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와 같은 북한의 거침없는 행보에 국제사회의 대응은 지지부진하다. 반면 북한은 6자회담이 동력을 상실하고 공전을 거듭하는 이 순간에도 국제사회의 비핵화 해법을 무력화시키고 자신들의 핵 역량을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6자회담은 그 효율성 측면에서 심각한 의문에 봉착해 있으며, 대체재의 부재로 인해 단지 연명해가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결국 6자회담 10년간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고, 동결이 아닌 폐기의 과제까지 떠안은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입장은 곤경에 빠져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그나마 중국이 6자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3년 8월 26일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평양을 방문했고,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8월 27일 6자회담 10주년 기사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6자회담을 대체할 메커니즘이 없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9월 18일에는 중국의 주도하에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10주년 기념 토론회'를 통해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한 바 있다. 이 토론회는 1.5트랙(track) 성격의 반관반민 성격이지만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중국의 의도를 반영한 듯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상, 북한의 김계관 외교1부상 등 중국과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참여함으로써 토론회의 무게감을 높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 중국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 ⓒ연합뉴스 |
이렇듯 중국이 6자회담 및 유관국간 대화 재개를 위한 적극적 역할을 자임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참석자 의견과 이후 진행상황에 근거하여 유추해보면 우선, 북핵문제가 북미 간의 문제를 넘어서 중국의 '핵심 이익'을 심각히 위협하는 수준으로 전화되고 있다는 중국 지도부의 인식이 작용한 것이다. 북핵문제가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와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정권의 우경화 정책의 정당성 강화와 맞물리면서 동북아에서 중국의 입지가 위축되고 악화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내부적으로 설득력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동북아 러더십 교체기에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정권이 대외정책의 업적을 위해 북핵문제 해결에 좀 더 집중하려는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전임 후진타오(胡錦濤) 정권 이래 교착되어온 북핵문제를 시진핑 정부가 타결 지으면서 국제문제의 해결사로서의 입지 확보는 물론 장기적으로 동북아 안보구도의 안정적 관리를 통해 동북아 평화의 중재자로서의 위상을 다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연속선상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10월 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북핵 보유를 반대하며, 북한의 추가적 핵실험을 결연히 반대한다", "중국은 (북핵실험에 대한 대북제재를 명시한) 안보리 결의를 철저히 준수하겠다"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지난 6월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밝힌 "양측은 유관 핵무기 개발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인식을 같이 했다"는 입장에서 한층 진일보한 태도 표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와 같은 중국의 행보는 '변화하는 중·북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책임대국'으로서, 중·미 관계에서는 '신형대국관계'를 지향하는 중국에 북한은 '자산'이 아니라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는 주변 환경의 안정을 추구하는 중국의 바람을 위협한다. 게다가 국제사회는 대북제재의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전통적 중·북 관계'를 지목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이 북한의 체제 동요로 이어져 안정적 주변 환경을 저해할 것을 우려한 중국의 암묵적 지원이 북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에 중국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만을 외치는 궁색한 형국이다. 더욱이 북한의 위협은 미국과 일본의 협력을 촉진하고, 이러한 추세는 한미일 삼각협력의 강화로 이어져 동북아에서의 중국의 입지를 위축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북한의 핵무장이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체면을 손상시키고 국익에 부담을 안기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왜 중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단호한 대응을 주저하는가. 이에 대한 중국의 시각과 전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북 관계의 역사와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 중·북 관계의 내면에는 이데올로기, 국가이익, 중국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요소가 복합적으로 혼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대북관계에서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희석시키려고 하나, 동북아의 외적요소가 중·북 관계에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강화시키고 있다.
또한 냉전 후 국제관계는 동일 진영에 속한 국가 간의 협력과 의존에서 탈피하여 적나라한 이익경쟁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으며, 국익우선의 논리는 중·북 관계에도 투영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향후 북한의 대미 투항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예방과 우려의 논리를 전개한다. 중국의 대(對)북한 정책 기조는 상술한 세 요소가 유기적 결합을 통해 최적화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요소결합을 통해 중국이 그리는 한반도 그림은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 아래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운데 사회주의적 가치를 지닌 국가로서 존속하는 것이다.(1) 이 명제는 아직 중북관계의 골간을 이룬다.
이러한 중국의 대북인식은 1, 2, 3차 북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반응에도 투영되었다. 일단의 한국여론은 중국의 대북인식과 인내심이 3차 핵실험을 계기로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분석하나, 신중한 전략가들은 중국의 북한문제 및 북핵문제에 대한 접근이 아직도 '해결'보다는 '관리'에 치중하고 있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잇단 핵실험과 미사일을 발사할 때 마다 중국은 비난발언과 제재의 수위를 높여왔지만 '전략적 자산'이라는 근간을 흔들지는 않았다. 중국은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완충지대로서의 북한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까지 치닫는 것을 원치 않은 것이다. 오히려 갈수록 격화될 미국과의 동북아 헤게모니를 위한 각축을 생각해보면 북한의 완충지대로서의 가치가 더욱 강화될 개연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중국 전략가들의 주류적 입장은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북한의 가치가 '전략적 부담'을 상회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북핵이 우리 국가와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대 이슈이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세계전략과 주변부 전략, 그리고 미·중 관계의 부차적 이슈로 자리매김 될 수도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013년 10월 23일 발표한 담화에서 현재 한반도 정세에서 가동되는 것은 미국의 '핵위협 공갈'과 '반공화국 제재'뿐이라며 "외부의 핵위협이 가증되는 한 그에 대처할 핵 억제력도 강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는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중국의 입장과도 일정 부분 맥을 같이하고 있다. 중국의 전문가들과 북핵문제 및 동북아 정세를 논의하다 보면 결국 핵무기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자위적 조치라는 북한의 주장에 은연중 동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중국이 미국의 '아시아 회귀'가 동북아에서 대중국 포위전략의 기조 하에 진행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결국 이 같은 중국의 정세 인식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지속되면서 약소국으로서의 북한이 핵을 통한 체제보위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논리와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상술한 북한과 북핵문제 대한 중국의 시각과 전술을 분석함에 앞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절대 불변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변증법적 명제이다. 현 단계 중·북 관계가 '변화'보다는 '지속'의 경향성이 크다고 평가되는 것은 동북아 지정학이 중·북 관계의 변화를 견인할 동인을 제공하지 않는데 연유한다. 만약 한국이 동북아 지역 질서에서 합리적 균형을 모색하고, 한중이 동북아 역내에서 협력의 파이를 키우는 노력을 함께 기울인다면 중국은 '변화'와 '통일한국'을 경원시(敬遠視)할 이유가 없다.
중국은 북핵위기의 발생과 지속의 원인으로 북미 양측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한국이 적극적 역할을 발휘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6자회담 과정에서의 경험도 한국의 역할에 대한 유용성을 반증하고 있다. 즉 6자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는 9.19 공동성명은 당시 한국의 적극적 중재 하에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한 3국 합작의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한국은 북핵문제의 일차적 당사자로서 유관국의 갈등을 중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요구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반면교사로 북한과의 대화, 북핵문제 해결의 기대를 안고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에 구체성이 결여되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남북관계를 풀어나감에 있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주창하나, 반세기 이상 갈등과 대결의 당사자인 남북 사이에 가로 놓인 그 깊은 불신을 도대체 어떤 계기와 얼마만큼의 시일이 경과해야 신뢰가 쌓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신뢰는 대화와 약속, 그리고 행동의 결과가 중첩되면서 생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는 '신뢰'라는 수사에만 얽매일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선제적 대화 제의와 행동으로 신뢰프로세스의 물길을 열어야 한다. 또한 북핵문제 해법을 모색하면서 한중 지도자 간의 개인적 신뢰, 그리고 전통적 중·북 관계의 변화 동향 등을 토대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나 중국의 이해가 한국의 희망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편 중국은 육상과 해상을 경계로 20여 개의 주변국과 맞닿아 있으며, 이들과는 협력과 도전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북핵문제는 중국에 가장 큰 현실적 도전이다. '신형대국관계'의 한 축인 미국은 일찍이 '세계경찰'로서 수많은 국제문제에 긍정적, 부정적 역할을 감내해 왔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제까지 국제사회의 안정과 진보에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가 자문해 보았는가. 더욱이 형제국인 북한은 '핵·경제 병진노선'의 미몽(迷夢)속을 헤매고 이웃들은 밤잠을 설치는데 '중화민족의 위대한 중흥'이라는 '중국의 꿈'만을 추구할 것인가. 오히려 중국은 북한의 미몽을 깨우고 한반도 안정과 통일, 중화부흥, 동북아 번영이라는 '모두의 꿈'을 이루는데 열과 성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 필자주석
1. 박병인, '중국의 대북정책' 『한반도 정세: 2010년 평가와 2011년 전망』 (서울: 극동문제연구소, 2010) 참조.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3년 11·12월호(제26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북핵 문제의 점검과 전망'입니다. * 원제 : 북핵문제, 중국의 시각과 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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