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동생은 어디 갔어요?" 어느덧 훌쩍 커버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딸 혜림이가 그동안 동생 서진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다가 엄마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엄마는 아픈 기억이 다시 살아나며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제는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동생은 하늘나라에 갔어." 딸은 죽음의 의미를 아는 것인지, 아직 잘 모르는 것인지 "응! 하늘나라에 갔어?"라며 되물었다. 그 뒤 더는 동생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안희준 씨 부부는 동갑내기다. 지난 2007년에 큰 딸 혜림이를 낳았다. 그리고 2009년 아들 재범이를 낳았다. 하지만 돌도 지내지 못한 재범이가 5개월여 만에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결국 재범이는 세상을 떴다. 그리고 그 아픔을 채 잊기도 전에 아내는 다시 임신했다. 2010년 9월, 이번에도 아들 서진이를 낳았다.
하지만 안 씨 부부는 서진이도 그 해 마지막 날을 이틀 앞둔 12월 29일에 하늘로 떠나 보내야 했다. 1년 전에 잃은 첫아들과 똑같은 증상으로 수원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허사였다. 혜림이가 찾았던, 바로 그 동생은 세상에서 118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보내고 하늘나라로 갔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정말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이 이들 부부를 엄습했다. 세상이 야속했다. 평소에 남에게 나쁜 짓 하지 않고 살아왔건만 서른을 갓 넘긴 이들 부부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일까? 두 아들의 잇따른 사망 원인을 몰랐으니 그때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죽은 지 몇 달 뒤 매스컴을 통해 자신들처럼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2011년 8월,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그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그때야 이들은 비로소 그동안 자신들이 매일 밤마다 사용했던, 한 대형마트의 자체상표 가습기 살균제를 떠올렸다. 그리고 두 아들의 사망원인이 바로 그 살균제임을 직감했다.
첫 아들이 죽은 뒤 그 원인을 몰랐으니 둘째 아들이 태어나서도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계속 사용했던 것이다. 아기를 출산한 안 씨의 아내는 잠잘 때 큰딸과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방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아들이 호흡곤란을 겪던 때 큰딸은 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으나 치료를 받고 좋아졌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래서 두 아들의 사망 말고도 큰딸 혜림이가 앓았던 폐질환도 가습기 살균제 사용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들 부부에게는 최근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09년과 2010년 아들 둘을 세상에 보내고 비통에 빠져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던 중 2012년 여름 다시 아기를 가졌다. 그리고 지난 4월 3일 일란성 쌍둥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이들 부부가 다시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살라고 먼저 간 아이들이 동시에 환생이라도 한 것일까?
"다시 아들 둘을 한꺼번에 얻었다고 해서 세상에 나와 말도, 걸음마도 못해보고 보낸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요." 이렇게 말하는 안 씨의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그런대로 밝게 들린다. 필자가 어떻게 해서라도 그에게서 밝은 모습을 찾아내려고 해서 밝게 들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 지난 8월31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추모대회에서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을 추념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
한순간에 아들과 딸 잃은 엄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가운데에는 안 씨처럼 두 자녀를 함께 잃은 사례가 종종 있다. 심지어 가족 중에 많게는 서너 명씩 크고 작은 피해를 당한 사례도 제법 된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사는 진 모씨는 졸지에 아들과 딸을 모두 가습기 살균제로 잃은 비극의 엄마가 됐다. 자신도 피해를 당했으나 다행히 중증은 아니었다.
그녀는 2005년생인 딸 예순(가명)과 2007년생 아들 예병(가명)이를 양 옆에 두고 늘 잠을 잤다. 2009년, 동네 한 대형마트에서 파는 자체상표 가습기 살균제를 보고 10월부터 주로 이 제품을 사용했다. 나중에는 다른 대형마트 자체상표 제품과 '옥시싹싹'으로 알려진 옥시레킷벤키저의 제품, 그리고 애경 제품도 한 차례 사용했다. 많이 넣으면 세균을 확실히 없애줄 것 같아 한번 넣을 때마다 3밀리리터씩 적정량보다 많이 사용했다. 제품 성분은 안전하다는, 회사들의 광고와 표시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모두 죽고 나서야 알았다.
2010년 봄, 나이 어린 예병이에게서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감기인 줄 알고 동네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4월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는 폐렴이라고 해서 항생제 치료를 했다. 약간 호전되는가 싶어 2주 만에 퇴원했으나 며칠 만에 다시 갑자기 호흡곤란이 일어나는 등 악화됐다. 딸 예순이도 5월 예병이가 입원치료를 받고 있을 동안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같은 대학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이들이 간질성 폐렴이라는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했다. 예병이가 그 독한 화학물질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떴다. 진 씨는 딸이라도 살리고 싶었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동네 대학병원을 신뢰할 수 없어 고양에서 가까운 서울의 한 유명 대학병원으로 옮겨 중환자실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쩌면 살릴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큰딸도 결국 얼마를 버티지 못하고 동생을 따라갔다.
그녀는 지금도 당시 아이들을 일찍부터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병원에 입원시켜서 치료했더라면 목숨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자책감을 느낀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 뒤 피해자 카페에서 일찍부터 유명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살아난 사례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일-즉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아이들을 죽게 했다'-로 아이들의 사망 뒤 자주 남편과 자주 다투었고 이제는 혼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이중 아픔을 감내하고 있다.
엄마 사망 뒤 둘째 아들도 하늘로…
아이와 아내를 모두 잃은 피해자들도 있다. 서울에 사는 오성식(가명) 씨도 그 가운데 하나다. 첫째를 임신한 2009년 4월부터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사용했다. 여름철을 빼고 가습기를 틀었다. 대개 종일 켜놓는 경우가 많았다. 첫아들 준구(가명)는 아무런 탈 없이 태어났다. 2011년 둘째를 임신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아내는 임신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자주 호흡이 좋지 않았다. 임신 6개월 때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정상적인 출산이 힘들 것 같다며 강제출산을 권유했다. 할 수 없이 7개월밖에 되지 않은, 조막만 한 어린 핏덩이가 5월 마지막 날 세상에 나왔다. 엄마는 얼마를 버티지 못하고 아들들을 두고 먼저 떠났다. 미숙아 보육기에서 자라던 칠삭둥이도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보지 못한 채, 엄마도 아빠도 알아보지 못한 채 그 안에서 얼마 뒤 엄마를 뒤따라갔다.
오 씨는 아내가 하나 남겨 놓은 핏줄을 키우기에 버거워 준구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셔와 함께 살고 있다. 매일 돈 벌기 위해 출근하면서 어떻게 혼자서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아내의 자리를 할머니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로서는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전혀 없다.
아내와 아이를 잃은 과거의 고통이 현재의 고통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살아남아 커가고 있는 아들을, 다른 여느 집과는 달리 부모로서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면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원망과 이를 판 회사, 그리고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연과 아픔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생명이나 건강 피해의 크기를 사람 수로 가늠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생명보다는 두 사람의 생명, 세 사람의 생명을 잃은 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분명 더 클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여러 명의 가족이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오늘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들의 소망은 하루빨리 이 사건과 관련해 책임질 사람(또는 기업, 기관)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또 살아남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어루만져주고 보듬어주는 치유의 제도와 사회의 관심이 생겨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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