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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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이즈미 전 총리의 '원전 제로' 주장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2009년 정계를 은퇴한 그가 '탈(脫)원전' 주장을 하면서 이슈메이커로 떠오른 것입니다. 외국 언론들도 고이즈미의 '원전 제로' 주장이 얼마나 파장을 일으킬지 주목하는 분위기입니다. <블룸버그>에서도 아베 현 총리의 멘토였던 고이즈미가 원전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 Abe Mentor Koizumi Reignites Post-Fukushima Nuclear Debate)
일본 내에서도 뜨거운 반응이 일고 있습니다.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를 보면, 고이즈미의 '원전 제로' 주장에 찬성하는 비율이 60%를 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고이즈미 전 총리는 진보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원전문제는 보수와 진보를 떠난 문제입니다. 원전의 실상을 알고 양심과 상식으로 판단한다면, 그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든 '탈원전'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일본의 전직 총리(수상) 중에 고이즈미 외에도 탈원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럿 있습니다. 진보-보수에 관계없는 현상입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탈원전 시위에 참여해서 화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하토야마는 후쿠시마 사고 전까지는 원전 수출에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도 후쿠시마 이후에 생각이 변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호소카와 전 총리도 탈원전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아베 수상의 원전재가동정책은 범죄행위라고 얘기하기까지 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앞으로 고이즈미 전 총리의 탈원전 행보가 일본 정치의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 일본 정치에서 원전문제는 최대의 정치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선, 정부는 원전 건설을 그대로 강행하겠다고 하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지난번 2차 에너지기본계획과 관련해서 '원전 비중 축소'라고 나간 보도는 결과적으로 오보였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원전을 줄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정부는 현재 23개인 원전을 41개까지 늘리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다고 합니다. 원전 비중도 현재의 26%대에서 2035년까지 27∼29%로 올리겠다고 합니다.
정부보다 한술 더 뜨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입니다. 전경련은 이번에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예상되자, 인상에 반대하면서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늘리자는 주장을 했습니다. <산업계 전기요금에 관한 오해와 이해>라는 책자를 만들어 언론에 배포하면서 이런 주장을 한 것입니다.
총 15쪽으로 구성된 책자에서 전경련은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전경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2012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집계한 것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산업용 전기요금 수준은 OECD 33개국 중 31위로 최하위권에 속합니다.
전경련은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이 저렴한 이유가 발전연료 구성에서 원자력비중이 높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원자력비중이 한국(28.3%)보다 높은 프랑스(78.4%), 스웨덴(39.5%) 모두 산업용 전기요금이 한국보다 높습니다. 대한민국과 이들 국가 간의 요금 격차는 정부 정책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책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해 온 반면, 외국은 비용 상승분을 반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서는 '전력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기업들이 등유를 써서 하던 일들도 전기로 전환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보일러업체들이 산업용 전기보일러까지 대대적으로 출시할 정도입니다. 이런 식으로 전기소비가 급증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빠르게 늘어나는 산업용 전기 수요(우리나라 전체 전기 수요의 53%에 달합니다)를 충족시키기 위해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 왔습니다. 가정용 수요 때문이라면, 이렇게 많은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안 지어도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발전소에 생산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 초고압송전선을 건설해 왔습니다. 지금 밀양 등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초고압송전선을 건설하게 된 주원인도 산업용 전기수요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용부담도 산업용전기를 많이 쓰는 에너지다소비 기업들이 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발전소 건설로 인한 피해, 원전의 숨겨진 비용(사고위험 비용, 폐기물처리비용, 원전 해체 비용 등), 석탄화력발전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과 환경피해 비용 등도 기업들이 많이 부담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산업용 전기요금을 싸게 해서 전기를 많이 쓰는 대기업들에게 특혜를 줘 왔습니다.
따라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은 비정상적으로 낮았던 요금을 정상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전경련은 여기에 반대하면서, 엉뚱하게도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늘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정부는 19일 '에너지 가격구조 합리화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가장 쟁점이 된 것은 역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폭이었습니다. 전경련의 반발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시나 정부의 발표내용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번 발표의 핵심은 전기요금을 평균 5.4% 인상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균 인상 폭이고, 산업용 전기요금의 경우에는 6.4% 인상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기업들에게 전기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지 못합니다.
그동안 산업용 전기요금이 비정상적으로 낮게 설정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50% 이상의 인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래의 표에서 보듯이 대기업 제조원가에서 전기요금(전력비)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떨어져 왔습니다. 1995년 1.94%를 차지하던 것이 2011년에는 1.17%까지 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보다 50%쯤 올려도 예전 수준을 회복하는 것도 안 됩니다.
물론 업종에 따라서는 제조원가 중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경우도 있습니다. 제철 같은 업종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런 몇몇 기업들 때문에 대규모 발전소를 더 짓고 초고압 송전선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한꺼번에 올리기 어렵다면, 전기요금 인상 목표치와 일정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더 이상 전기를 '싼 에너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를 산업계에 분명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을 늘리자는 전경련의 주장은 산업계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우리 사회 전체의 안전과 미래를 희생시키자는 탐욕스런 주장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더 이상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식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다가는 새로운 기후변화협약 체제에 적응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원전은 위험성, 폐기물처리 부담 등 때문에 더 이상 늘려서는 안 됩니다. 고이즈미같은 보수적인 정치인까지도 탈원전을 외치는 것을 봐야 합니다. 후쿠시마는 더 이상 원전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명백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린다면, 원전을 확대하자는 주장은 철회되어야 합니다. 전경련은 철저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원전은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것입니다. 호소카와 전 총리의 말처럼 지금도 원전을 늘리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범죄적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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