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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사양 산업? 삼성·SK도 옷으로 돈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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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옷이 사양 산업? 삼성·SK도 옷으로 돈 벌었다"

[전순옥·권은정의 D-프로젝트]<1> 동대문, 그 새로운 꿈 : 전순옥 의원

가을빛이 눈부신 시월의 첫째 공휴일. 사람들이 볕을 쬐며 오가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국회의원 전순옥에게는 쉬는 날이 아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 패션기업가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달 말 공청회를 하나 주관했다. 도시형소공인지원법. 그 법률 제정을 위한 입법공청회였다.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행사장은 많은 이들로 붐볐다. 다양한 분야의 소규모 제조업자들이 자리를 메웠다. 전순옥 의원이 내민 '카드'에 저마다 희망을 걸어보고자 하는 눈빛이었다. 법 제정이란 것과는 상관도 없이 살던 이들도 자신의 살림살이와 관련되면 법은 더 이상 딱딱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 뜨거운 열기를 띤,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지금 전순옥 의원에게 소공인지원법은 그런 존재이다. 반드시 태어나서 살아가게 해야 할 생명체와 같다. 소공인지원법 법 제정을 향한 그의 결의가 아주 단단해 보인다.

▲ 전순옥 의원 ⓒ프레시안(손문상)
"답은 현장에 있다는 게 저의 소신이지요. 이번 법안도 그 현장을 다녀보고 느낀 저의 답인 셈이지요. 그 노동현장 대부분이 영세 소규모 공장들이거든요. 낡은 건물의 지하, 건물의 후미진 곳에 있어요. 그런 곳에서 두세 명, 많으면 10명 내외 기술자들이 모여서 일하고 있어요. 모두 30,40년 이상 일하고 계시거든요. 동업종에서 장인, 명인이라는 소리가 아깝지 않은 분들이지요. 전국에 이런 업체가 수만 개예요. 그런데 눈길 한번 받아본 적이 없어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봐요. 이분들을 위한 법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앉음새를 고쳐 앉더니 이 법이 왜 절실한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은 규모에다가 재래식으로 운영되어온 이 공장에 밥줄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 60만 명이 넘습니다. 큰 산업이지요. 그런데 정부가 이 산업에 한 번도 관심을 준 적이 없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간 지속시켜온 산업이라면 돌아봐야 할 분야임에 틀림없지 않은가요? 이번 법안은 이들이 지속적으로 일하고 먹고 살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해주고 여러 방면의 지원을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임무를 아주 제대로 잘 수행하고 있다. 그의 직업이 바로 법을 만드는 사람(lawmaker) 아닌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로 들어간 초선의원인 그의 포부가 당차 보인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일을 드디어 실천에 옮기려는 일일 뿐이다.

"사실 국회에 들어간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가 국회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이 방향을 향해 일로매진한 여정은 '한국 패션산업 그린포럼'이란 이름으로 국회 내 모임을 구성하면서 시작되었다(정세균 의원이 그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좋은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를 시리즈로 기획하여 정기적으로 세미나, 토론회를 개최해왔다. 여섯 번째인 이번 입법공청회는 그 작업의 최종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메시지 같다.

도시형 소공인 지원법의 출발점은 동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동대문'은 동대문 패션 즉, 옷을 파는 시장이기만 한 게 아니다. 동대문시장은 우리나라 패션산업의 70%에 해당하는 업체들이 몰려 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패션 타운의 메카이기 때문이다. 1만 개가 넘는 봉제공장, 3만 9000개의 패션유통 상점이 모여 있고 12만 명이 넘는 이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일하고 있다. 주문, 제작, 유통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동대문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단 하나의 시장이기도 하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업체 수 8만 개, 하루 평균 60만 명이 몰리는 이곳은 패션산업 집적지로서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패스트 패션에 가장 적합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제쳐놓고라도 전순옥에게 동대문은 자신의 삶을 걸만한 현장이다. 현대사의 한 맥을 잡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가족의 히스토리가 전개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동대문 사람들'은 친형제 자매들이다. 그들의 삶의 터전인 동대문, 그들의 젖줄인 봉제산업, 패션산업을 발전시키고 삶을 부흥시키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소임임을 본능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동대문 사람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고, 다 같이 그 열매를 나눠 가질 수 있게 하는 일, 그게 전순옥의 미션이다.

세계 패션 시장의 변화는 국내 패션 시장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SPA 패션, 브랜드 패션이 의류시장을 휘두르고 있다. '싼값에, 빨리, 모두 판다'는 목표를 세운 거대 의류기업과 거대 유통업체, 글로벌 브랜드와 기업들에 밀려 국내 봉제패션산업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프레시안(손문상)



국회의원 전순옥은 시간이 급하다고 말한다.

"지금 이들 수만 개의 공장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조업의 생태계가 해체되어 가고 있어요. 서둘러 다시 조정하지 않으면 오래 못 갈 거예요.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법 제정을 하자고 나선 제 마음이 급해요."

이번 법이 통과되어서 제대로 시행된다면 이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그는 자신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비전창출이죠! '나 혼자서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국회에서 법안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으니 그 사실 자체에 벌써 힘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발전시킬 수 있고, 가지고 있는 기술을 새롭게 펴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거죠.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당장 금전적인 지원을 해준다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요!"

소공인 법이 마치 '나를 위한 법' 인양 이 분야 종사자들에게 자부심, 희망을 가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 산업이 발전해서 기술자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될 때 이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은 단순히 한 명의 기술자가 아니라 한 장인이 만들어내는 제품, 즉 고부가 가치의 명품으로 발전된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기술자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기술을 연마하여 자기 이름을 내걸고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제 가능성이 크게 보이는 산업, 제조업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지요."

그가 주장하고 또 주장하는 바이다. 즉, 이 법안은 한국 패션산업의 상징인 동대문을 세계적인 패션특구로 키우기 위한 근본이 될 것이란 말이다. 낙후된 생산시스템과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영세공장주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 그 안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복지와 지원이 가능할 때 봉제, 패션산업, 즉 우리가 자랑할 만한 제조업이 일어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산이 수반된 정책 지원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패션분야 산업에 대한 기초예산 확보가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설득한다.

법안이 제정되고 법시행이 이뤄지게 되면 봉제업, 패션관련 제조업자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될까?

"세제혜택이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현재 기술자들에 대한 개별교육이 가장 어려운데, 정부에서 훈련시스템을 만들어 기술자를 양성해서 공장으로 보내줄 수 있게 되지요. 또 낙후된 공장을 50개 이상의 공장으로 된 집적화된 공장지역으로 개발하고, 공장 환경개선이나 내부 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거죠.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공동마케팅 시스템을 마련해준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은 봉제업 종사자들은 하청업자들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공동매장을 만들어 판매까지 할 수 있게 된다면 의류제조업은 상당한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재벌중심으로 된 백화점유통에 막혀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제조업자들에게는 판로가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런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가야지요. 제대로 보고 제대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도시 소공인을 위한 법 제정을 준비하는 가운데 '패션산업'의 범주는 상당히 늘어났다. 도시 소규모 제조업으로는 의류봉제뿐만 아니라 수제화, 가방, 안경, 주얼리 및 액세서리, 인쇄, 금속 가공업 등 도시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작은 산업들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손기술로 제조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포괄되어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손기술과 기계들이 함께 사용되면서 재래식으로 발전되어온 분야 산업들이지요. 공장이 도시에 위치하고 상시 10인 이하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업체들이 소공인 대상이 됩니다. 지금 기술자들이 중심이 되어 있는 이 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얼마지 않아서 이런 기술자들이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기술자 유입이 힘들기 때문이지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없다는 것이 문제인데, 그렇다고 이들이 스스로 투자하여 환경을 개선시킬 수도 없고, 또 기술자를 훈련시켜 자리 잡게 할 힘이 없다는 것이지요. 정부가 거기에 잠재되어 있는 기술이나 노하우를 하나의 자원으로 보고 투자하고 개발한다면 가능성이 아주, 아주 큰 산업분야이죠!"


ⓒ프레시안(손문상)
잘 정비된 공간에서 젊은 기술자들이 자신의 기술에 자부심 느끼며 일할 수 있도록 해줄 법적인 시스템이 작동된다면 도심제조업의 부흥은 목전의 일일 것이다.

올해 초부터 전순옥 의원실에서는 섬유봉제제조업에 관한 전국 전수조사를 현재형으로 실시해오고 있다. 곧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이 방면에 이런 작업은 해방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제조업 발전지원 법안은 동대문 한 지역만을 보고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제조업 잠재력이 글로벌시대에 얼마만 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보자면 부산에는 신발과 의류를 대량생산할 수 기반이 있고, 대구는 성서공단을 중심으로 새로운 섬유소재개발에 집중하도록 할 수 있고, 경기지역에는 니트, 전북 익산지역에는 니트와 액세서리를 생산하는 기반이 있습니다. 서울은 생산공장과 유통 쪽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전국적인 지형을 보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자는 것이지요."

바로 얼마 전, 전 의원은 산업부장관과 산업위 소속 여야의원들에게 동대문 패션 공장을 안내했다. 관련지역 일대를 둘러 보고 나서 그들은 한목소리로 '이 산업을 다시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동안 방치는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한다. 이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지원시스템을 갖춘 관제탑 역할을 동대문 비즈센터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제조업을 총체적으로 중심 잡고 나가는 정책 시스템이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 각개격파로 이뤄진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실제 어느 한군데서 모니터링 하는 데도 없었고 결과물로 모이지 않았지요. 제조업 전체 중에서 섬유 의류를 보고 있는데 이게 하나가 설계되어 정착된다면 다른 제조업 산업으로 확산될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제조업을 얼마나 무시해 왔습니까. 제조업이라면 자동차, 조선, 중공업 등 큰 것만 생각했지요. 손기술과 같이하는 전통적인 제조업은 이제 안 된다고, 사양산업이라고 했잖습니까. 80년대 말부터 밀려나는 그런 분위기였는데 미국이나 독일은 그렇지 않았지요. 뉴욕의 패션산업에서 제조업을 제자리에 앉혀놓기 위해 여러 정책적인 지원을 해 주고, 독일의 경우는 연필 만드는 작은 공장까지도 흔들리지 않게 기반이 잘 잡혀 있는 것을 보면 우리와는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요."

봉제패션 산업으로 볼 때 우리는 중진국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보다 못한 나라로는 페루, 캄보디아, 베트남 등을 꼽을 수 있다. 싼 노동력은 있지만 기술력이 없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 패션 선진국은 뛰어난 기술력과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생산라인이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양쪽을 다 가지고 있다. 이게 장점이다. 해외 생산지역과 가격경쟁을 할 만한 국내 생산라인도 100% 복구 가능한 형편이고 게다가 디자인 능력도 뛰어나고 기술력도 좋다. 우리의 재래식 소규모 공장은 그 어느 나라보다 많다. 1970년 섬유수출국으로 최정점에 있다가 그 후 내리막길을 걸어온 일본은 우리를 부러워한다. 우리가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고 전의원은 확신한다.

"왜냐하면 직접 그것을 봤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가장 유리한 조건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 정부나 정책 만드는 이들만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눈앞에 놓인 이 엄청난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여태 해오던 것처럼 방치 비슷한 상황이 이어진다면 선진국처럼 좋은 브랜드도 하나 못 가지고 우리의 좋은 기술력을 그냥 사라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자국 브랜드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중견 기업 수준의 내국 브랜드를 하나 만들어 낸다면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내는 것은 시간문제죠!"

이 대목에서 전 의원은 우리의 섬유시대를 아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고 말한다.

"기업들이 뭐로 돈을 벌었나요? 옷 만들어서 벌었습니다. 선경, 제일모직, 삼성, 엘지 등이 그 돈으로 조선소도 만들고 전자, IT산업 키우고 중공업 건설산업으로 옮겨갔잖아요. 그리고 어떻게 했나요? 옷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자신들의 브랜드를 다 죽여 버렸어요. 그리고 지금 로열티 주면서 수입 옷을 들여 와 백화점에서 팔고 있어요."

그는 '왜 그러는지 정말 모르겠다' 말한다.

"만약 내가 재벌이라면 딱 10년만 투자하고 기획해서 우리나라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보이겠는데 말이지요.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개발했더라면 우리라고 3,40년 안에 세계적인 브랜드 하나쯤 안 나왔을까요? 자기들을 키워 준 산업을 사양 산업이라며 팽개쳐 버렸고 그 기업에서 일하던 이들은 거리로 쫓겨났죠."

하지만 봉제공장 사람들은 결코 스스로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을 당부한다.

"소규모 공장이 문을 안 닫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요즘 전체적으로 창업에서 폐업에 이르는 기간이 보통 3년이라고 하는데 이 분야에서는 최소한 10년 이상 일해 오고 있거든요. 이들은 왜 쉽게 문을 닫지 못할까요? 적어도 이 일을 하면서 밥을 먹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살 수 있다는 뜻이지요! 전망이 있고, 벌이가 되는 사업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의류봉제산업은 결코 사양 산업이 될 수 없는 것이죠. 옷 입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나요? 우리가 '의·식·주'라고 말하죠? 가게가 많고 힘 든다 해도 계속 굴러간다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지요!"

그는 고백한다.

"국회의원이 일하려면 참 많이 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데요. 법이 없으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법을 만들어 놓으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고요!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전 의원은 현재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에서 일 잘하는 의원으로 알려졌다. 이 분야 관련 사안에서 '전순옥'을 찾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 자신이 지난 10년간 현장에서 일하면서 '법'의 담장이 얼마나 높은지 절감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이 국회가 가기를 머뭇거리는 그에게 말했단다. "가세요! 거기 가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잖아요!"

"정치인이 어떤 생각, 어떤 철학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자고 한다면 비록 전부는 못 바꿔도 중요한 것은 바꿀 수 있겠구나 싶어요. 기회가 주어졌으므로 이 산업의 뉴 패러다임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어요."

오랫동안 마음속에 그려놓고 들여다본 그의 청사진, 그것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그는 시간을 아껴 일하고 있다. 사실 국회의원이 되어 봉제산업 이야기를 꺼냈을 때 사람들이 별스럽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단다.

'창신동 봉제공장 좀 보살피고 아카데미나 지원받도록 힘쓰는 정도 하겠지' 하는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고 시선을 더 넓게 더 크게 두고 있다. 그전에 그 누구도 하려고 한 적이 없는 일이다. 이 법이 세상에 나오면 세상 사람들이 '전순옥 법'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했더니 그가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누구든지 이 일을 자신의 성과로 하겠다고 욕심부린다면 오산입니다. 모두의 성과로 해야 해요. 이 일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사람, 함께 해야 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의원들 간에도 여야가 힘을 합쳐서 해야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그 안에서 물론 전순옥은 없어져야 합니다. 저는 그저 부풀어 오르는 이스트 역할을 할 것입니다. 큰 빵이 되어 사람들이 나눠 먹도록 하면 되는 것이거든요. '전순옥' 이름 석 자? 그건 아니죠. 혼자서는 힘이 적아서 안 된다는 걸 잘 알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 소질이 전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하하하…."

그는 이번 법 제정을 위해서는 가능한 한 여야의 힘을 모두 동원할 생각이다. 국민에게 좋은 몫이 돌아가게 하려면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법 제정이 되더라도 시행하자면 큰 틀이 필요하다. 우선 각 부처 상임위 위원들이 힘을 모아내는 게 관건이다. 모두 협력해야 한다. 그는 이제 국회 내에서 '균형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여야를 두루 아우르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제 삶의 백그라운드를 보고 강성에다 자기 고집이 센 사람일 것이다, 대화하기 어려운 상대일 것이라고 짐작했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만나보면 다르다고 말해요. 좋은 일이죠?"

어떤 이들은 그가 노동계의 기대를 저버렸다고도 말한다. 국회에 들어가면 환경노동위원회로 갈 거라고 예상한 사람들도 많았다.

"제 방식대로 할 겁니다. 물론 섭섭하다는 소리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되면 환노위에 가서 투쟁하고, 파업현장에서 앞장서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의 방식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노동 쪽을 배제하자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싶어요. 지금 수면 위에 떠오르는 문제들만 보고 그것만 건져내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봐요. 생겨나는 원인을 제거해야지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 조용히 일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손문상)

그는 기존의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순옥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전순옥은 이렇게 발언해야 한다 등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을 넣어버리면 상상력, 새로운 발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순옥 의원에게 오빠 전태일은 이 모든 발상의 근원이다.

"제 삶의 전체 백그라운드가 오빠죠. 아무리 오래되었다 해도 그 사실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제가 오빠나 어머니의 삶을 꼭 그대로 따라 살진 않았지만, 제가 지금 이런 생각, 이런 일을 하는 근본이지요. 그저 방법이 좀 다른 거예요. 그때와 지금은 시대적인 환경도 달라져 있으니까요."

전 의원은 소공인 지원법이 그동안 숨죽여 살아온, 작게는 봉제업자들 넓게는 패션제조업 관련자들 모두에게 새로운 시작점, 꿈의 출발점이라고 자신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꿈을 이야기했지요. 사람들이 피부색이나 자신이 가진 것으로 판단 받지 않고, 흑인과 백인이 함께 손을 잡고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나누는 날이 오는 꿈, 결국 마침내 이뤄냈잖아요. 저도 그런 꿈을 꾸려고요."

세계 어디를 가도 모든 사람들이 우리나라 브랜드 옷을 입고, '메이드 인 코리아' 의류가 세계 제일이 되고, 그 옷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꿈! 오빠가 불꽃을 살랐고, 어머니가 땅을 다졌고, 누이동생은 이제 꽃을 피우게 하려는 것 같았다. 한 가족이 쓰는 노동의 역사가 바야흐로 동대문을 휘감으며 우리나라를 크게 한번 바꾸어 놓을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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