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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 사지로 내모는 삼성…당신 '삼성 직원' 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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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내 남편 사지로 내모는 삼성…당신 '삼성 직원' 이잖아"

[삼성전자서비스 가족 증언대회] 故최종범 씨 부인, 회사 대표 등 고발

부천에 사는 이현아(40) 씨는 몇 년 전, 고장 난 삼성전자 제품을 수리하러 온 조기영(43) 씨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 3년 차가 되던 때까지도 남편이 삼성 직원인 줄로만 알았던 이 씨. 남편은 때마다 집으로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 장형옥' 등이 쓰인 인증서, 격려문 따위를 들고 왔고, 3개월에 한 번씩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로 기술 교육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너무나 자주 '사장' 이야기를 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그 많은 센터 중에서, 남편의 사장은 왜 유독 부천 사무실로만 출근하는 걸까'란 의문이 커졌다고 했다. 남편이 '정식 직원은 아니야'라고 설명했지만, 이 씨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남편이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늘 지켜봐 온 이 씨는 설명을 들어도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19일 오전 국회. 남편의 정체를, 그리고 남편의 근무 방식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세 부인이 모였다. 지난달 30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란 이름의 증언대회에서다. 이 자리에서 부인들은 "위장도급 의혹이 불거지고 노동조합이 생긴 후에야 비로소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고 했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가족 증언대회. 왼쪽부터 삼성전자서비스 수리 기사 부인 김은영 씨, 정은숙 씨, 이현아 씨. 부인들이 남편이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 000'가 적힌 남편의 인증서, 격려문 등을 들고 손에 들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불규칙한 적은 월급…"당신, 삼성 직원이잖아"

부인들이 과거에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삼성 다니는 남편을 두고도 쪼들리며 사는 처지"였다. 이 씨의 남편은 수리 요청이 많은 여름 석 달을 빼고는 월 200만 원을 간신히 들고 왔다. 열한 살, 여덟 살, 여섯 살짜리 세 아이와 함께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그마저도 남편은 차량 유지비나 휴대폰 요금 등을 내야 한다며 월급의 대부분을 도로 가져갔다. "전 세계에서 그렇게 잘나가는 삼성이, 일하는 데 필요한 돈도, 차도 따로 지원을 안 해"주는 것이 신기했다고 했다.

천안 센터 수리 기사 홍지신(44) 씨의 부인 정은숙(42) 씨는 매달 불규칙한 월급에 지출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것이 싫었다. 남편이 처리한 수리 건수에 따라 수수료 형식으로 급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정 씨는, 그래서 매달 '이번 달엔 몇 건 수리했어?'라는 질문을 재촉하듯 던져었다고 했다. "중3 딸과 중1 아들이 사달라고 한 것들을 사줄 수 있을지가 불투명한 것이 싫었"다고 정 씨는 말했다.

부인들은 남편의 임금 명세서 등장하는 '미입금 공제' 항목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정 씨는 "남편의 설명을 들어 보니, 어떤 고객들은 수리를 다 받고 나서, 당장엔 돈이 없다며 나중에 주겠다고 배짱을 부린다고 하더라"라며 "어느 날 슬쩍 본 남편 휴대폰에는 '입금 부탁드린다'며 고객들에게 보낸 문자가 수두룩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남편이 수리비를 끝내 받아내지 못한 것은, 불만을 품은 고객이 서비스 평가 점수를 낮게 줄까봐 두려워서였다"며 "남편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손해를 보는 것은 오직 남편뿐이었다'고도 말했다.

김 씨는 "남편이 삼성전자서비스 수리 기사로 20년을 일했는데 아직 전세살이 신세에, 빚만 수천만 원"이라는 사정을 전했다. 그러면서 "전후 사정을 모르는 시어머니는 '삼성 다니는 남편 덕에 떼돈을 벌 텐데, 너희가 헤퍼서 돈을 못 모으는 것'이라고 하신다. 몇 번 해명하려 했지만 이해를 잘 못 하시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서비스 수리 기사가 아슬아슬한 아파트 난간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는 모습. ⓒ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아파트 외벽 매달려 에어컨 실외기 수리하는 남편, "그래도 구두 신어야 해?"

적은 돈을 벌어 오면서도 남편들은 언제나 바빴다. 남들이 휴가를 떠나는 여름이면 남편의 노동 강도는 최고조에 달했다. 동대문 센터 수리 기사였던 안양근(46) 씨의 부인 김은영(36) 씨는 남편이 "여름이면 연휴나 주말에도, 차 뒷좌석에 공구 가방을 항상 싣고 있었다"고 했다.

홍 씨의 부인 정 씨는 남편이 "아침에 싸준 도시락을 미처 못 먹고 집에 가지고 들어와서 먹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고도 전했다. 이는 수리 기사들이 지난 7월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까지는 별도의 점심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남편들의 몸은 언제나 상처 투성이었다. 정 씨는 "인두로 납땜을 많이 하는 남편의 바지에는 구멍이 자주 났고, 전자레인지 등을 고치다가 전기 쇼크를 입어 크게 다칠 뻔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김 씨의 남편은 겨울도 아닌 여름에 종종 손에 동상을 입어 왔다. "에어컨 가스나 그런 것을 다루다가 동상을 입는 모양"이라고 김 씨는 말했다.

그러나 일하다 다친 남편들이 산업 재해 처리를 하는 것을 부인들은 본 적이 없다. 외려 위험천만한 아파트 난간에 매달려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해야 하는데도 "삼성이 넥타이 매고, 정장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을 것을 강요했다"고 했다.

"표적 감사로 해고된 남편…카드론까지 다 끌어다 썼어요"

부인들은 이른바 '표적 감사'에 따른 남편들의 스트레스 역시 줄곧 곁에서 지켜봐 왔다. 특히 김 씨의 남편 안 씨는 지난 8월 고강도의 감사를 받은 후 이미 징계 해고된 상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안 씨에 대한 감사가 '보복성'이 아니냐고 묻자, 당시 동대문 센터 측은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통상적인 감사라고 말했었다"며 "그러나 후에 알고 보니, 감사는 오직 안 씨를 상대로만 진행됐으며, 매년 하는 감사라면서 과거 3년 치 이상 수리 기록을 다 꺼내 부정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었다"고 말했다.

안 씨의 두 아들은 아직 부친의 실직 사실을 알지 못한다. 부인 김 씨는 "남편 실직 이후 마이너스 통장, 카드론 등 끌어다 쓸 수 있는 모든 돈을 끌어다 써 왔다"며 "작은 아이(6세)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큰 아이(10세)는 조금 눈치챈 것 같다"고 걱정했다.

증언 대회를 마치며 정 씨는 삼성에 '고객 만족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호소했다. 정 씨는 "고객 만족 평가에 시달리며 감당 못 할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이 안타깝다"며 "고객 만족도 평가가 너무 싫다. 사람 잡는 제도다"라고 말했다.

故 최종범 씨 부인, 삼성전자서비스 박상범 등 형사 고소

표적 감사와 생활고 등에 시달리다 지난달 30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서비스 수리 기사 고 최종범 씨의 부인이, 19일 삼성전자서비스 박상범 대표이사와 이제근 천안센터(협력회사) 사장 등을 고소했다. 박상범 대표이사에겐 '부당노동행위'를, 이제근 사장에겐 '강요죄' 혐의를 물었다.

대책위는 이날 증언대회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 씨의 부인이 형사소송법상 허용된 권리로, 망자를 대신해 고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대책위에 따르면, 고인이 된 최 씨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후로, 전국적으로 진행된 표적 감사 대상에 올라 노조 탈퇴를 강요받았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19일, 최 씨가 진행한 수리를 받은 한 고객이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이제근 천안센터 사장에게 항의를 했고, 이 사장은 같은날 밤 9시께 최 씨에게 전화를 걸어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다.

대책위 측은 "욕설 전화가 걸려왔던 때에 최 씨는 원룸 형태의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 중이었다"며 "가족들이 자신이 욕설을 듣는 모습을 본 데 대해 심한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씨의 부인 외에도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가 같은 사안으로 박상범 대표이사와 이제근 사장 등을 이날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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