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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에서 구두를 닦고 있는 그 소년은…

[르포] 레바논까지 멍들게 한 시리아 내전, 끝은 어디?

모함마드는 중동의 파리라 불리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화려한 시내 함라 지역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다. 4개월 전에 전쟁 중인 시리아에서 레바논으로 피신해온 그는 열세살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작은 체구에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이라고는 때가 탄 반팔 티셔츠에 닳은 바지가 전부였다.

이 소년은 부모 없이 아홉살 먹은 동생과 둘이서만 레바논으로 건너왔다. 그의 부모는 서류 미비 등으로 국경을 건너지 못했고, 어린 두 소년은 구두닦이를 하며 간간이 연명하고 있었다. 그는 구두를 닦아 버는 돈 1500원을 모아 매달 30만 원에 달하는 집값을 충당했다. "돈이 생기면 일단 배를 채워요, 그리고 남은 돈을 모아 집값을 내죠. 집값을 먼저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까요"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구두를 닦는 그는 시리아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피했다.

레바논에는 적과 아군이 동시에 존재했다. 시리아 정부군을 지지하는 레바논의 정당이자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반군을 지지하는 수니파 무장단체가 한 장소에 있었고, 피난 온 시리아 난민 사이에서의 정치적 입장도 첨예하게 갈렸다. 이러한 레바논에서 시리아 내전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행위였고, 따라서 대부분의 시리아인은 정치적 언급을 회피했다. 그들이 온 고향 마을의 다수종교로 그들의 입장을 파악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길이 없었다.

함라 지역에는 모함마드처럼 시리아에서 건너온 어린 구두닦이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대부분 나중에 귀국했을 때 난민등록'흔적'이 가져올 위험을 우려하여 난민신청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이들은 난민등록자가 받을 수 있는 교육, 식량, 거주지 등의 혜택을 포기하고 직접 생업 전선으로 뛰어든 것이다.

▲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사브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현재 이곳은 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건물 곳곳에 시리아 국기가 나부끼고 있다. ⓒ김태언

학교에 앉아있어야 할 아이들을 내몬 것은 어른들의 추악한 전쟁이었다. 시리아 내전에는 대의도, 명분도 없어진 지 오래다. 죽고 죽이는 치열한 보복의 전쟁만이 가득할 뿐이다. 전쟁은 주변국, 특히나 레바논을 심각하게 감염시켰고, 이로 인해 레바논 내부 정세마저 다시금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다. 시리아와 접경한 베카밸리 동쪽 레바논 북부부터 시리아의 홈즈까지는 원래 역사적으로 시아파가 다수인 지역으로, 이곳에선 매일같이 시리아 반군과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북부의 대표적인 도시 트리폴리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니파 무장세력과 시아파 간의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수도 베이루트에서는 폭탄테러와 총격전, 표적암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각 종파 간 갈등의 혼돈 속에서 레바논 정부가 실질적으로 하는 역할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요르단 등 여타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대다수 시리아 난민들이 임시 거처를 마련하는 곳은 팔레스타인 난민촌 이었다. 요르단의 자타리와 같은 대규모 난민수용시설이 없는 레바논에서 대부분의 시리아 난민들은 일반 집을 임대하여 살고 있었다. 그러나 난민들이 챙겨온 몇 푼 안되는 돈으로 유럽에 버금가는 살인적인 레바논의 물가를 견디기는 매우 힘들었고, 대다수의 난민은 시설은 열악하지만 월세가 저렴한 수십 년 전통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몰려들었다. 사브라 난민촌도 그 중 하나였다. 베이루트 남부, 시아파가 강세인 지역에 위치한 사브라는 일요일마다 열리는 벼룩시장에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1.5킬로미터 거리의 시장 거리는 옷, 중고가전 등 온갖 잡화로 가득했고 원래는 팔레스타인인이 대부분이어야 할 곳에 시리아인이 한데 뒤엉켜 난민촌은 더욱 혼란스러워 보였다.

향료를 즉석에서 배합해 만드는 아랍식 향수를 파는 노점 수레에서 2000원 짜리 향수를 사며 잠시 말을 붙여보니 이 향수가게 주인 역시 시리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고향이 시리아 남부도시 다라 근처 마을이라는 그에게 왜 물가가 더 싸고 거리도 가까운 요르단으로 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른 시리아 난민들처럼 한결같은 대답을 들려줬다. 터키, 요르단은 반-아사드 성향의 수니파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사우디, 카타르 등의 국가의 지원 하에 암묵적으로 반군 모병과 훈련 그리고 요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수니파가 아닌 다른 소수 종파 혹은 친(親)정부 성향의 난민은 갈 수 있는 국가가 레바논으로 한정되었다. 물론 레바논에도 엄청난 숫자의 반정부 성향의 난민들과 무장세력이 있었지만, 시리아 정부 편에 싸우는 헤즈볼라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마론파 기독교, 아르메니아인 등 다양한 인종, 종파적 구성이 레바논을 비 수니파 시리아 난민에게 대안이 되었다.

레바논은 요동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의 여파가 레바논을 파고든지 오래다. 레바논 북동부 국경 주변의 마을은 치열한 전쟁터로 변했고, 남동부 국경지대에는 묘한 침묵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국경 지역 마을은 자체적으로 민병대를 통해 자경단을 조직하고 통금시간을 정하여 어기는 자는 폭행하는 등 보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국경을 건너 날아오는 간헐적인 로켓 공격이나 전투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레바논 주둔 유엔군 관계자에 따르면, 얼마 전 남부에 주둔했던 레바논 군 병력 대부분이 북부 지역으로 재배치 되었다. 헤즈볼라 고위 관계자에게 북부 국경마을의 실상과 전투원 취재를 요청하였지만 안전을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다.

시리아 내전의 전환점 : 미-이란 핵협상과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폐기를 통한 서방의 군사개입 저지와 최근 있었던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의 성공적 타결로 내전의 운명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향해 미소 짓고 있는 것 같다. 시리아 정부의 최대 지원국 이란이 이번 협상을 통하여 미국과의 갈등을 잠재적으로나마 해소했기 때문이다.

▲ 사브라 난민촌.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각종 잡기, 중고품 등을 팔고 있다. 상당수가 시리아 난민들이며 시리아 전통 악기, 장식 등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김태언
특히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패권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오바마케어 등 내부적으로 정치적 생명력이 위기에 처한 오바마 행정부가 당분간 중동지역에서 힘을 빼 아시아에 집중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최근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과도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제주도 강정마을에 건설되고 있는 해군 기지는 중국과 최단거리 위치한 미군기지가 될 예정이고, 이는 중국의 심기를 건드려 이어도의 분쟁화와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 등 한반도에 지속적인 긴장감을 가져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분쟁, 일본명 센카쿠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 등 중국의 새로운 패권주의 정책이 아시아에서 지속적인 갈등을 빚어내고 있다. 아베 정권이 주도하고 있는 평화헌법 폐기와 일본의 재무장을 미국이 지지하는 것도 정치·경제·군사적으로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의 수단으로 해석된다. 이런 상황에 미국은 중동과 아시아 두 지역을 동시에 집중하기 보다는 중동 정치에서 핵심 국가인 '이란'이라는 뇌관을 제거함으로써 아시아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얻은 것이다. 이번 협상은 미국이 시리아 문제에 관해 한발 양보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란 핵협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반군의 최대 주주이자 시리아를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싶어했던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의 걸프 국가들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레바논의 헤즈볼라–시리아-이란을 한 번에 엮어 일망타진하고 싶어했던 이스라엘일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엮여있지만, 미국과 이란의 협상 이후 두 국가가 보인 격렬한 분노와 공식적으로 적대적인 두 국가의 예외적 만남이 이를 증명한다.

미국-이란의 협상으로 시리아 내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앞으로 시리아 내전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아사드 정권에 맞선 반군은 내부 분열, 전체 인구 1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의 반군과의 대치,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의 급부상과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우려 등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해있다. 2014년 초에 개최될 제네바-2 평화회담이 시리아 내전의 종식을 향한 전환점이 될지 의미 없는 회담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이번 미국과 이란의 협상은 미국이 중동정치에서 더 작은 파이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암시하며, 이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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