 지적한 의견 교환의 전체 흐름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최소한 조선고급학교가 불지정의 이유가 될 만한 중대한 법령 위반이나 신청 서류 중에 중대한 허위는 확인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무상화'재판에서 피고 측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조선학교가 교육 기본법을 위반하고 조선총련의 '부당한 지배'(제16조 제1항)를 받고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한편, 지난 11월 19일의 오사카부·시 보조금재판 제6회 구두 변론에서는 원고 측 변호인단이 청구 내용에 대한 추가를 시사했다. 원고 측은 오사카부·시의 보조금 정지가 부당한 행정처분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피고 측은 보조금 교부는 '행정처분'이 아니라 단순한 '증여 계약'이므로 보조금 정지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반론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피고 측의 주장이 재판소에 받아들여지면 보조금 불교부가 보편적 인권인 민족교육권을 침해했다는 본질적 논점에 사법의 판단이 도달하지 못한 채, 재판이 이른바 '문전박대'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원고 측 변호인단은 국가 배상 등을 청구 내용에 추가함으로써 또 다른 관점에서 오사카부·시가 취한 조치의 부당성을 추급해 나간다는 방침을 정한 듯하다.
각 재판의 심리는 마침내 중요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재판 투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원고가 승소할 환경은 충분히 정비된 것 같다.
'몽당연필'의 오사카 공연
올 한해 조선학교 지원 운동에 참가하면서 각별히 잊을 수 없었던 일은 7월 5일에 오사카에서 개최된 '몽당연필 소풍공연 in Osaka -좋아요! 우리학교-'이다. 2011년 3월에 일어난 동일본대지진 때 조선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의 배우와 가수, 영화감독 등이 결성한 '몽당연필'은 한국 각지에서 18회의 콘서트를 개최한 뒤 2012년 6월에 도쿄에서 일본 첫 공연을 가졌다. 도쿄의 공연을 끝으로 활동을 일단락한 몽당연필은 2012년 10월에 다시 비영리 민간 단체로 등록해 '고교 무상화'제도 제외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한편, 한국 내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첫 활동으로 오사카에서 공연이 개최된 것이다. 이번에는 출연자뿐 아니라 몽당연필의 활동을 지원하는 일반 회원들도 동행해 한국에서 약 50명의 방문단이 오사카 공연에 참가했다.
1300명이 넘는 관객으로 꽉 들어찬 오사카 공연의 열기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전설이 될 것이다. 권해효 대표 이하 한국 출연자의 공연 수준이 높았던 것은 물론이고 이에 더해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을 포함한 모든 출연자와 관객이 일체가 되었다. 회장은 감동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무엇보다 제일 기뻤던 일은 무대 위에서 또 무대 아래 객석에서 조선고급학교 학생들의 환한 얼굴로 콘서트를 즐기던 모습이었다.
올 들어 야마구치(山口)현, 요코하마시, 가와사키(川崎)시 등의 지방 자치체에서도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정지하는 등 조선학교를 둘러싼 환경은 한층 엄중해졌다. 한편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는12월 11일, 금년도분은 조선학교에 대한 운영비 보조를 정지했지만 내년도분부터는 조선학교를 포함한 외국인학교 학생의 학비를 보조할 방침을 밝혔다.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 정책을 철회하는 것은 아니어서 불만스러운 점은 남는다. 그러나 조선학교 보조금 지급을 반대하는 비방과 중상의 화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민족교육의 보장이라는 행정상의 당연한 시책을 실행하기 위해 현실적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오사카부청 앞에서 매주 화요일에 실시되는 항의 행동도 80회를 넘었다. 또 도쿄에서는 5월부터 매주 금요일 문부과학성 앞에서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주관하는 항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그 밖에 일본 각지에서도 재판 투쟁과 가두 행동을 비롯해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무상화' 적용을 요구하는 다채로운 활동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앞서 말한 최근의 아베 정권의 움직임을 볼 때,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정책이 일본의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는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한층 더 명백해졌다. 재판 투쟁의 승리는 국제 사회에서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상황에 반격의 이정표를 쌓게 될 것이다. 지금은 혹독한 '겨울의 시대'일지언정 새해에야말로 그 극복을 향해 조선학교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자 한다.
참고 사이트 ● 오사카조선학원지원 부민기금(홍길동 기금) 홈페이지 ● 조선고급학교의 무상화를 요구하는 연락회·오사카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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