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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치킨게임과 커져가는 '미·중 전쟁'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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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치킨게임과 커져가는 '미·중 전쟁' 위험

[정욱식의 '오, 평화']혼돈의 동북아, 한국의 좌표는?

중국과 일본 사이의 센카쿠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자국 영공을 침범한 외국의 무인기(drone)에 대해 필요시 격추할 수 있는 방침을 승인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을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10월 11일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으로부터 "영공을 침범한 무인기가 퇴거 요청 등의 경고에 따르지 않을 경우에 유인기에 대한 대처 시와 마찬가지로 격추를 포함한 강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방침을 보고받고 이를 승인했다. 아베 총리는 10월 16일 국회에서 "일반론으로서 무인 항공기가 영공을 침범하는 경우에는 유인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위대법에 근거해 조치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된 자위대법은 '자국 영공 침범 유인기의 국적 확인→무선 통신을 통해 퇴거 및 착륙 요청→무반응 시 경고 신호 발송→무반응 시 사격 통제 레이더 가동→일본에 피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 설 경우 격추' 순서로 대응 매뉴얼이 짜여 있다. 일본 방위성은 중국의 무인기가 고성능 카메라와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는 분석을 토대로 중국 무인기가 유인기와 마찬가지로 경고를 식별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에 따라 유사시 유인기에 준하는 대응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 센카쿠 해역 일대에서 대치중인 일본 해안경비선(위)과 중국 해양감시선(아래) ⓒAP=연합뉴스

일 간의 '치킨 게임' 우려 커져

일본의 이러한 방침은 9월 9일 중국 무인기가 센카쿠 부근을 비행한 사실을 파악한 뒤, 대응방안을 검토한 결과 나온 것이다. 또한 지난 10월 초 미·일 양국의 외교+국방장관(2+2) 회담에서 센카쿠 열도가 미일동맹의 관할 범위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미국이 공개적으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끈다. 일본이 미국의 힘을 믿고 공세적 입장을 강화한 것이라는 분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무인기 격추 방침'을 정함으로써, 중국의 무인기 사용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양태를 보면 오히려 더 자극할 소지가 크다. 중국은 일본의 센카쿠 국유화가 40여 년간 유지되어온 현상유지 약속을 일본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강경 대응을 선택해왔다. 점증하는 중국 내의 반일 여론과 민족주의 정서를 고려할 때, 중국이 물러서기는 더더욱 어렵다. 일본의 아베 정권 역시 국가주의 열풍을 정권 강화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무인기와 일본 전투기가 센카쿠 인근 상공에서 조우할 경우 양측의 자존심을 건 '치킨 게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실제 격추에 나서려고 하거나 중국이 무인기 엄호를 위해 유인 전투기를 발진시키면 확전의 위험성도 커진다. 양국 사이에는 이렇다 할 위기관리 시스템도 거의 없다는 점 역시 위기 발생 시 실제 충돌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미중 전쟁, 미소 전쟁보다 가능성 높다"

이와 관련해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데이비드 노트(David M. Knott) 교수는 중·일 간의 분쟁이 미국-중국 사이의 군사 충돌로 비화될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 외교전문잡지 <포린어페어> 9/10월호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미·중 간의 전쟁 위험은 냉전 시대 미국-소련 대결 때보다 오히려 더 높다고 경고한다.

미국과 소련은 적대 관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활적 이해관계에 대한 상호간의 이해 및 위기관리 수단을 마련했지만, 오늘날의 미국과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미·중 관계를 적대 관계로 한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아직 사활적 이해에 대한 이해의 공유나 신뢰할 만한 위기관리 수단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태평양의 현실을 보면 노트의 지적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영토 수호와 정치적 통합성, 그리고 대만을 "핵심 이익"으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도 핵심 이익에 포함된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과 맞물려 두 강대국 간의 충돌 가능성을 높인다고 노트는 경고한다.

미국은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면서도 대만이 미국의 안보 우산에 포함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중국과 이웃 국가들 사이의 영토 분쟁에 대해 '외교적'으로는 중립을 지킨다면서도, '군사안보' 차원에서는 일본과 필리핀 등 동맹국에 대한 안보 공약을 지킬 것이라고 말한다.


노트는 이러한 중국과 미국의 모호성이 금지선(red-line)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냉전 시대의 미국과 소련은 서로가 넘지 말아야 할 금지선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오늘날의 미국과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중·일 간의 무력 충돌과 같은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압도적인 군사 우위에 있는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무력으로 위협하거나 실제로 사용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고, 반대로 열세에 있는 중국은 자국 군사력이 파괴되기 전에 먼저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상호 간의 핵 억제력이 위기 발생 시 실제 충돌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고도 주장한다. 상대방이 핵무기를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재래식 무기 사용의 상한선을 낮추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트 교수는 미·중 사이의 핫라인 역시 충돌 예방 및 위기관리의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양측 정상 간의 핫라인은 1998년 설치되었지만, 1999년 미국의 (유고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에 대한 오폭 사고, 2001년 (하이난다오 인근에서의)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 사고 등 실제 위기 발생 시 무용지물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중국의 정책결정과정이 미국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체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노트 교수의 설명이다.

커져가는 한국의 딜레마

이처럼 중국과 일본,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군사 충돌 가능성이 아시아 상공을 배회하면서 한국의 딜레마도 커지고 있다. 지리적으로 한국은 이들 사이의 중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이고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라는 지정학적, 지경학적 위치까지 교차하고 있다. 또한 역사 문제에 있어서는 반일 감정을 공유하면서 중국과 친화성이 있지만, 군사안보 차원에서는 미국이라는 구심력이 작용하면서 일본과 가까워지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 이후 대북강경책과 균형 외교의 상실, 그리고 국정원과 국방부 사이버 사령부 등 국가안보 기관들의 국내 정치 개입으로 이러한 딜레마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즉 한국의 딜레마는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것도 있지만,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한말 때처럼 '강대국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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