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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꿈꾸는 초등생 "학원 많이 안 다녀요. 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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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꿈꾸는 초등생 "학원 많이 안 다녀요. 9개?"

[현장] 서울대 입학 전형안, 다시 특목고 열풍 부르나

"학원 많이 다니는 편은 아닌데요. 한 9개 정도 다녀요."

경복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권 모(13) 양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권 양은 "그냥 다른 애들처럼 수학, 과학, 영어, 논술, 국어 학원 정도만 다녀요"라고 덧붙였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경복초등학교는 영어 몰입 교육을 표방하며 이른바 '명문 사립초등학교'로 꼽히는 곳이다.

토요일(16일) 오후 9시 40분, 강남구 역삼동 한티역 3번 출구로 나섰다. 학원이 밀집한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주로 학원 가방을 맨 초·중·고 학생들이었다.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우산을 들고 자녀를 마중 나온 학부모들이 몰려와 학원 건물 앞은 장사진을 이뤘다.

의사 꿈꾸는 초등학생,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학원 수업

유명 논술 학원 앞에서 만난 권 양은 특목고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용인외고나 자사고인 하나고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권 양의 하루는 학원으로 시작해서 학원으로 끝났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1시까지 영어학원에서 수업을 들었다.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점심을 먹은 뒤 학원 자습실에서 공부를 했다. 이후 오후 7시에서 10시까지는 논술학원에 있었다.

권 양은 서울대가 지난 14일 발표한 '201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주요 사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서울대 입학 전형안은 △의·치·수의대에서 문이과 교차지원을 허용 △정시 모집 비중을 현행 17.4%에서 24.6%로 늘림 △정시 모집에서 수능 성적만으로 선발(현행 인문계 논술 고사와 자연계 구술 고사·면접 폐지) 등을 골자로 한다.

이 변경 사항들은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때 반영된다. 그러나 권 양처럼 최상위권을 꿈꾸는 초등학생에게 서울대 입학 전형안은 매년 중요한 뉴스다.

권 양은 특히 문과생도 의대나 치대를 지원할 수 있다는 소식을 반겼다. 권 양은 "친척 중에 의사가 많아서 장래희망직업으로 의사에 관심이 많다"며 "이제 문과생도 의대에 지원할 수 있다니 더 많은 기회가 생긴 것 같아서 좋다. 엄마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대원국제중학교 2학년 김 모(15) 양 역시 개정된 서울대 입학 전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원외고 입학을 꿈꾸는 김 양에게 이유를 묻자 "다들 의사는 되고 싶어하니까요"라고 중얼거렸다.

▲ 서울대 정문. ⓒ연합뉴스

수능 비중 확대…다시 특목고 열풍 부나

서울대는 국립대로서 정부의 교육 정책 기조에 충실히 따라달라는 요구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정부의 교육 정책이 바뀔 때마다 서울대의 입학 전형안도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었다. 이번 입학 전형안에도 박근혜 정부의 주요 교육 정책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대입 전형 간소화와 문이과 교차 지원의 확대가 그것이다.

3000여 개에 달하는 복잡한 대입 전형은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정시에서 수능만 반영한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서울대 입학 전형안이 어느 정도 대입 전형 간소화를 달성했다고 평가한다. 또 사교육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논술·구술 고사를 폐지함으로써 수험생과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도 덜어줬다고 본다.

이범 교육 평론가는 "사교육 비중만 놓고 보면 수능보다 논술과 심층 면접의 비중이 더 컸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사교육 비중이 줄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특목고 열풍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것. 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이 커지면 수능 최상위권 학생들이 모인 특목고가 유리해진다. 반대로 수능의 비중이 축소되면 내신 성적 등 학생부 반영 비중이 높아져 일반고가 유리하다. 이 때문에 쉬운 수능을 표방하면서 '수능 영역별 만점자 1%'를 공언한 이명박 정부에서는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 평론가는 "한국에선 입시를 어떻게 바꿔도, 내신 비중을 엄청나게 높이지 않는 한 특목고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대 목표로 외고 입학, "외고의 설립 목적은?"

문이과 교차지원의 확대, 즉 문과생의 의·치·수의대 지원 허용도 특목고 열풍에 큰 몫을 할 전망이다.

안상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부소장은 "이번 서울대 입학 전형안이 통과되면 외고는 학생들에게,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해 홍보할 것"이라며 "'우리 학교에 와도 나중에 서울대 의대에 갈 수 있다'는 식으로 최우수 학생을 흡수할 텐데, 외고는 외국어에 소질 있는 학생이 특기를 발휘하려고 입학하는 곳이지 의대 입학을 목적으로 가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들이 의대를 목표로 외고에 입학한다면 외고는 자신들의 설립 목적과 아무 상관 없는 기관이 된다. 외고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이과 통합과 문이과 장벽 허물기는 다르다"


서울대의 문이과 교차지원 확대는 박근혜 정부의 문이과 통합 정책과 결을 같이 한다. 교육부는 2021년경부터 문이과 통합형 수능 체제를 이루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고교 교육과정에서 문이과를 구분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식민지 시대에 일본의 영향으로 도입된 교육과정을 아무 성찰 없이 그대로 이어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경직된 문이과의 장벽을 허물어 학생에게 종합적이고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데는 교육계도 이견이 없다.


지난 92일 교육부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한국교총은 문이과 완전 통합안에 적극 찬성했다. 한국교총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고교 현장 교사 723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문이과 통합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72.1%(완전 통합 36.4%, 일부 통합 35.7%)였고 문이과를 구분하자는 응답은 26.1%였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문이과 통합'과 교육계가 바라는 '문이과 장벽을 없애기'는 완전히 다른 의미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평론가는 "정부는 문이과를 통합하겠다면서 학생들에게 모든 과목을 똑같이 가르치려고 한다""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모든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영문과에 가려고 수학을 백 점 맞아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거칠게 말하면, 문과인 학생이 애초에 문과 과목으로 지정된 과목 외에 이과 수리와 과학탐구 영역까지 공부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경우 학생의 학습 부담이 두 배로 가중될 뿐, 교육 다양화의 긍정적인 의미는 찾기 어렵다.


그는 "이 세상 어떤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문이과의 구분을 없애서, 이수과목을 선택할 때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혀줘야지 모든 과목을 전부 똑같이 배운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학에서 전공에 따라 이수해야 할 과목을 지정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경제학과에 가고 싶은 아이는 이과 수학을 필수로 이수하되, 과학이나 사회 과목은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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