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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야망, 동조한 건축가…역사 파괴한 新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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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야망, 동조한 건축가…역사 파괴한 新청사"

[김경민의 도시이야기]<17> 다큐 <말하는 건축 시티 홀>에 대하여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는 건축가 정기용 선생의 말년을 비춘 수작이다. 정기용의 건축 세계를 잔잔히 그린 이 영화는 필자에게도 뜨거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특히, 지역 커뮤니티 눈에 맞춘 건축물을 지으려는 그의 의지와 애정은 단연 돋보였다. 남에게 과시하려는 것이 목적인 '르 코부지에'식의 건축과는 다른 차원의 건축을 추구하는 건축가가 우리 곁에 있었단 사실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말하는 건축가>라는 이런 위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정재은 감독의 2013년 작품, <말하는 건축 시티 홀>은 개인적으로 매우 유감이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인 서울시 (구)청사 일부를 부수고 그 위에 올라서려 한,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목적의 건축을 소개하는 영화가 건축가 정기용 선생을 기린 작품의 다음 영화라는 데 필자는 큰 혼돈에 빠졌다. <필자>


1963년 10월 28일 뉴욕, 역사를 부수다.

사실 서울만 유독 역사적 자원을 부수고 그 자리에 초고층 건물이나 랜드마크 건물을 세우는 데 혈안이 돼 있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 전 외국의 많은 도시들도 현재 우리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건물을 지으면 도시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믿음에 현혹됐었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의 뉴욕도 현재의 서울과 매한가지였다.

1963년 10월 28일. '뉴요커', 아니 많은 미국인들은 이날 '왜 역사적 건물을 부수지 않고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게 된다. 이날 뉴욕 맨하튼 심장부에 위치했던 웅장하고 아름다운 기차 역사, 펜 스테이션이 무자비하게 철거되기 시작한 것이다. 몇 년 후 이 자리에는,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초고층 오피스(사무용) 건물이 들어섰다.

▲ 철거 이전의 펜 스테이션 ⓒ미국 국회의사당 누리집
▲ 펜 스테이션 자리에 들어선 초고층 오피스 건물. ⓒ김경민

펜 스테이션 자리에 새 건물이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1961년 초였다. 이 엄청난 소식에 소수의 건축가들은 '더 나은 뉴욕 건축을 위한 액션 그룹(Action Group for Better Architecture in New York)'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펜 스테이션 철거를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벌였다.

노동자 계급의 파업 시위가 아닌 멋진 정장을 입은 화이트칼라 전문가들의 집단 피켓 시위는 뉴욕 시민들의 눈에 매우 낯선 장면이었다. 이 시위에는 도시계획학계의 패러다임을 뒤바꿔놓았다고 평가받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저자, 제인 제이콥스도 참여하였다.

건축가들의 반대 시위에도, 뉴욕 시민들은 초기엔 펜 스테이션 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이 철거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건물이 철거에 들어가기 직전으로, 공사를 돌이키기에는 이미 매우 늦은 시점이었다.

그 아름답던 건물이 불과 3년 만에 처참하게 부서지는 것을 지켜보며, 뉴욕 시민들은 '우리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라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뉴욕시는 철거가 진행되던 중인 1965년, 역사적인 랜드마크 건물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 법은 단순히 랜드마크 건물뿐 아니라 커뮤니티를 지정한 후 이를 보호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더 나아가 1년 뒤에는 중앙 정부 차원에서 '역사 자원 보호법'이 통과된다.

▲ 펜 스테이션 철거 50년과 제인 제이콥스를 다룬 <가디언>의 기사. 피켓을 든 여서 옆에 안경을 쓰고 있는 여성이 제인 제이콥스다.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기사 원문 보기)

반세기 후 서울, 역사를 부수다.

그로부터 45년 후, 뉴욕의 반대편에 위치한 도시는 매우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2008년 8월, 비록 외세의 강압으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건축적 의미가 깊은 서울시 청사를 중앙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기습적으로 철거한 것이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문화재청의 철거 중지 요청에도, 시 청사는 사적이 아닌 단순 문화재이기에 문화재청이 간섭할 수 없다며 기습 철거를 감행하였다. 문화재청은 긴급 위원회를 열어 서울시 청사를 국가 사적으로 전격 지정하고 철거 중단을 명령하였으나, 서울시 청사 일부는 끝내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현대적인 건물이 들어섰다.

50년 전 뉴욕의 건축계와 시민들은 역사적 건물, 펜 스테이션 철거에 대해 조직적 반대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서울시가 나서 청사를 파괴하려는 시도에 전문가들의 조직적 반대 움직임은 없었다. 개인적인 반대 의사는 일부 있었을지언정. 이렇게 서울시 구청사는 전문가들과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무참히 철거되었다.

▲ 서울시의 청사 철거에 대해 문화 유산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었던 2008년 8월, 서울시는 태평홀을 중장비를 동원해 해체하고 말았다. 가운데 일부 헐린 부분이 태평홀이다. 사진은 2008년 8월 26일. ⓒ연합뉴스

제인 제이콥스 그리고 유걸

네이버 영화 페이지에서는 <말하는 건축 시티홀>의 줄거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서울시 신청사' 콘셉트 디자인의 최종 당선자인 건축가 유걸은 설계와 시공과정에서 제외된 채 신청사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는 유걸을 총괄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준공을 앞둔 신청사의 디자인 감리를 요청한다. 너무 늦은 합류였다. 이미 골조는 완성된 상태였고 유걸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유걸은 그래도 자신이 시청사의 마감을 돌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줄거리를 읽으면, '서울시 신청사' 건설 과정 특히 시공 과정에 건축가 유걸이 제외된 것이 주요한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시공 과정에 건축가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 것이 매우 큰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시공에 건축가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는 것은 실로 어이없는 현실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그리도 큰 문제일까? 건축가가 홀대받았다는 것이 정말 우리가 현시점에 곱씹어봐야 할 본질적인 문제인가?

건축가 100명이 뽑은 최악의 현대 건축물 1위로 서울시 신청사가 뽑힌 이유, 그리고 서울시민 60퍼센트 이상이 "디자인이 좋지 않다"고 지적하는 이유는 건축가가 시공 과정에 배제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그 외관, 즉 '디자인'에 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문제의식은 보존해야 할 역사적 건물을 시 당국이 일방적으로 철저히 파괴했다는 것과, 그리고 그 자리에 들어선 건물의 외관이 주변의 역사적 건물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심각하게 반성해야 하는 것은, 시공 과정에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어쩌다 우리는 이 역사적 건물이 부서지는 데 침묵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맨해튼 펜 스테이션을 지키기 위해 피켓을 들었던 많은 전문가 그룹들은, 반세기가 지난 21세기엔 우리 곁에 없었다. 또 우리 모두가 흡사 50년 전 뉴욕 시민처럼 역사적 건물의 가치를 업신여겼다.

이렇게 한번 지키지 못한 가치는 이후에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2011년과 서울 공덕동 사거리 인근 한옥촌이 철거됐고, 2012년 비록 낡은 건물이었지만 유용한 가치가 있었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내 삼우창고(삼우보세장치장)이 철거됐다. 그리고 2013년 현재, 1940년대 조선영단주택(LH공사 전신)이 지었던 초기 원형이 잘 보존된 문래동 사거리 서남 블록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자기반성이 먼저다.

일개 정치인의 야망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건축가들

한 가지 더. 시공 과정상의 문제가 있었건 없었건, 유걸 씨의 2008년 2월 서울시청 신청사 지명 당선 건축 조감도를 보면, 현재의 청사 모습과 얼마나 큰 차이점이 있는지를 비전문가인 필자는 알지 못한다. 현재의 모양새는 유걸의 설계 의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에 대해 건물을 설계한 유걸(72) 아이아크 공동대표는 "신청사가 구관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원래 의도했던 것"이라며 "처음이라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만 점차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애초부터 구관은 보존 가치가 없다고 생가했지만, 신청사를 짓고 보니 더 풍성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시공 과정에서 건축가가 배제된 것은 필자가 보기에도 잘못이다. 하지만 만약 시공 과정 배제 따위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각이 주를 이루고 이것을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잘못을 가리기 위해 내세운 작은 변명에 불과하다. 비판받아야 할 점은 역사적 건축물을 지키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지, 시공 과정이 아니다.

▲2008년 2월 서울시 신청사 당선안 (출처: www.iarcblog.net/entry/iarc-서울신청사-당선안)
▲ 서울 신청사 현재 모습. ⓒ김경민
▲ 서울 신청사 현재 측면 모습. ⓒ김경민

이제 자문해야 한다. 일개 정치인의 야망 그리고 그에 부화뇌동하는 건축가들에 의해 근현대 건축물들이 부서지기 시작하면, 역사의 도시 서울은 어떤 도시가 될 것인가? 서울은 전통과 현대 건축물만 남을 뿐, 중간 지대인 근현대 건축물은 없는 진공의 도시가 될 지 모른다.

우리에게 과거의 소중함과 미래를 말하는 인물은 제인 제이콥스와 정기용, 유걸 중 과연 누구인가?

최근 서구에선 역사적인 건물 축에도 들지 않는 과거 건물마저도 보존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또 중국 상하이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음을 <도시 이야기> 연재 초반, 상하이 티엔즈팡의 사례에서 설명하였다. 상하이엔 잊고 싶은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마저도 보존해야 한다며 내버려 둔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번 연재에서 한다.

□ 주석
① 'BATTLE OVER FUTURE OF PENN STATION CONTINUES', 1962년 9월 23일,

② LORRAINE B. DIEHL, 《The Late, Great Pennsylvania Station, 1985, American Heritage Press.
③ Jim O'Grady, 《Voices From the Wilderness Unite》, 2003.
④ http://www.nypap.org/content/pennsylvania-station,
http://82011443.nhd.weebly.com/the-demolition-as-a-turning-point.html
⑤ <한국일보> 2012년 6월 29일 여론조사 결과, 시민 10명 중 6명 "신청사 디자인 좋지 않다" (☞ 기사 보기 )
⑥ 위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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