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실을 누가 저렇게 만들었나?
지난 대선, 외교·안보 정책에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강조한 공약이 있다. 바로 외교·안보 정책의 총괄조정 기능 강화다. 이명박 정부 때 부처 간 혼선이 심했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도 국가안보실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문가들이 외교·안보 공약 중 가장 높이 평가한 부분이다. 국가안보실은 현행 법률 체계에서 이른바 NSC 체제를 도입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었다.
▲ 박근혜 대통령(왼쪽 가운데)이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김관진 국방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류길재 통일부 장관, 남재준 국정원장. ⓒ연합뉴스 |
그리고 정부가 출범했다. 국가안보실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국가안보실 신설이라는 공약이 담고 있었던 문제의식은 사라졌다. NSC 체제는 단순한 위기관리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 간 총괄조정기구로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국가안보실은 부처 간 조정체계의 기능이 없다. 위기관리 기능을 확대·강화했을 뿐이다. 그리고 외교·안보수석실을 그대로 존치했다. 외교·안보 수석실은 단기적 현안을 담당하고, 국가안보실은 중장기적 안보현안을 다룬다고 구분했다. 그게 쉬운가? 부처 간 조정은 사라지고, 외교·안보수석실과 국가안보실의 기능은 중첩되었다.
결과는 어떤가? 심각하다. 외교·안보 부처의 조정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장성택 사건에 대한 정보 판단이다. 초기에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 통일부 장관의 말은 각자 달랐다. 중요한 정보 판단인데, 그럴 수 있는가? 당연히 정부의 공식적 정보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처 간 정보공유가 이루어지고, 서로 협의해서 정부의 공식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국회에 가서 부처의 개별 의견이 아니라, 정부의 입장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사태는 무엇을 말해 주는가? 정부는 중요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언론공개지침(PG, Press Guidance)을 작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설마 그럴 리가, 그래도 정부인데, 그렇게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실제로 그렇다.
부처별로 정책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러 정상회담에서 나진-하산 사업에 우리 기업이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다. 많은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러시아의 화물을 나진을 통해 우리 측 항구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당연히 5.24 조치가 해제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5.24 조치는 남북 해운 물류를 금지하고 있어 남북물류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통과화물까지도 제재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상 차원의 발표니, 당연히 5.24 조치 해제를 전제해서 발표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후, 이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정책 목표에 대한 공유가 제도보다 중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외교·안보 부처의 조정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NSC라는 제도를 도입하면 될까? 안타깝게도 이 문제의 핵심은 제도가 아니다. 미국의 외교·안보 역사에서 NSC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때가 있다. 공통점은 무엇일까? 닉슨 행정부의 키신저나, 카터 행정부의 브레진스키와 같은 전설적인 NSC 보좌관을 기억할 것이다. 이들의 전략가로서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보좌관은 보좌관일 뿐이다. 대통령의 의지와 관심이 없다면, 아무리 막강한 보좌관이라고 하더라도, 국무부, 국방부, CIA를 총괄 조정하기 어렵다.
키신저는 사실 닉슨의 외교 전략을 집행했을 뿐이다. 브레진스키가 미·중 관계 개선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도 카터 대통령이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면 당연히 NSC의 기능이 약화된다. 오마바 행정부에서 NSC보좌관이 누구인지 기억하는가? 국무부에 외교를 맡긴 결과, 주변국들은 아무도 NSC 보좌관을 기억하지 않는다. 과거 부시 행정부 때, 헤들리 보좌관이나 라이스 보좌관처럼 뉴스의 중심에 있지 않은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NSC라는 제도의 기능은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에 정확히 비례할 뿐이다.
그리고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공감이다. 방향이 분명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전략목표를 공유하면, 그만큼 혼선이 줄어든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외교·안보 수석 체제였지만 부처 간 협력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대통령의 외교 철학과 전략적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합의할 수 있는 목표를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처럼 말과 행동이 따로 놀면, 외교 상대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의 일관된 특징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로 '상생공영'정책이었음을 기억하는가?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세상이 계속되고 있다. 공자님 말씀처럼, 정명이 정치의 근본인데도 말이다.
잃어버린 신뢰
장성택 사건은 북한 체제의 향후 전망에 대해 많은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동북아 상황은 어떤가? 힘과 힘들이 부딪히면서, 우리의 외교·안보적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고, 민감한 국면이다. 외교·안보 정책이 매우 중요한 시기다. 혼선과 잡음이 개선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서, 동시에 외교·안보 정책의 신뢰를 회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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