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서는 8월 1,2일 양일간 제1차 '미·중 정례 고위급대화'가 있었다. 현재 진행중인 6자회담과는 별개의 양자 회담이었다. 회의를 마친 뒤, 로버트 졸릭 미 국무부 부장관은 "문제의 핵심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경제적으로 완전한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유인하고 정치·외교적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동반자'인가, 아니면 '숙명적인 경쟁자'인가.
올해 초 미국의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1/2월 호는 '미ㆍ중간 충돌 (Clash of the Titans)'이라는 제목 아래 브레진스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고문과 미어셰이머 시카고대 교수 간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이 대담에서 브레진스키는 "중국 지도부는 경제발전을 통해 강대국으로 인정받는 데 집중하고 있고, 미국과의 군사충돌을 원하지 않으므로 향후 미·중간 전쟁발생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미어셰이머는 "중국이 앞으로 몇 십년간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계속한다면 중국과 미국은 전쟁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첨예한 헤게모니 경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렇듯 중국의 향후 위상을 보는 시각이 확연히 두 갈래로 갈리는 가운데 대표적인 '경쟁자론'은 역시 네오콘 쪽이다. 대표적인 네오콘이자 현재 체니 부통령의 안보담당 부보좌관인 아론 프리드버그는 2000년 11월호 '코멘터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수십 년간 미국은 중국과 지정학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다. 중국은 탄도미사일을 증강해 이웃 국가들을 위협하고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정권교체 등으로 정치적 개방 정책을 추진한다고 믿어서는 안 되며 군사력을 증강하고 동맹을 강화하며 힘이라는 관점에서 중국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중·미간 갈등 해소에 필요한 전략적 채널을 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지난해 11월 칠레 APEC 정상회담에서 미국과의 '전략적' 대화를 요청했다. 미국은 '대화'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전략적' 동맹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고위급' 대화로 수용했다. 그 협상의 결과가 바로 이번 고위급 대화였다.
먼저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 입장에서는, 그리고 자칫 중·미 분쟁 사이에서 줄서기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지정학적 운명을 타고난 한반도의 입장에서는, 미·중간의 고위급 대화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화의 시작에 주목하고 일단은 긍정적 징표로 받아들인다.
'한·중·일'이라는 숙명적 이해관계를 가진 우리의 입장에서는, 자칫 장래에 있을지도 모를 동북아의 갈등구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미·중간의 분쟁이 미·일 대 중국간의 분쟁으로 이어지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사이에 동북아 분쟁에 개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동북아 균형자론'의 출발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긍정적 평가 뒤에는 또 다른 고민이 자리한다.
중·미간은 차관급을 대표로 하는 '고위급' 대화다, 한반도 주변 강국 사이의 이런 대화는 중·미간이 처음이 아니다. 전략적 동맹인 미·일간에는 이미 '전략 대화'가 2002년 8월부터 총 일곱 차례나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차관급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장관급 전략대화로 격상하기로 합의하고 1차 장관급 전략대화가 열렸다. 물론 차관급 대화도 계속된다.
그렇다면 미·중, 미·일 사이의 대화에서 한반도 문제는 대화의 의제에서 제외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데에 첫 번째 문제가 있다. 북핵 문제는 당연히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 대화에서 회담의 의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다 미·일 전략대화에서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문제도 회담의 의제가 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한마디로, 한반도의 안정과 운명의 문제가 우리와는 상관없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미, 한-일, 한-중 간의 관계로 볼 때, 우리가 직접 대화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외교채널을 통해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고 협의해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19세기 구한말, 한반도의 운명이 강대국들 간의 편의적인 협상과 조약에 따라 좌우되던 역사를 되돌아보면 더욱 그러하다. 한반도가 대화의 당사자에서 배제된 상태에서 한반도의 문제가 논의되고 우리의 운명이 좌우되지 않도록 정밀한 외교적 노력이 요청된다.
두 번째의 문제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이 정도의 대화채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한·미 간에는 현재 진행 중인 한미안보정책구상(SPI)과 그 전신인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가 있다. 그러나 SPI에서 다루는 의제는 한미동맹, 전략적 유연성 등 현안에 국한되어 있을 뿐, 동북아 정세 및 국제안보 등에 대한 포괄적인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주변 강대국들이 동맹관계 문제뿐만 아니라 포괄적 국제안보정세를 논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SPI 회의는 협상 대표의 수준도 다르다. 미국 쪽 대표는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이고, 한국측 대표는 사안에 따라 외교부의 북미국장이거나 국방부 정책실장이다. 예를 들어, 작계 5029 문제는 국방부 정책실장이 파트너가 되고,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외교부 북미국장이 파트너가 되는 식이다.
단순한 현안 문제를 논의하는 수준을 넘어 고위급의 전략적 대화채널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 대화를 통해 동북아 평화안정시스템에 대한 포괄적 논의를 한·미간에 진행할 필요도 있다. 이런 논의의 틀을 한국과 중국 간에도, 그리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과는 당장 시작해야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미·중간 고위급 대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차분해질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현실이 현재 한국 외교의 현주소와 국력, 한미동맹의 수준을 반영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남북' 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주변강대국들 사이에 '전략적 대화' 수준의 채널 개설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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