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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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출입기자 생활을 한 지 두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취재단 이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크고 작은 행사를 따라다닐 기회가 이따금 주어지는데, 먼발치에서나마 직접 보게 되는 박 대통령은 참 한결같습니다. 패션과 담쌓고 사는 제가 보기에도 품격 있는 옷차림에 단아한 미소,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사람인 것처럼 동작 하나하나에도 흐트러짐이 없는 기품이 느껴집니다. 박 대통령은 의전이 주를 차지하는 공식 행사나 외교 행사에 최적화된 사람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웬 아부냐고요? 이번 박 대통령의 서유럽 순방 때 거의 모든 매체가 쏟아낸 '손발 오글거리는' 보도를 다들 접했을 겁니다. 대통령의 외국어 능력, 패션 외교 찬사는 기본이고 여섯 마리 백마가 끄는 황금 마차를 타고 버킹엄 궁에 들어서는 대통령의 모습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기사들은 제가 보기에도 민망했습니다. '대통령의 숨소리까지 기삿거리'라는 언론계 선배들의 가르침에 충실한 탓일까요? 아니면 대통령의 타고난 '아우라'에 취한 탓일까요? 그보다는 관행에 중독돼 청와대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기자들이 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봉수 세명대 교수가 "청와대 기자들은 죽었다"고 일갈했습니다. 청와대 기자들의 손끝에서 나온 대통령 미화와 성과 위주의 보도가 국민의 알권리 침해로 연결된다는 지적입니다. '침묵의 박근혜'를 있게 한 공범,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반성의 마음으로 서두를 엽니다.
(☞[이봉수의 미디어 속 이야기]청와대 기자들은 죽었다, 민주주의와 함께)
▲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황금 마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했다는 소식은 우리 시각으로 6일(현지 시각 5일) 전해졌다. 이날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연합뉴스 |
대통령이 황금 마차를 타고 외교의 나래를 펴는 사이, 나라는 진창에 빠졌습니다. 지난 한 주, '정의'라는 추상적 가치의 제도적 구현체인 검찰의 끝 모를 추락을 목도했습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을 줏대 있게 파헤친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에게 검찰은 중징계 처분을 내렸습니다. 지난 4월 채동욱 전 검찰총장 체제에서 꾸려진 수사팀이 불과 7개월 만에 사실상 공중분해 된 겁니다. 반면, 수사 외압의 한 주체로 지목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수사 초기부터 외압을 가한 의혹을 받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 수사기밀 유출 의혹을 산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모두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검찰이 이 같은 결정을 발표할 때부터 절차적 부실이 논란거리였습니다. 외부인사 중심의 감찰위원회는 통상 만장일치로 징계 수위를 의결해 검찰총장에게 권고 의견을 냅니다. 감찰위원회의 권고를 검찰총장이 수용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이 같은 절차는 불문율이었던 셈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예외였습니다. 감찰위원회가 징계 수위를 둘러싼 의견 대립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이 임의적인 판단으로 징계청구를 한 겁니다.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요? '윤석열 중징계, 조영곤 무혐의'라는 결론을 검찰이 이미 내리고 그 각본에 짜맞추려다 보니, 탈이 난 겁니다.
그 내막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에 따르면 "감찰본부가 사전에 조 지검장과 이 차장검사에 대해 '비위사실 없음'이라고 적힌 프린트 물을 감찰위원들에게 다 나눠줬다"고 합니다. 반면,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과 박형철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장에 대해서만 공란으로 비워놓고 갑론을박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자, '그러면 저희가 알아서 하겠다'며 회의를 서둘러 마친 것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감찰위원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검찰은 국민을 상대로 거짓 발표를 한 셈이고 자신에겐 '셀프 사망선고'를 내린 겁니다.
(☞ [단독]감찰위, 윤석열-경징계, 조영곤-경고 중재안 나왔었다)
혼외 자식 의혹을 빌미로 한 '채동욱 찍어내기'가 일부 언론과 집권 세력 사이의 모종의 커넥션이 의심되는 사건이었다면, '윤석열 찍어내기'는 검찰이 권력에 굴종해 '정치 검찰'의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쓴 사건입니다. 요컨대, 집권세력은 지난 대선 때 벌어진 관권선거의 추잡한 실상을 치유할 의사가 전혀 없고, 한 가닥 기대를 걸었던 검찰도 손에 든 칼을 버린 꼴입니다. 특검은 야당이 아니라, 집권 세력과 검찰이 불러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 전개입니다.
(☞ 나는 빼고, 누군가 하겠지…)
이제 이슈의 충돌은 '공안'과 '특검'으로 압축돼 가고 있습니다. 검찰이 공무원노조의 대선 개입 의혹 수사에 나선 데 이어 전교조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도 수사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모두 보수단체가 고발장을 낸 데 따른 '청부 수사', '물타기 수사' 냄새가 짙습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공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들과 관련된 선거홍보대행사에 대한 압수수색도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별의별 물타기 수법이 죄다 동원되다 보니, 오죽하면 이번 주 줄줄이 터지고 있는 연예인들의 불법도박 사건도 '시선 분산용 기획수사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돌겠습니까. 전교조 수사와 관련해선 권영국 변호사의 한 마디가 정곡을 찌릅니다. "법치주의를 자꾸 얘기하며 행정 권력을 사용하는데, 법치주의는 권력이 자기 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법에 따라 통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치주의를 오독해 법을 국민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법률적 불법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행태도 가관입니다. 프랑스 파리 시위대 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김진태 의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종북 색깔론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자기들 손으로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도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법 개정은 물론이고 헌법 소원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야당이 특검을 들고 나온 상황에서 다른 쟁점법안들이 연계될 조짐을 보이는 데 대한 맞대응 성격이 짙습니다. 여당이 청와대의 독주와 야당의 반발을 완충하는 역할에 무심하다 보니, 이재오 의원의 당연한 말이 주목을 끕니다. "여당은 국정원과 검찰 뒷바라지하다가 볼 일 다 봤다. 성숙된 모습으로 야당에 접근해야지 야당이 무엇을 하면 만날 반대하고 싸우고, 국정원이나 검찰이 무엇을 내놓으면 그것을 옹호하고 청와대가 한마디 하면 그것 감싸기에 바쁘고, 이렇게 해서는 우선은 넘어가지만 장기적으로 국민들은 여당을 똑같이 피곤하게 생각한다."
(☞ [특별기고]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여권의 공안 몰이가 드세지는 가운데, 야권은 특검을 매개로 뭉쳤습니다. 민주당과 정의당,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원내에서 특검을 관철시키고 밖에선 시민사회계와 종교계가 지원사격하는 모양새입니다. 대선 1년 만에 통합진보당을 제외한 범야권이 한데 모인 겁니다. 소위 '신(新) 야권연대'는 민주당 중심의 대여 투쟁이 보여준 지지부진한 모습에서 탈피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프레시안>과 <더플랜>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특별검사제 도입에 대한 의견은 54.3% 대 39.6%로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반대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검찰에 대한 권력의 외압 의혹은 물론이고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등 추가로 밝혀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을 총체적으로 다루려면 현실적으로 특검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난관도 만만치 않습니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 특검 도입에 재적 국회의원 과반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지만 새누리당의 반대가 완강하다는 점, 박 대통령도 검찰 수사로 밝혀야 한다는 입장을 이미 천명해놓은 상태라는 점 등입니다.
이런 장벽을 극복하는 힘은 정치력에서 나옵니다. 당장의 관건은 안철수 의원에게 달려 있습니다. 독자 신당을 만들어 양당제 구조를 깨려는 안 의원의 노력은 일관적입니다. 그런 안 의원에게 여권에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구축된 범야권의 단일대오는 불편할 수밖에요. 안 의원이 범야권의 공동 대응을 특검에 관한 범위로 한정하고, 사안별 공조라는 입장을 강조하는 건 그 때문입니다. 다른 쟁점들과의 연계 전술, 예를 들면 예산안과 특검법을 연계하는 등의 방법에선 민주당과 확연한 온도 차가 납니다. 원내 전술에서 야권 내에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겁니다. 또한, 이 연대구조를 내년 지방선거의 선거 공조로까지 발전시키려는 일각의 구상과 안 의원의 독자세력화 움직임은 교집합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물론 신야권연대가 불안정한 야권 지형이 정돈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현재로선 범야권을 아우르는 리더십은 난망한 상태입니다. 여론의 뒷받침과 범야권의 정치력, 이 두 가지 요소가 특검은 물론 향후 야권의 질서를 좌우할 핵심 요소가 될 겁니다.
(☞ [정동에서]공안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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